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454화 (1,414/2,000)

1437. 대학 축제-62-

* * *

“여기 오뎅 진짜 맛있다, 그지?"

“그냥 평범한 오뎅인데?"

“뭐래? 맛만 있구만. 하나 더 먹을래. 사 줘."

“벌써 몇개째야, 채원아. 이제 그만 가자."

“뭐야? 설마 돈 아까워서 그래? 참나 치사해서 안 먹는다, 흥!"

“아, 아니 아깝다는게 아니라···."

“됐어."

채원이 삐진척 축제 포장마차를 나가는데 막 들어온 여자와 어깨를 부딪혔다.

쿵-

“앗,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생각보다 심하게 부딪혔는데도, 부딪힌 여자는 별로 괘념치 않다는 반응이었다. 미안한 마음에 채원이 재차 사과하려고 얼굴을 다시 보는데, 굉장한 미인이 눈 앞에 서 있었다. 눈을 마주치는 순간, 귀신에 홀린 것처럼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와···."

“왜 그러세요? 제 얼굴에 뭐 묻었나요?"

“아, 아니에요. 죄, 죄송했습니다!"

채원은 여자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는 생각에 후다닥 포장마차 밖으로 뛰쳐나갔다. 어묵값을 치르느라 뒤따라온 영철이 채원의 놀란 표정을 보고 물었다.

“왜 그래? 방금 들어오는 커플이랑 무슨 일 있었어?"

“들어오다가 어떤 여자랑 어깨를 부딪혔거든? 와, 근데 대박예쁜 거 있지?"

“진짜로?"

영철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역시 방금 나오면서 남녀를 마주쳤는데, 남자의 키가 멀대같이 큰 반면 여자는 상대적으로 조그만 체형이라는 것 밖에는 특별히 인상적인 기억이 없었다.

‘이상하네. 그렇게 예쁜 얼굴이었으면 내가 못 봤을리가 없는데?’

“너네 학교 진짜 물 좋네. 저런 미인도 다 다니고."

“여대만 하겠니? 그래봐야 절반은 남잔데."

“아닌데. 너네 과 후배들도 예쁘다지 않았어?"

영철은 예전에 지나가며 꺼낸 얘기를 채원이 기억하는 것을 보고 저도 모르게 실실 쪼갰다.

“그래서 불안해? 남자친구 뺏길까 봐?"

“뭐래? 웃기고 있네."

채원이 얼렁뚱땅 넘겼다. 실은 그녀는 현재 남자친구인 영철보다 도훈 때문에 기억하고 있었다.

‘체육교육과 후배들이 하나같이 예쁘다니 도훈 오빠만 살판 났네.’

“나도 전역해서 와보니까 그렇더라고. 원래 우리과가 전형적인 남초과거든. 허구한날 땀 냄새 나는 사내새끼들만 득시글거리고, 여자들은 기피하는. 근데 이번 새내기들은 여자들이 더 많이 들어왔다는 거야."

“그래서 좋아?"

“아, 아니 사실이 그렇다는 거지. 그리고 난 채원이 네가 있는데 뭐가 좋겠어?"

“흥, 내가 지켜보고 있다는 거 잊지마."

채원은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며 영철에게 긴장감을 부여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영철보다 도훈에 대한 애증이 더 컸다.

‘흥, 처음 만난 날 병원에서 그렇게 함부로 해놓고선, 친한 후배한테 날 떠넘겼다 이거지? 두고 봐 이도훈, 내가 오늘 후배들 앞에서 톡톡히 망신을 주고 말테니.’

채원이 속으로 이를 갈았다.

그녀가 영철에게 바득바득 우겨 축제에 따라온 것은 다름이 아니었다. 학회장인 도훈이 주최하는 체육과 축제 주점에서 그에게 공개적인 망신을 주기 위해서였다.

‘취한 척 나랑 있었던 일을 싹 다 까발려버리면 아마 두번 다신 학과에서 고개 못 들고 다닐거야. 이건 도훈 오빠가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고.’

복수심에 불타는 채원이 영철에게 물었다.

“그래서, 주점은 언제 가는 거야? 나 슬슬 배고파지는데."

“배고파? 그럼 저녁부터 먹으러 갈까?"

“그냥 안주로 떄우지 뭐. 이제 가자. 많이 기다린것 같은데."

영철은 시계를 보더니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음···. 오늘이 첫날이라 개시가 좀 늦을 거야. 아마 지금가면 집행부 애들이 곤란해 할 것 같아. 안주도 제대로 준비도 안 됐을 거고."

“뭐야. 그럼 계속 발 아프게 구경만 하고 다니자고?"

채원이 볼맨 소리로 투덜거리자 영철이 애써 그녀를 달랬다.

“대신 내가 저녁으로 맛있는 거 사줄게. 축제기간이라 교직원주차장 주변으로 푸드트럭 와 있더라. 가볼래?"

“설마 나 창피해서 일부러 학과에 안 데려가는 건 아니지?"

“채원이 네가 뭐가 창피해?"

“내가 여자 후배들보다 꿀릴까봐서. 여친이라고 소개시켜주기 부끄러우니까."

“무슨 소리야! 그럴리가 없잖아? 채원이 네가 백배는 더 예뻐.

그리고 넌 도훈이 형 사촌동생이잖아. 감히 누가 너를 함부로 대하겠어?"

영철의 입에서 도훈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채원은 자기도 모르게 심장이 두근거렸다. 자신과 도훈의 사이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영철에게 불쑥 미안한 마음이 든 것이었다.

‘···아. 그나저나 모든 사실을 다 까발려버리면 영철오빠가 괜찮을지 모르겠네.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 좋은 오빠였는데.’

“그, 그런가···."

“당연하지. 그리고 너 잘 모르나본데, 우리 과에서 도훈이 형은 그냥 신이야."

“신?"

“응. 갓도훈이라고."

“왜?"

“형이 못하는 게 없잖아. 잘생겼지, 운동 잘하지, 공부도 잘하지, 돈도··· 암튼, 내가 직접 본 사람중에서 가장 대단한 사람인건 확실해. 나랑은 비교도 안될만큼."

어느새 도훈을 존경하게 된 영철의 고백 앞에 채원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뭐가 비교도 안 돼? 영철이 너도 충분히 멋지거든?"

“그, 그래?"

“자신감 가지라고. 네가 꿀릴거 하나도 없으니까."

“히히, 역시 여자친구 뿐이네!"

영철이 애처럼 기뻐했지만, 채원은 사실 말을 해놓고도 속으론 죄책감이 앞섰다. 그녀는 아직도 영철보다 도훈을 못 잊고 있었다.

* * *

“테이블 담당! 테이블 담당 어딨어?"

“홀은 영철오빠가 맡은 거 아니야?"

“아까 단톡방에서 영철오빠 오늘만 좀 늦는다던데? 테이블 세팅은 기남이가 대신 맡기로 했어."

“뭐? 아니, 개시 첫날부터 늦으면 어쩌자는 건지···."

“뻔하지. 오늘 여자친구 놀러 온대서 같이 축제 구경하러 갔나 보지."

“아, 그런 거야?"

슬슬 어둑어둑해지는 초저녁.

사범대 앞 학떨목 주변 잔디밭에선 체육교육과 학생들이 주점준비에 한창이었다. 임대 해 온 테이블을 펼치는 이들과, 안주를 챙기는 이들. 술을 커다란 얼음물 통에 담그는 이들까지···.

사방에서 여러 학생들이 정신없이 움직였다. 그리고 카운터로 보이는 천막 아래 1학년 집행부인 정음과 서현이 동기들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정음은 시계를 확인하더니 화들짝 놀랐다.

“헉!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우리 8시 정각에 시작하기로 했는데···."

“걱정마 정음아. 어느정도 정리되고 있으니까. 일단 서빙 맡은 여자애들은 준비 돕는 거 그만하고 코스프레 복장 갈아입고 오라고 해. 여긴 내가 보고 있을 테니까 정음이 너도 같이 다녀와."

“어디서 갈아입지 근데?"

“2학년 선배가 체육관 개방해 놓는다 그랬어. 여자 탈의실 비어 있을 거야. 그리로 가면 돼."

“알았어."

정음이 서빙조를 맡은 동기들을 데리고 체육관으로 움직였다.

그 사이 혼자 남은 서현은 정신없이 지시를 내렸다.

“기본 안주는 미리 접시에 담아서 세팅해 둬. 그래야 손님 오자마자 낼 수 있으니까. 그리고 테이블 조명 누가 맡기로 했지? 지금쯤 휴대용 램프 켜서 올려놔야지. 야! 공혁준, 너넨 늦게왔으면 테이블 세팅 서둘러야 할 거 아니야. 너네가 제일 늦어 지금."

지적을 받은 혁준은 움찔하더니 세팅을 서둘렀다. 그는 함께 테이블을 펴고 있는 남자동기에게 말했다.

“와씨, 16강 겨우 뚫고 왔는데, 오자마자 얄짤도 없네. 우리가 놀다 온 것도 아닌데 말이야."

“말도 마. 5연전 승부를 내리 풀세트 갈 줄 알았냐? 나중엔 마우스 들 힘도 없더라."

“그래도 금토일 특훈한 보람이 있지? 100팀 가까이 참가했는데 일차로 16강 달성했으니까."

“당연하지. 우리 목표는 우승이야. 3일내내 달려보자고."

“아자아자 할 수 있다!"

“야, 혁준아. 그나저나 오늘 저녁에 pc방 알바 온다지 않았냐?"

“어?"

소연의 얼굴을 떠올린 혁준은 얼굴이 빨개졌다. 대회 연습을 하기위해 찾았던 pc방에서, 혁준은 과감하게도 데이트 신청을 한 것이다.

“연락 해봤어?"

“했어 아까. 저녁쯤에 온다던데."

“그나저나 혁준이 너 진짜 대단하네. 우린 너 백퍼 까일거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헌팅을 성공할 줄이야."

“헌팅은 무슨···. 그냥 우리과 주점와서 술이나 먹고 가라고 쿠폰 준거야."

“그래도 조금이라도 마음이 있으니까 온다고 했겠지. 진짜 관심도 없는데 심심해서 올것 같냐?"

“그, 그런가?"

혁준이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는데 난데없이 근육질의 남성이 망토만 두르고 주점에 나타났다. 머리엔 괴상한 투구까지 쓰고 있어 전혀 누군지 알아보지 못하던 혁준은, 잠시 후 상대가 투구를 벗자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쳤다.

“허, 헉 회장님!"

“엇, 놀랐냐? 애들이 하도 입으래서."

코스프레 복장을 하고 나온 도훈은 스스로 민망해 죽을 것 같았다. 고대 스파르타 전사 복장으로 꾸민 그는 안에는 딱 붙은 반바지 하나만 입은 뒤 빈티지 스타일 망토를 둘렀다.

차마 창과 방패까진 꺼내지 못해서 인벤토리에 넣어놓고 정체 불명의 모자를 투구형으로 변경해 얼굴을 반쯤 가렸는데, 그 모습이 영화에서 막 튀어나온 것처럼 싱크로율이 뛰어났다.

“엇, 도훈 오빠? 옷 갈아 입고 왔네요?"

천막에 앉아있던 서현이 웃으며 도훈을 반겼다. 도훈은 보여주기 민망한지 망토를 펄럭여 상반신을 완전히 덮었다.

“괜히 입는다고 했나봐. 쪽팔려 죽을 것 같아."

“에이, 잘 어울리는데 왜 가리세요?"

“그게 아니라 진짜로 벌거벗고 서 있는 기분이라고."

“오전에 미스터 국성 대회에선 팬티만 입고도 나가셨다던데요?"

“누, 누가 그래!"

“아까 희주랑 경희랑 얘기하는 거 들었어요. 오빠 진짜 끝내줬다나?"

도훈은 흑역사를 떠올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얘긴 그만. 창피하니까."

“암튼 너무 민망해 하지마요. 좀 이따 여자애들도 코스프레 하고 나올 건데, 회장님이 당당하셔야 저희도 용기를 내죠."

“잠깐, 서현이 넌 왜 안갔어?"

“일손이 부족해서 잠깐 남아있었어요. 개시 준비 다 끝내고 저도 다녀올게요."

“그렇구나. 미안하다. 내가 더 챙겼어야 했는데."

“아니에요. 예선 대회 때문에 하루 종일 바쁘셨잖아요. 준비는 거의 끝났으니까 계획대로 8시쯤엔 주막 열 수 있을 거예요."

“그래. 고생했다."

“뭘요."

서현이 몰래 윙크했다.

도훈을 위해서라면 더한것도 해낼 수 있다는 모습이었다.

[서현양은 정말 듬직하군요.]

‘서현이 없었으면 주점 못 돌렸을 듯. 진짜 체육과의 숨은 브레인이랄까.’

[근데 계속 망토로 가리고 있을 작정이십니까?]

‘막상 입고 나오니까 쪽팔려서 돌아다닐 수가 없다. 괜히 한다고 했나봐.’

[주인님이 의상을 택한 건 다른 여자들과 충돌을 피하기 위함도 있습니다.]

‘맞다, 그랬지? 그래도 다행인게 3일동안 나눠서 오기로 했으니까 좀 안심이 돼.’ 도훈은 충돌경보 방지를 위해 축제에 놀러 오겠다는 손님들을 3일동안 분산 배치했다.

친구들을 데리고 온다는 교대생 하린의 경우는 내일. 대학 교직원들과 온다는 손은주 교수는 모레로 미루는 식이었다.

[그럼 오늘은 채원양만 잘 마크하시면 되겠군요.]

‘그렇지. 분명 좋은 마음으로 오겠다는 건 아닐테니까.’

[혹시 또 모르지 않습니까? 그 사이에 영철군하고 정이 많이 들어서 주인님에 대한 원망도 모두 잊었다면···.]

‘그러면 다행인데, 도저히 그럴것 같진 않아서. 알잖아. 여자들이 나를 한 번 거치면, 다른 남자한테 못 돌아 가는 거.’

[주인님께 간 여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뭐 그런 겁니까?]

‘그건 흑형이겠지. 흑형이라고? 아 맞다!’ 도훈이 뭔가 생각난듯 말했다.

‘제니퍼한테 흑인 친구 소개시켜 달라고 했었는데?’

[영어회화 강사 제니퍼요? 그러셨죠.]

‘설마 오늘 여기로 오는 건 아니겠지? 제니퍼랑은 약속을 따로 못 잡은 것 같은데.’

[정말 대책 없으시군요. 대체 몇명이랑 약속을 잡으신 겁니까?]

‘낸들 이렇게 될 줄 알았나.’

[정 안되면 그냥 도망다니십시오. 어차피 주점은 주인님이 없어도 서현양이 알아서 잘 운영할 것 같으니까요.]

‘그래야겠다.’

그때 주변이 웅성거리더니 주막을 준비하던 체육과 남학생들이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오오, 서빙팀 옷 갈아입고 왔다."

“정말? 코스프레 복장으로 온 거야?"

“대박, 나도 볼래!"

여자 탈의실에서 환복을 마친 서빙팀이 입장한 것이었다.

서현을 제외한 8선녀 전부가 서빙 담당이었기 때문에 동시에 코스프레 복장으로 갈아입은 7명의 등장은 체육과 학생들 뿐만 아니라 축제를 구경하던 모든 이들의 시선을 사로 잡았다.

“와와! 설마 저 드레스, 아영이야?"

“대박! 완전 겨울왕국인데?"

아영은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의 캐릭터인 엘사로 변신했는데 공주풍의 드레스와, 특유의 냉랭한 분위기가 놀랍도록 잘 어울렸다.

하지만 입고 나온 아영 스스로가 민망한지 자꾸 고개를 들지 못하고 땅만 쳐다보고 있었다.

“옆에 봐, 원더 우먼 강경희다!"

“강한여자!"

“으으 싸우면 내가 처 맞을듯."

한편 건장한 체격의 원더우먼으로 변신한 경희는 제법 노출이 심한 의상이었다. 태닝한 피부덕에 더욱 강력한 여전사처럼 보였는데, 손목에 금속 팔찌로 디테일을 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앞선 두 명은 애피타이져일 뿐.

뒤이어 본격적인 메인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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