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453화 (1,540/2,000)

1436. 대학 축제-61-

* * *

'맞네. 이럴게 아니라 점괘를 봐보면 되잖아?'

[네?]

'아니. 길흉화복 보는 스킬 말이야. 만약 주변에 PK단의 끄나풀이 있다면 운세가 대흉으로 뜨지 않겠어?'

[점괘란 당일의 대략적인 운세 향방을 알려줍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선 알 수 없고요. 그걸로 괜찮으시겠습니까?]

'충분해. 어쨌든 찝찝한것 보단 나으니까.'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도훈은 오늘의 운세를 확인했다.

'평? 이게 뭐야?'

[문자 그대로 길도 흉도 아닌 평범한 운세란 뜻입니다.]

'그렇다면 곽동수 패거리에게 시비가 걸리거나 위험할 일도 없다는 뜻인가?'

[결과적으로 그렇다는 뜻이지 과정은 알 수 없습니다. 아무튼 걱정하실 정도는 아닌것으로 보이는군요.]

'호오, 그렇다면 오늘 내로 성가신 일이 터지진 않겠구만.'

"다음 참가자 준비하세요. 71번부터 75번까지입니다."

마침내 기다리던 도훈의 차례였다. 마음이 한결 편해진 도훈은 정체불명의 모자를 눌러쓰고 대회장으로 걸어나갔다.

* * *

유도 연습장으로 들어온 동수는 문부터 걸어 잠갔다.

오늘은 축제날이기도 하고, 오후에 있을 시범행사 때문인지 넓은 유도 연습장이 텅 비어있었다.

"여기 어때? 조용하니 딱 좋지?"

"뭐, 그럭저럭? 근데 오빠도 유도부야? 왜 도복을 안 입고 있었어?"

"후배들은 행사 때문에 입고 왔던 거야. 난 3학년이라 참가 안하거든."

"아항, 오빠 높은 사람이구나?"

"그치 그치."

파워리트팅 대회 예선 탈락과 도훈에게 시비를 걸다 털려 기분이 꿀꿀해있던 동수는, 지금까지의 불운이 마치 이 순간을 예비한 복선처럼 느껴졌다.

'어쩐지 오늘 운세가 사납더라니, 이런 새끈한 애랑 꽁씹을 하기 위해서 였나보네. 흐흐.'

고생끝에 낙이 온다는 말처럼 동수는 사실 오늘 운세가 무척 좋다고 생각했다. 이는 우연히 술자리에서 꽐라된 여자를 발견한 것과 같았다.

'꽐라는 먼저 꽂는 놈이 임자지. 어차피 저렇게 쉽게 주는 년이면, 내가 아니어도 딴 놈이 채갔을 테니까.'

"매트라도 깔아 줄까?"

"아니야. 바닥도 그렇게 딱딱하진 않은데."

치마를 입은 세나가 바닥에 쪼그려 앉으며 말했다. 이미 풀발기 된 동수는 허겁지겁 바지부터 벗었다. 그러나 마음만 앞섰기 때문인지 바지에서 발을 빼내다 균형을 잃고 옆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풉-. 오빠 엄청 급한가봐? 너무 서두르면 금방 끝나던데?"

"무, 무슨 소리야? 내가 얼마나 오래가는데. 그냥 미끄러진 거라고."

동수가 쪽팔림에 둘러대는데 세나가 발목에 걸린 바지를 직접 벗겨주었다.

"그냥 가만히 누워 있어. 내가 해줄게."

"오오, 진짜?"

동수의 바지를 훌렁 벗겨낸 세나는 이어서 팬티까지 확 내렸다.

잔뜩 흥분한 동수의 양물이 쿠퍼액을 줄줄 흘려댔다. 하지만 양물을 직접 확인한 세나의 표정이 딱딱해졌다.

'···작네.'

-헐, 저게 다 커진거라고?

-덩치값도 못하긴.

-아씨, 기대했는데.

-골라도 하필 저런 애를 고르냐.

-어우, 이건 진짜 아니다.

군령자인 세나의 내부에서 수많은 목소리들이 흘러나왔다. 현재는 대표 인격인 세나가 통제하고 있지만, 다른 영혼들도 참관자처럼 구경하고 있었던 것이다.

동수를 고른것에 대한 실망의 의견이 쏟아지자 세나가 발끈해서 소리쳤다.

'닥치고 주는대로 먹기나 해. 지금 우리가 골라 먹을 처지야?'

세나라고 해서 무식해 보이는 동수와 섹스하는 것이 즐거울리 없었다. 하지만 생존을 위해선 어쩔수 없는 일이었고, 누군가는 치러야할 희생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평소에 미리미리 채워두자니까.

-미호가 너무 물러서 그래.

-맞아. 그냥 싹 다 뽑아먹어버리면 되는데, 맨날 방생해주니까.

-다들 조용히 못해? 내가 누구때문에 일찍 늙는데?

-······.

미호의 호통에 갑자기 웅성거리던 혼령들이 입을 다물었다.

구미호인 미호가 생명력을 끊임없이 빨아 들여야 하는 이유는 바로 군령자라는 특수 체질 때문이었다. 미호가 거둔 영혼들은 그녀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 주었지만, 반대로 혼령의 숫자만큼 생명력을 갉아먹는 부작용이 있었다.

즉, 다른 8명의 영혼과 함께 생명력을 공유하기 때문에 본인의 수명 역시 배로 빨리 늙어가는 것. 쉽게 말하면 미호에게 1년이란 시간은, 다른 사람에겐 9년치의 삶과 같았다.

때문에 미호는 생존을 위해 정기적으로 남자의 양기를 받아 부족한 생명력을 채워야했다. 하지만 PK단에 협조하게 되면서 양생술에 대한 제한을 두었는데, 절대 대상의 생명력을 모두 빨아들이지 못하게 한 것이다.

미호가 정기적으로 남자사냥(?)을 나설수 밖에 없는 이유기도 했다.

동수의 빈약한 양물에 대한 실망도 잠시, 세나는 치마를 입은 채 팬티를 끌어 내렸다. 어쨌든 일용할(?) 양식이었고, 당장 생명력을 채우지 않으면 급격한 노화를 피할 길이 없었다.

대표 인격을 맡은 세나가 눈 딱감고 동수 위에 섰다. 동수는 기대감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

"애무도 없이 상관없는 거야?"

"난 언제나 젖어있거든."

세나가 씩 웃으며 누워있던 동수의 위에 걸터앉았다.

"오오오! 오옷?!"

잦이가 빨려들어가는 느낌과 함께 동수의 의식이 흐릿해졌다.

그는 결정적 순간에 기절해버렸다.

* * *

유도연습장 바닥에 기절해 있던 동수가 눈을 뜬 건 해가 다 떨어진 뒤였다. 그것도 혼자 깨어나지 못하고, 오후 홍보무대를 끝내고 장비를 반납하러 온 후배와 동기들에게 나체로 발견되었다.

"서, 선배님!"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야 얼른 바지 덮고 깨워. 하여간 저 병신 새끼 같으니."

바지를 벗은 상태로 기절했다가 발견된 동수는 눈을 뜬 뒤에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후배들에겐 체육관에서 혼자 딸치다 잠든 변태 딸쟁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썼지만, 그보다 황당했던 건 몇 시간만에 팍싹 늙어버린 피부였다.

머리엔 드문드문 흰머리가 보였고, 탄력을 잃은 피부는 10년은 확 늙어 보였다. 특히 상당량의 근육이 빠져나가면서, 쪼그라든 체구 역시 볼품없어졌다.

'어, 어떻게 된 거지? 내가 어쩌다 이꼴이 된 거야?'

거울로 자신의 얼굴을 확인한 동수는 도저히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려고 했지만, 마치 술에 취한 것처럼 편린같은 장면만 떠오를 뿐이었다.

'어떤 여자를 만났던 것 같은데···. 얼굴이 전혀 기억이 안나.'

팍싹 늙어버린 얼굴 앞에서, 도훈과 있었던 일은 깡그리 잊어버린 동수였다.

* * *

"하아- 잘 먹었다."

-이제 나와.

미호는 통제력이 약해진 틈을 타 다시 몸을 차지했다. 그녀는 찝찝한지 곧장 화장실로 달려가 밑을 닦았다.

"거지같아 진짜."

'어쩔 수 없었다고. 오늘 그 새끼라도 안 먹었으면, 당장 피부에 주름부터 졌을걸? 나한테 감사하진 못 할 망정.

'맞아 미호. 우리도 생각해 달라고.'

아무리 생명력 섭취를 위해서라지만, 미호는 찝찝한 마음을 떨칠길이 없었다. 심지어 이렇게 양생술을 한다해도, 결국 며칠 안가서 또 모르는 사내와 동침을 해야 했다.

구겨진 치마를 펴던 미호는 참담한 심정에 후회감이 밀려왔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서 살아야 하나.'

갑자기 자신의 삶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그저 평범한 인간이 되고 싶었을 뿐인데, 지금은 아무리 좋게 보아도 기생충이나 다름없었다.

남자들의 정기를 빨아먹어야 생존할 수 있는 존재.

상대가 누구든, 그저 닥치는 대로 받아내야 했다. 남들 앞에선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원치도 않은 섹스를 정기적으로 해야 하는 상황이 마음에 들리 없었다.

본체인 미호의 상심한 마음은 다른 영혼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미호, 기운내.

-왜 그래 미호. 늘상 있던 일인데.

-맞아. 너 혼자 감내할 필욘 없어. 오늘은 세나가 대신 했잖아.

다음엔 내가 맡을 게.

하지만 영혼들의 위로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몸뚱이는 미호의 것이었다. 통제권을 잠시 내준다고 한들, 결과는 오롯이 미호가 감내해야 했다.

갑갑한 마음에 화장실을 나온 미호는 축제를 즐기고 있는 대학생들을 마주했다. 다들 행복한 표정이었다. 엄마를 따라나온 아이도, 함께 손을 잡고 가는 연인들도, 친구와 왁자지껄 떠드는 무리도.

다들 평범한 일상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누리고 있었다.

미호도 그저, 저들처럼 평범해지고 싶었다.

답답해진 미호는 담배를 태우기 위해 외진 곳을 찾았다. 다행히 흡연구역을 찾은 미호는 답답한 마음에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때 마음속에서 누군가 말했다.

-이럴거면 그냥 PK단인가 뭔가 탈퇴해버려.

-뭐라고?

-그것 때문에 생명력을 끝까지 못 빨아들이잖아. 그 제약만 없었어도 이렇게까지 구차해지진 않았어.

-나도 두나 말에 동의.

-하지만 PK단에 속해 있으면 플레이어를 사냥할 수 있잖아.

놈들의 생명력은 정말 끝내 준다고. 미호를 더 빨리 인간이 될 수 있게 만들어 줄거야.

-그 딴 가난뱅이들 없어도 그만이야. 솔직히 놈들이 미호에게 도움을 준 것보다, 미호가 도운 게 훨씬 많지.

-맞아. PK단 없이도 충분히 잘 살아왔잖아. 놈들이 괜히 미호를 포섭한 것 같아? 자기들한테 도움이 되니까 감언이설로 꼬드긴 거지.

-워워, 다들 진정해. 우린 그저 미호의 결정에 따를 뿐이야.

-젠장, 이럴때 기둥 서방이라도 하나 있었음 얼마나 좋아?

-무슨 서방?

-정기적으로 미호의 양생술을 받아줄 사내 말이야. 그런 실한 남자 하나만 있었어도 이 고생 안해도 되는 거잖아.

-구미호를 받아낼 인간이 어딨겠어? 불로장생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

-그게 꼭 인간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지.

"실례지만 불 좀 빌릴 수 있을까요?"

복잡한 심경에 혼자 담배를 피우던 미호에게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생각없이 라이터를 건네던 미호가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화들짝 놀랐다.

"뭐, 뭐야? 창범 언제 왔어?"

"청승맞게 여자 혼자 구석에서 담배 피우고 있길래. 뒤통수가 딱 넌 거 같더라."

"참나."

우울해 있던 미호는 곧장 태도를 돌변했다.

동료들과 있을 땐 일부러라도 쾌활함을 유지하는 그녀였다.

"근데 왜 혼자야? 알바생이랑 같이 데이트 하기로 한 거 아니었어?"

"먼저 왔어. 좀 이따 만나기로 했고. 근데 진짜 미호 너도 올 줄은 몰랐네."

"흥. 둘이서만 데이트 하는 꼴을 눈꼴 시려워서 두고 볼 수가 있어야 말이지."

"아니 데이트 아니라고."

"맞잖아."

"멋대로 불러. 지는 맨날 남자 바꿔가면서 만나면서."

창범이 볼멘 소리로 구시렁거리자 미호의 표정이 순간 씁쓸해졌다.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남자를 만나야하는 자신의 처지를, 창범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흥. 누나가 그래도 보는 눈은 있지. 넌 안만나잖아."

"뭐래. 나도 싫거든 할망구야?"

"이게 씨!"

미호가 불쑥 덤벼들더니 창범의 목을 끌어안고 헤드락을 걸었다. 그녀는 체구는 작았지만 보통 사람에 비해 월등한 반사신경을 갖추었기 때문에 창범이 피할 수 없었다.

"억!"

"취소안해? 할망구라는 말?"

"아, 알았어. 하, 항복. 항복입니다 누님."

"이게 혼나려고."

헤드락에서 풀려난 창범은 금세 얼굴이 빨개졌다.

'어, 얼굴에 가슴 닿잖아 저 바보가.'

여자 경험이 없는 창범은 미호의 과격한 스킨십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미호가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너 그래가지고 소연이랑 진도 나가겠니?"

"뭐, 뭐가."

"여자들은 말이지 상대가 너무 변태같아도 별로지만, 숫기 없는 남자는 더 싫어한다고."

"누, 누가 숫기가 없대?"

"너희들 손은 잡았니?"

"소, 손을 왜 잡아?"

"거봐. 너 그러다 진짜 소연이 다른 놈이 채가면 어쩌려고?"

"뭐라는 거야 진짜."

"누나가 좀 알려줘? 어떻게 하면 여자들이 홀딱 반하게 하는지?"

"아, 몰라. 그런건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훼방이나 하지마."

"싫은데? 훼방하러 온 건데?"

"플레이어 탐문하러 왔다면서?"

"그것도 있고."

"혹시 찾았어?"

"약간은."

창범이 화들짝 놀라 물었다.

"정말이야? 플레이어가 여기 있다고?"

"확실치는 않아. 오전에 미세한 기의 파동을 느끼긴 했는데, 그게 플레이어의 기운인지 아니면 수련을 한 사람인지는 모르겠어.

확인해보려고 했는데 못 찾았거든."

"탐지기는?"

"당연히 확인했지. 반응은 없었어. 혹시 이거 고장난 거 아니야?"

"불량률이 높긴 하지만 고장품은 아닐거야. 근데 오전부터 와 있었다고?"

"어."

"설마 하루종일 혼자 있었던 거야?"

미호는 일부러 곽동수의 생기를 빼앗은 일은 함구했다.

"···그럼 뭐. 너처럼 데이트라도 할까? 소개나 시켜주고 말하던지."

"나참. 하여간 뺀질뺀질 한 것 같으면서 은근 열심이라니까? 이제부턴 같이 다녀."

"너 데이트 할 거라며? 소연이 곧 도착한다지 않았어?"

"데이트 아니라고."

"됐어. 내가 진짜 눈치도 없는 줄 아나. 둘이 잘해봐. 괜히 껴들기 싫으니까."

미호가 창범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창범도 물러서지 않았다.

"누나가 나 밀어준다며. 그니까 어디가지 말고 도와달라고."

"뭐?"

"알았지?"

미호는 순간 울컥하는 마음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가 PK단을 쉽게 떠날 수 없는 이유. 그것은 고락을 함께했던 동료들 때문이기도 했다. 창범도, 대근도. 그리고 새롭게 합류한 건이도.

자신의 진정한 실체를 알면서도 한 순간도 그녀를 매도하지 않았다. 외롭고 쓸쓸하게 수백년을 살아온 미호에게, 동료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였다.

미호가 고개를 훽 돌리며 말했다.

"···흥, 언제는 데이트 아니라더니."

"뭐야, 어디가?"

"나 배고파. 오뎅 사줘."

미호가 먼저 성큼성큼 앞서가자 창범이 급히 뒤를 따랐다.

"하여간 애도 아니고···. 가, 같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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