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475화 (1,430/2,000)

1458. 대학 축제-83-

* * *

니가 왜 여기서 나와?

스스로를 대학 내일 대학생 기자라고 밝힌 그녀는 바로 설수지였다!

일전에 나와 얽힌적인 있던 섹스타 치녀 SSG 말이다!

'수지는 법대생 아니었나? 근데 언제 또 기자가 된 거지?'

몹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마치 누군가 나를 골탕먹이기 위해 과거의 인연을 일부러 끌어들인 느낌이랄까?

눈빛이 교환되는 순간 그녀가 나를 알아보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어느새 사무적으로 표정을 바꾼 수지는 마치 처음보는 사람처럼 말을 이어갔다.

"괜찮으시면 학교 내 커피숍에서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10분이면 되는데."

수지의 거듭된 인터뷰 요청에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내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오히려 나연과 연두가 적극적으로 나섰다.

"학생 기자시라고요?"

"명함 좀 볼 수 있을까요?"

두 사람은 월등한 수지의 미모를 경계하는 눈초리였다. 하긴 정식 기자들처럼 카메라맨을 달고 다니는 것도 아니다보니 당연히 신분을 의심할 법 했다. 수지가 입고 있던 트렌치 코트를 젖히더니 목에 건 패용증을 들이밀었다.

"주최측에서 정식으로 허락을 받았어요. 우승자 인터뷰 실어주기로요."

나연이 패용증을 확인하는 사이, 나 역시 그녀의 이름을 한 번 더 확인했다.

예쁘게 나온 증명사진 위에 설수지라는 이름이 정확히 적혀 있었다.

"흐음, 우리 회장님 많이 바쁘신데 이 자리에서 그냥 해도 되지 않아요?"

"그러니까, 내말이."

나연과 연두는 마치 나의 매니저를 자처한 듯 수지로 부터 나를 떼어놓기 위해 애썼다. 아무래도 수지의 출중한 미모가 두 사람의 경계심을 높인 것 같았다.

"음, 근데 두 분은 우승자 분이랑 어떤 사이시길래."

"과 후밴데요?"

"저희 과 회장님이시고요."

이렇게 있다간 자칫 싸움으로 번질 분위기였다.

수지가 갑자기 대학생 기자가 되어 나타난게 공교롭긴 했지만, 어쨌든 나와 과거가 있던 사람으로서 매몰차게 거절할 순 없었다.

그렇다고 나연과 연두를 대동하자니, 그 또한 눈치가 보였다.

"10분이면 된다고 하셨죠? 그럼 인터뷰 할게요."

"오빠?"

"정말이세요?"

"아니 뭐, 그냥 신문에 실어준다고 하니까. 체육교육과 홍보도 좀 할겸. 그럴 목적으로 출전한 거니까."

나는 학과 핑계를 대며 두 사람을 설득했다.

"그럼 저희도 같이 갈게요."

"맞아요. 저희도 시간 많아요."

반응은 예상대로.

하지만 넷이 함께 가는 것은 나로선 몹시 불편한 자리가 될 것 같았다.

"아니야. 혼자 금방 다녀올게. 너희들은 밖에서 축제 구경하고 있어. 나 때문에 계속 체육관에만 있었잖아."

"저흰 괜찮아요."

"맞아요."

"그게 아니라 기자님이 좀 부담스러우실 것 같아서."

수지는 잠자코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말없이 응시하는 모습이, 어서 저 떨거지들을 알아서 처리하라고 압박을 주는 느낌이었다.

"힝, 오빠 끝나기만 기다렸는데."

"섭섭해요, 회장님."

"대신, 인터뷰 끝내면 맛있는 거 사줄게. 둘 다 점심 아직 안 먹었지?"

"진짜요?"

"비싼 거 사주실 거예요?"

"물론이지. 후식까지 풀코스로."

후식이라는 단어에 연두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이미 두 사람은 '후식'이 나를 지칭하고 있음을 눈치 챈 것 같았다.

"그럼 뭐, 저희가 양보해야죠."

"오빠 인터뷰 잘하고 오세요!"

나연과 연두는 언제 고집을 부렸냐는 듯이 순순히 물러났다.

하지만 두 사람 머릿속에선 이미 나를 어떻게 잡아(?) 먹을지 상상하고 있을 게 뻔했다.

"그럼, 가시죠."

"네."

체육관을 나와 교내 커피숍으로 향할 때까지 수지는 나를 아는 척 하지 않았다. 마치 처음 본 사람인 것처럼 수첩을 꺼내 뭔가를 적고 있을 뿐이었다. 나 역시 수지가 먼저 아는 체 하기 전까지 잠자코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근데 뭘 적으시는 거예요?"

"인터뷰 할 거 정리하고 있어요."

"정말 기자님이시구나."

"그럼요?"

"너무 예쁘셔서 기자가 아니라 팔로워 많은 SNS 인플루언서인 줄 알았죠."

수지가 발걸음을 뚝 그쳤다.

"여전하시네요, 오빠도."

"네? 저 아세요?"

"극성스러운 후배들도 이제 간 것 같으니 말 편하게 하시죠?"

수지가 그제야 나를 아는 척 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진짜로 대학 신문 기자가 됐다고?"

"저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그게 전부예요? 하실 말씀 없으세요?"

수지의 목소리 톤이 살짝 격앙된 느낌이었다.

이제까지 화를 참고 있었다는 듯이, 정체를 밝히자마자 냉정하게 따지는 그녀였다.

"아, 아니. 음 오랜만이야. 이런곳에서 다시 볼 줄은 몰랐어."

"하-. 진짜. 어떻게 계속 저를 피하실 수 있어요?"

"내, 내가?"

'로시. 이게 무슨 소리야?'

[마지막 만남 이후로 수지양이 주인님께 자주 연락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망부석이 되지마오 어플에 관리대상으로 등록되어 답변은 자동으로 나가고 있었고요.]

'근데 왜 저런 반응인데? 내가 씹은 것도 아니잖아 그럼.'

[수지양은 주인님과 주기적으로 만나고 싶어 했습니다. 연인은 못 되더라도 가끔 즐기는 파트너까지는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주인님이 계속 스케줄이 밀려 있어서 약속을 차일피일 미루셨고요.]

'그래서 수지가 저렇게 화난 거야?'

[결정적인 것은 미나양과 싸이판 여행 때였습니다.]

'싸이판 여행?'

[네. 하필 그 기간중에 수지양이 마지막으로 연락을 했는데, 주인님이 도저히 만날 수 없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인공지능의 자동응답에서 거절이 되었습니다. 그 뒤론 수지양도 더 이상 연락을 포기했고요.]

'하-. 젠장. 내가 한 것도 아닌데, 옴팡 뒤집어 쓰게 생겼네.' 어쨌든 일은 벌어졌고, 수지는 나에게 몹시 실망한 상태였다.

따지고 보면 수지는 나에게 후장도 따이고, 처녀도 내주고 섹파처럼 지내기로 했다가 느닷없이 손절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

소개팅에서 원나잇까지 업적을 달성하고 버려진 꼴이 된 것이다.

"미안. 내가 좀 일이 많았어."

"많을만 하셨겠더라고요. 아까 붙어있던 두 사람을 보니."

수지가 그녀답지 않게 냉소적으로 쏘아붙였다.

"아, 아니야. 걔들은 정말 과 후배야. 내가 대회나간다니까 응원하러 와준 거라고."

"저한테 굳이 변명하실 필요는 없는데요? 찔리시나봐요?"

"수지야."

"됐고. 저도 여기서 오빠를 다시 볼 줄은 몰랐네요. 혹시나 오해 마세요. 저도 우승자 인터뷰를 해야해서 오빠랑 있는 것 뿐이니까."

수지는 생각외로 화가 많이 난 모양이었다. 좀처럼 삐친 얼굴이 풀릴 기색이 안 보였다.

'거참, 난처하게 됐구만. 수지는 내가 자길 손절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오해할만도 하죠. 하지만 주인님에 대한 애정이 식진 않았을 겁니다.]

'정말?'

[정말로 그랬다면 어장이탈 경보가 떴을테니까요.]

'아. 그렇네? 수지는 여전히 어장에 있는 거지?'

[네.]

그렇다면 수지가 보이는 것은 분노가 아니라, 일종의 앙탈이란 소리다.

나에게 다소 실망은 했지만 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계속 용서를 구하는 게 최선이다.

"알았어. 미안. 일단 커피숍 가서 이야기 하자. 어차피 인터뷰도 해야 하니까."

나는 수지와 함께 교내 커피숍에 들어갔다. 수지는 최대한 감정을 자제하려는 듯 나를 똑바로 쳐다보지 않고 수첩만 보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성명, 학번, 이름 알려주실래요?"

"너도 다 알고 있지 않아?"

"그건 넘어가죠. 그럼 대회에 참가한 동기가."

"수지야. 일단 커피라도 시켜놓고 하자."

"저는 정말로 인터뷰만 하고 갈 거라서요."

"인터뷰만 하고 가더라도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건 민폐잖아.

내가 사줄게."

"됐어요. 제 커피는 제가 사 먹을게요."

결국 수지는 고집을 부리며 더치페이를 했다.

마치 자기가 지금 이만큼 화났다는 걸 일부러 보여주는 것 같아서 조금은 귀엽게 느껴졌다. 마치 자신이 화났다는 걸 제발 알아달라는 것처럼.

그나마 따뜻한 커피가 조금 들어가자 수지의 표정이 조금 풀린 것 같았다.

"오빤 그 동안 몸만 만드셨나봐요?"

"응?"

"그러니 저랑 만나주지도 않았겠죠."

"아니 수지야 그게."

'"됐고요. 그럼 인터뷰 계속 진행할게요."

"아니 잠깐만."

"왜요?"

"원래 인터뷰를 그렇게 공격적으로 하는 거야?"

"네?"

"아니 그렇잖아. 너랑 나 사이의 일이 개인적인 것이라고 하면, 지금 네가 날 인터뷰하는 건 공적인 일이잖아. 그런데 인터뷰이를 그렇게 몰아세운다고? 그건 좀 아닌것 같은데?"

"음."

내 말에 수지도 조금 느끼는 바가 있는지 태도를 고쳐 앉으며 다시 정중하게 물었다.

"이도훈님은 피지크 대회에 어떤 동기로 참여하시게 되었나요?"

"음, 이제 좀 기자답네. 근데 나 궁금한 거 있어."

"뭘요?"

"왜 갑자기 기자가 된 거야? 나랑 만났을 땐 아니었잖아."

"그게 그렇게 궁금하세요?"

"응. 당연하지."

수지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더니 자기 얘기를 시작했다.

"오빠 만난 이후 인스타 끊고나니 시간이 꽤 남더라고요."

"아."

"어차피 전 로스쿨 준비해야 해서 이런저런 경력을 쌓아두는 게 진학에 유리하거든요. 대학교 학생 기자면 괜찮은 이력이 되겠다 싶어서 1학기 말에 지원했는데, 운 좋게 합격했어요."

"그랬구나. 난 엄청 놀랐잖아. 네가 갑자기 기자라고 나타나서."

"뭘 놀래요? 설마 제가 오빠가 피지크 대회 우승할 줄 알고 미리 기자가 돼서 벼르고 있었을 까봐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저 진짜 오빠한테 실망했어요. 어떻게 저한테 그러실 수 있어요?"

"미안해, 수지야."

왠지 이걸론 진심이 안통할 것 같았다.

나는 잠시 기침을 하는 척 고개를 돌린 뒤 재빨리 허공에서 오빠믿지 립밤을 꺼내 발랐다. 무공이 발전할수록 나의 스피드는 더 더욱 빨라지고 있었다.

"진심으로 말하는데 일부러 널 피한 건 아니야."

오빠믿지, 립밤은 어떤 개소리도 진실되게 들려준다.

하물며 애증이 아직 남아있는 수지의 경우라면 더더욱 호소력이 짙을 것이다.

"피한게 아니라고요?"

"실은 여러가지로 힘든 일이 있었어."

"무슨."

"그냥, 뭐 가정사라서 시시콜콜 얘기할 순 없지만 말이야."

"아."

동시에 불쌍한 연기를 하자 수지가 깜빡 속아 넘어갔다.

어쩌면 수지는 설사 내가 거짓말을 하더라도 자신에게 변명을 하길 기다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대 내가 그녀를 손절한 게 아니라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름 잘 이겨내고 있어. 운동을 다시 시작한 것도 몸을 혹사시키면 괴로운 생각에서 조금은 벗어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오, 오빠 전 그런것도 모르고."

수지는 갑자기 울먹이며 몹시 미안해했다.

방금전까지 나를 매몰차게 대한 것이 진심이 아니었다는 듯이.

"미안해 수지야. 남자들은 원래 힘들고 괴로운 일이 있으면 동굴로 숨어 버리기도 하거든. 너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피하면서 운동만 계속 했어. 정말이야."

"죄송해요 오빠. 전 그런 사정이 있는 줄도 모르고."

"근데 전화위복이라고 덕분에 피지크 대회에서 우승까지 해버렸네."

"정말 잘하셨어요. 오빠가 몸이 제일 좋더라고요."

"그랬어? 난 나만 신경쓰느라 다른 사람들 몸은 못 봤거든."

"저도 피지크 대회 쪽으로 배정받아서 결선 처음부터 끝까지다 봤었거든요. 오빠가 가장 멋졌어요."

"그랬구나."

"처음엔 오빠가 대회 나온 걸 보고 얼마나 놀랐다고요. 오랜만에 보니까 반갑기도 하고, 나 계속 피했던거 생각하니까 화나기도 하고."

"우리 얼마만에 보는 거지?"

"여름 방학 전에 마지막으로 만났으니까 석달은 넘은 것 같아요."

"그러네. 간만에 보니까 더 반갑다."

수지는 이제야 화가 풀렸는지 조금은 발그레진 얼굴로 수줍게 말했다.

"오빠는 더 멋있어 지신 거 같아요."

"그래?"

"몸도 그때 봤을 때랑 완전히 달라졌잖아요."

"고마워. 좋게 봐줘서. 너도 많이 예뻐졌네."

"아니에요. 저 근시라서 컴퓨터로 기사 쓸 때 안경도 쓰는 걸요."

"안경?"

수지가 갑자기 가방을 뒤지더니 알이 커다란 금테 안경을 꺼냈다.

"이거요."

"엇? 귀엽겠는데. 한 번 써봐."

"창피해요."

"아니야. 그거 쓰면 정말 기자같을 거 같아."

수지는 망설이더니 조심스럽게 안경을 썼다.

보통 안경을 쓰면 미모가 손상되지만, 수지는 안경을 쓴 모습도 너무나 잘 어울렸다.

"와, 그러니까 완전 청순미녀같아."

"별 말씀을 다."

"맞다. 우리 인터뷰 해야 하는데. 너 시간 없다며?"

수지가 민망한 듯 볼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시간 없다는 건 뻥이에요. 아까 오빠 미워서 빨리 인터뷰만 끝내고 치울 생각이었거든요."

"그럼 지금은?"

"지금은. 음, 오해는 풀었으니까 이제 괜찮아요."

"그래? 근데 인터뷰는 원래 커피숍에서 하는 거야?"

"네?"

"아니. 조금 더 조용한 곳에서 하고 싶은데. 근육도 더 자세히 보여주고."

수지가 내 말귀를 알아들었는지 귀까지 빨개졌다.

"진심이세요? 이렇게 갑자기요?"

"응. 너보니까 못 참겠어서 그래. 수지야."

"기다리는 후배들은 어쩌고요?"

"뭐, 자기들끼리 알아서 놀겠지. 혼자도 아니고 둘인데."

수지가 트렌치 코트를 여미더니 남은 커피를 후르륵 들이켰다.

"야, 너 안 뜨거워? 식지도 않은 커피를 그렇게 한 번에."

"바쁘시다면서요. 나가요,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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