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5. 대학 축제-30-
* * *
"야 오늘 날 샐 각오해.”
"진심?”
"이대론 출전해봐야 필패야. 딱 3연승만 하고 집에 가자.”
체육과 1학년 남학생들이 각오를 다졌다. 도저히 지금 실력으로는 예선통과도 버거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마침 금요일이었고, 내일은 수업이 없었다. 꼴딱 새는 건 무리겠지만 새벽까지는 어쨌든 달려야했다.
"후아-. 다음 겜 전까지 10분간 휴식.”
리더를 맡은 친구의 말에 혁준은 담배를 들고 흡연실로 향했다.
"후아-. 진짜 개 빡센다.”
"원래 좋아하는 것도 일이 되면 노동이지.”
"그러게 대회 출전이 이렇게 힘든 줄 알았으면 차라리 신청 안할걸 그랬네. 황금같은 불금에 여자랑 데이트도 아니고 피씨방에서 날밤이라니.”
"혁준이 너 여자친구 없잖아.”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지.”
"그나저나 아까 동준이 말하는 거 들으니까 너 여기 여자 알바생 꼬시기로 했다며?”
혁준은 민망한지 담배연기를 빠르게 내뿜으며 말했다.
"그 새끼 입도 존나 싸네. 그걸 그새 너한테 쪼르르 일러 바친 거야?”
"뭘 또 일러바쳐. 그냥 어쩌다보니 나온 거지. 근데 진심 하려고?”
"뭐 그냥 주말사이 친해지면 축제 쿠폰이나 주려고.”
"쿠폰?”
"왜, 서현이가 인쇄해서 준 것 있잖아. 체육과 주막오면 서비스준다는.”
"아아, 그걸 뿌린다고? 크크크. 야, 그건 데이트 신청이 아니라 그냥 호객행위 아니냐?”
"왜? 서비스 준다는 건데.”
"그러니까 말이야. 너야 좋은 마음으로 호의를 보이는 거지만, 그 여자 알바생은 혁준이 니가 호객행위 한다고 오해할수도 있다는 거지. 퍽이나 오겠냐? 그냥 받고 쌩까고 말지.”
친구의 말에 혁준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듣고 보니 틀린 말은 아니네…. 나도 길거리에서 누가 할인 쿠폰 주면 신경 안쓰고 버리잖아.'
"그냥 그러지 말고 대놓고 들이대.”
"들이대라니?”
"몇살이냐? 남자친구는 있느냐. 너한테 호감있다 만나볼래? 하고 물어보는 거지.”
"미쳤냐?”
"왜? 의외로 나쁜 남자 스타일이 먹히는 여자들 많아.”
"나쁜 남자도 도훈이 형처럼 잘생긴 남자가 해야 먹히는 거지 내가 하면 그냥 나쁜 놈이야 인마. 스토컨 줄 오해할 걸?”
"그런가?”
"암튼 쿠폰 주는 건 좀 이상해 보이긴 한다. 차라리 친해지 다음에 우리과 주막으로 초대하는 거면 몰라도.”
"내말이. 근데 너 그건 확인해 봤어?”
"뭐?”
"어, 저기 있네. 저 아저씨.”
"누구? 저 모자 쓰고 있는?”
"어. 여기 직원인 것 같긴 한데…. 계속 게임하는 거 보면 손님 같기도 하고. 암튼 여자 알바생이랑 엄청 친하던데?”
"알바 아니야? 아까 주문도 받던데?”
"근데 무슨 알바가 저렇게 대놓고 근무시간에 게임을 해? 아, 사장인가?”
혁준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야. 아까 태영이랑 통화했는데 사장은 머리 벗겨진 사람 이랬…. 어? 저기 들어오는 저 아저씬가 본데?”
마침 대근이 야간근무 교대를 위해 들어왔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카운터 앞에서 정산을 시작했다.
"맞네. 저 아저씨가 사장이랬어.”
"그렇구나. 암튼 저 형은 여자 알바랑 엄청 친해보이더라. 계속 장난치고 놀더라고. 남자친구면 괜히 낭패니까 확실하게 알아보고 들이대. 괜히 임자 있는 여자 건드렸다간 쌈난다.”
"알았어 인마. 내가 무슨 바보도 아니고.”
혁준은 머리를 긁적이며 창범의 뒤통수를 한참동안 쳐다보았다.
게임에 열중하고 있던 창범을 못 마땅해하는 대근이 갑자기 그의 뒤로 가서 뒤통수를 살짝 때렸다.
빡-!
"윽!”
살짝 때린 건데도, 창범은 그대로 모니터에 머리를 받을 정도로 튀어나갔다. 겨우 두 팔을 뻗어 지탱한 창범이 눈에 쌍심지를 켜며 대근에게 대들었다.
"아씨, 누구 죽일 일 있어요? 모니터에 대가리 박을 뻔 했잖아!”
"미안하다. 힘 조절한다고 했는데…. 아니 근데, 넌 왜 알바도 없는데 겜질이여? 소연이 퇴근하고 몇시간만 봐달라니까.”
"봤어요. 봤다고. 내가 놀았냐고.”
"새끼야. 알바가 근무시간에 게임이나 처 하고 있으면 그 피씨방은 망하는 거랬어 인마.”
"내가 여기 알바유? 말은 똑바로 하셔야지. 난 엄연한 직장인이고, 대장네 가게 무보수로 도와주러 오는 거고.”
"무보수는 무슨. 무상으로 게임하러 오는 주제에…. 야, 그나저나 정산하는데 보니까 쟤들 벌써 7시간 넘었던데 괜찮은 거냐?”
"누구요?”
"36번부터 쭉 다섯자리. 저러다 계산 안하고 튀는 거 아닌가 해서.”
창범이 몽구스처럼 피씨방 자리에서 목을 뽑아내 자리를 확인했다.
"아아, 저 학생들이요?”
"학생들?”
"저, 무슨 국성댄가 다니는 대학생들이래요. 다음 주 축제 때 대회 나간다고 연습하는 거라고.”
창범의 설명에 대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서 서로 붙어앉아서 몇시간 째 롤만 돌리고 있구나?”
"네. 진짜 성실한 정도로 게임만 하더라고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10시간 되면 중간 정산 한 번 받아내야겠다. 너 저번에 알지? 그 2년 전인가? 36시간 찍고, 화장실 가는 척 내뺀 새끼.”
"알죠. 그때 내가 받았는데.”
"와씨, 그 와중에 음식은 다섯끼를 쳐 시키고, 현금 없다고 나중에 담배 사러 갈 때 뽑아서 온다고 거짓말하고.”
"걱정마요. 쟤들은 나쁜애들 아닌 것 같으니까.”
"니가 사람 속을 어떻게 알아 인마? 아, 맞다. 알지.”
"무슨 소리에요? 저 민간인한테 기술 안 쓰는 거 뻔히 아시면서. 그냥 흡연실에 담배 피우러 갔다가 말하는 거 살짝 엿들었어요.”
"그래?”
"그냥 애들이 되게 순수해. 착해. 게임밖에는 아무 생각 없는 같더라고요.”
"그렇구만.”
대근은 곰곰이 생각하다 뭔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야야, 창범아 잠깐만.”
"왜요?”
"그러니까 국성대가 다음주에 축제를 하는데 게임 대회를 연다는 거지?”
"아니 몇 번을 말해요? 노인네 치매왔어?”
"뒤질래? 암튼 그럼 참가팀이 엄청 많다는 소리잖아.”
"그거야 그렇겠죠. 최소 한 팀에 5명씩이면.”
"이거네!”
"뭐가요?”
"축제 특수!”
대근이 신이 나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명했다.
"생각해봐. 우리 가게가 사실 국성대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서 대학생 손님을 많이 못 받잖아.”
"조금 떨어진건 아니지. 솔직히 제대로 된 대학 상권에는 안 들어 있다고 봐야죠.”
"인마. 임대료가 얼마나 비싸다고…. 아, 암튼 또 막상 걸어보면 걸어올만 하단 말이지?”
"암튼 그래서요?”
"저기 애들한테 서비스 좀 주고 입소문 내달라고 부탁해볼까?”
"네?”
"아니, 게임하는 애들이니까 서로 친할 거 아니야. 연습게임도 하고. 우리 가게에서 연습하면 10시간에 2시간 공짜. 뭐 이런 이 벤트 해준다는 거지.”
"아, 판촉을 하자고요?”
"어어! 혹시나 입소문 타서 게임하는 애들 모여서 연습하기 시작하면 손님들 북적북적 할테고, 그럼 홍보 효과 때문에 매출도 덩달아 오른다니까?”
대근이 흥분해서 떠들었다. 창범은 별로 탐착치 않은 표정이었으나, 대근이 기뻐하는 걸 보고 내색하진 않았다.
"그래요. 뭐, 혹시나 싼맛에 여기까지 연습하러 올 수도 있겠네.”
"쟤들한테 말해볼까?”
"제가 가서 슬쩍 물어 볼게요. 대장보단 그래도 내가 나이차가 적으니까.”
"그래. 10시간에 1시간만 무료로 하자. 생각해보니까 2시간 무료는 조금 빡세다. 아, 그리고 라면 공짜라고.”
"알겠어요.”
대근의 지시를 받은 창범은 담배를 들고 흡연실로 들어갔다.
자신이 들어가자 먼저 들어와 담배를 피우고 있던 두 학생이 움찔 놀라는 기색을 보였다.
'뭐야? 뒤에서 내 흉이라도 보고 있던 놈들처럼.'
창범이 들어가자 국성대 1학년 학생 둘이 빠르게 담배를 비벼끄고 나가려고 했다.
"어어, 잠깐만 학생들.”
"네? 저, 저희요?”
"왜요?”
혁준은 정말로 창범을 흉보고 있었기 때문에 괜히 뜨끔한 마음에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눈치가 빠른 창범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뭐야? 진짠가? 하, 어린 놈의 새끼들이 확 그냥.'
"뭘 그렇네 놀래. 아니 다름이 아니고. 아까 들어보니까 국성대다닌다면서? 축제 때 열리는 게임 대회 준비중이고.”
"네, 네.”
"근데요?”
창범은 대근이 제안 조건을 학생들에게 전달했다.
이러저러한 이벤트를 한시적으로 개최할 생각인데, 주변에 아는 친구들에게 홍보 좀 해줄 수 있느냐는 부탁이었다.
"오, 정말요? 저희야 좋죠.”
그때 혁준은 아까부터 궁금했던 것을 창범에게 물었다.
"근데… 혹시 형이 여기 사장이세요?”
"나? 아니야. 난 손님이야.”
"네?”
"그러니까 사장은 아니고, 알바도 아닌데, 암튼 손님이야. 저기 사장이랑 의형제 같은 사이라서….”
"아아!”
"왜? 알반 줄 알았어?”
"아니 아까 여자 알바생 분이랑 있을 때 계속 카운터 계시길래….”
"가끔 일 도와주는 거야.”
"그러시구나. 암튼 친구들한테 잘 말해 볼게요.”
"그래.”
국성대 체육과 학생들이 흡연실을 나가자 혼자 남은 창범이 담배를 꼬나물고 생각에 잠겼다.
'소연이한테 관심있는 놈이었구나.'
처음 흡연실 들어왔을 때 자신을 경계하던 눈빛이 심상치 않았는데, 알고보니 소연과 친하게 지내던 모습을 의심 받은 모양이었다.
창범은 담배를 피우며 피식 웃었다.
"참나. 대가리 피도 안 마른 새끼가….”
* * *
"내가 이겼지? 벌칙 정해. 뭘로 할래?”
카드를 조작해 풀 하우스를 만들어낸 도훈이 세 사람을 돌아보며 물었다. 이미 보드카가 절반이 비워질 정도로 술이 들어간 상황이었기 때문에 더 마셨다간 토할 것 같은 애들이 많았다.
"우욱-. 난 더 못 마시겠어. 그냥 옷 벗을래.”
경영대생 범우가 더 버티지 못하고 상의를 훅 끌어 올렸다. 그는 처음부터 계속 술을 마셔왔지만 버티고 버티다 끝내 옷벗기로 대신한 것이었다.
상의를 벗은 범우가 민망하지 두 팔로 가슴을 가렸다.
"어우, 씨. 쪽팔려 죽겠네.”
"뭘 그래? 그냥 게임인데. 두 사람은 어떻게 할래? 마실래, 벗을래?”
도훈과 말을 맞춰놓은 신아가 먼저 나섰다.
"저도 그럼 벗을게요.”
"지, 진짜로 벗는다고?”
"왜? 어차피 게임인데 뭐.”
신아는 이미 상의를 한 번 벗었기 때문에 한 번 더 벗으면 브래지어만 남게되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술자리 게임이라도 브래지 어만 차고 게임을 하는 것은 미리의 생각으론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았다.
'어머, 미쳤나봐. 어디서 속옷만…. 가만, 저 년 일부러 그러는거 아냐?'
미리는 신아의 의도를 의심했다.
신아는 얼굴은 평범하지만, 가슴만큼은 비범한 스타일.
브래지어만 차고 있으면 당연히 남자들의 시선이 몰릴 수 밖에 없었다.
'맞네. 아까부터 보니까 자꾸 도훈오빠한테 꼬리치는 거였네.
와씨, 이 년봐라? 어디서 감히 도훈 오빠를….'
미리는 신아가 도훈을 꼬시려고 일부러 섹스어필 한다고 오해 하고 말았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몰랐기 때문에 생긴 오해였다.
'내가 도훈 오빠랑 잔 것도 모르고 어디서 감히….'
하지만 먼저 잤다는 것이 꼭 대수는 아니었다.
어쨌든 도훈도 남자인 이상 신아가 속옷만 입고 있으면 관심이 갈 것이고, 그 만큼 자신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 것은 뻔했다.
'이대로 질 순 없어.'
"에잇 모르겠다. 그냥 나부터 벗을 게.”
"어, 어!”
범우가 깜짝 놀랐다.
양말이나 가방을 내놓으면 계속 몸을 사리던 미리가 갑자기 상의를 훌렁 벗어 버린 것이었다.
브래지어만 차고 있는 미리의 모습에 범우가 고개를 돌렸고, 도훈은 놀란 기색을 보였으며 신아는 피식 웃었다.
"오, 미리 과감한데?”
"뭘 이정도 가지고. 여름에 물놀이장에서 입었던 비키니는 이것보다 야했는데? 사람 앞에서 더 심한것도 잘만 입고 다녔는데.”
"하긴 틀린 말은 아니지?”
미리가 먼저 벗자 신아도 따라 벗었다.
범우는 양쪽에 있던 여자들이 모두 브래지어만 차고 있게 되자 몸둘 바를 몰랐다.
'어억, 이거 분위기 왜 이렇지?'
그도 취할 정도로 마시긴 했지만, 아직 이성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그의 상식으로는 대학 조모임 술자리 게임 벌칙으로 브래지어만 입고 있는 경우는 듣도보도 못했다.
'어우, 씨. 미리도 그렇지만 신아는 진짜…. 말이 안 나오네.'
D컵이 넘는 신아는 당연히 볼륨부터가 압도적. 브래지어가 감싸고 있음에도 윗가슴이 훤히 드러나고 있었다.
'미치겠네 이러다 꼴리기라도 하면….'
범우는 필사적으로 성욕을 자제하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여기서 꼴리면 끝장이야. 도훈이도 가만히 있는데, 내가 꼴리면 안 되지.'
"다들 벌칙으로 받았네? 그럼 계속 가볼까?”
선을 잡은 도훈이 카드를 다시 뿌렸다. 처음엔 허리를 숙이거나 손으로 가슴을 가리고 있던 여자들도 게임이 진행될수록 점점 과감해져 그냥 비키니를 입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아싸, 나 액면으로 투페어 보이죠? 그냥 길게 끌지 말고 얼른 끝내죠?”
모처럼 신아가 리드를 잡았다.
바닥에 깔린 것만으로 A 투 페어였기 때문에 승률이 굉장히 높아 보였다. 도훈은 이쯤에서 고민했다.
'이겨야겠는데?'
[네? 한 번 더 사기를 치신다고요?]
'어. 지금 여자들 브래지어만 입고 있잖아. 다음번 벌칙 때는 위를 벗든지 빤스만 남기던지 둘 중 하나가 될 것 같아서.'
도훈이 교묘한 속임수로 승부를 걸었다.
"어라, 오늘은 운이 좋네. 포카드.”
"허, 헉!”
포카드가 나오며 도훈이 또 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