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462화 (1,417/2,000)

1445. 대학 축제-70-

* * *

체육관 탈의실 문을 열고 사라진 도훈과 미호가 다시 나타난 곳은 다름아닌 도훈의 집이었다. 다급한 나머지 평소 익숙했던 집으로 마법의 문고리 포털을 연결한 것이었다.

외출하다 들어온 것처럼 정문을 열고 도훈과 미호가 등장했다.

그러나 둘 다 홀딱 벗은 나신이었기 때문에, 야외노출 플레이를 하다 누군가에게 걸려서 후다닥 도망쳐 나온 모양새였다.

“와씨, 영철이 그 새끼는 어떻게 그 타이밍에 튀어나오냐?"

영철을 가까스로 따돌린 도훈은 거실 소파에 벌러덩 드러누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문득 집까지 같이 데려온 미호가 생각났는지 그녀에게 말했다.

“너도 이쪽으로 와."

거실 구석에 우두커니 서있던 미호가 도훈의 명령에 쫄래쫄래소파로 다가왔다. 미호는 옆으로 앉으라는 도훈의 명령에도, 차가운 바닥에 무릎꿇었다.

“뭐해? 소파에 앉으라니까?"

“···괜찮습니다. 저는 여기가 편합니다."

의외의 반응에 도훈이 로시에게 물었다.

‘쟤는 또 왜 저래? 마법사 주제에 순간이동 마법에 놀란 것도 아닐테고.’

[미호양의 심리 상태는 쉽게 말하면 새주인을 맞이한 애완견과 흡사합니다.]

‘애완견이라고?’

[동물친화 패시브 효과로 주인님에게 강력한 유대감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주인님을 상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죠.

자신을 더 낮은 존재로 인식하기 때문에 주인님이 허락하지 않는 이상 자연스럽게 서열을 지키려 할 것입니다.]

‘아, 그래?’

10월이라 밤공기도 제법 서늘한 편이었다. 아직 보일러도 틀지 않았기 때문에 거실바닥은 냉기를 머금고 있었다. 맨 몸으로 찬바닥에 앉아있는 미호가 안쓰러웠던지 도훈이 재차 권했다.

“소파로 올라와. 이건 명령이야."

“···네 주인님."

명령이라는 말에 미호가 즉각 반응했다. 미호는 도훈과 적당히 거리를 둔 상태로 소파 끝에 걸터 앉았다. 맨 처음 도훈을 협박할 때의 박력은 온데간데 없고, 자꾸 눈치를 보며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방금 전 영철의 난입으로 흥이 식긴 했지만, 탐스러운 미호의 몸매를 보고 있자니 도훈의 대물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흐음, 이쪽으로 가까이 와."

“···네, 주인님."

미호가 엉덩이를 옆으로 움직여 슬금슬금 이동했다.

“허리 펴."

“네."

미호가 가느다란 허리를 펴자 가슴이 앞으로 튀어나왔다. 아무리 신수라곤 하지만 무척이나 비현실적인 몸매였다. 조그만 체구에 과하다고 느껴질만큼 풍만한 가슴이 달려있었다.

“가슴 사이즈가 몇이야?"

“65, G입니다."

“아니···."

도훈은 말문이 막혔다. 65g라니. 성인 웹툰에서나 튀어나올 것 같은 비율이었다.

“키랑 몸무게는?"

“158cm에 46kg 입니다."

“으음. 고개 내쪽으로 돌려봐."

정면을 보고 꼿꼿이 앉아있던 미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새햐안 목덜미에 유독 새까만 눈동자, 그리고 앵두처럼 붉은 입술이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보면 극히 평범한 얼굴처럼 보이면서도, 유심히 살펴보면 이목구비 하나하나가 묘한 조화를 이루어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하-. 보면 볼수록 놀라운데? 어떻게 저런 분위기가 나지?’

[구미호는 남성을 매료시키는 패시브를 타고 납니다. 게다가 군령자라는 특성 때문에 영기에 예민한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그녀에게 끌리게 될 것이고요.]

‘그럼 나는 둘 다에 해당하나?’

동물친화 패시브 효과로 미호가 도훈에게 끌리는 것처럼, 도훈역시 미호에게 점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깜찍한 반려동물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애정이 가는 것과 비슷한 원리였다.

처음엔 강제로 미호를 따먹으려 했던 도훈은 점차 마음이 바뀌었다. 능력에 기대 반최면에 가까운 상태로 섹스를 해봐야, 성에 안찰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이봐."

“네, 주인님."

“너는 인격이 여러개인 것으로 보이던데, 지금은 누구지?"

“저는 미호입니다."

“미호 네가 본래의 주인인가?"

“네."

“아까 그 미향이라는 사람은 뭐야?"

“조선시대 기생이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구에 의해 간살을 당한 뒤 억울함에 구천을 떠돌던 영혼을 제가 받아들였습니다."

“잠깐만 임란이라고?"

도훈이 학창시절 외웠던 국사를 끄집어냈다.

임진왜란의 발발은 선조 25년, 그러니까 서양력으로 1592년부터 1593년사이에 펼쳐졌던 전쟁이었다.

“···너 대체 몇살을 산 거야?"

“정확한 생년은 기억에 없습니다."

“뭐라고?"

“태어난 시기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최초로 영혼을 거둔 시기는 이조시대 이전입니다."

“······."

도훈은 할말을 잃고 말았다. 조선시대 이전이라면 최소 600살은 넘었다는 뜻이었다.

‘로시, 이것도 업적에 해당되는 거 아니야? 그 뭐야, 할망구랑하는 업적 있었잖아?’

[육보시 업적 말씀이군요. 해당 업적은 비구니를 대상으로 하는 업적입니다. 참고로 미호양의 경우는 인간이 아니다 보니 인간에 해당하는 업적은 적용되지 않습니다.]

‘뭐라고? 어째서 인간이 아니라는 거야? 저렇게···. 사람하고 똑같이 생겼는데? 게다가 그녀의 안에는 8명의 영혼이 함께 들어있잖아?’

[군령자에 속한 영혼들은 본체에 귀속된 신분입니다. 또한 미호의 본체를 직접 보시지 않았습니까? 그녀는 반인반수에 가깝습니다.]

‘가만있어봐, 그럼 설마 포인트 벌이도 불가능한 거야?’

도훈은 아까 첫번째 사정을 할 때도 의문이 있었다.

‘이쯤되면 막가자는 거지요?’ 업적에 대한 성공보상은 떴으나 남자 경험이 많은 여자를 상대로 받게 되어있는 포인트가 들어오지 않은 것이다.

정보창의 설명에 따르면 미호는 9배로 빨리 늙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남자의 정기를 주기적으로 흡수해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인 즉슨 최소 600살이 넘은 미호가 현재까지 살아오면서 상대한 모든 남자에 대해 100포인트씩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는 어림잡아도 수백만에 이를 수 있는 막대한 보상일게 분명했다.

[네, 그녀는 정확하게는 인간이 아니니까요. ‘수간’업적이 인정된 것을 보면 안타깝지만, 대다수의 미션과 업적에는 해당이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포인트 역시 마찬가지고요.]

‘말도 안 돼!’ 도훈은 크게 분노했다.

죽다 겨우 살아났는데, 보상이 하나도 없다니!

‘아니씹, 섹스 경험이 많은 여자랑 하면 포인트 준다며! 이건 사기지!’

[왜 사깁니까? 명백하게 ‘여자’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아쉽지만 미호는 ‘암컷’으로 분류되었고요.]

‘그딴 궤변이 어딨어?’

[주인님, 진정하시고 제 말을 한 번 들어보십시오. 만약 인간외의 존재에 대한 것까지 모두 허용한다면, 리얼돌은 왜 안 되겠습니까? 동물도 가능한데요.]

‘리얼돌? 뭐 인형방에 갖다놓는 그런거? 그건 돈 주고 하는 거니까 무효지.’

[만약 무료면요?]

‘무료라고?’

[네. 주인님 논리대로라면 리얼돌을 무료로 풀어놓고 다른 남자들이랑 실컷 즐기게 만든 다음 주인님이 그것을 수거하면 포인 트로 인정해야한다는 주장도 가능합니다.]

‘아니 그거랑은 전혀 다르지. 그건 인형이잖아? 움직이지도 않는다고!’

[그럼 움직이는 로봇이면 상관없습니까?]

‘뭐?’

[인공지능을 갖춘 안드로이드 로봇이면 인간에 가까우니까 역시 상관없습니까?]

‘아니 그게···.’

로시의 반박에 도훈이 점점 궁색해졌다. 포인트 벌이의 대상은 인간 여자로 한정한다는 주장에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다.

[이해하셨으리라 믿습니다. 미호가 포인트 벌이로 적용이 안된 것은 안타깝지만, 그녀가 정말로 인간이었다면 주인님은 아까 죽은 목숨이었을 겁니다. 동물 친화 스킬이 통하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아···.’

도훈은 그제야 오늘의 운세가 왜 ‘대길’이 아니라 ‘평’이었는지 명확히 이해했다.

죽다 살아남.

단지 그뿐이었다.

일확천금 포인트 벌이 따위는 없었다.

“하아-. 거참."

도훈이 혼자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에도 미호는 아무말 않고 잠자코 기다렸다. 도저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종잡을 수 없는 표정이었다.

“미호."

“네."

“그렇게 조용히 순종해봐야 나는 별로 반갑지 않아."

“아···."

“너의 새로운 주인은 네가 다른 사람과 있을 때처럼 내 앞에서 좀 더 편하게 지냈으면 좋겠어."

“······."

“선만 넘지 말고."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말도 편하게 해. 나보다 훨씬 누나잖아."

“···그것은···."

“괜찮으니까 진짜로 편하게 하라고."

“저는 도저히···."

“내가 불편해서 그래."

그때 검은 눈동자이던 미호의 눈빛이 흔들리더니 동공색이 보랏빛으로 변했다. 도훈이 체육관에서 상대했던 미향의 눈빛이었다.

“그 명령은 거두어 주시어요. 미호는 낭군님을 지아비처럼 섬기나이다."

“···미향?"

“소저, 미향이옵니다."

“아니 무슨 인격이 그렇게 휙휙 바뀌는 건데?"

“미호는 겁이 많은 아입니다. 겉으로는 강한척 하지만, 속은 여리기 그지 없거든요. 그 아이에게 낭군님의 존재는 너무나 절대적이라 감히 하대할 생각은 꿈에도 못 할 겁니다."

미향의 설명을 듣고서야 도훈은 미호의 성향을 파악했다.

겁많은 여우. 그러나 주인을 너무나 충실히 따르는.

“그럼 미향이··· 아니, 그래도 업계 선배님인데 미향씨라고 불러야 하나? 넌 어떤데?"

“저는 상관없습니다."

“설마 영혼마다 다 성격이 다른 거야?"

“네."

“말 편하게 하라니까?"

“어찌 하늘같은 지아비께 하대를··· 하라면 해드리지오."

“으잉?"

“하긴 나도 나이가 있는데."

보랏빛 눈빛의 미향은 앞선 미호와 성격이 전혀 달랐다.

겉모습은 똑같지만, 전혀 다른 쌍둥이를 앉혀놓은 느낌이었다.

“으음, 암튼 그래. 몇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말해."

미향으로 변한 미호는 앉은 자세부터 달라졌다.

허리를 꼿꼿이 펴고 소파에 앉아있던 미호는, 미향으로 변한 뒤한 쪽 다리를 들어 올리고 그 위에 한 팔로 턱을 괴는 야릇한(?)

자세로 바뀌었다. 마치 자신의 성적인 매력을 어필하려는 것처럼 보이는 음탕한 동작이었다.

‘아니 저년은 누가 기생 아니랄까봐···.’

“미향이 너 말고 또 어떤 영혼이 들어있지?"

“그건 왜 궁금한데? 지금 다 보여줘볼까?"

“아니. 정신사나우니까 그냥 이름이랑 특성만 알려주면 돼."

“나머지 7명 전부?"

“응."

“하나, 두나, 세나···."

“자, 잠깐만 이름이 왜 다 비슷한건데?"

“왜냐니? 자매니까 그렇지."

“자매가 다같이 영혼으로 들어 있다고?"

“응. 무가 집안의 여식이었던 세 자매는 복수심에 불탄 자객의 손에 묘령의 나이에 살해당했어."

“아···. 이런."

“원혼이 되어 구천을 떠돌던 중 미호의 몸에 귀접했고."

“근데 무가 집안이라면···."

“맞아. 세명이 각기 18반 무예를 나눠 익혔어. 마술과 암기술에도 능하고."

“헐. 주술은 그럼 누가 익힌 거지? 그 뭐야, 아까 보니 도깨비불 같은 걸 다루던데. 이상한 백사도 있고."

“요나라고 미친 계집애가 하나 있어. ···아, 알았어 농담이었어 화내지 말고.."

“요나? 그쪽도 같은 자매야?"

“아니. 그냥 우연히 이름만 비슷해. 도가 계열의 주문과 술법을 익혔어. 그밖에도 저격수 출신인 ‘이랑’···."

“저격수라고? 영혼중에 저격수가 있다고?"

“어. 이랑은 항일투쟁을 위해 광복군에서 기른 암살자였어. 작전이 실패해서 붙잡혀 고문당해 죽긴 했지만. 그리고 또 나만큼은 아니지만 시서예화에 능통한 양반집 규수 출신인 효옥··· 아씨, 귀따가워 죽겠네. 미안, 얘들이 하도 시끄럽게 떠들어서. 마지막으로 일본 후마 닌자단의 일족이었던 후마 린도 있지."

“닌자도 있다고? 일본 사람이 왜 한국까지?"

“나도 잘은 모르겠는데, 당수였던 후마 고타로가 줄을 잘못 섰던 모양이야. 전국시대를 통일한 도쿠가와가 후마 닌자단을 모두 잡아 죽였거든. 그때 조선으로 탈출, 어찌어찌 하다보니 미호가 거두게 되었어. 참고로 린은 나서길 좋아하지 않아서 거의 볼 수 없을 거야. 됐지?"

미향의 설명을 들은 도훈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미호는 단순히 한명이 아니었다. 각각의 독특한 개성을 가진 9명의 인격체의 결합이었다. 당장 미향만 봐도 앞선 미호와는 판이 하게 달랐다.

어쨌든 다행인 점은, 이들 모두가 본체인 미호의 영향으로 자신에게 절대 복종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 아니 최소한, 자신을 위협에 빠뜨리거나 배신할 순 없었다.

‘와···. PK단 멤버 모두가 이런 능력자라면, 난 상대도 안 되겠는데?’

미호의 능력을 직접 마주한 도훈은 내심 놀라는 중이었다. 우연히 업적이 완료되면서 미호를 사로잡을 수 있었지만, 과연 내공이 온전한 상태에서 그녀와 붙었더라도 승산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미치겠구만. 이런 능력자들이 4인 1조로 뭉쳐다니면서 플레이 어를 암살하고 다녔다니···. 그러니 버틸수가 있나.’

[이제 어쩌실 겁니까?]

‘일단 집으로 대피했으니까 당장은 위험하진 않을 거야. PK단의 추적을 온전히 피할 방법을 찾던지, 아니면 미호를 이용해 놈들을 각개격파 하는 방법을 차차 구상해 봐야지.’

도훈이 잠시 생각에 잠겨있는데 미향이 갑자기 다리를 앞으로 쭉 뻗더니 노골적인 유혹을 보내왔다.

“흐음···. 아참, 내 특기를 말 안했구나. 난 방중술에 능해. 아까 겪어봤지?"

“그런것 같더라."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인데, 아까 하던 거 마저 끝낼 생각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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