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5. 대학 축제-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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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개변으로 보험까지 들어놓은 도훈은 미호를 돌려보내고 혼자 잠이 들었다. 하루종일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마지막에 내공을 탈탈 털렸던(?) 까닭인지 순식간에 잠에 빠져드는 도훈이었다.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도훈은, 눈을 뜨자마자 신체의 변화를 감지했다.
'응? 이건···.'
마치 긴시간 숙면을 취한 것처럼 몸이 한결 가벼웠다. 탄력을 이용해 침대에서 단숨에 몸을 일으킨 도훈은 완전히 홀딱 벗은 채 스스로의 몸을 살폈다.
겉으로 보기엔 달라진 점이 없었지만, 온 몸의 기운이 펄펄 넘치고 있었다.
[깨어나셨습니까?]
'내 몸이 어떻게 된 거야? 아침부터 호랑이 기운이 들끓는데?'
[지난 밤 미호와의 정사 이후 주인님의 내공이 예상대로 대폭 상승했습니다.]
'대폭? 어느정도지?' 도훈은 침대에서 사뿐히 뛰어내리더니 알몸 상태에서 가볍게 정권을 내질렀다.
팡!
백보신권을 응용한 동작이었는데, 가장 처음 배웠던 무공인 칠성권이었다. 일곱차례 주먹을 내지르는 동안 파워가 2배씩 증가 해 마지막 타격은 산도 무너뜨린다는(물론 과장이지만) 일종의 연속콤보였다.
하지만 도훈은 단 한번의 주먹지름으로도 이전과 엄청나게 달라진 것을 느꼈다.
"뭐, 뭐야?"
주먹을 내지르는 속도가 너무나 빨라 주변으로 공기가 일그러지는 소닉 붐 같은 현상이 미약하게 발견되었던 것이었다.
[소, 속도가 엄청 빨라졌습니다!]
'이게 가능해?' 도훈은 내친김에 복서처럼 섀도 복싱을 선보였다.
양손 잽에 이어 왼손 훅, 오른손 어퍼 위빙으로 살짝 몸을 흔든 뒤 복부에 스트레이트를 꽂아넣는 일련의 동작이었다.
팡팡팡팡팡! 팡!
"이것은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여!"
[갑자기 왜 사투리를 쓰고 그러십니까?]
'정말이라니까? 주먹을 내지르는 데 공기가 일그러지고 있어!'
하룻밤만의 변화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기술은 비슷한데 내공이 엄청나게 도약한 느낌이랄까?
어젯밤과 오늘의 차이는 단지 구미호와 섹스를 하고 난 이후라는 점 밖에 없었다.
'오오오! 내공이 대체 얼마나 증가한거야?'
[거의 두배 정도 커진 것 같습니다.]
'정말? 구미호랑 한 번 했다고 이 정도라고?'
도훈이 행복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내공의 증진이 칠성권처럼 두배씩 커진다면, 말 그대로 기하급수로 상승한다는 뜻이었다.
"당장 미호 불러야 겠다!"
[아쉽지만, 다음번엔 이 만큼의 대폭 성장은 어려울 겁니다.]
'왜?'
[주인님의 음양 보합술은 상대의 음기를 빨아들여 내공을 증진하는 기술입니다. 하지만 한 번 상대했던 음기는 그 효과가 반감될 수 밖에 없습니다. 즉, 처음이 가장 효과가 좋다는 것이죠. 또한 반복될수록 반감기가 빨라지기 때문에 적절한 간격을 두고 천천히 흡수하는 게 오히려 최종적으로 더 많은 양의 음기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아쉽게 됐구만. 그것만 아니면 그냥 감금해 놓고 맨날 따먹어버릴텐데.'
[자제하시죠. 이만한게 어딥니까? 자칫 죽을 뻔 했는데, 오히려 두배로 강해졌으니 말입니다.]
'원래 위기는 늘 기회가 되는 법이지. 아, 맞다 지금 몇시야?'
[오전 9시입니다.]
'이크. 미스터 국성 대회가 10시부터 시작이잖아? 이미 늦었는데?'
도훈은 부랴부랴 샤워를 마치더니 그대로 트레이닝 복으로 갈아 입었다. 어차피 대회에 나가면 팬츠 빼고는 다 벗어야할 판이라 옷을 갈아입을 필요가 없었다.
빠르게 샤워를 마친 도훈은 드라이로 대충 머릴 말리고 그대로 운동화를 신고 뛰쳐나갔다.
[주인님, 차는 안타시고요?]
'출근길에 막히면 오히려 늦어. 차라리 뛰어가는 게 빠를 거야.' 도훈은 골목길을 벗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한결 강력해진 내공이 보법도 보강하자 발걸음이 한층 더 가벼웠다.
이전에도 이미 인간의 스피드는 가볍게 뛰어 넘었는데, 지금은 아무리 뛰어도 조금도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오오, 체력도 강화된 것 같은데?'
[강력한 내공이 뒷받침되니 일신의 무공 자체가 크게 진일보하였습니다.]
'대박! 어디 한 번 실험해 볼까?'
[여기서요? 사람들이 보면 큰일입니다.]
'대로변에선 당연히 어렵고 지름길로.'
도훈은 골목으로 뛰어들어가더니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는 3층 높이의 건물을 눈여겨 보았다.
[뭐하시려고요?]
'너, 스파이더맨이 날지도 못하는데 왜 그렇게 빠른 줄 알아?'
[네?]
'도심 속에선 옥상으로 뛰는게 가장 동선을 절약할 수 있거든.' 힘을 웅축한 도훈이 지면을 박차고 붕 뛰어 올랐다.
마치 제자리멀리뛰기를 하듯 두 팔을 머리 위로 들고 하체를 웅크린 뒤 단숨에 공중으로 도약한 것이었다.
"우어엇!"
도훈은 스스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높이 뛰는 바람에 순간 몸을 통제할 수 없었다.
'뭐, 뭐야? 3층 높이를 단숨에?'
10M는 되어 보이는 건물의 옥상보다 더 높게 뛰어오른 도훈은 재빨리 몸을 공처럼 만 뒤 낙법을 펼쳐 착지했다. 건물의 옥상에 착지한 도훈은 학교의 방향을 확인한 뒤 지붕과 지붕 사이를 달리기 시작했다.
타타탓!
'이러니까 야마카시하는 기분인데?'
[야마카시요?]
'파쿠르라고도 해. 건물과 건물 사이를 맨 몸으로 뛰어 넘는 일종의 신종 스포츠랄까?'
[그걸 왜 한답니까?]
'해보니까 알것 같기도. 엄청 재밌는데?'
도훈은 거의 날다람쥐 같았다.
옥상 위를 뛰어다니니 사람들 눈에 띌 일도 없었다.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폭이 좁은 난간을 아슬아슬 건너다가도, 공중에서 벽을 차고 높은 건물들 사이를 쉴 새 없이 뛰어다녔다.
아무리 달려도 지치지 않는 체력이 증진된 내공의 힘을 실감케했다.
'말도 안돼. 이 정도 액션에도 호흡하나 흐트러지지 않다니. 정말로 무협지에 나오는 경신술의 경지가 존재하는 거였구나!'
도훈은 스스로의 수행능력에 감탄하며 순식간에 국성대에 도착했다. 높은 건물에서 수직으로 뛰어내린 도훈은 자연스럽게 사람들 사이에 섞여 대학교 정문을 통과했다.
그래도 그것도 운동이라고 몸에 살짝 땀이 났는데, 어차피 준비운동을 해야했으므로 워밍업을 했다고 여겼다.
대회장에 도착하자 어제 보다 훨씬 인원이 줄어있었다. 각 종목별로 결선 진출자를 선발했기 때문이었다.
마침 첫 번째로 시작하는 종목의 선수 소집이 있었다. 중복으로 출전한 선수를 배려하기 위해 각각의 종목 결선을 다르게 조정했는데, 첫번째 대회는 파워리프팅 종목이었다.
"이도훈님."
"네."
도훈이 호명에 맞춰 대답했다. 결선에 진출한 다른 후보들은 도훈의 왜소한(?) 체구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런 체격으로 결선에 올랐다고?"
"보기보다 힘이 좋은 편인가?"
"역도 선출이라도 되는 거야?"
도훈은 수근거리는 소리를 들었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지금같은 컨디션으로는 평소보다 힘을 일부러 줄여서 경기에 임해야 할 판이었다.
선수소집이 다 끝나자 해설을 맡은 진행자가 대회 방식을 일러주었다.
예선에서는 데드리프트 무게로 진출자를 가렸는데, 결선에서는 데드리프트를 제외한 벤치 프레스와 스쿼트로 승부를 가린다는 내용이었다.
"벤치 프레스와 스쿼트 무게를 합산한 종합 무게로 파워리프터선발 결승을 뽑겠습니다. 기회는 두번 주어지며, 1rm을 기준으로 정확한 자세를 측정합니다. 모두 이해하셨습니까?"
1rm이란 한 번 제대로 들 수 있는 최대 무게치를 의미했다.
'역도랑 비슷하게 진행하는 것 같은데?'
[역도요?]
'역도에서도 인상과 용상 두가지 종목의 무게를 합산해서 1위를 선발하거든.'
[아하.]
'통상 3대 운동에서 벤치와 스쿼트는 데드리프트보다 무게가 낮은 편이야. 벤치를 가장 못 들고 그다음이 스쿼트, 마지막이 데 드리프트랄까?'
[그럼 오늘 무게는 어제보다 더 줄여서 시작하겠군요.]
'아마도 그렇겠지?'
도훈의 예상대로 해설자는 벤치 프레스 최소를 100kg로 제한했다. 어제 통과 기준으로 삼은 데드 무게의 딱 절반이었다.
"기록 도전을 원하시면 얼마든지 무게를 늘리실 수 있습니다.
단 기회는 두번이기 때문에 성공한 기록만 인정됩니다."
"넵!"
파워리프팅 종목 결선 진출자는 대략 20여명. 예선 통과자 중에서 부상이나 컨디션 난조로 불참한 인원을 제외하면 모두가 집합한 상황이었다.
"그럼 경기 시작하겠습니다. 예선때 부여 받은 번호로 결선도 진행하겠습니다."
무대 위에 설치된 벤치 프레스 주위로 사내들이 빙 둘러쌌다.
다들 한 덩치 하는 인물들이었는데, 다른 종목에 비해서 몸이 예쁘거나 감탄이 나올만한 근육질은 쉽게 보이지 않았다. 그보다는 살이 훨씬 많아 보였고, 굉장히 비대했다.
[주인님이 가장 몸무게가 적게 나가 보이는 군요.]
'보통은 몸무게에 대비해서 힘이 센 편이니까.'
[그런가요? 그래도 근육질이 더 많을 줄 알았는데요.]
'저런 사람들도 근육이 없는 건 아니야. 오히려 예쁘게만 가꾼패션 근육에 비해서는 훨씬 근육량이 많지.'
[왜 그런데 살찐 것처럼 보이죠?]
'파워 리프터는 굳이 보여주기 위한 근육이 아니다보니까 살을 뺄 이유가 없거든. 1kg이라도 더 들 수 있다면 얼마든지 처먹을 놈들이랄까?' 도훈의 말대로 우락부락한 사내들은 다들 눈빛에 자신감이 넘쳤다. 어디가서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을 모아놓으니 시작도 하기 전부터 서로 견제가 치열했다.
"100kg는 너무 시시한 거 아니야? 저것도 못드는 사람이 어떻게 데드로 200을 쳤겠냐고."
"그러게. 최소 120부터는 시작해야지."
"120 가지고 누구 코에 붙이려고? 150은 가뿐히 들어야지?"
"150? 아이고 이 양반은 입에 근육을 키웠나. 입심은 오지네."
"뭐라고?"
기 싸움이 팽팽하게 벌어지는 와중에도 도훈은 전혀 긴장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근소한 차이로 아슬아슬 1등을 할 수 있을까만 고민했다.
그런데 조용히 보고만 있는 도훈의 표정을 겁먹은 것으로 오해한 덩치 하나가 도훈에게 시비를 걸어왔다.
"학생은 왜 참가 했어? 집에가서 젖이나 더 먹고 와야 할 것 같은데?"
상대를 보니 턱수염이 그득한 아저씨였다. 나이는 30대쯤 되었을까? 하지만 이미 정수리가 벗겨지는 바람에 실제보다 훨씬 늙어보이는 노안이었다. 하지만 덩치는 무슨 소도둑처럼 기골이 장대했는데 타고난 장사타입으로 보였다.
괜한 시비에 도훈이 대꾸를 않고 있자 턱수염이 말을 이었다.
"나도 대학원생 자격으로 참가했거든. 어린 후배 같으니까 내가 조언하나만 할게. 쇠질이라는 게 말이야, 단순히 패기만으로 할 수 있는게 아니야. 이것도 나름 쇳밥 좀 먹어야 힘이 붙는 거라고. 재미 삼아 참가해 본 것 같은데, 아직은 무리라고 동생."
그러면서 껄껄껄 웃는 모습이 전형적인 꼰대였다. 조언을 딱히 구하지도 않았는데 괜히 참견해서 시비를 거는 모습에 도훈은 순간 욱하는 기분이 들었다.
'에이씨, 한 주먹 거리도 안되는게.'
도훈이 슬쩍 살기를 띄며 째려보자 순간 턱수염 사내의 동공이 바짝 쫄아들며 뒷걸음질 쳤다.
"아, 아니 무슨 말 한마디 했다고 그렇게까지 노려보나."
턱수염 사내는 명백하게 쫀 모습으로 슬금슬금 사라졌다. 사내의 반응에 도훈이 의아해 하는데 로시가 설명했다.
[주인님. 자제하십시오.]
'방금 왜 그런 거야?'
[주인님의 내공이 비약적으로 상승한 결과, 살기가 지나치게 강해진 탓입니다. 범인들은 주인님의 살기를 감당하지 못할 겁니다.]
'아, 그래? 조심해야 겠네.' 마침 대회가 시작되면서 방금 전 사건은 해프닝으로 끝이났다.
각각의 참가자들은 두번의 기회동안 용을 쓰며 무게를 들어올렸는데, 처음에는 자신이 들 수 있는 무게로 기록을 세워놓고 두번째는 더 높은 무게를 도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으자자자자잣!"
방금도 한명의 참가자가 용을 쓰며 바벨을 들어올렸다. 하지만 자세가 완벽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록이 인정되지 않았다. 심판을 맡은 사람은 굉장히 깐깐하게 채점을 하는 편이었다.
'벤치는 150도 제대로 드는 사람이 없구나.'
[주인님은 얼마나 드시려고요?]
'일단 너무 눈에 띄면 안되니까 160 정도로 마무리 하려고.'
[괜찮으시겠습니까?]
'뭐 어때? 세계 신기록도 아닌데 열심히 운동했구나 싶겠지.'
하나 둘 측정이 끝나고 어느새 도훈의 차례였다. 결선 진출자 중 가장 왜소한 체격인 도훈은 당연히 많은 참가자들의 구경거리가 됐다.
"어이, 열심히 해보라고."
"종목을 잘못 고른거 아니야? 피지크에 출전했어야 할 것 같은데?"
"하하하하!"
다들 도훈을 무시하는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것이 도훈도 185의 키에 상당히 다부진 체격이었지만, 워낙에 거구들 사이에 끼어 있다보니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는 착시를 일으켰다.
도훈은 시비를 거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바벨 봉을 한 번 잡아 보았다.
'가볍다!.'
너무나 가벼웠다.
20kg의 바벨봉의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쑤시개를 들고 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이 정도로 가벼웠던가?'
"첫번째 시도입니다. 무게를 몇으로 올릴까요?"
"으음. 160 부탁합니다."
"160?"
"뭐야? 방금 160이랬어?"
"자기 키 얘기하는 거 아니야?"
"에이, 그래도 그것보단 크겠지."
"그냥 처음부터 무리하게 도전해 볼 생각인가 보구만,"
"쉬엄쉬엄 하라고. 괜히 부상입지 말고."
참가자들이 돌아가며 농을 거는 사이 좌우의 원판이 채워졌다.
도훈은 일전에 학교 체육관 헬스장에서 들었던 기록을 떠올렸다.
'그때도 원판을 끼울 수 없을 만큼 올렸는데 과연 얼마나 강해졌으려나.'
도훈이 봉을 잡고 거치대에서 바벨을 밀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