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8. 대학 축제-73-
* * *
"안되겠다. 애들이 날 찾을지도 모르니 일단 연락 부터 해야지.
"
도훈은 핸드폰을 확인하다 깜짝 놀랐다. 아까 통화 했던 야외테이블 업자에게 3통, 그리고 영철에게 각각 3통의 부재중 기록이 남아 있었던 것이었다.
무음으로 해놓는 바람에 전화가 오는 줄도 몰랐던 도훈은 통화목록을 보고 아차 싶었다.
'맞다. 테이블 추가 설치 해달라고 해놓고 깜빡 해버렸구나.'
도훈은 업체 사장과 먼저 통화를 할까 하다가, 우선 영철에게 상황을 물어보는게 빠를것 같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 도훈이 형, 지금 어디세요? 아까부터 계속 찾았는데 통화가 안돼서요.
"영철이냐? 미안. 갑자기 일이 생겨서 조금 늦었어."
-일이라뇨?
"그게···."
도훈은 둘러댈 말이 떠오르지 않아 아무말이나 지껄였다.
"코스프레 바지 말이야."
-네.
"너무 작은 사이즈로 입었더니 갑자기 바지 가운데가 터져버렸지 뭐야."
-헉? 정말요?
"응. 급한대로 수선할 곳 찾다가 도저히 안되겠어서 일단 집으로 갈아 입으러 왔어."
-그러셨구나.
"근데 왜 이렇게 전화를 많이 걸었어? 주점에 무슨일 있어?"
-아뇨. 손님들이 많긴 하지만 딱히 큰 일은 없어요. 그보다 테이블 업체 사장님이 아까 저한테 전화하셨어요. 추가로 주문한 물량을 기존 계약 금액보다 두 배로 쳐주시기로 했다는데 그 말 맞아요? 제가 형한테 확인해보고 연락드린다고 했거든요."
"어. 내가 그러라고 했어."
-두 배면 너무 비싸지 않아요?
"업체 사정 들어보니까 어쩔 수 없겠더라. 내일 다른데 보낸다는 거 급하게 돌린 거거든. 어차피 내일하고 모래도 써야 하는데 오늘이라도 테이블 더 설치해서 손님 받는게 이득이겠다 싶더라고."
-그러셨구나. 그럼 제가 서현이한테 말 해놓을게요.
“아니야. 내가 아까 말했으니 더 신경 안써도 될 것 같아."
-그래요? 아 맞다 그리고 형.
“왜? 또 할 말있어?"
-그게 아니고 애들 옷 갈아입는다고 체육관 개방해 놨잖아요.
“응."
-거기 외부인이 드나드는 것 같아서요.
“외부인이? 혹시 봤어?"
도훈은 뜨끔했으나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시치미를 뗐다.
-아뇨 직접 본 건 아니고 아까 제가 들렀는데 누가 다녀간 흔적이 있더라고요. 혹시 모르니까 시건을 해놔야 할 것 같아요.
“그렇게 해 그럼. 영철이 네가 가서 잠가놔."
-제, 제가요?
“왜? 무슨 문제 있어?"
-아, 아니에요. 아까 거기 혼자갔다가 이상한 걸 본 것 같아서.
“이상한 거 라니?"
-제가 그냥 놀라서 헛걸 봤나 봐요. 암튼 후배들하고 같이 가서 잠궈놓을게요.
“그래. 수고한다. 나는 집에서 바지 입을 것 찾아보고 없으면 그냥 갈게."
-네 형. 아, 잠시만요. 채원이가 좀 바꿔달라는데요?
“채원이랑 같이 있었어?"
-네. 옆에.
도훈이 피곤한 표정으로 전화를 당겨 받았다.
-여보세요? 도훈 오빠앙!
채원은 이미 술을 상당히 마신듯 혀가 꼬여 있었다.
“어, 그래 채원아. 오랜만이다."
-오빵 어디예요? 왜 안 와요?
“일이 있어서 집에 잠깐 들렀어. 근데 무슨 술을 왜 이렇게 많이 마셨어?"
-별루 안 마셨는뎅? 오빠 기다리고 있는데 왜 안와요오옹!
도훈이 한숨을 내 쉬었다.
‘얘는 또 왜 이래? 안 그래도 정신 사나워 죽겠는데.’
“금방 갈 거야."
-얼른 와용. 우리 사촌 오빠!
“응, 잠깐 영철이 좀 바꿔줘봐."
-네, 형. 저예요.
“채원이 왜 저렇게 술 많이 마셨어?"
-몰라요. 아까부터 홀짤홀짝 들이키더니 엄청 취해버렸어요.
“상태 안좋은 거 같으니까 적당히 구슬러서 집에 보내야겠다."
-안 그래도 그러려고요. 죄송해요 형.
“아니야. 네가 고생이 많다. 암튼 최대한 일찍 갈게."
-네 형. ···아니야. 통화 끊었어. 금방 오신대.
통화를 마친 도훈은 절레절레 고개를 가로 저었다.
‘미치겠네 진짜. PK단 때문에 정신 사나워 죽겠는데 하필이면이 타이밍에 채원이까지.’
[어떻게 하시려고요? 정말 학교로 돌아가시려는 건 아니죠? 미호의 말에 따르면 아직 PK단 인원이 학교에 남아있다고 하던데.]
‘직접 확인해 봐야지.’
“정신이 좀 들어?"
도훈이 아직까지 소파에 널부러져 있던 요나에게 물었다.
요나는 조금 진정된 듯 했으나 도훈을 노려보며 말했다.
“나, 나쁜놈."
“뭐라고?"
“분명히 안한다고 했으면서."
“어쩔 수 없었다고. 그나저나 대학에 함께 와 있다던 다른 PK 단원은 아직도 거기 있나?"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자꾸 그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시겠다?"
도훈이 잦이를 껄떡거리며 위협을 가했다. 내공이 어느정도 회복된 도훈은 특유의 정력도 일부 돌아온 상태였다.
껄떡이는 대물을 보자마자 요나가 기겁했다.
“허, 헉! 이건 또 왜 이래?"
“말 안했나? 난 보통 사람이랑 회복속도가 다르다고. 자꾸 그렇게 나오면 한 번 더 해버리는 수가 있어?"
“아, 안 돼. 더는 못 버틴다고."
“그거야 내가 알바 아니고."
도훈이 진짜로 다시 덮칠 자세를 취하자 요나가 다리를 바짝 오므리며 몸을 공처럼 말았다.
“하, 하지마!"
“그럼 얼른 확인해."
“뭐, 뭘?"
“너랑 함께 왔다는 다른 단원 지금도 대학에 있는지 말이야."
“흐, 흐읏, 나쁜 새끼."
“어쭈?"
“하, 하면 될 것 아니야. 내 옷 줘."
도훈이 옷을 건네자 요나가 주머니에서 폰을 꺼냈다.
그녀는 도훈의 눈치를 보며 창범에게 전화를 걸었다. 도훈이 눈앞에서 대물을 껄떡거리며 위협(?)하고 있었기 때문에 감히 딴 생각을 할 수 없었다.
“창범, 어디야?"
-미호?
“요나야."
-왜 네가 나와있어? 설마 놈을 찾은 거야?
요나는 눈 앞까지 대물을 들이민 도훈의 협박에 쫄아 거짓말을 했다.
“아니야. 내가 착각했던 것 같아. 플레이어 흔적이 아니었어."
-아니었다고? 쳇.
“그나저나 너 지금 어디야?"
-아직 주점인데 소연이가 술을 좀 많이 마셔서 집에 데려다 줘야 할 것 같아.
“그래? 그럼 조심히 데려다 줘."
-넌 어쩌려고?
“난 평소대로 남자 사냥이나 더 하고 다녀야지. 요새 기력이 달려서 말이야."
-적당히 좀 해. 남사스러운 이야기를 뻔뻔하게도 하네.
“남이사. 그럼 이만."
통화를 끊은 요나가 도훈에게 말했다.
“집에 갈 거래. 됐지?"
“방금 통화한 녀석이 창범이라는 놈인가?"
“맞아."
“뭐하는 놈인데? 놈의 능력은 뭐야?"
“마인드 컨트롤러."
“그게 뭐야? 설마 사람 마음을 조작할 수 있다는 뜻이야?"
“그거랑 비슷해. 혹시 몰라 경고해 두지만 정신 공격에 면역이 없는 이상 놈에게 접근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저항 한 번 못하고 붙들리기 싫으면."
[어째서 요나양이 주인님을 걱정해 주는 걸까요?]
‘나를 걱정하는 게 아니라 자기 팀원을 걱정하는 거겠지.’
[아하.]
‘일단은 놈들이 없다는 걸 확인했으니 학교로 다시 돌아가보긴 해야겠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마나번 마법의 영향으로 내공이 평소의 1/3도 안 됩니다.]
‘PK단만 없다면 위험할 일도 없지.’
[그럼 요나, 아니 미호는요? 그녀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혹시 모르니 못 도망가게 집에 놔둬야지.’
[무슨 수로요?]
“너 아까 부리던 뱀은 어디에 숨겼어?"
“뱀이라니?"
“백사로 변한 흰 밧줄말이야."
“아아, 그거."
요나가 손가락으로 괴상한 수인을 맺으니 옷 속에 숨어 있던 뱀이 천천히 기어나왔다. 하얀 몸체에 빨간 눈을 가진 진짜 백사였다.
“이건 어떤 마법이지?"
“마법은 아니야. 플레이어 식으로 표현하면 아이템의 일종이지."
“효과는 뭐지? 묶이니까 꼼짝 못하겠던데."
“강력한 속박 마법이 걸려있어. 묶이면 마나번 마법과 마찬가지로 마력이 통제당해."
“굉장한 아이템이군. 혹시 나한테 빌려줄 수 있어?"
“내, 내가 왜?"
“이유야 많지. 일단 너는 아까 내 아이템 하나를 홀랑 태워 먹었고."
“그, 그건 얼마 하지도 않는 거잖아. 속박의 밧줄은 레어 아이 템급이라고."
“그리고 또 내 말을 거역하면 오늘 밤새도록 널 따먹어 버릴 거니까."
도훈이 바짝 꼴린 대물을 요나의 코앞까지 들이밀었다.
핏줄이 돋아난 대물은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했다.
이미 한 번 호되게(?) 당한적이 있던 요나는 도훈의 협박에 금방 꼬릴 내렸다.
“크, 크흑 완전 나쁜 놈!"
“왜 이래? 날 죽이려 했던 너를 살려두는 것만 해도 어딘 데?"
요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다시 손으로 독특한 수인을 맺었다.
그러자 뱀이 스스로 똬리를 틀면서 몸을 둥그렇게 말더니 이내 평범한 하얀 밧줄로 변했다.
“각인을 해제했으니 네가 다시 등록해."
“각인? 어떤 식으로 쓰는 건데."
“잡아보면 알 거야."
도훈이 밧줄을 집어들자 갑자기 밧줄이 도훈의 팔을 휘감기 시작했다.
“어엇!"
그리고는 이내 뱀으로 변한 백사가 도훈의 머리위치까지 몸을 타고 올라오더니 두 눈을 도훈과 마주쳤다.
[주인님. 속박의 밧줄이 주인님과 동기화되었습니다.]
‘동기화라고?’
[네. 해당 아이템은 에고 소드처럼 자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주인님과 동기화 되었으니 주인님의 명령을 따를 것입니다.]
‘오호, 좋은데? 어떻게 명령하지? 요나는 무슨 손동작을 하던데.’
[꼭 그 방법으로 통제하는 것은 아닙니다. 말로 명령을 내리셔도 알아 들을 겁니다.]
‘그래?’
“요나를 포박해."
“자, 잠깐 뭐라고?"
밧줄은 이내 명령을 알아 들었는지 소파에 있던 요나를 꽁꽁 묶기 시작했다.
옷을 입지 않고 맨몸으로 있던 요나는 가슴을 바짝 조이는 형태로 온 몸이 꽁꽁 묶이고 말았다.
‘잠깐만 저 뱀 변태냐? 왜 귀갑 묶기를.’
[주인님 취향을 맞춘것 같은데요.]
“무 무슨 짓이야!"
“미안. 내가 잠깐 다녀올 데가 있거든."
“푸, 풀어줘. 힘을 쓸수가 없다고."
“그래서 묶은 거야. 난 아직 널 못 믿겠거든. 금방 돌아올테니까 집에 얌전히 있으라고."
“이잇! 감히 나를!"
요나가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그럴수록 밧줄은 더욱 꽁꽁 그녀를 옭아맬 뿐이었다. 도훈도 한 번 당해봤기 때문에 속박의 밧줄의 위력은 익히 알고 있었다.
“얌전히 기다리라고."
“오, 옷이라도 입혀주고 묶던가!"
“무슨 상관이야. 이 집엔 너와 나 뿐인데. 심심하면 티비라도 켜주고 갈까?"
“이이!"
“싫음 말고. 음성으로 켤 수 있으니까 심심하면 알아서 보라고."
도훈은 억울해하는 요나를 뒤로하고 다시 옷을 갈아입었다. 유일한 걱정이었던 PK단이 학교를 떠난다는 것을 확인한 이상 더 이상 위협이 될 만한 요소는 없었다.
옷을 다시 차려입은 도훈은 마법의 문고리를 이용해 처음 이동했던 체육관 탈의실로 돌아왔다. 그러나 정문으로 나가려던 도훈은 금세 난관에 봉착했다. 영철이 생각보다 빠르게 움직였는지 밖에서부터 문이 잠겨 있었던 것이었다.
문을 열기 위해선 보안잠금카드로 해제를 해야 했기 때문에 도훈은 체육관 안에서 갇혀버린 셈이었다.
“헐, 영철이 이 새끼 쓸데없이 부지런하기까지."
도훈은 다른 출구를 찾다가 천장쪽에 달린 창문을 확인했다. 높이만 3층에 이르는 환기용 창문이었지만, 도훈은 거리낌 없이 내공을 응축해 솟아 올랐다.
파팟! 하고 발을 내딛는 순간 그의 몸이 붕 떠오르며 벽을 차고 올랐다.
단 두번의 점프만에 창문에 다다른 도훈은 손가락 두개만으로 창틀을 붙잡으며 매달렸다. 암벽등반 선수도 혀를 내두를 악력이었다. 도훈은 힘으로 창문을 개방하더니 일말의 주저도 없이 밖으로 훌쩍 뛰어넘었다.
거의 10미터 높이에서 떨어지는데도 도훈은 조금도 망설임이 없었다.
착-
소리도 내지 않고 착지한 도훈은 손으로 옷을 한 번 털면서 자연스럽게 인파에 합류했다.
도훈이 다시 주점에 도착하자 그를 발견한 서현이 도훈에게 물었다.
“오빠? 혹시 옷 갈아입고 오셨어요?"
“어, 아니 바지가 찢어져가지고."
“아 그러셨구나. 아까 영철오빠가 한참 찾더라고요."
“그래? 영철이는 어딨어?"
“그게."
서현이 민망한지 대답을 망설였다.
“왜그래?"
“아니. 여자친구분이 갑자기 쓰러지셔 가지고 급하게 업고 갔어요."
“쓰러졌다고?"
“술을 엄청 마셨나 보더라고요. 거의 인사불성이던데."
“저런."
“저한테 체육관 문 좀 꼭 잠가달라고 하더라고요. 외부인이 들어온다나 어쩐다나."
“그랬구나. 아무튼 고생 많았어. 많이 바빴지?"
“어휴, 말도 마요. 진짜 쉬지도 않고 손님들이 밀려오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그나마 이제 겨우 한 숨 돌렸어요."
도훈이 슬쩍 보니 길었던 대기줄이 사라지고 꽉 차있던 테이블도 한 두 자리씩 비어있었다. 시간이 늦어지다보니 집으로 돌아갈 사람은 이미 떠났고 밤늦게까지 마실 사람들만 남은 것 같았다.
“그래. 서현이 네가 고생이 많았어."
“어디 저만 그랬겠어요. 애들 다 힘들어 죽으려고 했죠. 그래도 고생한 보람이 있어서 다행이에요."
“응?"
서현이 배시시 웃으며 돈통을 꺼내 보였다.
“이게 다 오늘 하루동안 번 매출이에요. 엄청 나죠?"
돈통에는 만원짜리와 천원짜리 현금이 가득했다. 도훈은 별 감흥이 없었지만, 스무살에 불과한 새내기들에게는 처음으로 고생해서 번 돈이었기 때문에 각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대단하네. 정말 장하다."
“헤헷. 저희 주점 대박인 것 같아요. 다 오빠 덕분이에요."
“무슨 소리. 모두가 노력한 결과지. 암튼, 오늘은 첫날이니까 더 손님 받지 말고 적당히 마감준비하자. 내일도 모레도 달리려면 첫날은 몸 풀기 정도로 끝내야지."
“헤헤. 안그래도 그러려구요. 애들한테는 슬슬 마무리하라고 했어요."
“그래. 나도 한번 둘러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