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421화 (1,385/2,000)

1404. 대학 축제-29-

* * *

여차저차 2차 술 게임이 시작되었다. 포커를 전혀 못하는 신아는 핸드폰에 족보 화면을 띄워 놓은 상황. 범우가 의외로 이런 쪽으로 취미가 있었는지 게임 시작 전 미리에게 기본적인 룰을 가르쳐주었다.

"같은 숫자가 두 개씩 모이면 페어야. 그런게 하나 더 있으면 투 페어. 투 페어는 원 페어를 이겨. 이게 기본이야.”

"그럼 쓰리 페어가 투 페어를 이겨요?”

"아니. 투 페어가 끝이야. 숫자 높은 것만 두 쌍을 대결하는 거야. 그리고 투페어보다 높은 건 트리플.”

"봉이라고도 하지.”

내가 거들었다.

"응. 트리플은 같은 카드 세장.”

"아하.”

"트리플 위에는 스트레이트. 줄이라고 불러. 5개 숫자 연속.”

"너무 복잡한데요.”

"아니야, 쉬워. 원 페어, 투 페어, 트리플, 스트레이트. 여기까지는 이해 됐지?”

"또 있어요?”

이번엔 내가 설명했다.

"하트, 클로바, 스페이트, 다이아. 이렇게 모양 같은 카드가 5장 모이면 플러쉬. 스트레이트 보다 높아.”

"오! 이게 더 쉬운거 아니에요?”

"흔히들 그렇게 생각하지만 스트레이트보단 플러쉬 확률이 더 낮아. 포커는 수학적으로 확률을 계산해 놓은 게임이거든.”

"아, 확률이구나.”

"넌 공대 다니니까 계산 잘하겠네.”

"꼭 그렇지도 않아요.”

"아무튼, 플러쉬 위에는 풀하우스.”

"그건 뭐예요?”

나는 트리플과 투 페어를 이용해 집 모양을 만들어 주었다.

"모양이 집하고 비슷하지? 그래서 풀하우스. 보통 풀하우스 뜨면 거의 그 판은 이긴다고 보면돼.”

"그럼 이게 제일 높아요?”

"아니. 그 위론 같은 카드 네 장인 포커도 있고, 스트레이트 플러쉬도 있는데, 그런 건 평생에 한 번 뜰까 말까라서 설명할 필욘없을 거야. 그냥 풀하우스가 짱이다. 이것만 생각하면 돼.”

"풀 하우스가 짱이다.”

미리가 어린애처럼 끝말을 따라했다.

세 사람은 이미 룰을 알고 있고, 미리만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설명이 길어지자 기다리다 지친 신아가 크게 하품을 했다.

"설명은 그쯤하면 충분한 것 같지 않아요? 일단 카드나 돌리죠?”

"근데 이거 돈 걸고 하는 거야? 나 현금 하나도 없는데.”

"아뇨. 그건 도박이잖아요 범우오빠. 우린 게임으로 하는 거니까. 술 먹기 게임.”

"어떻게?”

신아는 이곳에 다시 돌아오기 전 나와 계획했던대로 벌칙 룰을 설명했다.

"어차피 포커는 한명만 이기잖아요.”

"그렇지. 위너 테잌스 올 이잖아.”

"따라서 진사람 전부 양주 한 잔씩 마시기. 당연히 큰 종이컵꽉 채워서요.”

투명한 보드카를 본 범우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소맥만 먹고도 기절했는데, 양주라니···. 양이라도 줄이면 안될까?”

"에헤이, 술 먹기 게임인데 벌칙이 있어야죠. 안 그럼 다들 대충할 텐데. 별로 재미없어요.”

"그래도 너무 양이 많은 것 같은데.”

계속되는 범우의 앓는 소리에 신아가 기다렸다는 듯 덧붙였다.

"그럼 대체 벌칙을 하나 정하죠. 술 먹는 것 대신으로.”

"뭐?”

신아는 고민하는 척 하더니 좌중을 돌아보며 씩 웃었다.

뭔가 의미심장한 표정이었다.

"벗기 어때요?”

"뭐, 뭐?”

"오신아? 농담이지?”

이미 벌칙의 내용을 알고 있던 나를 제외한 미리와 범우가 크게 동요했다.

"농담 아닌데?”

"아니, 그래도 무슨 옷을 벗어? 남자 여자 다 같이 있는데.”

"그, 그래. 그건 좀 아닌 것 같아.”

"뭘 그렇게 쫄아요? 누가 강제하는 것도 아니고, 걸리면 술 마시면 되지. 안 그래요 도훈오빠?”

신아가 나를 끌어들였다. 여론 형성을 하자는 사인이었다.

"신아 말이 맞는 것 같아. 대체 벌칙이 너무 쉬우면, 그냥 다 술안마시고 벌칙을 택할 것 아니야? 그러면 게임의 긴장감도 떨어지고 루즈해지잖아.”

"아니 그래도···.”

"음···.”

"뭐, 옷을 단벌만 걸친 것도 아니고 그냥 술 먹다가 정 힘들다 싶으면 하나씩 벗으면 되지. 재밌을 것 같은데 나는.”

도훈은 특히 미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미리는 도훈이 어떤 사인을 주는 것 같았지만, 그 연유에 대해선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다.

'도훈 오빠가 왜 저러지? 설마 신아랑 편의점에서 뭔 일 있었나?'

미리는 두 사람 사이가 갑자기 돈독해진 걸 보고 둘 사이에 썸씽이 있었나 하는 의심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아이스크림 사러 갔다는 사람이 한참만에 여자랑 같이 들어온 것이 수상하기 이를 데 없었다.

'설마···. 에이, 아니겠지. 분명 문 잠그는 건 나도 봤는데.'

미리는 애써 안 좋은 생각을 떨쳐버렸지만, 어쨌든 찜찜한 마음에 괜히 기분이 안 좋아졌다. 그러자 불난 데 기름 뿌리는 격으로 신아까지 거들었다.

"왜 그래, 윤미리? 자신 없어서 그러는 건 아니지?”

그러면서 허리를 곧추 세워 가슴을 앞으로 내미는데 그 크기가 워낙에 거대해 범우까지 덩달아 동요하는 것이었다. 그렇잖아도 신아의 커다란 가슴 때문에 신경쓰이던 미리는 그것이 자신을 향한 도발이라는 걸 직감했다.

'저 돼지 같은 게!'

신아는 육덕지긴 했지만, 비율이 좋아 절대 돼지 같아 보이진 않았지만, 미리의 눈에는 도훈에게 꼬리치려고 가슴을 흔들어 대는 암퇘지로만 보였다.

"내가? 전혀 아닌데?”

"아니면 뭐···. 재밌을 것 같지 않아? 범우 오빠도 저랑 같은 생각이죠?”

신아가 그러면서 슬쩍 범우의 손등에 자신의 손을 포갰다.

순진한 범우를 흔들려는 술책이었다. 범우는 신아의 손이 닿자 움찔 놀라면서도 기분이 좋은 지 빼지 않았다.

"드, 듣고보니 도훈이 말도 맞는 것 같기도···. 게임이 긴장감이 없으면 루즈해지니까.”

"오케이. 그럼 다같이 동의하는 거다?”

"잠깐만요.”

미리가 마지막까지 딴지를 걸었다.

"옷 벗기는 무조건 하나씩인 거죠?”

"응.”

"양말도 한짝 씩 가능이고?”

"당연하지.”

신아는 만반의 준비를 하는 듯 갑자기 가방에서 얇은 가디건을 걸친 뒤 가방까지 옆으로 메고 왔다.

"소지품도 가능한 거죠?”

"소지품이라니?”

"이것도 몸에 걸치고 있는 거니까요. 일종의 액세서리랄까?”

"이건 서로 정해야겠는데? 어떻게 할래?”

"그렇게 해요. 몸에 걸치는 것은 다 허용.”

"대신에 가방에 있는 물건 하나씩 빼는 건 안되고, 가방 통째로 가능.”

"자, 잠깐 나도 그럼 준비를 더 하고.”

잠시 분주하게 서로 소지품을 최대한 걸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준비가 끝나자 네 사람이 4각형으로 둘러 앉아 포커 게임을 시작했다.

도박이라면 이미 타짜에 가까운 나로선 얼마든지 승부의 조절이 가능했다.

'그나저나 범우까지 끼게 될 줄이야. 진짜로 포섬가는 건가?'

[순진한 범우군이 과연 동참을 할지 모르겠군요.]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는데, 어쩌면 속내는 전혀 다를지도.'

[네?]

'아까부터 계속 범우가 신아 가슴을 힐끔거리더라고. 노골적으로.'

[그거야 신아양이 워낙에 크니까 본능적으로 시선이 가는 게 아닐까요?]

'그럴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마냥 순진한 타입은 아닌 것 같아.

취하니까 점점 본성이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하고.'

[한번 지켜봐야 겠군요.]

카드패가 돌았다. 선을 잡은 나는 멋지게 셔플을 하며 실력을 뽐냈다. 일전에 타짜랑도 겨뤄봤기 때문인지 카드를 다루는 손이 익숙한 상태였다.

"오, 도훈이 잘하는데?”

"오빠 완전 고수 아니에요?”

"그냥 섞기만 하는 거야.”

착착착-

빠른 동작으로 카드 패를 나눴다. 처음 받은 3장을 까는데 모양도 제각각에 숫자도 너무 띄엄띄엄 떨어져 있었다.

[이런, 주인님 초반 운이 별로군요.]

'상관없는데?'

[네?]

'카드야 바꿔치기 하면 그만이지.' 나는 카드 3 장을 혼자 보는 척 손바닥으로 가린 뒤 공중에서 새로운 카드 3 장을 꺼내들었다. 바로 Ace 3장이었다.

[헉, 지금 사기 포커를 치시려는 겁니까?]

'손은 눈보다 빠르다는 말씀.' 인벤토리에 몰래 똑같은 포커카드 52장을 넣어둔 상태라 원하는 패는 얼마든지 꺼내 바꿔치기가 가능했다.

"자 그럼 한 장 뒤집으시고.”

순서대로 카드를 내려놓는데, 하필 신아가 내놓은 카드가 스페이드 A였다. 내가 몰래 바꾼 카드와 동일한.

'윽, 생각해보니까 이러면 무조건 겹치겠는데?'

[당연한 거 아닙니까?]

결국 다른 A를 내려놓으며 나머지 카드도 다시 정리했다. 천천히 패가 돌고 하나씩 페어가 지어졌다. 몰래 카드를 바꿔치기한 나는 계속 예의 주시하면 바닥패까지 확인해야했다. 게임에 집중 해야 하는데 카드 카운팅을 같이 하자니 머리가 아파왔다.

'아무래도 내가 실수한 것 같은데. 겹치기가 되면 사기 도박이 걸린다는 걸 간과했네.'

[당연하죠. 그리고 바닥패가 전부가 아니라 각각 히든 패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까지 알아낼 수 없다면 아무 카드나 막 꺼내 쓰실 수 없습니다.]

'젠장. 생각이 짧았네.'

결국 나는 이도저도 못하고 첫판을 패하고 말았다.

첫판의 승자는 바로 게임의 룰도 모르던 미리였다.

"으하하. 이거 스트레이트 맞죠? 제가 이긴 거죠?”

"오, 미리 잘한다.”

"역시 공대생인가.”

"젠장, 난 술이나 마실래.”

처음엔 다들 자신있게 보드카를 따라 마셨다.

그러나 40도가 넘는 술을 안주라곤 달랑 꾸이포 한 조각으로 입가심하며 넘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첫 잔에 신아와 범우는 죽을 것처럼 힘들어했다.

"흐억, 토할 뻔 했네.”

"오빠 또 토할거면 혼자가서 토해요.”

"도훈 오빠는 끄떡없네요?”

"나? 나는 뭐···.”

다행히 나는 술에 취하지 않는 만술불침의 몸이었다.

일단 알코올이 몸에 들어가는 순간, 내공이 곧바로 태워버렸기 때문에 취하려고 해도 취할 수가 없었다.

'뭐 어쨌든 게임에 지더라도 술 마시면 되니까 상관은 없겠구만.'

게임이 재개되었다.

한 판 한 판이 끝날수록 3명이 술을 마셔야 했다. 이길 확률이 1/4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점점 취하는 사람이 늘어갔다.

결국 연속으로 3판을 진 신아가 도저히 술 마시기는 힘들다면서 겉에 걸치고 있던 티셔츠를 벗었다.

"난 그냥 옷 벗을래. 도저히 못 마시겠어.”

"으, 으읏!”

갑자기 상의를 들추자 범우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 신아는 티셔츠 안에 반팔티를 한 장 더 걸치고 있었다.

그녀가 범우의 순진한 반응을 보고 놀렸다.

"뭘 그렇게 놀래요? 무슨 상상을 했길래?”

"아, 아니야. 그냥···.”

범우는 얼굴이 빨개졌는데, 술 때문인지 옆에 있던 신아가 티셔츠를 벗으면서 더욱 가슴골을 드러냈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황급히 무릎 담요를 가져와 하반신을 덮었다.

지켜보던 미리가 물었다.

"오빠 추워요? 에어컨 끌까요?”

"아, 아니···.”

미리는 담요를 의미심장하게 쳐다보았는데, 뭔가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뭐지? 둘 사이에 뭔가 있었나?'

[왜 그러십니까?]

'미리가 요상하게 아까부터 범우를 쳐다보더란 말이지.'

[미리양은 범우군을 굉장히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까? 말도 막 하고요.]

'그러니까 수상하다고. 아무래도 뭔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의심을 뒤로하고 다시 게임이 시작되었다. 패가 안 좋은 범우와 신아가 먼저 죽고, 마지막 대결로 나와 미리만 남았다.

자꾸 펼쳐놓은 핸드폰으로 족보를 확인하는 걸 보니 뭔가 뜨긴 뜬 모양이었다.

'기회다.'

[사기 치시려고요?]

'그렇지. 이번판에 내가 이기면 셋 다 벗길 수 있을 것 같아서.'

[하지만 들킬 수도 있습니다. 그 순간 게임은 완전히 망하는 거 고요.]

'아니. 지금 미리 혼자 남았는데, 바닥패를 보니 대충 알 것 같아서.'

미리의 바닥패에는 다이아 4개가 나란히 깔려 있었다.

누가봐도 플러쉬를 노리는 게 틀림없었다.

"자 히든.”

먼저 죽은 범우가 나와 미리에게 마지막 장을 나눠주었다.

나는 카드패를 확인하기보다 미리의 눈빛에 집중했다. 히든을 펼쳐보던 미리의 동공이 눈에 띄게 커졌다.

'떳구나.'

[네?]

'다이아 플러쉬 완성한 것 같아. 아마 미리는 자기가 이겼다고 생각할 거야.'

[주인님은 투페어군요.]

"까볼까?”

"네.”

"너부터.”

"전 다이아 플러쉬요.”

미리가 빨간색 다이아가 가득한 카드 패 5장을 내밀었다.

"제가 이겼나요?”

미리가 자신있게 물었다.

"그럼 다들 벌칙을···.”

"잠깐.”

나는 손가락을 좌우로 까딱거리며 건방진 표정으로 말했다.

"승부는 까봐야 아는 거지.”

그리고 펼쳐지는 원 페어.

또 다른 하나는 트리플이었다.

"푸, 풀하우스!”

"플러쉬가 항상 이기는 건 아니라니까.”

"으앙, 다 이긴 줄 알았는데!”

[어떻게 하신 겁니까?]

'투 페어가 만들어져서 한 장만 바꿔치기 한 거야.'

[그러니까 어떻게 안 걸리게 뽑으셨냐는 말입니다.]

'아까 범우 죽을 때 마지막으로 받은 패를 봤어. 근데 범우가 죽으면서 패를 덮어 버리더라고. 그러니까 이건 범우가 받은 패라서 절대 다른 사람한테는 나올 수 없는 패지만, 정작 죽은 범우는 기억을 못하는 카드기도 하지.'

[아하! 그런 방법이.]

'운이 좋았다고 봐야지.'

나는 다시 카드를 섞으며 몰래 꺼낸 카드를 다시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똑같은 카드가 섞이기 않게 하려면 셔플을 할 때마다 사용한 즉시 도로 집어 넣어야 했다.

"자, 이번 게임은 내가 이긴 것 같고. 선택해야지? 술 마실래, 벗을래?”

나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세 사람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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