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455화 (1,415/2,000)

1438. 대학 축제-63-

뒤이어 등장한 여학생은 나연과 연두였다.

“오옷, 저게 뭐야?"

“쟤들 코스프레에 진심이잖아?"

나연과 연두는 둘 다 블랙이었다. 나연은 마블 유니버스의 대표적인 여성캐릭터인 블랙 위도우를, 연두는 캣우먼을 코스프레했다.

“와, 연두 몸매 지려버렸다···."

남학생들은 특히 몸매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물광 타이즈의 연두에 열광했다. 마치 맨 살 위에 레깅스를 껴입은 것마냥 몸에 쫙 달라붙은 타이즈가 노골적으로 곡선을 드러내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미드가 빈약한 나연에 비해, 연두의 가슴은 도드라지게 튀어나와 있어 남학생들은 절로 감탄사를 연발했다.

“연두가 저런 과감한 패션을 시도할 줄이야."

“그래도 나연이 쪽이 더 리얼하지 않아?"

“맞아. 나연이는 가발까지 쓰고 나왔잖아. 성의가 있다니까?"

나연은 블랙위도우의 시그너처라고 할 수 있는 붉은 단발머리를 완벽히 재현했다. 안 그래도 늘씬한 몸매에 헤어스타일까지 따라하니 코스프레의 완성도로만 보자면 가장 흡사한 느낌이 들었다.

뒤이어 등장한 효민에 대한 반응도 뜨거웠다. 오버워치의 인기 한국 캐릭터인 디바를 따라한 효민은, 얼굴에 페이스페인팅을 하고 몸에 꼭 붙는 타이즈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장전된 물총을 남자 동기들에게 뿌려가며 장난을 걸었다.

“얍얍!"

“앗, 뭐야!"

“손님들한테는 쏘지말라고."

마지막으로 남은 두 사람도 이윽고 모습을 드러냈다.

“서, 설마 저건 희주?"

“우아앗! 역대급이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구나!"

희주의 등장은 기대감에 차 있던 남학생들의 열렬한 호응을 이끌어냈다. 바로 만화 원피스에 나오는 나미를 따라한 것.

하의는 몸에 꼭 끼는 블랙진, 상의는 브래지어인지 탱크탑인지 분간이 안가는 야한 의상을 입고 있었다.

워낙에 가리는 면적이 작은데다, 옆에서 보면 가슴살이 다 보일정도 였기 때문에 남학생들은 환호성에 가까운 비명을 질러댔다.

“최고다, 희주!"

“오오! 믿고 있었다고!"

“이게 코스프레죠!"

희주가 모든 시선을 독차지하는 바람에 맨 뒤에 수줍게 따라오는 정음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더욱이 정음은 앞선 여학생들과 다르게 굉장히 독특한 컨셉트였다.

쉽게 말해 전신에 껴입는 공룡옷을 걸치고 있었는데, 놀이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타일이었다. 그마나 얼굴엔 탈을 쓰지 않고 후드를 눌러쓰고 있었지만, 몸매가 전혀 드러나지 않아 일부 남학생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정음이 애기공룡 실화냐?"

“둘리야 뭐야?"

“이건 좀 아닌듯."

하지만 후드 아래 드러난 얼굴이 워낙에 예뻤기 때문에 다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코스프레를 완료하고 등장한 여학생들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체육과 주점이 막을 올렸다.

남학생 일부도 나름 코스프레 의상을 준비했는데, 박스로 만든 아이언맨 의상이나 보라색 정장을 입은 조커 복장도 있었다.

여기에 망토를 두른 스파르타 군인 복장의 도훈까지 가세하자 체육과 주점은 지나가는 손님들의 시선을 단박에 끌었다.

“우앗, 저기 뭐야?"

“코스프레 동호회 팀 회식왔나?"

“아니야. 체육교육과 주점인것 같은데?"

“그럼 옷 입고 있는 애들이 체육교육과 애들이라고?"

“대박, 여자애들 엄청 예쁜데?"

“저기로 가자."

“술맛 나겠는데?"

코스프레 전략이 성공했는지 시작부터 반응이 뜨거웠다. 축제의 밤, 술자리를 즐기려는 대학생들이 모여들더니 야외 테이블이 금세 만석이 되었다.

체육교육과 학생들은 처음임에도 불구하고 손발을 척척 맞추며 주문을 받고, 안주를 만들고, 술을 날랐다. 도훈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카운터를 맡은 정음에게 말했다.

“장사 대박 인듯!"

“그러니까요, 선배. 이렇게 많이 오실 줄 몰랐어요."

“근데 정음이 넌 서빙담당 아니었어? 서현이는 어디가고?"

이번 주점을 기획한 브레인인 서현은 셈이 빨라 계산을 맡고 있었다. 도훈은 서현 대신 정음이 자리에 앉아 있자 물은 것이었다.

“아, 아까 환복을 못했다고 잠깐 탈의실 갔어요."

“그래?"

그때 양반은 못 되는지 서현이 곧바로 등장했다.

“서현이 왔··· 크흡!"

정음은 서현의 바뀐 복장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서현의 코스프레 복장은 다름 아닌 바니걸이었던 것.

유광 에나멜 재질의 원피스 수영복에, 망사 스타킹. 엉덩이쪽에는 흰 털뭉치를 붙여 꼬리를 표현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서현의 무지막지한 바스트였는데, 의상이 의상이다 보니 너무 골이 패여있었다.

“서, 서현아."

“응? 나 괜찮아? 급하게 갈아입느라."

“괘, 괜찮긴 한데···."

정음이 민망해했지만, 서현은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도훈 역시 시선을 쳐다보지 못하고 서현에게 말했다.

“그럼 고생해. 난 야외테이블 쪽 가볼게."

“네, 오빠. 믿고 맡겨 주세요."

도훈은 여전히 망토로 몸을 가린 채 야외 테이블로 갔다. 코스프레 의상을 입은 팔선녀들이 분주하게 주문받은 술과 안주를 나르고 있었다. 하지만 개시한지 30분도 안돼서 만석이 되어 버린 상황에서 바깥의 대기줄도 점점 늘어나는 게 보였다.

‘음, 야외 잔디밭이라 테이블만 더 있으면 손님 더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매출은 신경 안쓰신다지 않았습니까?]

‘꼭 돈 때문이라기 보다는, 후배들이 즐거워 하니까.’

체육교육과 후배들은 끊임없이 밀려드는 손님에 정신이 없어 하면서도, 자신들이 준비한 주점이 성황이 된 것에 몹시 만족한 표정이었다.

후배들에게 좋은 추억이 될것이라 생각한 도훈은 기왕이면 좀 더 테이블을 늘려서 손님을 더 받고 싶었다. 도훈이 지나가는 후배에게 물었다.

“형석아. 테이블 세팅 이거 누가 맡았어?"

“영철이 형일걸요?"

“영철이 어딨어?"

“아···. 그게. 아직 안 온것 같아요. 아까부터 안 보이더라고요"

“뭐?"

“저도 잘 모르겠어요. 형, 저 급한 주문때문에···."

“어, 그래 그래. 가봐."

도훈은 테이블을 더 확보하기 위해 영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영철아. 너 지금 어디야?"

-네, 형. 아··· 지금 잠깐 공연 보고 있어요.

수화기 너머로 노랫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중앙분수 쪽에 설치된 초대가수 공연장으로 보였다.

“야. 주점 시작했는데 테이블 담당이 사라지면 어떻게 해?"

-애들한테는 미리 부탁했어요. 오늘 채원이가 와서···.

“채원이?"

-네. 형 사촌 동생이요.

“아···."

-근데 무슨 일이세요? 저 이 곡만 끝나고 금방 가려고요.

“테이블이 부족해서 좀 더 빌릴 수 있나 해서. 그냥 업체 번호를 나한테 넘겨 줘. 내가 전화할게."

-네, 형. 문자로 보낼게요. 금방 갈게요!

통화를 끊은 도훈은 채원이 곧 온다는 소식에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씨, 기어코 왔나 보네.’

[채원양은 되도록이면 피하는게 좋지 않을까요?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도 모르는데요.]

‘그러는 편이 좋겠어. 어차피 테이블도 더 빌려야 하니.’

도훈은 서현에게 주점 운영을 부탁한 뒤 영철이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업체의 대답은 대여 불가였다.

-테이블 여분이 없는 건 아닌데, 이 시간에는 좀 어려우세요.

직원들이 다 퇴근해가지고···. 내일 오전에 가져다 드리면 안될까요?

“오늘 필요할것 같은데 어떻게 안 될까요?"

-아니 그게···. 트럭에 실려 있는데, 운전할 사람이···.

“사장님이 직접 가져다 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요? 이 시간에요?

“저희가 좀 급해서요. 추가된 테이블 임대 비용은 두배로 쳐드릴게요 대신."

-두배를요?

“네. 부탁좀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지금 그럼 바로 출발해볼게요.

통화를 끊은 도훈을 향해 로시가 물었다.

[테이블 임대 비용을 두배나 주면 손해 아닙니까?]

‘상관없어. 어차피 이 비용은 내 돈으로 처리할 거라.’

[주인님은 정말 돈 벌이에는 관심이 없으시군요.]

‘당연하지. 수중에 가진 돈이 천억도 넘는데, 하룻밤에 수백만 원 더 쓰는게 나한테 무슨 의미가 있겠어? 그냥 애들이 고생해서 준비했으니 기왕이면 손님 많이 받아서 보람을 느끼길 바랄 뿐이지.’

[근데 손님이 많아지면 오히려 더 고생만 하는 꼴 아닙니까?]

‘그것도 다 추억이야.’

[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 있잖아. 난 내 돈 써서 고생을 사준 거라고. 피곤하긴 하겠지만, 오늘의 추억은 후배들에게 평생 남을 테니까.’

[역시 회장님 마인드군요.]

전화통화를 핑계로 주점에서 멀리 떨어진 도훈은 주변을 배회하며 시간을 끌었다. 영철의 현 여친이자, 자신이 방생한 채원과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나저나 이상한 점이 있어.’

[뭐가 말입니까?]

‘아까 피지크 예선 할 때 기억나?’

[네. 주인님이 모자 눌러쓰고 출전했던 그 경기 말씀이시죠?]

‘그때 관람석에 유도부 애들이 몇명 지키고 있었잖아.’

[곽동수의 패거리 말씀이군요.]

‘응. 근데 이상한게 그 뒤부터는 코빼기도 안 비쳤거든.’

[그냥 찾다가 포기한 게 아닐까요? 사실 축제기간에 외부 사람도 많이 모여든 대학교에서 주인님을 어떻게 찾겠습니까?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도 아니고요.]

‘그런가? 근데 다른 사람들까지 풀어서 나를 찾은 걸 보면 굉장히 집요해 보였는데 말이지.’

[결국엔 무탈하게 넘어갔으니 신경 안쓰셔도 될 것 같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날도 어둡고, 주인님도 코스프레를 하셨으니 눈앞에서 마주쳐도 못 알아 볼겁니다.]

‘그렇겠지?’

도훈은 남몰래 창과 방패를 꺼내 들었다. 거기에 투구로 변모한 정체불명의 모자까지 뒤집어 쓰자,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 정도 아이템이면 PK단이랑 붙어도 해볼만 하겠지?’

[과욕입니다.]

‘왜? 저번에 설명 들어보니까 보기에만 좀 허접해 보이지 보통 장비가 아니던데? 게다가 내 무공실력도 이제는 충분히 물이 올랐고.’

[주인님이 절대 약하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문제는 PK단이 혼자 움직이지 않고 패거리로 몰려다닌다는 점이죠. 한 명을 각기 상대하신다면 모를까, 여럿을 상대하기엔 벅차실 겁니다.]

‘음···. 치사하게 집단 린치라니. 상도덕이라곤 없는 놈들이구만.’

[당연하죠. 플레이어와 PK단이 마주친다는 건 생사박을 의미하니까요.]

‘생사박이라니?’

[쉽게 말해서 누구 하나는 죽어야 끝난다는 뜻입니다.]

‘사생결단을 내야한다?’

[그렇죠. 혹시 몰라 무장을 하긴 했지만, 혹시나 만나게 되면 튀는 게 상책입니다.]

‘오케이 알았어.’

[또한 주인님께는 PK단 경보기가 있지 않습니까? 놈들의 탐지 기가 주인님을 발견하기 전에 충분히 반응할 겁니다. 아, 그리고 그 망토.]

‘망토? 내가 지금 걸치고 있는거?’

[네. 옵션을 상세히 살펴보니 마법 저항 말고도 다른 기능이숨겨져 있더군요.]

‘오? 정말?’

[네. Anti-searching 마법이 걸려 있었습니다.]

‘안티서칭?’

[쉽게 말해 마법사가 자신의 서클을 숨기기 위해 걸어놓은 위장마법입니다. 고위 서클의 마법사는 늘 암살자들의 표적이 되기 때문에, 자신의 기운을 숨기는 안티서칭 마법 아이템을 필수로 착용 합니다. 해당 망토의 이력이 알고 보니 전직 배틀 메이지가 사용한 물건이더라고요.]

‘오호, 이 낡아빠진 망토가 그러니까 대단한 마법 망토였다는 거야?’

[대단한 것은 아니고요. 부가기능이 몇 개 더 숨어 있었다는 거 죠. 참고로 항온유지 기능도 있습니다. 더울때나 추울때나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해 줍니다.]

‘신기하네. 암튼 그래서 요점이 뭔데?’

[망토를 두르고 있는 동안에는 안티 서칭 마법의 효과가 작동하여 PK단의 탐지기에 쉽게 걸리지 않게 된다는 겁니다.]

‘엇? 정말?’

[네. 물론 높은 수준의 마법이 아니라 근거리에서는 무조건 잡힐 겁니다. 즉, 주인님께 가까이 접근하지 않고서 멀리서 주인님을 탐지하는 건 불가능해 진다는 뜻이죠.]

‘대박인데? 그럼 계속 착용하고 다니면 되겠네?’

[평소에 망토를 두르고 캠퍼스를 다니면 미친 사람으로 오해받지 않을까요?]

‘아···. 그것도 그렇네.’

어쨌든 도훈은 망토에 숨겨진 기능에 몹시 만족했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과 접촉해야 하는 축제기간이라 PK단에 대한 불안이 조금 높아져 있었는데, 우연히 코스프레로 구입한 망토에 해법이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이 망토를 두르고 있으면 이번 축제기간에는 안심이란 소리구만.’

[네. 접근 하기전에 경보기부터 먼저 반응할테니까요. 적들은 주인님을 찾을 수 없지만 주인님은 먼저 발견하는 셈이죠.]

‘좋아!’

* * *

“정말 우리 둘이 가라고? 그러지 말고 같이가 누나."

창범이 만류해 보았지만, 미호는 마음을 굳힌 채였다.

“창범이 너 넌씨눈이니?"

“뭐라고?"

“됐고, 난 그냥 축제 구경이나 더 할래. 소연이 데리고 가서 맛있는거나 사 먹여."

“언니 같이 가셔도 되는데···."

소연도 미호가 갑자기 주점에 함께가지 않고 따로 움직인다고 말하자 서운한듯 말했다. 미호는 자신을 챙기는 소연에게 빙긋 웃어 보이더니 대답했다.

“너희들이랑 같이 있으면 남자들이 나한테 말을 못 걸잖아. 나도 헌팅같은 거 당해보고 싶다고."

“정말요?"

“그래. 축제 때 얼마나 신나는 일이 많은데? 그러니까, 너희들끼리 재밌게 즐기시고요, 나는 혼자서 축제 좀 더 즐기고 올게. 알았지?"

그렇게 말한 미호는 미련없이 등을 돌려 인파속으로 사라졌다.

창범은 자신을 밀어주기 위해 알아서 떠나는 미호의 속마음을 알고 안타까워 하면서도, 속으로는 몹시 고마워했다.

“나중에 연락해 그럼! 우리 먼저 주점에 가 있을 테니까."

미호는 돌아보지도 않고 손을 번쩍 들더니 뻑큐를 날려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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