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7. 대학 축제-41-
미나가 최대한 좋게 포장했지만 이미 도훈은 만나기도 전부터 상대에 대한 편견이 생긴 상태였다.
‘운동해서 몸 만든 애들치고 여자 안 밝히는 부류는 딱 한 종류밖에 없을 거야.’
[고자요?]
‘아니, 게이.’
[음. 오래전부터 느끼긴 했지만 역시 주인님의 내로남불은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군요.]
‘내가?’
[솔직히 너무 속좁으신것 같습니다. 그리고 모든 남자들이 다 주인님 같다고 생각하시는 것도요.]
‘에이, 내가 모든 여자에게 그러는 게 아니라니까 그러네. 내 여자에게만 그렇다고. 알잖아. 나 전 마누라 바람피운 것 때문에 트라우마 생긴 거.’
[그건 그렇다 쳐도, 주인님은 대체 내 여자가 몇명입니까?]
‘음, 서른 명?’
[어후, 진짜.]
미나와 함께 피트니스 클럽으로 들어가자 머슬 나시를 입은 잘빠진 사내가 보였다. 머슬 나시란 일반적인 민소매 나시보다 겨드랑이와 가슴쪽이 더욱 파이게 만든, 소위 몸매 자랑용 옷이었다.
대흉근이 지나치게 부각된 사내가 미나를 보더니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오, 송미나 원장! 오랜만인데?”
“원장은요, 무슨.”
“왜? 필라테스 학원 대박 났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그는 도훈 쪽으론 쳐다도 보지 않고 미나만 일방적으로 반겼다.
나이는 대충 서른 좀 넘었을까? 도훈이 이제껏 만났던 어떤 남자보다 몸 선이 예쁜편이었다.
단순히 근육만 키워서 보기 흉한 느낌이 아니라, 완벽한 빌딩을 통해서 딱 봤을 때 멋있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훌륭한 보디였다.
‘피지크 선수라더니 몸은 좀 봐줄만하네.’
피지크 종목은 일반적인 보디빌딩보다 훨씬 슬림하고 균형잡힌 몸매를 선호한다. 그는 뒤늦게 미나 뒤에 있는 도훈을 발견 하더니 형식적으로 인사를 건넸다.
“아, 포징 배우겠다는 애가 이 친구야? 반가워. 여기 관장인 차우현이야.”
우현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사람은 나이가 한참 어린 도훈을 보고 곧바로 하대를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경계의 눈빛으로 도훈을 위아래로 훑어보는 모양새였다.
“네, 안녕하세요 이도훈이라고 합니다.”
도훈도 마지못해 인사를 했다.
‘나를 품평하는 느낌인데.’
[운동 선수니까 몸을 평가하는 게 아닐까요?]
‘그렇다고 보기엔 너무 노골적이라서 말이야.’
“이 친구 몸 좋네. 와꾸도 쓸만하고.”
“선배님. 초면에 와꾸가 뭐에요, 와꾸가?”
상스러운 말투에 미나가 무안했는지 대신 따졌다. 그러자 우현이 실실 웃으며 넉살좋게 넘겼다.
“이쪽 업계도 은근 그런거 따지는 거 알잖아? 같은 값이면 다 홍치마라고 잘생긴 편이 훨씬 유리하지. 나름 칭찬한 거라고.”
“그래도요.”
미나가 자꾸 도훈을 변호하는 인상을 주자 우현이 놀리듯이 물었다.
“뭐야? 아는 동생이라더니 설마 애인 사이인 거야? 반응이 격렬한데?”
“아, 아니에요. 그냥 예전에 PT할때 알던 동생이에요.”
애인이라는 말에 당황한 미나가 엉겁결에 둘러대자 도훈도 호응했다.
“예전에 미나 누나한테 PT를 배웠었습니다.”
“그래? 어디보자. 대학교 대회라고?”
“네.”
능글거리던 우현은 장난기를 쏙 빼더니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도훈에게 물었다.
“혹시 이전에 관련 대회 출전해본적은?”
“따로 없습니다.”
“흐음···. 요샌 대학교 대회라고 해도 워낙에 일찍부터 준비하는 애들이 많아서 호락호락하진 않을 거야.”
“네, 그래서 도움을 좀 청하려고요.”
도훈은 우현의 첫인상이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일단 자신이 신세를 지는 입장이니만큼 숙이고 들어갔다.
“벗어봐.”
“네?”
“상의 탈의해 보라고. 몸을 좀 봐야 견적을 내니까.”
주말이긴 하지만 클럽 안에는 다른 손님들이 운동을 하고 있었다. 도훈이 눈치를 보자 우현이 말했다.
“괜찮아. 대회 준비하는 건데 눈치보지 말고. 여기 내 클럽이야. 신경쓰지마.”
“아, 네.”
도훈이 상의를 벗자 우현의 눈빛이 살짝 달라졌다.
‘요놈 보소? 체지방이 무슨···.’
옷을 입고 있을 땐 골격만 가늠할 뿐 근질을 확인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막상 도훈이 상의를 탈의하자 우현은 말문이 막혔다.
‘겉으로 보기보다 훨씬 잘 만든 몸이잖아? 이게 대회 첫 철전하는 초보자라고?’
우현은 내심 놀랐지만 겉으로 티를 내진 않았다. 그는 뭐라도 흠집을 잡을 게 있는가 하고 도훈에게 말했다.
“혹시 오기 전에 몸 풀고 왔어?”
“네? 아뇨.”
‘펌핑도 안한 게 이 정도라고?’ 우현은 재차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보디빌더의 몸은 펌핑을 할 때와 안 할때의 차이가 상당하다. 근육을 움직여 혈관을 확장시켜 놓으면 몸이 1.2배는 더 커보이는 법. 지금 상태가 순수한 맨 몸이라면 도훈의 실제 몸은 훨씬 사이즈가 크다는 뜻이었다.
‘이것 봐라? 미나가 물건을 데려온 것 같은데?’
하지만 우현은 여전히 신중한 눈빛으로 근육 이곳 저곳을 꼼꼼하게 살폈다.
“뒤도 한 번 돌아볼래?”
“네.”
도훈이 반 바퀴 돌았다.
“두팔 들고.”
도훈이 두팔을 들고 턱걸이를 하는 것처럼 광배근을 활짝 벌렸다. 대체로 운동을 좀 했다는 사람들도 눈에 보이는 곳만 잔뜩 키워놓고 등 같은 부분은 소흘히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것을 점검하려는 것 같았다.
“오···.”
우현은 자기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다.
도훈의 성난 등근육은 장난이 아니었다. 기름기 쫙 뺀 간고등어처럼 세세한 부분 하나하나까지 완벽하게 갈라져 있었다. 한참 시즌을 준비하는 프로선수에 준하는 컨디션이었다.
‘몸만 봐선 절대 초보가 아닌데?’
“운동 얼마나 했다고?”
“3년 정도요.”
도훈은 군대있을 때부터 몸을 만들었다고 가정하고 3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3년이라고 해도 지나치게 잘 만든 몸이었다.
‘이 새끼 혹시 약 빤거 아니야?’
우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약물을 의심했지만 굳이 그 얘기까진 하진 않았다.
“이거 아마추어 대회 나갈 레벨은 아닌것 같은데? 몸은 이미 프로급이야.”
우현이 미나를 향해 솔직한 소회를 밝혔다. 도훈을 높게 평가하자 미나도 기분이 좋아졌는지 환하게 웃으며 동조했다.
“저도 그 생각 했어요.”
“응?”
“어, 그러니까 PT 가르칠 때부터 계속 권했었거든요.”
“맞다. 예전에 가르쳤다고 했었지? 일단 도훈 학생이라고 했나? 10분만 예열 좀 시키고 있어봐. 그 다음에 포즈 취하는 법 알려 줄테니까.”
“네.”
도훈이 혼자서 턱걸이를 하며 몸을 푸는 동안 우현이 미나를 향해 말했다.
“기다리는 동안 커피 나 한 잔 줄까?”
“좋죠.”
두 사람은 도훈이 보이는 거리에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도훈은 혼자 몸을 풀면서도 귀는 쫑긋 세워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어떻게 지냈어 그동안? 연락도 없더니 뜬금없이 연락와서 놀랐다야.”
“바빴어요. 학원 오픈하고 나서는 정말 눈코 뜰새 없이요. 지금도 수업 끝나자 마자 옷도 못 갈아 입고 왔잖아요.”
“그렇네. 그나저나 몸매는 여전하구나?”
“뭐래, 이 오빠가? 사모님도 예쁘시잖아요.”
“우리 마누라? 처녀적엔 끝내줬지. 근데 애 낳고 나니까 쉽게 회복을 못 하더라고 하하!”
도훈은 워낙에 청력이 예민했기 때문에 두 사람의 대화가 귀에다 때려 박히는 느낌이었다.
‘저 새끼 지금 껄떡거리는 거 맞지?’
[그냥 친한 오빠 동생 사이 같은데요? 너무 예민하신 거 아닙니까?]
‘아니라니까?’
“그나저나 너네 학원 잘된다고 업계에 소문이 파다하다야. 피닉스 휘트니스였나? 거기 출신 중에선 미나 네가 톱인 것 같아..”
“그게 벌써 3년 전인가요? 그때 참 재밌었는데. 지혜랑 무진오빠도 보고 싶네요.”
두 사람은 이제 과거의 이야기를 나누며 회포를 푸는 중이었다.
“무진이? 걔 아마 인천에서 PT 하고 있을 걸?”
“그래요?”
“응. 그러고 보니까 둘이 그때 썸타지 않았어?”
“무, 무슨 소리에요? 무진 오빠가 일방적으로 절 좋아한거지.”
“그랬나? 암튼 그때 넷이서 참 재밌었는데 말이야. 난 요즘도 가끔 그때 생각 많이 난다니까?”
“저도 그립네요.”
계속 몸을 풀고 있던 도훈은 귀가 따가워지는 것 같았다.
‘젠장. 언제까지 시시덕 거리는 소리를 엿듣고 있어야 하는 거야?’
[안 들으시면 되는 거 아닙니까?]
‘들리는데 어쩌라고.’
[거짓말 하지 마십시요. 주인님이 신경을 쓰고 계시니 들리는 거겠죠.]
결국 5분도 안돼서 도훈은 금방 몸을 풀고 말았다.
“다 풀었습니다.”
“벌써?”
너무 이르지 않느냐는 생각에 우현이 도훈을 쳐다보았으나 잔뜩 성이 난 그의 몸을 보더니 납득하고 말았다.
“···빠르네.”
몸이 더 커진 도훈은 그야말로 할말을 잃게했다.
우현은 어지간하면 자기도 상의를 벗어 기를 죽이려고 했겠지만, 괜히 준비도 안된 상태로 벗었다간 오히려 창피를 당할 것 같았다.
‘새끼, 몸뚱이 하나는 타고 난 놈이네.’
우현이 본격적으로 도훈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일단 대회 참가가 처음이라니까 기본적인 것부터 설명할게.”
“네.”
“보디빌딩 선수에게 가장 필요한 게 뭐라고 생각해?”
“음, 잘 만든 몸이요?”
“보통은 그렇게 생각하지.”
“아닙니까?”
“나라면 연기력이라고 대답하겠어.”
“연기력이요?”
너무나 의외의 발언에 도훈도 귀를 의심했다.
‘지금 뭔 소리하는 거지? 설마 나랑 미나랑 친해보여서 엿먹이려고 그러는 건가?’
[설마요.]
“응. 내 경험상 아무리 몸을 잘 만들어도 막상 대회에서 퍼포먼스를 제대로 수행 못하면 우승이 쉽지 않거든. 생각해봐. 그냥 근육량이랑 선명도만 보고 뽑을 거면, 선수를 동상처럼 세워 놓고 심사위원이 가까이서 둘러보면 그만이지, 안 그래?”
“네.”
“표정은 무조건 자신감 넘치게. 하지만 오만하거나 건방져 보이지 않게.”
“네.”
“그 다음 근육을 돋보이게 하는 동작을 어떻게 연결시킬지, 자연스러운 동작 전환이 가장 중요해. 혹시 음악도 직접 준비해 가나?”
“대회 요강에 필요시 USB로 제출이라고 되어 있더라고요.”
“그러면 음악까지 신경써야해.”
“그렇군요.”
확실히 차우현은 프로였다.
대회에 한 번도 출전한 적이 없는 도훈을 향해 각종 노하우들을 단숨에 전수했다. 미나와의 친분 때문에 신경쓰는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도훈의 몸 상태가 선수로서도 매우 탐이 났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약물이라고 의심을 하더라도 저 정도로 근육을 만들고 체지방을 관리한다는 건 쉬운일이 아니었다.
미나는 테이블에 앉아 두 사람이 포즈를 연습하는 걸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우현 오빠는 여전히 열심이구나.’
그가 기억하는 우현은 장난기는 많았지만, 의외로 자기 일에 있어선 진지한 사람이었다. 특유의 친화력과 성실함으로 업계에서 빠르게 자리를 잡았고, 지금은 30대 초반의 나이에 헬스클럽을 차릴 수 있었다.
‘도훈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으련만.’
미나가 도훈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드러냈다.
실은 처음 우현에게 도훈을 소개할 때 애인사이냐고 물었을 때 아무말 하지 못한 게 못내 서운했던 그녀였다.
하지만 정식으로 사귀는 사이는 아니다 보니 도훈이 혹시나 싫어할까봐 차마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미나는 정말로 애인이 아니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오직 도훈이 행복하길 바랐으며,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이든 잘되길 기원했다. 그를 뒷바라지 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발벗고 나설 수도 있었다.
30분 정도 원포인트 레슨이 끝나자 도훈은 순식간에 우현이 가르친 모든 것을 흡수할 수 있었다.
‘뺀질 거릴것 같더니 의외로 꼼꼼한 구석이 있네, 저 양반. 대회 3번 우승했다는 게 괜히 한 게 아니구나.’
도훈을 가르친 우현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스펀지 같아. 하나를 가르치면 10개를 깨우쳐. 진짜 초보 맞아? 어떻게 저렇게 천연덕 스럽게 잘하지?’
우현은 도훈의 재능과 자질에 감탄하고 있었다.
만약 그가 정말 프로씬에 데뷔한다면, 보디빌딩 업계에서 내로 라하는 인재로 성장할 거라는 것은 불보듯 뻔해 보였다.
“음, 그럼 한 번 실제로 대회에 나갔다고 생각하고 포즈 취해볼래?”
“지금요?”
“어. 내가 가르쳐준 것만 연결해서. 음악은···. 내가 마지막 대회 나갈때 쓴게 있는데 거기에 맞춰서.”
“한번 해보겠습니다.”
“너무 부담갖지 말고. 아까도 말했듯이 피지크는 무작정 근육을 과시하는 대회가 아니야. 최대한 몸이 예쁘게 표현되도록. 그리고 표정 잊지 말고.”
“네. 저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그래. 긴장 좀 풀고와.”
도훈이 옷을 걸치고 화장실로 향하자 우현이 그제서야 미나에게 그를 칭찬했다.
“야, 너 어디서 저런 애를 구해왔냐?”
“잘하죠?”
“잘하는 정도가 아니야. 완전 천재야. 정말 초보인 건 맞아?”
“네. 저희 헬스장 왔을 때 제가 PT 가르쳤다니까요?”
“엉? 그때가 언젠데?”
“올 봄이던가?”
“그럼 반년 하고 저렇게 몸을 만들었다고?”
“아, 아마 군대있을 때부터 혼자서 조금씩 연습했다더라고요.
정식으로 배운건 6개월이 맞을 거에요.”
“와 씨, 무슨 저런···.”
우현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데 도훈이 화장실에서 돌아왔다.
“그럼 한 번 해보겠습니다.”
“어. 나랑 미나랑 냉정하게 봐줄게. 너무 야박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넵.”
핸드폰에서 울리는 배경 음악에 맞춰 도훈이 천천히 포즈를 취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