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9. 대학 축제-43-
갑작스러운 합석 제안에 미나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보다는 도훈이 불편할까봐 우려하는 것이었다.
"그게···."
"전 괜찮아요. 그분도 밥은 드시고 일 하셔야죠."
도훈이 흔쾌히 허락하자 우현이 고마워했다.
"그렇지? 고마워, 이해해줘서. 이 집 안주가 식사 대신 하기도 좋더라고."
우현이 식사를 대신할 안주를 시키고 기다리는데, 잠시 후 호프집 문이 열리며 여자 한명이 걸어 들어왔다. 멀리서 봐도 몸매가 빼어나 보이는 미인이었다.
위에는 클롭티를 입었는데, 걸음을 걸을 때마다 새하얀 배꼽이 드러나는 게 아찔한 느낌을 주었다. 꽉 끼는 청바지는 늘씬한 각 선미를 과시했고, 머리에는 스냅백 스타일 모자로 발랄한 포인트를 주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산뜻하면서도 명랑한 느낌을 풍기는 건강 미인.
'설마 저 여자인가?'
도훈은 자기도 모르게 시선이 끌렸다. 여자라면 다 좋아하는 도훈에게 새로운 미인의 등장은 늘 관심을 끌 수 밖에 없었다. 그때 우현이 손을 들어 자리를 안내했다.
"가온씨, 이쪽이야."
“앗, 대표님!”
가온이라 불린 여자가 방긋 웃으며 도훈의 테이블로 다가왔다.
웃는 모습이 무척 매력적이라 도훈은 자기도 모르게 설레고 말았다.
'존나 예쁜데?'
[주인님, 자중 하시죠. 미나양도 앞에 있는데.]
'그러게 하필. 따로 만났어야 하는데.'
[아니, 주인님.]
"소개할게. 이쪽은 우리 피트니스에서 PT 수업을 맡고 있는 김가온 선생."
"안녕하세요!"
가온은 목소리도 청량했는데, 쾌활한 성격이 목소리에 묻어나는 것 같았다. 우현이 이번에는 도훈과 미나를 소개했다.
"여긴 예전에 같이 일했던 송미나 원장. 지금은 독립해서 필라 테스 학원을 운영하고 있어."
"와, 원장님이시구나. 필라테스 저도 한 번 배워보고 싶은데."
"언제 한 번 들러요."
"그리고 이쪽은···. 가만있자 근데 두 사람 나이가 비슷하겠는데? 도훈 학생이 올해 몇살이지?"
"저 23이요."
"앗, 나랑 갑이네? 반가워."
가온이 불쑥 말을 놓더니 악수를 청해왔다. 처음보는 사인데도 굉장한 붙임성이었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기보다는 왠지 호감이 느껴지는 말투였다.
'뭐지? 엄청 들이대는 성격인데?'
"아, 네. 반가워요."
"말 편하게 해. 나도 편하게 할게."
"그래."
"대표님. 혹시 도훈이가 우리 피트니스 트레이너로 오는거?"
"아니야. 다음 주 대회 나간다고 해서 내가 잠깐 원포인트 레슨해줬어. 미나랑 잘 아는 사이라고 해서."
"아, 혹시 두 분 사귀는 사이세요?"
"아, 아뇨."
미나는 처음 도훈을 소개할 때 아는 동생이라고 했기 때문에 이제와 말을 바꿀 수 없었다. 가온은 그 말을 듣자마자 갑자기 도훈을 옆으로 밀쳐내며 자리를 차지했다.
"그럼 눈치 안보고 옆에 앉아도 되겠다, 그죠?"
"아, 네 뭐."
'으으, 너무 과도한 붙임성인데?'
[그러게요. 성격이 쿨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철없다고 해야 할지.]
4인 테이블의 좌석은 생각보다 좁긴 했지만 남녀가 나란히 못앉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가온은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도훈을 코너로 밀어내고 딱 붙어 앉았다. 가온의 엉덩이도 큰 편이라 그런지 도훈은 어쩔 수 없이 몸이 접촉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미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고 했으니, 가온의 행동을 나무랄수도 없고 갑자기 말을 바꾸자니 처지가 궁색했던 것이다.
'···불편하네 진짜.'
게다가 가온은 여자가 보기에도 굉장히 예쁜 얼굴이었다.
약간 얼굴에 손을 댄듯 콧대도 오똑하고 쌍커풀이 진했지만, 고친 얼굴을 재쳐두고라도 전형적인 건강 미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자신보다 바스트는 약간 작고, 키는 5cm 가량 더 커서 전체적으로 늘씬하고 시원시원했다. 그런 미인이 도훈 옆에 딱 붙어 있으니 왠지 모르게 질투심이 올라왔다.
"밥은 미리 시켜놨어. 볶음밥 괜찮지?"
"고마워요, 대표님. 진짜 나 생각해 주는 사람은 대표님 밖에 없다니까? 아니 갑자기 회원분 한분이 갑자기 PT시간을 바꿔버리지 뭐예요? 것땜에 밥도 못 먹고 오전 내내 일했잖아요."
"그랬구나. 그래서 되도록 당일 변경은 받아주지 말래니까. 가온이 네가 너무 물러서 그래."
"어째요 그래도. 저한테 3달째 계속 PT 받고 계신 회원님인데.
"
"근데 아까 퇴근한 거 아니었어? 왜 다시 온 거야?"
"오후 수업 또 있는 걸 깜빡했지 뭐에요? 지난 주에 날짜를 바꿨는데 스케줄러에 표시를 안했더라고요."
"그럼 밥먹자 마자 들어가 봐야돼?"
"그 정도까진 아니고요."
우현은 두 사람이 계속 일 얘기를 하며 도훈과 미나가 소외되자 미안했는지 갑자기 화제를 바꿨다.
"참, 가온씨가 우리 피트니스 에이스야. 회원이 너무 많아서 맨날 저렇게 밥도 제때 못 먹고 허덕인다니까? 그런 점에서 미나랑 비슷한 것 같기도."
"저요?"
"미나도 옛날에 PT할때 인기 엄청 많았잖아. 여자 회원들은 여자 강사가 더 편하다고 그러고, 남자들은 뭐···. 알만하지?"
"참나, 오빠도 별 소릴 다하네."
"그래도 선수 보는 눈은 여전하다니까? 이렇게 훌륭한 인재를 발굴해 내고 말이지."
이번엔 우현이 도훈 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가온이 궁금해서 물었다.
"미나 원장님이 도훈이 키우신 거예요?"
"키웠다기엔 좀···."
도훈은 풀이 죽은 미나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일부러 거들었다.
"맞아요. 미나 누나한테 기초를 탄탄히 배운게 도움이 많이 됐거든요."
"와, 근데 도훈이 너 진짜 몸 좋다. 한 번 만져봐도 돼?"
허락을 받는다기 보다 통보에 가까운 선언이었다. 가온은 갑자기 손을 뻗어 팔뚝을 더듬기 시작했다. 도훈은 민망해 하는데 가온이 감탄하듯 말했다.
"우아, 진짜로 단단하다. 대표님보다 더 좋은 거 같은데?"
"야. 난 이제 현역 아니잖아. 비교하지 말라고."
"가슴 탄탄한 것 좀 봐요."
가온의 손이 이번엔 가슴으로 옮겨왔다. 도훈은 미나가 불편해 하는 모습을 보고 밑으로 더 내려가려는 가온의 손을 저지했다.
"으음, 그만."
"치. 부러우니까 그렇지. 나도 올해는 대회 나가야 되는데."
가온이 아쉬운듯 혀를 쏙 내밀었다. 처음 보는 사이에 느닷없이 몸을 터치하는 모습에서 도훈은 민망함과 동시에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대체 왜 저렇지?'
[네?]
'좀 부자연스럽지 않아? 처음 보는 사이에 무슨 몇년은 알고 지낸 사람처럼 친한 척 하는게.'
[혹시 주인님께 첫눈에 반해서 그런게 아닐까요?]
'아니야. 그렇다고해도 이런 행동은 좀 과한 면이 있어. 여자들은 진짜 호감있는 상대에게 자신이 싸보이길 원치 않는 법이거든.
그건 자기 가치만 떨어뜨리는 행동이니까.'
[듣고 보니 이상하네요. 마치 의도를 가지고 작정한 느낌이랄까?]
'···의도?'
도훈은 뭔가 짚이는 게 있는지 순간적으로 우현을 쳐다보았다.
그는 두 사람을 보며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왠지 비웃는듯한 느낌이었다.
'뭐지, 설마?'
"도훈 학생이 이해해줘. 가온이 쟤가 남자친구 없이 지내서 요새 엄청 굶주렸거든."
"뭐래요? 그 정도는 아니거든요?"
도훈은 둘이서 짜고 치는 것처럼 주고받는 대사를 통해 강한 위화감을 느꼈다.
'맞구나. 이것들이 나를 가지고 놀고 있군.'
[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차우현이 난데없이 가온이를 여기로 불렀잖아.'
[그렇죠.]
'근데 가온이라는 애가 하는 짓을 보니까, 오늘 처음 본 나를 꼬시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군단 말이지.'
[설마 차우현이 가온양에게 사주를 했단 말인가요? 대체 왜요?
]
'그건 아직 모르지. 하지만 확인해 볼 순 있겠지. 정보창 켜봐.'
[누구요? 차우현이요, 아니면 김가온양이요?]
'남자보단 여자걸 보는 쪽이 더 확실할 것 같아.'
수상한 낌새를 눈치 챈 도훈이 가온의 정보창을 열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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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김가온(비처녀, 일시 21세 2개월)
나이 : 24 #트레이너#일탈계#상간녀
호감도 : 65/100
개방성 : S
성감대 : 젖꼭지, 클리토리스, 질
*애무 포인트 : 딜도로 괴롭힘 받는 걸 좋아합니다.
성욕지수 : 매우 높음.
공략팁
*위 대상은 당신에 약간의 흥미를 보이고 있습니다.
-가온은 현직 PT트레이너로 활동 중입니다.
-차우현 대표의 피트니스 클럽에 소속되어 있으며, 처음에는 그의 PT 회원이었습니다.
-가온은 우연히 인스타그램으로 야노 사진을 찍는 변태적인 취미를 차우현 대표에게 들키게 됩니다.
-차우현은 이를 빌미로 그녀를 협박하였고, 현재는 유부남인 그와 불륜관계를 유지하는 중입니다.
-우현은 변태적인 성향이 있는 가온을 이용해 당신과 미나 사이를 확인하고 싶어합니다. 그녀에게 당신을 유혹해보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재미삼아 그의 요구에 응한 가온은 당신에게 실제로 이성적인 흥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추천행동 : 그녀에게 연락처만 남겨두세요. 그녀는 알아서 당신에게 달려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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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창을 다 읽은 도훈은 어이가 없었다. 설마했던 일이 모두 사실이었던 것이다.
[주, 주인님 이건···.]
‘하-. 씨발, 하여간 저 새끼 처음 볼 때부터 마음에 안 들더라니 ···.’
[그러니까 차우현 대표가 자신의 섹파를 이용해 주인님을 시험하려고 한 것이군요. 그런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뻔하지. 저 새끼도 미나를 눈독들이고 있었으니까. 근데 나라는 존재가 거슬렸던 모양이야. 남자친구라고 의심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럼 주인님과 미나양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가온을 데려온 것이군요.]
‘그렇지. 보통 애인사이라면 그런 부탁을 들어줄리 없지만, 가온이 생각이상으로 변태라서 그 요구를 응한 것 같아.’
[일탈계가 무슨 뜻이죠?]
‘예전에 설수지 기억나지? 자기 얼굴 숨기고 SNS에서 변태적인 사진 올리던? 가온이도 그쪽과인 모양이야. 하는 짓을 봐선 더 심한것 같기도 하지만.’
[이게 단순한 술자리가 아니었군요.]
‘저 새끼가 언제부터 이걸 계획한 거지? 속마음을 읽어볼까?’ 차우현의 음흉한 속셈을 눈치 챈 도훈은 슬쩍 그를 떠보았다.
“대표님은 근데 언제 결혼하신 거예요?”
“나? 아마 미나랑 인천에서 뿔뿔이 흩어진 뒤였을 걸?”
“히히, 도훈아. 사모님 집이 엄청 부자셔. 지금 클럽도 처가에서 차려주신 거래.”
“야, 그런 말을 뭐하러 해?”
“사실이잖아요. 강사들도 다 아는데.”
우현이 머쓱한지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차려준 건 아니고 장인어른이 나한테 투자를 하신 거지. 그 덕에 잘 나가고 있잖아. 하하.”
{아씨, 저 쌍년이 뭐하러 쓸데없는 얘기를···. 도훈이 꼬시라니까 더럽게 말도 안 듣네.}
“뭐, 암튼 자리 잡는데 처가 도움을 받긴 했지. 근데 괜히 오해는 말라고. 난 우리 와이프 집이 그렇게 잘 사는 줄 모르고 결혼했으니까.”
{모르긴 개뿔···.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외동딸인거 뻔히 알고 들어간 거지. 하지만 무슨 상관이겠어? 마누라 말고도 즐길 여자는 넘치는데. 미나도 간만에 보니까 존나 맛있게 잘 익었네. 꼭 자빠뜨려 버려야지.}
우현의 음흉한 속마음을 모두 읽은 도훈은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당장이라도 테이블을 엎고 주먹을 한 방먹여주고 싶을 만큼 얄미운 놈이었다.
‘하-. 저 새끼봐라? 진짜로 미나를 노리고 있었잖아?’
[주인님이 괜히 찌질하게 군게 아니었군요.]
‘내가 분명히 말했지? 운동하는 새끼들 다 거기서 거기라고. 하여간 좆같이 생긴 나시 입고 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이제 어쩌실 겁니까?]
‘어쩌긴 뭘 어째? 다른 사람도 아니고 미나를 건드리려고 한 이상 도저히 용서할 수 없지. 열받으니까 가온이도 확 뺏어버리고 좆되게 만들어줘야겠다.’
목표를 세운 도훈은 최대한 감정을 절제하며 분노를 누그러뜨렸다. 그 사이 우현은 계속 옛 추억을 상기시키며 미나에게 작업을 걸고 있었다.
“근데 미나 너는 어째 하나도 안 변했어? 더 어려 보이는데?”
“뭘 그래요. 저도 이제 나이 먹었지. 오빠랑 처음 봤을 때가 20살 갓 넘었을 땐데.”
“아니야. 진짜 피부 엄청 좋아졌어. 캬, 그때 내가 여자친구만 없었으면 한 번 꼬셔보는 건데.”
우현이 들이댈수록 미나는 입장이 난처해졌다.
자신이 솔로인 줄 알고 던지는 농담이었지만, 도훈이 기분 나빠할수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도훈의 눈치를 쓱 보는 데, 도훈은 도훈대로 가온과 얘기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미나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기며 대답했다.
“오빠는 한번도 여자친구 없던 적이 없잖아요. 맨날 헤어졌다가 금방 또 사겼으면서.”
“그땐 또 혈기왕성 했잖아 내가.”
“그래도 다행이네요. 끝내 정착 했으니까.”
“그러니까 말이야. 결혼하고는 정신 차렸지 나도.”
우연히 그 말을 들은 가온이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비틀었다.
경멸적인 웃음이었다. 도훈은 그 웃음의 의미를 짐작했으나 일부러 못 본척 했다.
“그럼 대회는 언제 나가는 거야? 식단관리는 잘 하고 있어?”
“다음 주 바로야. 식단은 딱히 안하는데, 체지방만 최대한 관리하는 중이야.”
“그렇구나. 한 번 보러 가도 돼?”
“응?”
“아니 시간되면 한 번 구경갈까 하고. 나도 내년에 머슬마니아대회 준비하고 있거든.”
“그냥 학교 축제에서 이벤트겸 하는 거야. 그렇게 거창한 대회는 못 돼.”
“그래도 견학가보면 도움이 될까해서. 혹시 연락처 줄 수 있어?”
예상대로 가온이 먼저 작업을 걸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