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429화 (1,393/2,000)

1412. 대학 축제-37-

* * *

토요일 오전.

도훈은 모처럼 학교로 등교하는 중이었다. 어제 엉망진창으로 끝낸 조모임을 혼자 수습하기 위해서였다.

‘이게 먹혀야 할텐데···.’

[미남계라니, 정말 생각도 못한 발상이군요.]

‘어쩔 수 없잖아. 이대로 가면 죽도 밥도 안될 판인데.’

아무래도 찝찝함이 남았던 도훈은 강사인 제니퍼에게 메일을 보냈다. 발표할 스크립트를 짰는데 검수를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의외로 답장은 곧바로 왔다.

제니퍼의 답장은 무척 짧았다.

-Come to my Office, today

답장을 받은 도훈은 영문을 몰라 불안했다. 혹시나 너무 대충 했다는 질책을 하려고 직접 부르는 걸지도 몰랐다.

대학 사무실에 전화해 물어보니 제니퍼는 토요일에도 언어교육원에서 대학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회화 수업을 진행한다고 했다. 그녀의 사무실 역시 언어교육원에 있었다.

‘시간표를 봐선 막 수업이 끝났을 테니.’

도훈은 단정하게 차려입은 모습으로 사무실을 노크했다.

똑똑-

“Come in.”

안에서 수업 시간에 자주 듣던 제니퍼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도훈이 한 껏 긴장한 채 문을 열고 들어갔다.

‘봐서 기회가 되면 덮쳐버리든가 해야지.’

하지만 사무실의 문을 연 순간 도훈은 당황하고 말았다. 데스크와 파티션으로 분리된 사무실엔 제니퍼 뿐만 아니라 다른 외국어 강사들도 함께였던 것이다.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고 있던 강사들은 키가 큰 도훈이 들어오자 일제히 그를 쳐다보았다.

“아, 안녕하세요. 제니퍼 선생님 좀 뵈러 왔는데.”

“이쪽으로.”

사무실 가장 안쪽에서 제니퍼가 손을 흔들었다.

그는 뻘쭘해하는 도훈에게 의자를 내주었다.

“여기 앉아.”

“네, 넵.”

‘아차, 실수했네. 생각해보니까 강사들은 교수처럼 독립 연구실을 받는 게 아니었는데.’

[이제 어떡하실 겁니까?]

‘어쨌든 노력은 해봐야지.’

“너였구나? 메일 보낸 사람이.”

“넵.”

제니퍼는 한국어도 유창했기 때문에 도훈은 따로 영어를 쓸 필요는 없었다.

“스크립트 보고 너무 황당해서 불렀거든, 직접 얼굴 보고 얘기 해야 할 것 같아서.”

“그게···.”

도훈이 변명하려고 했지만, 제니퍼가 말을 끊었다.

“아니. 더 들을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 이대로면 너희 조는 전부 다 재수강 뜰거야.”

“아···.”

재수강이란 말에 도훈은 눈 앞이 하얘지는 것 같았다.

다음주는 축제기간이라 다시 모일 시간도 없을 뿐더러, 축제가 끝나자마자 바로 발표 수업이 이어졌기 때문에 준비할 시간은 더 더욱 없었다.

혼자서 새로 스크립트를 짠다고 해도 합을 맞추거나 연습할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었다.

“저, 교수님.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무슨 방법?”

제니퍼는 수업때의 사근사근한 태도와는 달리 굉장히 사무적인 태도였다. 도훈은 마치 고등학교 때 교무실로 불려와 담임에게 혼나는 기분을 떠올렸다.

‘아씨, 단 둘이 있으면 매력 발산으로 꼬시기라도 해볼텐데, 보는 눈도 많으니.’

“모임은 어제 끝난 상태라 다시 대본 쓰고 연습할 시간이 없어서요.”

“그럼 뭐, 재수강이지. 그래도 나한테 물어본 건 잘한 거야. 이유도 모르고 Fail을 받으면 성적 정정해 달라고 또 찾아왔을 테니까.”

[주인님, 그냥 좆된것 같은데요? 제니퍼가 생각외로 깐깐한 스타일이군요.]

‘아니야. 손교수도 점수 짜게 주기로 유명했는데, 결국엔 내가 꼬셔서 A+ 받았잖아.’

[그건 주인님이 열심히 노력한 결과고요.]

‘암튼 지금이 바로 노력해야 할 타이밍이야. 이대로 재수강이 뜨면 연속 장학금은 나가리라고.’

도훈은 성적관리 만큼은 치팅없이 본인 노력으로 해내고 있었지만, 다른 것도 아닌 영어회화에서 Fail 을 받고 싶진 않았다. 순전히 어떤조가 걸리느냐로 점수가 결정되느니 만큼, 여기서부턴 노력이 아닌 운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학점하곤 상관없는 과목이니 꼼수 좀 써도 괜찮겠지.’

[어쩌시려고요?]

‘제니퍼를 꼬셔야 겠어. 정보창 열어줘.’

[결국 미남계로 가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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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제니퍼(비처녀, 일시 17세 4개월)

나이 : 26 #금발벽안#한국남자좋아#여행마니아

호감도 : 72/100

개방성 : A

성감대 : 젖꼭지, 항문, 등짝

*애무 포인트 : 애널섹스 마니아입니다. 일찍이 개통을 마쳐, 애널로 하는 것을 더 즐깁니다.

성욕지수 : 높음.

공략팁

*위 대상은 당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잘생긴 남자에게 끌리는 스타일입니다.

-한국에 온 지 오래된 그녀는 한국남자친구를 원합니다.

-그녀는 수업시간에도 당신을 마음에 들어 했지만, 강사인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학생을 꼬시는 것에 심적 부담을 느껴왔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곤란한 일로 찾아온 이상 이 기회를 이용해 친분관계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추천행동 :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세요. 그녀는 마지못한 척 하며 당신과 둘만의 시간을 가지려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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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창을 확인한 도훈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오, 이건 식은 죽 먹기 겠는데?’

[제니퍼가 주인님께 이미 호감을 가지고 있었군요.]

‘어쩐지 수업시간에 은근슬쩍 나한테 관심을 보이더라니까?’

[이러면 일이 쉽게 풀리는 거 아닙니까?]

‘당연하지. 정보창을 열어보길 잘했어. 제니퍼는 지금 다른 강사들 눈치보느라 나한테 제대로 말을 못하는 거야.’

정보창을 통해 제니퍼의 호감을 확인한 도훈은 덥석 제니퍼의 두손을 맞잡으며 사정했다.

“아, 교수님 제발요. 저희 조원들이 너무 비협조적이라서요. 솔직히 제가 원해서 들어간 조도 아닌데, 이대로 재수강 뜨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아요.”

도훈이 잘생김 묻은 얼굴로 들이대자 제니퍼가 살짝 놀란 기색을 보였다. 적극적인 스킨십에 겨우 유지하고 있던 냉철한 태도가 흔들린 것이었다.

“그, 그랬구나. 일단 이 손 좀 놓고···.”

“교수님. 한 번만 도와주세요. 시키는 건 뭐든지 하겠습니다.”

도훈은 평소 그답지 않게 사정사정하며 매달렸다.

안 그래도 잘생긴 얼굴로 자꾸 들이대자 제니퍼도 더 이상 평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아, 알았어. 그럼 내가 방법을 알려줄테니까 퇴근해서 보자.

여기 곧 문닫을 시간이니까.”

“정말요?”

“그래. 밖에서 잠깐 기다리고 있어.”

“감사합니다, 교수님.”

도훈이 허리숙여 인사를 하더니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제니퍼는 도훈이 맞잡았던 손을 스스로 비비면서 얼굴이 빨개졌다.

‘깜짝이야? 갑자기 손을 잡아서 엄청 놀랐네.’

그녀는 기다리는 도훈을 위해 빠르게 컴퓨터를 종료하더니 밖으로 나왔다. 도훈이 언어 교육원 정문 기둥에 등을 기대고 서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화보처럼 멋있었다.

‘아···. 저 애는 정말 비율이 좋구나. 내 학생만 아니면 당장 연락처 물어봤을텐데.’

평소 도훈을 마음에 들어하고 있던 제니퍼는 점점 도훈에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엇, 교수님. 바로 나오셨네요? 혹시 저 때문에···.”

“원래 토요일은 오전 수업만 하고 퇴근이야. 어차피 사무실에서 더 있기는 뭐하고···. 그래, 어디 커피숍이나 갈래?”

“넵.”

도훈은 쫄래쫄래 제니퍼의 뒤를 따랐다. 제니퍼는 경차를 타고 다녔는데, 도훈을 옆에 태우자 차가 무척 비좁게 느껴졌다.

“학교에서는 좀 그러니까 밖으로 나가자. 다른 학생들이 보면 괜히 오해할 수 있으니까.”

“넵.”

제니퍼는 도훈은 데리고 학교밖으로 향했다.

도훈이 운전중인 제니퍼를 힐끔거리는데, 제니퍼 또한 도훈을 의식하는 듯 평소보다 훨씬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었다.

‘이거 너무 쉬운 거 아니냐? 이미 나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다니, 누워서 떡먹기잖아?’

[어차피 미션도 아닌걸요. 이번 공략을 한다고 해도 주인님께 따로 도움이 되는 건 성적 말고는 없습니다. 차라리 제니퍼가 흑인이었다면 모르겠지만요.]

‘흑인? 아, 백마흑마 미션 말이야?’

[네. 주인님은 일전에 백마를 달성하셨기 때문에 흑마만 남은 상태입니다.]

‘음, 제니퍼는 누가 봐도 백인인데.’

제니퍼는 전형적인 금발 벽안의 서양 미녀였다. 독일계 특성상키가 평균보다 좀 더 큰편이긴 했지만, 늘씬하고 쭉 빠진 서양 모델을 연상시키는 외모의 소유자였다.

‘아, 그렇지. 언어교육원에서 강사로 일하면 흑인 친구들도 있지 않을까?’

[네? 설마 새끼치기를 하시겠다는 겁니까?]

‘왜? 가능하잖아. 나중에 친구를 소개받고 친구를 공략하는 거지. 아니면 내가 흑인 여자를 어디가서 만나겠어?’

[왜 지난번 여름 캠프때 배구 대회 나온 흑인 여성 있지않았습니까? 주인님한테 상당히 관심을 보이던.]

‘아니 그건 좀···. 줘도 안먹는 경우도 가끔 있으니까.’

[인종차별하시는 건 아니죠?]

‘전혀. 예쁜 흑인은 나도 좋아 한다고. 걔는 진짜 아니었으니까 그렇지. 빅걸이랑 다를 게 뭐야.’

[빅걸도 가능하셨는데요?]

‘생각하기도 싫어 그건.’

“저···. 교수님.”

“교수아니야. 강사지. 밖이니까 편하게 이름으로 불러. 난 그게 편해.”

“그래도 어떻게 이름으로 불러요. 그냥 선생님이라고 할게요.”

“그래, 그럼.”

“선생님은 그럼 한국에 오신지 얼마나 되신 거예요?”

“나? 나 지금 7년 째.”

“7년 째라고요?”

“응. 한국에 유학와서 그대로 정착한 케이스거든. 전공은 한국어였고.”

“아···. 그래서 한국말을 그렇게 잘하시는구나.”

“그랬니? 고맙네. 너도 한국어 잘해.”

“하하!”

시덥잖은 제니퍼의 조크에 도훈은 일부러 과장되게 웃었다. 딱딱한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속셈이었다.

“그럼 친구분들도 많으시겠네요? 대학 동기라든지요.”

“친구들? 많지. 근데 보통 외국인들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교육프로그램은 대부분 나같은 외국인들이 수강하거든. 그래서 한국친구는 많이 없는 편이야.”

“그러시구나.”

“그건 왜?”

“아, 다음주 축제기간이잖아요.”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네. 실은 저희과에서 주점을 열기로 했는데 시간 되시면 친구 분들이랑 놀러 오시라고요.”

“그래? 어디서 하는데?”

“사범대 앞에 잔디밭 아시죠? 학떨목이라고.”

“응. 알어.”

“거기 귀퉁이에서 열려요. 체육교육과 주점.”

“음, 시간되면 한 번 가볼게.”

“꼭 오세요. 친구분들도 같이.”

[설마 흑인 친구들 불러서 꼬시려는 계획인가요?]

‘혹시나 해서 말이야.’

“응. 어차피 축제기간에 나도 수업 쉬니까. 근데···. 도훈이 넌 여자친구 있어?”

어느정도 긴장이 풀렸는지 제니퍼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외국인 특유의 직설화법이라 상당히 낯선 느낌이었다.

“저요? 아뇨.”

“아, 없었어? 왜?”

“그냥··· 어쩌다 보니까요.”

“이상하다. 여자친구 있게 생겼는데.”

[역시 누가봐도 그런 생각을 하나 봅니다.]

‘당연하지. 이 얼굴에 없으면 더 이상하지.’

“실은 군대 다녀온지 얼마 안됐어요.”

“군대? 아, 밀리터리 서비스?”

“네. 한국은 징병제잖아요. 저도 올해 전역했어요. 그러다보니 인간관계도 다 끊어져서 다시 사귀는 상황이고요.”

“그랬구나. 남자들은 참 힘들겠다. 젊은 나이에 의지와 상관없이 복무해야 하니까.”

“그냥, 그럭저럭 재밌게 지냈어요.”

“힘들지 않아? 남자들끼리만 있다보면.”

“뭐가 힘들어요?”

도훈은 약간 대화의 내용이 야릇해 지는 걸 느꼈다. 사무실에서와 달리 제니퍼가 훨씬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었다.

‘역시 애널리스트라서 다르네.’

[애널리스트라뇨?]

‘아니, 제니퍼가 애널 좋아한데서.’

[그게 뭐가 다른 거죠?]

‘보통 애널까지 간 여자들은 경험이 적을 수가 없거든. 섹스를 어렸을때부터 많이 접한 애들이 거기까지 가는 거야.’

[호오, 그런가요?]

‘내가 볼때 제니퍼는 엄청 저돌적인 스타일 같아. 적당히 사인만 맞으면 바로 하자고 할 듯.’

“보통 그 나이엔 성욕이 엄청 왕성하잖아. 나도 아래로 남동생 하나 있는데, 하이스쿨 갈 때부턴 매일 아침마다 발기되던걸?”

도훈은 대화의 수위가 갑자기 높아진것에 놀라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렇긴 하죠. 저는 중학교때부터 아침마다 꼴렸거든요. 근데 신기하게도 군대에서는 잘 안되더라고요.”

“그래? 마스터베이션 같은 걸 하게 해주나?”

“군대에서요? 아뇨?”

“그럼 어떻게···?”

“음, 그건 사람마다 다른데, 알아서 몰래 할 거예요. 밤에 불침번 서려고 깬다음, 근무 끝나고 바로 잠이 안들거든요. 그럼 화장실가서 혼자 해결하고 오기도 하고.”

“도훈이 너도 그랬니?”

[내용이 어째 좀 이상한데요?]

‘대놓고 수작부리는 군. 처음부터 커피숍 갈 생각이 없던 것 같은데?’

[그럼요?]

‘아마도···. 모텔각?’

[네?!]

“대답하기가 좀 민망해서···.”

“왜? 그냥 편하게 얘기해도 돼. 여긴 학교 아니잖아.”

제니퍼가 마침내 본색을 드러냈다. 그녀는 도훈을 차에 태울 때부터 음흉한 계획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선생님은 음···.”

“나 올해 한국나이로 27이야. 너랑 몇 살 차이 안날 걸? 도훈이 넌 24?”

“23이요.”

“딱 좋네.”

“네?”

“아니, 나이 차이가 그 정도면 딱 좋더라고.”

“뭐가요?”

“속궁합이.”

“아, 아···.”

‘와씨, 이거 내가 따먹는게 아니라, 따먹히는 거였냐?’ 도훈이 찐으로 당황하는데 어느새 모텔쪽으로 차를 돌리던 제 니퍼가 물었다.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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