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479화 (1,434/2,000)

1462. 대학 축제-87-

* * *

"와, 종합대는 다르긴 다르구나. 사람 진짜 많아. 교대랑은 비교가 안 되네."

"축제 기간이라 그렇겠지."

"근데 여긴 무슨 과길래 죄다 남학생들일까?"

"아까 보니까 천막에 기계공학과라고 써져 있던데?"

"이렇게 남학생이 많은 건 처음봐."

야외 주점 테이블에 자리잡은 하린의 친구들은 하나 같이 들뜬분위기였다. 그도 그럴것이 맨날 조그만 교대에서 익숙한 남학생들하고만 어울리다, 간만에 새로운 남자들을 잔뜩 보게 된 것이었다.

"확실히 우리학교 남자애들보다 키가 큰 것 같아."

"그냥 큰 사람만 눈에 보이는 거 아니야?"

"그런가? 힝, 나도 교대 안가고 종합대 갔으면 남친 벌써 사겼을 텐데."

"맞다. 하린 언니 과외해 주셨다는 오빠는 혹시 여자친구 있으시데요?"

"도훈 오빠?"

"네."

"민정이 넌 무슨 그런 걸 물어봐? 엄청 잘생기셨던데 당연히 있으시겠지."

"맞아. 인기 엄청 많으실듯."

하린은 겸연쩍게 웃더니 희미하게 웃기만 했다.

'여자친구가 생겼는지는 모르지만, 나랑 그렇고 그런 사이긴 한데···'

하지만 하린은 동기들 앞에서 그런 내막을 밝힐 수 없었다. 공식적으로 그녀는 교대생 남자친구를 둔 커플이었고, 오늘 따라온 동기들 중에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언니 과외할 때 확 꼬셔버리지 그랬어요?"

"뭐래니? 그럼 대학생이 고등학생을 꼬시라고? 그거 범죈데?"

"아니지. 언니 과외할 때는 재수생 시절이잖아. 스무살이니까 상관없지."

"맞네. 우리 나이였겠구나."

"야야. 하린언니 남자친구 있잖아.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아, 맞다."

남자친구가 언급되자 하린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타지에서 외롭다고 덜컥 사귀고만 남자친구의 존재가 이렇게 발목을 잡을 줄 몰랐던 것이었다. 하지만 하린은 티내지 않고 적당히 말을 돌렸다.

"도훈 오빠가 괜찮은 후배들 데려온다고 하니까 너희들도 이번 기회에 한 번 만들면 되지."

"그게 뭐 저희 마음대로 되겠어요?"

"맞아. 그리고 사겨도 서울이랑 충주에서 장거리 연애 해야 하잖아."

"멀리 떨어져있으면 더 좋을지도?"

"뭐가 좋아? 자주 보지도 못하는데?"

"히히. 주말에는 서울에서 남친이랑 놀고, 평일에는 친한 남사친들이랑 놀면 되지."

"꺄아! 변태! 바람 피우겠다는 거야?"

"현지 남사친, 장거리 남친 완전 양다리네!"

"하여간 모솔들이 더 밝힌다니까?"

하린을 제외한 동기들은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꺄르르 떠들었다. 다들 얽매인데가 없는 자유의 몸이다 보니 그런 주제에 대해서 거리낌없이 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하린이 그런 말을 했다간, 대번에 교대 남친을 버리고 다른 남자랑 바람 피운다는 소문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것이다.

'도훈 오빠랑 관계 안들키려면 조심해야 겠어. 학교가 좁아서 그런지 한 번 이상한 소문나면 전교생이 다 알아버린단 말이야.'

그렇게 서로 대화를 나누는 중에 도훈이 돌아왔다.

"미안. 잠깐 담배 좀 피우고 오느라."

"오빠 담배도 피우세요?"

"응, 왜? 혹시 냄새나니?"

"아니요.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요."

"저흰 괜찮아요."

"불편하시면 여기서 피우셔도 돼요."

다들 도훈에게 필요 이상으로 친절한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것이 도훈은 남학생이 적은 교대에선 찾아보기 힘든 훈훈한 미남.

하린의 동기들은 도훈을 마치 아이돌 대하듯 극진히 예우했다.

[주인님께 다들 호감을 보이는군요.]

'글쎄. 오늘은 양아치짓 할 생각 별로 없는데?'

[정말 이십니까? 원래 소개팅 시켜주는 척 해놓고 막상 다 따먹는게 주인님 특기 아니셨습니까?]

'그거야 옛날 이야기고, 오늘은 진짜 생각 없어.'

[별일이 다 있군요. 주인님이 뉴페이스를 보고 그냥 지나치시다니.]

'그것도 여유가 있을때나 하는 거지. 오늘 내일 약속 잡은 여자가 몇명인데.' 도훈은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축제 기간 도훈을 만나기로 약속을 잡은 여자들은 아직도 많이 남아있었다. 조만간 송교수도 오기로 했고, 영어회화 강사도 흑누나를 데려 오기로 했다. 게다가 내일 초대가수로 온다는 아이돌그룹과 조우할 가능성도 고려해야 했다. 이런 와중에 새롭게 다른 여자를 꼬신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리고 하린이 입장도 있으니까.'

[하린양이요?]

'그래. 남자친구가 있으면서도 나를 못 잊고 이따금 만나는 사이잖아. 그런 하린이를 실망시킬 순 없지.'

[그럼 정말로 소개팅만 해주고 빠지시겠다고요?]

'응.'

"아참, 후배들 불렀으니 금방 올 거야."

"오빠 후배들이면 다 체육교육과죠?"

"응. 동갑내기들이라 대화 잘 통할 거야. 어, 잠깐만 도착한 것 같은데?"

도훈은 혁준을 비롯한 1학년 후배들을 발견하고 손을 번쩍 들었다.

"이쪽이야."

나름 의상에 신경쓴 남학생 셋이 쭈뼛거리며 테이블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주선자인 도훈과 하린을 제외하면 다들 초면이라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도훈은 후배들을 자리에 앉히고 서로 소개를 시켰다.

"이쪽은 충주교대 다니는 학생들. 너희들이랑 같은 학번이야.

그리고 여긴 우리과 후배들. 인사해."

서로 눈치를 살피는 탐색전이 시작되었다. 남학생들은 잔뜩 긴장한 분위기였고, 여학생들 또한 갑자기 말수가 줄어들며 서로 눈치를 살폈다. 마침 주문한 술이 도착하자 도훈은 건배를 제의했다.

"우선 술부터 마시면서 할까?"

도훈은 술을 통해 어색한 분위기의 전환을 시도했다. 한잔 두잔들어가자 슬슬 입이 풀리더니 나중에는 금세 서로 이름을 물으며 친해졌다. 적당히 화기애애한 모습이 연출되자 하린이 몰래 도훈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하린 : 오빠, 저희는 슬슬 핑계대고 빠질까요? 솔로들끼리 놀게.

-도훈 : 그러자. 애들이 내 눈치 보느라 화끈하게 못 노는것 같은데.

"그러면 재밌게들 놀고 있어. 난 잠깐 다녀올데가 있어서."

"엇? 오빠 벌써 가시게요?"

"더 놀다가시지."

"금방 돌아 올게."

"오빠, 저 그럼 학교 구경 좀 시켜주세요."

"하린 언니도?"

"언니도 가게요?"

"임자있는 몸이라 같이 놀기가 영 불편해서."

"에이, 그런 게 어딨어요."

"그냥 학교 구경해 보고 싶어서 그래. 한 바퀴만 돌고 올게."

도훈과 하린은 붙잡는 후배들을 뒤로하고 자리에서 먼저 일어 섰다. 다들 스스럼 없이 이름을 부를 정도로 친해진 이후였기 때문에 주선을 했던 두 사람이 자릴 비워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도훈은 주점을 떠나면서 아까 그 공대장에게 먼저 계산을 했다.

"3,4번 테이블 술 값 계산좀 할게요."

"벌써 다 드신 거예요?"

"아뇨. 미리 넉넉히 계산하고 갈테니 추가주문하면 거기서 까주세요."

도훈이 현금 20만원을 찔러주었다.

공대장 티를 입은 학생은 상당한 현금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무 금액이 많은데요. 이렇게까지 나오진 않을 겁니다."

"부족한것보단 나으니까 받아두세요."

"아, 네 그럼 거스름돈 생기면 일행분에게 전해 드릴게요."

"네."

도훈이 계산을 마치고 나오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하린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무슨 술값을 그렇게 많이 계산하세요?"

"어, 후배들 위로금."

"위로금이라뇨?"

"오늘 애들이 게임 대회 출전한다고 며칠 동안 날새고 고생했거든. 그래서 회장된 입장에서 챙겨주는 거야."

"와, 오빠 돈도 많구나."

하린은 도훈이 편의점 알바하던 시절부터 봐왔기 때문에 딱히 그가 돈이 많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당시 도훈은 하린의 모친인 허영자에게서 가끔 용돈을 받아쓰기도 했다.

그 시절을 떠올린 도훈이 피식 웃더니 하린에게 물었다.

"자, 그럼 우린 어디 갈까? 정말로 학교 구경 시켜줘?"

"어디든 상관없어요. 일단 걸어요."

주점에서 나온 하린이 갑자기 팔짱을 끼는 바람에 도훈이 당황했다. 하린은 엄마인 허영자의 유전자를 받아 유난히 가슴이 큰 편이었기 때문에 팔짱을 끼는 것만으로 팔꿈치에 와락 가슴이 닿았던 것이다.

"어어, 누가 보면 어쩌려고?"

"누구요? 오빠요 저요? 전 상관없어요. 우리학교도 아닌데 제가 남자친구 있는 지 누가 알겠어요?"

"흐음, 나도 뭐 상관은 없지만."

사범대는 공대와 많이 떨어진 위치였다.

실제로 캠퍼스가 워낙에 크다보니 아는 사람을 만날 확률도 거의 없었다.

도훈에게 바짝 붙은 하린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부럽다, 동기들."

"응?"

"혼잣말 한건데요."

"다 들리던데 뭘."

"아니 소개팅 하는 저희 동기들이요. 다들 신나보여서."

"처녀 총각들 만나면 다 그렇지 뭐. 부끄러운 듯 빼다가도 술좀 들어가면 알아서 본능적으로 행동하잖아."

"왜요? 오빠도 마음에 드는애 있었어요?"

"응."

"정말요?"

하린이 질투심 섞인 눈으로 도훈을 올려다 보았다.

데려온 동생들이 나름 괜찮긴 했지만, 설마하니 도훈이 눈독을 들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응. 거기서 제일 가슴 큰 애 있잖아."

"가슴 큰애라뇨?"

"박하린이라고."

"앗, 진짜 오빠!"

하린이 도훈의 팔뚝을 찰싹 때렸다.

그러다 스스로 놀라서 물었다.

"우아, 몸이 왜 이렇게 돌덩이 같아요?"

"운동 좀 했어. 너 못보던 사이."

"원래 운동은 하시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더 했어. 엄청 많이."

"헤으응, 보고 싶어지게."

하린은 굉장히 노골적이었다. 도훈은 원래부터 그녀가 조금 밝히는 타입이란 걸 기억했다.

'맞다. 하린이 자기 엄마 닮아서 엄청 밝히긴 했었지.'

[주인님이 그렇게 만드신 건 아니고요?]

'나는 그냥 첫단추를 꿰어 줬을 뿐이고. 결국 교대 가서도 외로움 못 참고 바로 남자 사귄 거 보면 알만 하잖아.'

"맞다. 나한테 할 얘기 있다지 않았어? 남자친구 얘기."

"여기서 하긴 좀 그렇고 조용한 곳으로 갈래요?"

"조용한 곳?"

도훈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슬슬 해가 떨어지고 조명이 켜지자 사람들은 더욱 늘어 있었다.

캠퍼스 전체가 대학로처럼 시끌벅적했다.

"그럼 여긴 좀 무리일 것 같고."

"오빠 집은 어때요? 학교 근처 원룸에 아직 사시죠?"

"나 이사했는데?"

"이사요?"

"응. 그렇게 됐어."

"와, 그럼 새집 구경 시켜 주세요."

"정말 우리 집으로 가자고?"

"네."

"다시 돌아가기로 했잖아. 애들한테."

"어차피 자기들끼리 신나게 노느라 우린 신경도 안 쓸걸요?"

도훈도 같은 생각이었다.

처음에야 주선자인 두 사람이 빠지는게 어색하겠지만, 결국 소개팅이란 주선자가 빠진 뒤부터 시작이다.

"그럼 그러든가. 근데 걸어가긴 좀 멀텐데."

"괜찮아요. 오랜만에 같이 걸으면 되죠."

축제 기간이라 캠퍼스 내 도로도 꽉 막힌 상태였다. 주차장에서 차를 빼서 나간다면 한 세월 걸릴게 뻔했다.

"그러자."

도훈은 하린의 팔짱을 끼고 집으로 걸었다.

"맞다. 아까 오빠 없을 때 동생들이 오빠 여친 있는지 궁금해하던데."

"그래서 뭐라고 그랬어?"

"있으세요?"

"아니 없는데?"

"여친은 없어도, 만나는 여자는 있죠?"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지."

"이거봐. 완전 바람둥이라니까?"

하린은 눈을 게슴츠레 뜨더니 코끝을 찡그렸다.

하지만 가슴을 더욱 밀착시키며 육탄공세를 더해갔다.

"하여간 이 오빤 여자 없이는 못 산다니까?"

"너가 그런건 아니고?"

"아니거든요?"

"뭐래. 교대 가자마자 남친 사겨놓고?"

"아니 그건 저번에도 말했지만···. 흥, 됐어요."

"어머님은 잘 계시지?"

"늘 그렇죠 뭐. 요새 부쩍 외로워하시는 것 같아서 재혼이라도 하면 좋겠어요."

"응? 진짜?"

"아무래도 제가 지방에 내려가 있으니까 혼자 심심하지 않겠어요? 아직 그렇게 나이가 많으신 것도 아닌데."

"그렇긴 하지."

편의점주였던 허영자는 나이에 비해 굉장히 탄력적인 몸매였다.

게다가 하린에게도 유전되어 내려온 풍만한 가슴은, 남자라면 누구나 눈독들일법 했다.

'로시. 혹시 허영자가 아직도 나에 대한 마음이 남아있을까?'

[호감도 최초로 100을 달성했으니, 여전히 그리워 할 겁니다.]

'괜히 나 때문에 재가도 못가면 너무 미안해지는데.'

[그렇다면 인연의 붉은실을 끊어서 호감도를 초기화하는 게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래. 나중에 시간봐서 편의점 한 번 들러야 겠네.'

도훈은 허영자에게 마음의 빚이 남아있었다. 더욱이 외동딸인 하린마저 건드렸기 때문에 더욱 미안했다.

"근데 오빠 나 요즘 이상한 것 같아요."

"응? 하린이 네가 왜?"

"그냥, 자꾸 밤마다 잠이 안와요."

"불면증이야?"

"그게 아니라 자꾸 하고 싶어져서요."

"으잉?"

"오빠한테만 얘기하는건데 요샌 자위 안하면 잘 못 자겠어요."

"읏, 여기 대로변이야. 목소리 낮춰."

"누가 듣는다구요."

하린은 계속 도훈에게 가슴을 비비며 말했다.

"한번도 아니고 두번 세번은 해야 겨우 자요."

"왜 그렇게 된 거야? 남자친구는 뒀다 뭣하고?"

"몰라요. 외롭다고 해도 들은 척도 안하고. 그리고 솔직히 남친 이랑 하는 것보다 혼자 하는게 훨씬 더 좋으니까."

"그 정도면 생각보다 심각한데."

도훈은 둘 사이의 관계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었지만, 하린은 엉뚱하게 알아들었다.

"그쵸? 지금도 밑에 엄청 젖었어요."

"어엇?"

"오빠랑 이렇게 걷고만 있는데 팬티가 축축해져버렸어요."

"진짜? 못 참겠어?"

하린은 얼굴이 빨개진 채 고개를 끄덕였다.

대학을 벗어나긴 했으나, 아직도 집에 가려면 10분이상은 걸어 야했다.

도훈은 급한대로 택시를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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