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4. 대학 축제-59-
* * *
길바닥에 쓰러진 유도부 곽동수가 정신을 차린 건 도훈에게 딱 밤을 맞고 쓰러진 뒤 30여분이 지나서였다.
“이봐요, 괜찮아요?”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냐?”
“이럴 땐 경찰이 아니고 119를 불러야지.”
쪼그려 앉아 논쟁을 벌이는 두 여학생을 본 동수는 소스라치게 놀라 허리를 튕겨 벌떡 일어섰다.
“어억!!”
“어, 깨어나셨나봐!”
“괜찮아요? 정신이 좀 들어요?”
“여, 여기가 어디지?”
“국성대학교예요. 기억이 안나요?”
“구석에 쓰러져 계신 걸 저희가 발견했어요.”
동수는 블랙아웃이 온 것처럼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분명 피트니스 대회에 참가한 것까진 기억이 나는데 그 뒤의 장면은 편집된 것처럼 뚝뚝 끊겨서 재생되었다.
‘···예선에서 탈락하고 나서 누구랑 같이 밖으로 나온 것 같았는데···. 악, 머리가.’
갑자기 미간 사이가 깨질것처럼 아팠다. 동수는 반사적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러나 손바닥이 닿는 순간 고통이 배가되며 머리가지끈지끈 울려왔다. 이마에 혹이 난 것처럼 동그랗게 튀어나왔다.
“아윽, 머리야.”
“괜찮아요? 머리에 뭘 맞으신 건가요?”
“경찰이라도 불러드릴까요?”
동수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누르며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애썼다.
‘뭐지? 야구방망이에 맞은 건가? 그래서 기억을 잃고 쓰러졌었나?’
동수가 고통을 참고 일어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파워리프팅 예선이 벌어졌던 곳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었다.
‘마, 맞아. 분명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새끼랑 한 판 뜨자고 데리고 나왔었는데?’
순간 동수는 기억이 모두 떠올랐다.
“으으, 이 개새끼 어딨어?”
동수가 갑자기 욕지거릴하며 으르렁거리자, 여학생 두명이 깜짝 놀라며 물러섰다.
“왜, 왜 그러세요?”
“저희는 아무짓도 안 했어요.”
“아니 그쪽들 보고 한 얘기가 아니고···. 혹시 근처에서 키 크고 잘 생긴 남학생 못 봤어요?”
“못 봤는데요?”
“잘 몰라요 저희는.”
“아, 암튼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길가다 야구공에 머릴 얻어맞은 것 같아요. 경찰에는 신고 안하셔도 됩니다.”
동수는 괜히 일을 키울까 두려워 신고하려는 여학생들을 만류하고는 어디론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좆만한 새끼. 감히 나를 건드려? 잡히기만 해봐라.’
그는 자신이 불의의 일격에 당했다고 생각했다. 이마가 퉁퉁 부은 걸로 보아, 카운터 펀치에 제대로 얻어 걸렸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주먹쓰는 실력을 봐선 분명 복싱을 배운 놈이야. 완전히 방심해 버렸어. 잡히기만 해봐라. 확 그냥 아스팔트에 엎어치기로···.
’씩씩거리던 동수는 순간 기절하기 직전 겨루었던 도훈의 싸움실력을 떠올렸다. 제법 근육질이긴 했지만 체급차이가 확연한 상대였다. 통상 그 정도 체급차이면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피지컬을 넘지 못한다.
‘아니야. 생각보다 엄청 싸움을 잘하는 놈이었어. 혼자 상대하긴 무리일 것 같은데···.’
현재 대학 3학년인 동수는 국성대 유도부 내에선 끗빨이 있는 편이었다. 그는 곧바로 친한 후배들이 들어있는 단톡방에 메시지를 띄웠다. 자신처럼 껄렁껄렁한 부류끼리 모인 학과 내 소모임같은 곳이었다.
- 곽동수 : 1, 2학년들 내 밑으로 한시간 내로 집합. 시간 엄수할 것.
유도부는 군대처럼 선후배간 위계가 철저했기 때문에, 축제건 뭐건 선배의 호출이 있으면 만사를 제치고 소집에 응해야했다. 동수 역시 1학년 때 여자친구와 자취방에서 재미를 보던 중 마무리도 못하고 튀어나간 적이 있을 정도였다.
집합을 건 동수가 혹처럼 튀어나온 이마를 짚으며 생각했다.
‘개새끼. 감히 국성대 유도부를 건드려? 잡히면 넌 초상 치를 줄 알아.’
* * *
구석에 숨어 정음을 훔쳐보던 도훈은 가운이 벗겨지는 순간 눈이 튀어나올 뻔 했다.
‘헉, 바, 반짝이 비키니?’
가운을 벗은 정음은 놀랍게도 반짝거리는 장식이 달린 비키니 타입의 출전복을 받쳐입은 것이다. 그것도 근육질의 몸매를 최대한 드러내기 위해 손바닥보다 작은 사이즈로 겨우 중요부위만 가리고 있어, 몹시 선정적인 의상이었다.
‘으윽, 정음이 저런 과감한 복장이라니···.’
도훈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순진하고 부끄러움 많은 정음이 저토록 과감한 노출 의상을 입었다는 것에 놀랐고, 또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도 충격적으로 느껴졌다.
마치 나만 몰래 훔쳐보던 보물을 만인 앞에서 까발린 느낌이랄까?
“우, 우앗!”
“몸매 실화냐?”
“벌써 우승자 나온 것 같은데?”
예선을 구경하러온 다른 남학생들도 넋을 잃고 감탄할 정도였다. 온 몸 전체가 쫀쫀하면서도 탄력이 넘쳤다. 그와중에 가슴과 힙라인도 말도 안되게 예뻤다.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감탄이 나오는 완벽한 보디라인이었다.
“우아, 할말을 잃게 만드네.”
“쟤가 사범대 퀸이라는 걔 맞지?”
“얼굴도 미인인데 몸매까지···. 진짜 다 가졌구나!”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도훈은 알 수 없는 배덕감을 느꼈다.
자신의 여자가 다른 남자들의 눈요깃거리가 되는 것에 대한 수치스러움과 질투와 더불어, 한편으로는 자랑스럽고 뿌듯해지는 이율배반적인 감정이었다.
‘이것 참···. 씁쓸하구만.’
[왜 그러십니까? 보기만 좋은데요.]
‘나만의 정음이, 만인의 연인이 된 기분이랄까?’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정음양은 주인님의 소유물이 아니니까요. 게다가 대회에 나가라고 등 떠민건 주인님이시지 않습니까?]
‘그렇긴 한데···. 화가 나면서도 또 자랑스럽기도 하고 하여간 뭔가 복잡한 감정이야.’
[이제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정음은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뒤 돌아서 등 근육을 보이는 백포징을 했다. 아무래도 여성 참가자들의 경우 등근육을 키우기 어렵기 때문에 후방 노출을 꺼리는 편인데, 정음이 용기있게 도전한 것이었다.
정음이 두 팔을 활짝 벌려, 날개뼈를 좁히자 놀랍게도 선명한 라인이 잡혔다. 최근 들어 열심히 수행한 턱걸이의 효과였다.
“오옷!”
“등 미쳤다!”
“저 정도 라인을 잡으려면 대체 얼마나 연습해야 하는 거지?”
운동 좀 했다는 사람이 보아도, 정음의 등은 여성 참가자의 평균을 훌쩍 상회하고 있었다. 심사 위원을 맡은 교수 역시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결과는 당연히 예선 통과.
정음에 이어 희주의 예선 차례가 되었을 때 도훈이 음료수를 사들고 후배들을 방문했다.
“어? 벌써 하고 있었어?”
“선배!”
“오빠? 언제 오셨어요?”
“방금 정음이 끝내고 내려왔는데. 곧 희주 차례예요.”
도훈이 아쉽다는 듯 대답했다.
“그럼 두 사람 벌써 끝난 거야?”
“네. 경희가 제일 먼저 통과했고, 정음이도 방금 통과했어요.”
“그랬구나. 나도 예선치르고 오는 바람에 좀 늦었네. 이것 좀 마셔.”
정음과 아영, 그리고 경희는 도훈이 건넨 이온 음료를 마셨다.
정음은 도훈이 자신의 예선 모습을 못 봤다는 사실에 오히려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근데 선배는 예선 어떻게 됐어요?”
“음, 1차는 간신히 턱걸이 한 것 같아.”
“우아! 축하드려요.”
“그럼 저희과는 희주만 합격하면 전원 예선 통과네요?”
“앗, 지금 희주 시작한다.”
모여서 대화를 나누는 사이 희주의 예선이 시작되었다. 조에서 첫번째로 나선 희주가 과감히 가운을 벗어 던졌다.
“오옷!”
“미쳤다!”
이번에도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이 이어졌다. 희주의 의상이 미국 성조기를 빗대어 만든 도발적인 비키니였던 것. 특히 가슴골을 과감하게 드러낸 탑과, 거의 똥꼬에 끼일 정도로 아슬아슬한 티팬티가 남성들의 심금을 울렸다.
도훈 역시 너무나 선정적인 의상에 차마 못 보고 슬쩍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어우야, 희주 옷이 좀···.”
“비장의 무기라는 것이 저것이었구나.”
동기 여학생들도 희주의 무대 의상을 처음 본 듯 다들 놀랐다는 반응이었다. 아무래도 근육의 발달 정도가 정음이나 경희에 뒤쳐지는 희주는 섹시컨셉으로 승부수를 던진 모양이었다.
실제로 포징 역시 가슴을 과감히 드러낸 사이드 체스트 자세를 취함으로써 옆가슴선이 도드라지게 했다. 원체 몸매가 좋은데다, 도훈의 성은(?)으로 C컵을 훌쩍 넘는 사이즈를 과시하게 된 희주는 특유의 발랄하고 깜찍한 표정으로 무대를 장악했다.
“69번 참가자, 양희주 선수 합격입니다.”
심판 전원일치로 합격 판정을 받은 희주가 팔짝팔짝 뛰며 환호했다. 그덕에 커다란 젖가슴이 위아래로 출렁이자 남성 관객들이 더욱 열광하며 희주를 연호했다.
“최고다!”
“훌륭한 대흉근이었다!”
“가슴이 착해야 여자지!”
예선을 모두 끝낸 체육과 4인방은 잠시 열기를 식히기 위해 체육관 로비로 나왔다.
“다들 고생 많았어. 합격 축하하고.”
“오빠도요.”
“그럼 선배도 예선 일정 끝나신 거예요?”
“음, 나는 여러 종목을 출전해서 좀 있다 또 가봐야 할 것 같아.
아직 피지크 종목이랑 보디빌딩 예선이 남았거든.”
“앗, 그럼 저희 응원가도 돼요?”
“굳이 응원까지는···.”
도훈은 난처했지만 후배들이 자진해서 따라 온다는데 말릴 수가 없었다.
‘이것 참 난처하게 됐네.’
[그러게요. 다들 주인님과 썸싱이 있는 8선녀 멤버들이라···.]
‘설마 대회장에서 캣파이트를 하진 않겠지, 뭐.’
“그래, 그럼 뭐. 대신 소란 피우면 안 돼. 남자부 경기는 진짜 후딱후딱 진행하거든.”
“알겠어요 오빠.”
“히히, 도훈 오빠 몸매 구경가야지?”
남자부와 여자부 예선은 체육관과 그 부속건물에서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도훈과 후배들은 곧바로 인접 건물로 자리를 옮겼다.
마침 피지크 종목 예선이 시작되는 바람에 선수인 도훈이 먼저 소집되고 여학생 넷은 관객석으로 이동했다.
“경희 너 진짜 준비 열심히 했더라. 태닝은 또 언제 한 거야?”
“따로 준비한 건 아니고, 뙤약볕에서 테니스 치다보니까 그렇게 됐어.”
“아하.”
“난 것보다 정음이가 대박이었어. 그렇게 야하게 입은 건 처음 봤어.”
경희의 말에 정음이 갑자기 아까 일이 떠오르는지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했다.
“그, 그냥 출전복이잖아.”
“그래도 엄청 과감하던데? 솔직히 희주는 어느정도 예상했지만 정음이 너까지 그런 비키니를 입을 줄이야.”
“정음이 얘 가슴도 꽤 하던데?”
“야, 야! 무슨 그런 말을 해.”
“나도 오늘 처음 알았잖아. 어떻게 그런걸 꽁꽁 숨기고 다녔대?”
여학생들은 특히 정음의 반전 몸매에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본래 체육과 1학년 중에선 모범생 서현이 단연 탑이고, 그 뒤를 희주와 경희가 양분하는 모양새였다. 경희는 마유미의 후계자라 불릴 만큼 피지컬이 좋은 편이었고, 희주는 얼굴이 꽝일때도 몸매만큼은 신이 내렸다고 할 만큼 빼어났다. 하지만 의외로 베일에 싸여있던 정음이 비키니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 것이었다.
“아, 아니야···. 민망하게 진짜.”
사실 정음은 B+ 정도로 두 사람에 비해선 살짝 작은 편이었다.
그러나 최근들어 이상하게 점점 가슴이 부풀면서 마치 생리할 때처럼 커지더니 C컵에 육박하게 되었다.
순진한 정음은 그것이 도훈의 조언을 열심히 수행한 탓으로 여겼다.
‘오빠 말대로 턱걸이가 정말 효과가 있었나봐.’
하지만 이는 도훈이 가슴에 펴바른 마법의 정액이 조금씩 효과를 발휘하면서 자연스럽게 확대된 결과였다.
“우리 정음인 진짜 누가 데려가려나. 얼굴도 예쁘지, 몸매도 죽이지, 싸움도 잘하는데.”
“싸, 싸움은 무슨.”
“저 잠시만, 지나갈게요.”
“아, 넵.”
예선이 시작 전이라 네 사람이 왁자지껄 떠들고 있는데, 누군가 양해를 구하며 관람석 안쪽으로 들어왔다. 비교적 평범해 보이는 여대생이었는데, 네 사람을 지나 구석으로 들어가더니 멍하니 무대위를 응시했다. 아영은 혼자 앉은 그녀를 보며 생각했다.
‘혼자서 남자친구 응원하러 왔나보구나.’
아직 예선이기도 하고, 워낙에 출전자가 많았기 때문에 대부분 관람객은 지인들이 자리했다. 그러나 혼자서 응원을 하는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에 아영은 자꾸 시선이 끌렸다.
‘이상하네. 되게 평범하게 생긴것 같은데, 어딘가 묘한 느낌이야. 같이 수업을 들었나?’
한번 의식하게 된 아영은 좀처럼 혼자 온 여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다지 눈에 띄는 복장도, 외모도 아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사람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었다.
‘아차. 영기가 강한 아이가 있나 보구나. 매혹을 안 썼는데도 나를 의식하다니···.’
구석에 앉아있던 미호는 자꾸 자신을 응시하는 아영을 쳐다보며 환하게 웃었다. 서로 눈빛이 마주치는 순간, 아영은 갑자기 흥미가 식은것처럼 시선을 돌렸다.
‘흐음. 그나저나 분명 이 근처에서 파장이 발생했는데···. 어디에 숨어 있을까나?’
미호는 시선을 좌우로 돌리며 손바닥 위에 나침반처럼 생긴 물건을 손에 들었다. 이는 중급자 이상의 플레이어를 감지하는 장치로서, 휴대용 기기긴 하지만 근거리에선 충분한 감지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나저나 대학생 플레이어라니···. 간만에 영계로 포식하는 건가?’
미호가 혓바닥을 내밀며 입맛을 다셨다.
그녀가 PK단의 객원으로 지원하게된 이유 중 하나. 플레이어의 경우 민간인에 비해 훨씬 강력한 생명력을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아··· 벌써부터 자궁 떨리는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