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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428화 (1,392/2,000)

1411. 대학 축제-36-

* * *

팽팽한 승부를 예상했던 두 사람의 대결은 의외로 싱겁게 끝이 났다. 초보자인 범우가 자신을 맹목적으로 따라한다는 걸 간파한 도훈이, 오랄을 유도해 그를 파멸(?)로 몰아 넣은 것.

단순히 씻지 않은 정도의 문제였다면, 경험이 많은 신아가 그 정도로 역정을 내지 않았을 것이다. 대개 관계라는 건 시간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벌어지기 마련이며, 때론 지린내 가득한 잦이를 물때도 있고, 보징어 냄새를 감수해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였다.

하지만 좆밥은 선을 넘었다.

이건 정말 상대에 대한 배려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았다. 애초부터 애정없이 쾌락만을 위한 관계였기에 상대에게 크게 실망해 버리자 섹스는 더 이상 이어질 수 없었다.

결국 도훈은 고개숙인 남자 범우 앞에서 두 여자를 2 vs 1로 해치우는 무용을 뽐내며 그를 철저히 무너뜨렸다.

질퍽한 그룹섹스가 끝나고 여자들이 먼저 씻으러 들어간 사이 도훈이 범우를 불렀다.

"밖에 나가서 담배나 피우고 올래?"

"나 담배 안피우는데···."

"그냥 바람이나 쐬자고."

도훈은 의기소침해진 범우를 위로하기 위해 일부러 그를 건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괜히 미안해지네. 결국 청결관리를 못한 본인의 잘못이긴 하지만, 어쨌든 나로인해서 첫경험이 철저히 흑역사가 되어 버렸으니.

'

[주인님이 좀 간사하게 플레이하긴 하셨죠. 왜 그러셨습니까?

아무리 범우군의 피지컬이 좋다고 해도 스킬에선 주인님이 월등히 앞섰을 텐데요? 제가 볼땐 정정당당히 승부해도 주인님이 더 승산이 높은 싸움이었습니다.]

'나도 그건 알아.'

[그런데 왜요?]

'쉽게 이기는 길과 어렵게 이기는 길이 있다면, 나는 100번이고 쉬운 길을 택할 거야. 내가 신아랑 하고 있을 때 미리의 표정을 봤거든. 진짜 좋아서 어쩔 줄 모르더라고. 그때부터 좀 불안했어.'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미리양의 경우는 주인님과의 경험이 처음이었습니다. 당연히 고통이 더 컸을 것이고, 두 번째인 범우군은 그런 페널티가 없었기 때문에 더 느꼈던 것은 아닐까요?]

'물론 그럴수도 있겠지. 하지만 말했듯이 불필요한 모험을 할 필요는 없잖아? 상대의 실책이 눈에 빤히 보였는데 말이지. 난 성인군자가 아니거든.]

도훈이 혼자 담배를 피우며 범우에게 말했다.

"괜찮아?"

"뭐가?"

"표정 완전 썩었는데?"

"후-. 솔직히 쪽팔려 죽겠다. 신아한테 미안해서."

"근데 왜 포경을 안한 거야?"

"어쩔 수 없었어. 내가 사실 켈로이드성 피부거든. 초등학교 때 고래 잡으러 갔는데 의사가 말리더라고. 안 해도 사는데 상관없다며. 하-씨. 그냥 그때 했어야 했는데."

"그랬구나···. 뭐, 그래도 나쁘진 않았지?"

그말에 범우가 오늘 유일하게 상대했던 미리가 떠오르는지 얼굴을 붉혔다.

"나는 미리 걔랑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진짜 기분 이상하던데.

도훈이 넌 이런거 자주 해봤어?"

"뭘?"

"막 다같이 하는 거. 나는 말로만 들었지 내가 이런걸 하게 될 줄은 몰랐어."

"나도 처음이야. 신아 걔가 분위기를 이상하게 몰고가는 바람에. 다들 술도 취하기도 했고."

"그래서 처음에 모텔 사장이 혼숙하지 말라고 그랬나 보네."

"암튼 뭐, 이미 벌어진 일인데 어쩔 수 없지."

"솔직히 한 건 후회가 되지 않는데 신아한테 너무 미안하다. 냄새 독했을 텐데."

"됐어 인마. 신아는 이미 잊었을 거야. 그나저나 미리가 너 꽤 마음에 드는것 같던데?"

"어? 정말?"

우울해 있던 범우는 도훈의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응. 아까 사실 끝나고 미리한테 슬쩍 물어봤거든."

"뭐, 뭐라고?"

"미리는 나랑 너랑 둘다 해봤잖아. 그래서 그냥 재미삼아 물었지. 솔직히 둘 중에 누가 더 좋았냐고."

"그래서 뭐래?"

"둘다 괜찮긴 했는데, 너랑 더 잘맞는 것 같더래. 자존심 좀 상하더라."

[주인님? 아니 왜 그런 거짓말을.]

'범우한테 미안해서.'

[그렇다고 하지도 않은 말을 꾸며대면 어떻게 합니까? 나중에 범우군이 오해하고 미리양에게 진짜 들이대면 어쩌려고요?]

'그러라고 말해주는 거야.'

[네?]

'내 짐작인데 미리는 범우가 마음에 들긴 했던것 같아. 열받는 사실이지만, 진짜로 나보다 범우랑 하는 걸 만족스러워했던 것 같거든. 은근히 둘이 잘 어울리지 않아?'

[공대 여왕벌과 노예근성 가득한 대물남이라···. 뭐, 그림은 그럴싸 하네요. 하지만 미리양은 주인님께 호감이 있지 않았던가요?]

'미리는 나라는 사람 자체에 매력을 느낀 게 아닐 거야. 그냥 자기 어장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줄 근사한 남자를 원했을 뿐이지.

하지만 오늘부로 확실히 알았을 거야.'

[뭘요?]

'나라는 고래를 품기엔 자신의 어장이 훨씬 작다는 걸. 그치만 범우라면 그럭저럭 만족하지 않을까?'

[근데 둘이 그렇게 시작됐는데 연애가 가능할까요?]

'그거야 당사자들끼리 고민할 문제지. 적어도 섹파는 가능해 보이는데?'

[호오.]

"음. 나도 뭐 미리가 마음에 안드는 건 아니지만. 근데 서로 좀 그렇지 않으려나?'

"왜? 찝찝해? 내가 미리 따먹어서?"

"아, 아니. 나도 어차피 피장파장인데···. 그래서 그런건 아니고. 그냥 너무 부끄러운 일을 벌였으니까."

"풉-. 시작이 어떻게 됐건, 끝이 좋으면 되는 거지. 너 솔직히 미리한테 관심 있었잖아. 아니야?"

"그건 맞지만. 근데 도훈이 넌 미리 별로야?"

"나 사실 여자친구있어. 애들한테는 말 안했지만."

"아. 그건 몰랐네."

"왜? 없게 생겼냐?"

"아니, 없는게 더 이상하긴 했어."

"그리고 따지고 보면 넌 신아랑은 결국 안 했잖아. 미리랑만 한 거지."

"안 한게 아니고 못 한 거야."

"어쨌든 말이야. 그럼 뭐 꿀릴거 없지. 주말에 한 번 슬쩍 연락해봐. 단둘이 한 번 보자고. 그럼 뭐 어떻게든 결론이 나지 않겠어?"

"그, 그럴까?"

도훈은 기가 죽은 범우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자신감 가져 인마. 내가 볼땐 넌 굉장한 포텐을 가지고 있어.

당장은 네가 미리에게 매달리는 것 같지만, 나중엔 미리가 너한테 울고불고 매달리게 될 걸?"

"그, 그럴까?"

[오, 웬일이십니까? 주인님이 다른 사람 칭찬을 다하시고?]

'아쉽지만 인정은 해야지. 타고난 피지컬 하나는 범우가 나보다 더 뛰어나다는 걸.'

"암튼 마무리하러 가자. 여기서 진짜로 날 샐 것도 아닌데 슬슬 집으로 들어가야지?"

다시 모텔방으로 돌아온 도훈은 광란(?)의 조모임을 마무리했다. 욕정에 매몰되어있을 땐 의식하지 못했지만, 끝나고 나니 다소 뻘쭘한 사이가 된 건 어쩔 수 없었다.

"오늘 일은 무덤까지 가지고 가는 거다. 다들 알지?"

"그래요."

"왜? 우리 무슨일 있었어요?"

"음음, 어차피 증거도 없으니까 서로 입만 꾹 닫으면 뭐."

한번 더 입막음을 강조한 도훈은 모임을 해산하며 각자 택시 태워 보냈다. 마지막까지 혼자 남은 도훈은 주차장에 주차해 놓은 차에 올랐다.

'현재 혈중 알콜 농도는?'

[제로입니다. 내공으로 모두 태워버리셔서 조금도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흐음. 이거 참 편하네.'

[근데 정신조작 시키지 않으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괜히 오늘 일이 외부로 새나가기라도 하면. 주인님 평판이 위험해 질 텐데요.]

'그럴 걱정은 안해도 될 것 같아. 어차피 범우와 미리는 이제 세트로 묶일 것이고, 신아는 따로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않겠어? 어차피 제멋대로 사는 아인데.'

[그런가요?]

'게다가 증거도 없는데 누가 믿겠어? 과제 조모임하러 모텔에 파티 룸 빌렸다가 남녀가 2 vs 2로 떡파티 했다고 말이야. 그거야말로 엠티가서 떼씹 한다는 대학괴담급이지.'

[하긴. 그렇겠네요.]

주어진 미션을 모두 완수한 도훈은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모텔에서 힘을 하도 빼서 그런지, 오늘은 간만에 침대에 눕자마자 곯아떨어졌다.

* * *

다음날에도 혁준을 중심으로한 국성대 체육과 1학년 학생들은 피시방으로 향했다.

"어서오세···, 어? 오늘 또 왔네요?"

"네, 저희 주말내내 온다고 했잖아요."

"아하. 어제랑 같은 자리로 드릴게요."

"넵."

토요일 오전부터 피시방에 들른 학생들은 곧장 몸을 풀었다. 나름 대회에 나간다고 자신의 키보드와 마우스를 별도로 챙겨온 학생들도 있었다.

"10분뒤에 시작하자. 다들 세팅하고 있어봐."

리더인 혁준은 잠시 짬을 내 흡연실로 향했다.

그의 담배 메이트 친구도 함께였다.

"야. 혁준아. 아까 여자알바 봤냐? 오늘도 존나게 예쁜데?"

"어. 진짜 피시방에서 일하긴 아까울 정도다."

"여기 피시방 솔직히 시설은 구린데 저 알바보러 남자들 많이 올 듯."

"그러니까 말이야."

"오늘은 말도 좀 걸고 그래봐."

"기회가 되면···."

혁준이 머뭇거리자 친구가 용기를 북돋웠다.

"야. 쫄지마 새끼야. 너도 어디가서 꿀리는 편은 아니니까.”

"내가?”

"그리고 여자는 원래 용기있는 남자를 훨씬 더 좋아한다고. 쭈뼛거리면서 눈치만 슬슬보는 남자가 뭐가 매력있겠냐?”

"그러다 태영이처럼 새되면?”

"태영이는 이러저리 아무 여자나 찌르고 다니니까 진심이 없어 보여서 그런 거잖아. 혁준이 너하곤 다르지.”

"그렇긴 한데···. 근데 뭐라고 말을 걸어야 하지?”

"별거 있냐? 애들 아침도 안 먹고 왔을텐데 식사부터 주문하러가.”

"식사?”

"어. 내가 애들한테는 말해 놓을 게. 아침 먹고 시작한다고. 그때까지 넌 그냥 카운터 앞에 붙어서 노가리나 까고 있으란 말이야.”

"흐음···. 근데 너무 속보이지 않을까?”

"속보이라고 하는 거야. 왜 그렇게 쫄아? 그냥 들이대라니까?

쪽팔리면 그만이지.”

자신을 독려하는 친구의 말에 혁준도 조금씩 용기를 냈다. 실은 피시방에 오면서도 부쩍 외모에 힘을 준 상태였다. 새로 산 옷도 입고, 간만에 드라이로 머리까지 세팅했다.

'그래. 한 번 해보자. 안되면 쪽팔리고 마는 거지만, 시도조차 안하면 후회할 것 같으니까.'

친구의 말에 용기를 얻은 혁준은 흡연 부스를 나와 당당히 카운터로 향했다.

오전이라 아직 손님이 많지 않았던 소연은 혼자서 폰을 보며 의자에 앉아있었다.

"저기요.”

"······.”

폰 게임에 집중하는 지 소연은 바로 대응을 못했다.

혁준은 카운터 앞으로 몸을 바짝 숙이며 다시 물었다.

"저기···.”

"예, 예? 앗 죄송요.”

급하게 폰을 끈 소연이 자리에 벌떡 일어났다.

"무슨 일이세요?”

소연이 화들짝 놀라 일어서는 모습에 반대로 혁준은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와, 진짜 왜 저렇게 귀엽냐.'

혁준은 말문이 막히는 것 같았지만 겨우 배에 힘을 주고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

"그···. 식사 주문 좀.”

"네? 아, 네 말씀하세요.”

"김치볶음밥으로 통일하게요. 다섯 개요.”

"다 김치볶음밥으로요?”

"네.”

혁준은 나름 소연을 배려하고 있었다.

아무리 레토르트 식품이라도 메뉴를 통일하면 소연이 고생을 덜할거라는 생각에서 였다.

"네, 알겠습니다.”

"제 앞으로 달아 주세요.”

"몇 번 자리세요?”

"공혁준입니다.”

"네? 아··· 공혁준님.”

혁준은 일부러 자리를 말하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이름을 기억해 달라는 의미이면서 동시에 소연의 이름도 묻기 위한 작업이었다.

"다섯개 달아놨어요.”

"네. 혹시···.”

"네?”

"저 실례가 안 되면 알바생 분 이름 좀 알 수 있나요?”

"저요?”

소연은 뜬금없이 이름을 묻는 혁준에게 묘한 시선을 보냈다.

'뭐야 얘? 나한테 작업거는 건가?'

피시방에서 몇 달 일하면서 소연은 동네에선 예쁜 알바누나로 제법 유명해진 상태. 건들거리는 불량한 아저씨들이 껄떡대는 경우도 가끔있지만, 이렇게 비슷한 또래가 대놓고 작업을 건 적은 처음이었다.

'풉- 귀엽네. 나랑 나이도 비슷할 것 같은데.'

"음, 조소연이에요.”

"아··· 소연. 혹시 몇 살이세요?”

"나이요? 나이는 왜요?”

"그냥··· 아, 죄송합니다. 저는 올해 스무살이에요.”

"저도 동갑이에요.”

소연은 기분이 나쁘진 않은지 웃으면서 대답해 주었다.

그만큼 혁준이 나름 공손한 태도를 보였고,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느낌을 받은 것이었다.

그 전에 수작을 부리던 양아치들은 처음부터 껄렁껄렁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일절 개인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던 그녀였다.

"그러시구나. 동갑이시구나···.”

혁준은 호구조사를 끝내자 질문 거리가 떨어졌는지 우물쭈물거리며 같은 말을 되뇌었다. 너무 부끄러워하는 모습에 소연은 문득 장난기가 발동했다.

'풉-. 뭐야 자기가 먼저 들이대놓고, 버벅이는 거 봐. 이런 거 처음인가 보네?'

소연이 카운터에 상체를 기울이며 두 손으로 턱을 받치며 물었다. 최대한 귀엽게 보이는 자세였다.

"왜요 근데? 혹시 저한테 더 물어볼 것 있으세요?”

그러면서 커다란 눈을 깜빡거리는데, 혁준은 심장이 멈출 것 같았다.

'헉, 마, 말이 안 나와.'

"저, 저··· 시, 실례가 안 되면···.”

"안되면요?”

"혹시 남자친구 있으십니까?”

"풉-!”

너무나 순진한 혁준의 모습에 소연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러다 조금 미안했는지 곧장 사과했다.

"앗, 죄송해요. 웃으려고 하는 게 아니고 그쪽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요.”

"아, 아닙니다.”

"남자 친구 있어요.”

"아···.”

혁준은 충격에 빠진 듯 입을 크게 벌리고 한동안 돌처럼 굳었다. 그러다 너무 창피했던지 그냥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도망치듯 자리로 돌아가버렸다.

소연은 도망치는 혁준의 뒷모습을 보며 난처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뻥이라고 할랬는데 그냥 가버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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