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489화 (1,444/2,000)

1472. 대학 축제-97-

사람들의 시선이 서서히 정음쪽으로 쏠렸다. 어찌나 놀랐는지 안주를 먹다가 입을 쩍 벌리고 허벅지로 떨어뜨리는 손님도 있을 정도였다.

"와, 저기 봐봐."

"대박, 할리 퀸 재림이냐?"

"누구야? 여기 저런애도 있었어?"

웅성거림이 커갈수록 사람들이 점점 정음만 쳐다보았다.

한 사람이 쳐다보면 무시하지만, 세 사람이 동시에 쳐다보면 저도 모르게 시선이 따라가는 군중심리 때문이었다.

"엄청 예쁜데?"

"아, 쟤가 걔구나. 체육교육과 최고 미녀라는. 이제까지 어디 숨어 있었던 거지?"

"몸매가 지린다, 진짜."

안 그래도 노출이 심한 의상에 곤혹스러워 하던 정음은, 사람들이 일제히 쳐다보자 부끄러워 몸둘바를 몰랐다. 자꾸 움츠러드는 정음을 향해 옆에 있던 희주가 조언했다.

"정음아. 어깨 당당히 펴. 미스 국성 때 패기는 어디 간 거야?"

"그건 대회였잖아. 지금은 너무 민망한데."

"너가 코스프레한 할리 퀸은 늘 자신만만한 태도가 포인트라고. 좀 더 뻔뻔해져봐."

정음은 영화를 보지 않았기에 할리 퀸이라는 인물이 어디에 나왔는지도 몰랐다.

다만 희주의 조언을 듣고 조금은 생각을 고쳤다.

'그래. 한시간 내 힘들게 분장해놓고 이게 뭐하는 거야. 오빠도 그랬잖아. 나한테 잘 어울릴 거라고. 오빠를 실망시키지 말아야지.'

힘들게 의상까지 구해온 도훈의 성의를 떠올리곤 정음이 천천히 어깨를 폈다.

늘씬하게 잘 빠진 보디라인에, 풍만한 가슴, 그리고 운동으로 단련된 하체를 제대로 선보이자 사람들이 더욱 열광적으로 환호했다.

"우웃! 그쪽도 주문받죠? 여기 안주 제일 비싼 걸로 하나만 가져다 주세요."

"여기, 여기도 맥주 2병, 아니 5병!"

"저도요!"

남자들은 조금이라도 정음과 말을 섞기 위해 노골적일 정도로 그녀를 찾았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던 도훈은 확바뀐 정음의 모습을 보고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잘 어울릴 줄 알았다니까? 공룡탈 쓸 때랑은 반응부터 다르네.'

"누구야? 저쪽은?"

손은주 교수가 살짝 놀란 표정으로 도훈에게 물었다.

여자들의 특성상 눈에 띄는 미인을 보자 저도 모르게 궁금증이 들었던 것이다.

특히 정음은 어리고 예쁜데다 몸매까지 우월했기 때문에 손교수는 같은 여자로서 살짝 자존심이 상했다.

"저희과 후배예요."

"후배야? 되게 예쁘게 생겼는데?"

손교수의 목소리에서 은연중에 질투가 묻어나왔다.

마치 어리고 예쁜 후배를 두고 왜 자신같은 여자를 만나느냐는 말투 같았다. 도훈이 이를 짐작하더니 손교수를 안심시켰다.

"이제 스무살인데 아직 애죠."

"스무살이 어디가 애야? 다 컸지 그 정도면."

손교수는 정음의 커다란 가슴과 발달된 하체에 주목했다.

스스로도 매일 운동으로 몸매관리를 하고 있었기에, 정음의 탄탄한 몸매가 단지 어려서 그런게 아니라 굉장한 노력으로 다듬어진 것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봤다.

"글쎄요, 저는 원래 연상취향이라."

"어머, 그랬어?"

눈에 뻔히 보이는 거짓말이었지만, 손교수는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다만 도훈의 주변에 너무 어리고 예쁜 여자가 많다는 생각에 더욱 그를 챙겨야 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휴-. 어떻게 된게 이 과는 서빙하는 여자애들이 하나같이 미인들 뿐이니.'

도훈도 도훈대로 내심 손교수의 전전긍긍하는 마음을 읽고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여자들은 참 신기하단 말이야.'

[뭐가 말입니까?]

'손교수는 알파걸이라 불러도 손색 없을 만큼 대단한 여자잖아.

이른 나이에 교수가 되고, 몸매도 30대 중반이 무색할 만큼 탄력 넘치고.'

[골드미스의 전형이긴 하죠.]

'근데도 정음이를 엄청 경계하네.'

[역시 나이가 깡패인 걸까요?]

'여자들은 어쩔 수 없나봐. 자기보다 한살이라도 어리면 괜히 의식하게 되는 건.'

[주인님을 뺏길까봐 두려운 거겠죠.]

'뭘 뺏겨? 난 준적도 없는데.'

[네?]

'난 여자들에게 나를 주지 않아. 정확히 말하면 마음을 온전히 줄 생각은 없어. 몸은 빌려주긴 해도.'

[주인님은 만인의 연인을 꿈꾸시는 건가요?]

'난 식당도 뷔페를 제일 좋아하거든.'

도훈이 정음을 보고 흐뭇해하는 와중, 지환은 친구인 승현과 음담패설을 속삭였다.

"정음이 개꼴리게 입었네 오늘."

"코스프레잖아 인마."

"어쨌든 말이야. 은근히 가슴도 큰것 같지 않냐?"

"적당히 해 새끼야. 누가 듣겠다."

"듣긴 누가 들어 우리끼리 말하고 있는데."

물론 들을 수 있는 능력자는 있었다.

도훈의 발달된 청각은 30미터 밖에서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까지 청음이 가능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라고 모든 소리를 다 수집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주점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데 그 소리를 모두 청취해서 듣고 있다면 머리가 터져버릴 것이다. 그는 자신이 의식을 가지고 집중한 소리를 골라낼 순 있어도, 모든 소리를 다 엿듣진 못했다.

"진짜 오늘부로 맘 먹었다. 내가 기필코 정음이 꼬시고 만다."

"꿈도 야무지다. 정음이가 너같은 놈들 대시를 한 두번 받아봤겠냐? 근데 왜 솔로겠어? 눈이 좆나게 높다는 거거든."

승현의 말에 지환이 가소롭다는 듯 비웃었다.

"새끼야. 내가 여자애들 꼬실 때 뒷조사도 안 해봤을 것 같냐?"

"뒷조사라니?"

"당연히 1학년 후배들 통해서 알아봤지."

"정말? 너무 티낸거 아냐?"

"내가 바보냐. 관심있는 거 티내면서 물어보게. 슬쩍 쓰리쿠션으로 찔렀지."

"그래서 뭐래?"

"정음이 쟤 한번도 남자 만난 적 없대."

"진짜? 저 얼굴에 저 몸매로?"

"들어보니까 완전히 집순이더라고."

"학교에서만 안 만나고 클럽다니는 거 아냐? 은근히 그런애들 많을 걸?"

"아니야. 들어보니까 무슨 태권도장에서 알바한다더라고. 정음이 쟤가 체육 특기생으로 들어왔잖아. 무슨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이라고 하면서."

"아아, 맞다. 그랬지?"

"그래서 평소에 수업 끝나면 맨날 저녁마다 도장으로 출근한다는 거야. 그러니 남자를 만날 시간이 거의 없었다는 거지."

"완전 천연 기념물이구만? 근데 그건 정음이 스케줄이 그렇다는 거고 대시한 남자들은 꽤 있었을 것 같은데? 딱봐도 모태 미인인데."

지환이 비릿하게 입매를 비틀었다.

"그럴것 같지?"

"아니야?"

"새끼 그러니까 니가 여자를 별로 못 꼬시는거야."

"뭐래 씹새끼가."

"풍요속의 빈곤이라는 말 들어봤지?"

"폭풍속의 섹스는 들어봤지. 그게 뭔데?"

"여자가 너무 급이 높으면 남자들이 감히 들이댈 엄두를 못 낸다는 거야. 예뻐서 남자 많이 만나봤을 것 같은 여자들도 은근히 그런 애들 많거든."

"그래도 한명이 없었을까?"

"내가 볼땐 거의 없어."

"무슨 근거로?"

승현은 자신만만한 지환의 태도에 따지듯 물었다. 지환이 나름여자 좀 후리고 다니는 타입이긴 했지만, 저 정도로 자신감을 내비치는 근거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생각해봐. 정음이는 고등학교때까지 운동만 한 애잖아."

"우리과 애들 대부분 운동했거든?"

"아니지. 끽해야 시대표 수준이지. 전국대회 급도 거의 없잖아."

"근데?"

"정음이는 이미 고등학교 때 국대 상비군 후보에 오를 정도로 실력파였단 말이야. 평생 운동만 해온 외골수라고 볼 수 있지."

"으흠."

승현도 듣기 그럴듯 한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즉, 대학교 오기 전까지 과거가 깨끗하다는 거야. 물리적으로 연애하고 즐길 시간이 아예 없었을테니까."

"일리는 있네."

"너 정음이 첨 새터 왔을 때 기억하냐?"

"아니. 난 후배들 관심 없어서."

"그때 완전 선머슴 같은 스타일이었거든. 숏컷에 화장도 안하고. 엄청 터프한 느낌으로."

"아아, 기억난다. 태권도 무슨 시범도 했는데."

"그런 애가 무슨 남자를 만나봤겠어. 사실 나도 그때는 별로 관심도 없었거든."

"그때 너 나연이한테 들이댔잖아. 결과는 안 좋았지만."

"새끼야. 지난 얘기는 왜 꺼내? 암튼 그 뒤로 대학물 좀 먹더니 정음이가 머리도 기르고 점점 예뻐지더라고. 나중엔 1학기 지나기도 전에 우리과 탑으로 올라서더라."

"그랬지."

"암튼, 정음이 같은 케이스는 굉장히 드문 거야. 원래부터 예쁜 애였는데, 운동만 하면서 꾸밀줄 몰라서 사람들이 잘 몰라본 거지. 그러다 대학와서 만개했는데, 저녁엔 알바만 하면서 남자도 안만나고."

"이 새끼 존나 치밀하게 팠는데?"

"저런 애들이 그래서 남자를 잘 모른다는 거야. 내가 장담하는데 쟤 백퍼 아다다."

"처녀라고? 레알? 저런 얼굴로?"

"흐흐. 내가 처음으로 뚫어줘야지."

"미친 새끼. 진짜 매장 당하려고 작정했네."

"왜 매장을 당해? 적당히 사귀다 질리면 군대 핑계로 헤어지면 되지. 근데 정음이 쟤는 순진해서 남친 기다린다고 할 듯."

"아무리 생각해도 너는 쓰레기란 말이야. 이런 얘기를 서슴없이 하고."

"짜샤. 요샌 나같은 애들을 지뢰설치반이라고 부른다더라."

"지뢰 설치반? 폭탄 제거반은 들어봤는데 그게 뭐야?"

"너 설거지론 알지?"

"뭐? 젊어서 실컷 즐긴 여자가 결혼할 때 과거 싹 지우고 순진한 남자한테 빨대 꽂는거?"

"어. 그 실컷 즐긴 여자들에게 설거지 거릴 안겨주는 남자를 지뢰설치반이라고 부른다더라고. 그게 나거든."

지환은 스스로 생각해도 자신의 표현이 마음에 드는지 큭큭거리며 웃었다.

진짜 폭발물 매설 전문가인 도훈이 들었다면 기가 찰 이야기였다.

"암튼, 서빙하면서 슬쩍 슬쩍 찔러볼테니까 한 번 보라고."

"건투를 빈다 새끼야. 혹시나 회장님한테 안 걸리게 조심하고."

"뭐래? 아까 후배들한테 물어보니까 사귀는 사이도 아니더만?"

"혹시 아냐. 둘이서 비밀 연애라도 할 지."

"어쨌든 그건 내 알바 아니고. 난 모르는 거니까."

지환은 열심히 서빙을 시작한 정음에게 다가갔다. 도훈이 손교수를 상대하느라 정신이 팔린 상태였기 때문에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여어, 정음이 잘 어울리네?"

"앗, 지환 선배님. 오셨어요?"

"어. 아까 두시간 전부터 와서 일하고 있었잖아."

"고맙습니다. 원래 1학년 주축으로 해보려고 했는데, 어제 손님들 몰려오는 거 보니까 도저히 감당이 안되겠더라고요."

정음은 불순한 지환의 의도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고마움을 표했다.

지환은 아닌척 하면서 파인 정음의 가슴골을 은근히 훔쳐보았다.

'씨발, 존나 꼴리게 생겼네. 원래 저렇게 컸던가?'

최근들어 도훈의 도움으로 가슴이 발달한 정음을 보고 지환이 군침을 흘렸다.

'최소 C컵. 씨발, 젖소녀 보다 모양도 훨씬 예쁜듯.'

지환이 말한 젖소녀란 체육교육과 최고의 바스트로 불리는 서 현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그는 여자 후배들을 항상 따먹을 수 있는 대상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 별칭을 붙여둔 상태였다.

가령 테니스를 쳐 피부가 까무잡잡한 강경희의 경우는 다크초콜릿, 신이 내린 바디라 불리며 우월한 기럭지를 자랑하는 희주에겐 바비인형등이었다.

'흐흐, 태권소녀. 넌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빠뜨리고 만다.'

지환은 정음이 들고가는 쟁반을 대신 뺏어 들었다.

"이리 줘. 무거울텐데."

"아니에요, 선배. 괜찮아요."

"너무 고생하니까 그렇지."

"정말 괜찮은데."

정음은 손을 놓지 않으려고 했지만, 지환이 너무 완강하게 나와서 어쩔 수 없이 쟁반을 내주고 말았다.

"감사합니다."

"응. 손님들이 아까 찾는 거 같더라, 일봐."

"네, 선배."

다시 서빙을 하러 뛰어가는 정음의 뒤태를 지환이 노골적으로 쳐다보았다.

'엉덩이 씰룩이는 거 씨발, 존나 개 꼴리네. 똥꼬팬츠 실화냐?'

할리퀸 의상은 핫팬츠라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짧았기 때문에 신체를 지나치게 노출한 상태였다. 그 와중에 망사 스타킹까지 신은 상태라 지환은 자기도 모르게 발기되고 말았다.

'오우, 씨발. 아까 한 발 뻇는데 또 서는 거 봐.'

묵직해지는 잦이의 느낌에 만족하던 지환이 지나가던 남자 후배를 하나 불렀다.

"야. 일루와봐."

"네. 형."

"이거 설거지 하는데 가져다 놔라."

정음을 도와준다고 하던 지환은 정음이 사라지자 곧바로 다른 후배에게 일감을 짬처리했다. 체육교육과는 남자들끼리 군기가 강했기 때문에, 후배는 군소리없이 쟁반을 받아들었다.

"넵."

다시 빈둥거리는 지환은 계속 정음을 주시하며 기회를 엿봤다.

'단둘이 있을 시간을 만들어야 해. 기회만 오면 저런 순진한 계집애는 바로 떡각 가능.'

* * *

"호호호, 도훈이 너 바쁜거 아니니? 너무 우리가 붙잡아 뒀나?

"

"아닙니다. 교수님."

도훈은 손교수가 하는 말이 본심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가라고 하면서 자꾸 몰래 테이블 밑으로 도훈의 손을 만지작 거렸기 때문이었다.

'휴. 난감해 죽겠네. 손교수 술들어가니까 못된 버릇 나오는 거 같은데?'

[자중하십시오 주인님. 학과 후배들이 모두 보고 있습니다. 다행히 교수님이라서 의심은 하지 않고 있지만, 혹시나 들키면 굉장히 피곤해 질겁니다.]

'그러니까 말이야. 차라리 핑계대고 적당히 한 번 쳐주고 올까?

'[뭘 친단 말씀이신지.]

'뭐긴 뭐야. 손교수가 그럼 진짜 매상이나 올려주러 왔겠어? 간만에 님이나 보고 떡이나 치자는 거지.'

도훈은 다소 피곤했지만 옛정을 생각하며 손교수를 어떻게 위로해줄까를 고민했다.

그가 손교수에 집중하는 사이 지환은 점점 정음에게 마수를 뻗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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