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414화 (1,378/2,000)

1397. 대학 축제-22-

* * *

"끝까지 달려!”

이미 조모임은 붕괴였다.

가볍게 반주로 시작했던 치맥은, 이제 족발에 보쌈까지 추가되고 편의점에서 소주까지 사오는 등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었다. 도훈은 술에 취하지 않았으나, 다른 조원들이 서서히 맛이 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젠장.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주인님이 벌칙으로 원샷을 시킨 이후로 폭발해 버렸죠.]

오신아의 소원 들어주기 미션을 성공한 도훈은, 홧김에 신아에게도 똑같은 맥주 원샷을 요구했다. 뭐든 들어준다던 신아는 빼지 않고 그대로 원샷을 받았고, 맥주를 공중에 뿜어버리는 분수쇼를 펼쳐 보인 뒤 완전히 정신줄을 놓아 버렸다.

다른 꿍꿍이가 있는 미리도 계속 일행들에게 술을 권하며 부추겼고, 그와중에 그나마 멀쩡한 축이던 범우까지 인사불성이 되고 말았다.

이젠 사람이 술을 먹는게 아니라, 술이 사람을 먹는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우에엑-!”

화장실에서 토하는 소리가 났다. 속이 안 좋다고 화장실로 뛰쳐 간 범우는 변기를 세숫대야처럼 붙잡고 원 없이 속에 있는 걸 비워냈다. 등을 두들겨 준다며 따라간 신아 역시 옆에서 토하는 범우를 보더니 뭔가 올라오는지 울컥 제 입을 틀어막았다.

'아아, 개판이구나. 영어회화는 이대로 좆망인 건가?'

[왜 말리지 않으셨습니까?]

'나라고 이 지경까지 될 줄 알았나? 적당히 마시고 자제할 줄 알았더니 이제는 조모임이고 뭐고 그냥 먹고 죽자 판이네. 완전 개판 오분전이야.'

[주인님 학점 관리에 최대 위기가 봉착했군요.]

'몰라. 일단 대본은 완성했으니까 나중에 각자 외워오라고 하는 수밖에.'

[근데 그게 통할까요? 약간은 편법 같은데···.]

'이젠 하늘에 맡기는 수밖에. 안되면 제니퍼한테 몸 로비라도 하려고.'

[그 영어 회화 강사요?]

'어차피 객관식 시험도 아니고 점수 주는 건 강사 재량이잖아.

강사만 꼬시면 Fail은 어떻게든 막을 수 있을 거야. 어차피 고득점을 해야하는 건 아니니까.'

[거참, 일이 갈수록 커지고 있군요.]

"오빠. 쟤들 집에 보내야 할 것 같은데요? 서로 토하고 난리도 아니에요.”

미리가 걱정하는 척 도훈에게 말했다. 두 사람을 얼른 보내고, 도훈과 모텔방에 단둘이 남겠다는 속셈이었다.

"취한애들을 뭔 수로 보내? 게다가 나도 마셨는데. 운전 못 해지금은.”

"택시라도 불러서 보내야죠. 특히 범우 오빠, 완전히 맛이 간 것 같은데.”

"야! 나 괜찮아! 꺼억-. 술, 술이나 더 가져와!”

한바탕 토한 뒤 돌아온 범우가 큰 소리로 술을 찾았다.

'젠장. 그나마 멀쩡해 보였던 범우가 계란말이라니.'

[네? 갑자기 무슨 계란말이요?]

'술 먹으면 개란 말이지.'

[아니···. 주인님 이와 중에 아재 개그가 나옵니까?]

'왜 이래? 난 전혀 안 취했다고.'

[안 취한 상태로 하셨더니 더 소름이네요.]

도훈은 범우보다 화장실 벽에 머리를 기대고 쓰러진 신아가 더 걱정이었다. 다행히 쌍으로 토하진 않았으나, 제대로 몸도 못 가눌 지경이 된 것이다.

도훈이 급히 화장실 달려가 신아를 부축해 일으켰다.

"아가씨, 이런 데서 자면 안 돼.”

"···아가씨? 아저씨 나 지금 꼬시는 거야?”

신아가 혀 꼬부라진 소리로 눈을 게슴츠레 뜨며 물었다. 눈이 완전히 풀린 게 이성은 완전히 날아가 버린 것 같았다. 도훈이 누군지도 알아보지 못했다.

'큰일이네. 신아는 거의 인사불성인데.'

[오늘 공략은 물 건너 갈지도···.]

'어떻게든 수습해 봐야지. 어디 눕혀놓고 와야겠다.'

도훈이 신아를 부축해 소파에 앉히고는 그나마 정신이 남아있는 미리를 향해 말했다.

"안 되겠는데. 저대로는 택시 태워서도 못 보내겠어. 집이 어딘지도 모르잖아.”

"그럼 어쩌죠?”

"자고 일어나면 정신 좀 차리지 않을까?”

"근데 어디서 재워요? 침대엔 보다시피 범우 오빠가···.”

잠깐 한눈 파는 사이 범우가 침대로 쓰러지더니 대자로 팔을 벌리고 뻗어 버렸다. 혼자서 큰 침대를 독차지한 범우를 보며 도훈이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방을 하나 더 잡아야겠는데.”

"방을 또 잡자고요? 옆에 다른 침대에 눕혀도 되지 않을까요?”

"범우도 쓰러지고 신아도 쓰러졌는데, 남녀를 같은 방에 재울 순 없잖아. 나중에 나도 이 방에서 자야하니까.”

"아···.”

미리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럼. 제가 남은 방 있는지 카운터에 물어볼게요.”

미리가 수화기를 들고 카운터에 연락하는 사이 소파에 눕혀 놓았던 신아가 벌떡 일어나 도훈을 뒤에서 껴안기 시작했다.

"어엇, 뭐하는 거야?”

"아저씨, 나 잘하는데···.”

물컹거리는 가슴이 등에 밀착될 만큼 노골적인 스킨십에 도훈도 당황하고 말았다.

'취하니까 바로 본색 나오네. 이거 큰일났는데.'

도훈이 기겁하며 신아를 떼놓는 사이 통화를 마친 미리가 말했다.

"오빠, 마침 옆방 비었데요. 근데 선불이라는데···.”

"알았어. 내가 밑에 가서 계산하고 올 테니까, 신아 좀 옆방으로 옮겨놔.”

"범우 오빠는 어떻게 하죠?”

"음냐, 음냐, 술 가져와, 술!”

범우는 여전히 배를 깔고 쓰러진 채 술 가져오란 소리만 반복했다. 진상도 저런 진상이 없었다.

'어휴, 진짜 저 화상들.'

"넵둬 일단. 신아부터 먼저 처리하자.”

"네.”

도훈은 카운터로 내려가 대실 요금을 계산했다.

주인아저씨가 음흉한 표정으로 물었다.

"역시 방이 두 개 필요하시죠?”

"그, 그런 게 아니고요.”

"에이, 뭐 팔팔한 대학생 때는 그럴 수 있지. 이해해요. 첨 봤을 때부터 커플들인 거 알았다니까?”

"아예, 뭐···.”

도훈은 더 말섞기도 귀찮아 그려러니 하고 넘겼다.

'어휴, 급 담배 땡기네.'

도훈은 1층으로 내려온 김에 건물 밖으로 나가 주차장에서 담배를 한 대 물었다. 니코틴이 충전되자 그나마 마음이 좀 진정되는 것 같았다.

'젠장 할. 이놈의 술이 웬수구나.'

[조모임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네요. 미리양이 자초한 감도 있지만요.]

'걔가 제일 나빠. 순전히 나 꼬실라고 멀쩡한 조모임을 망친 거잖아. 맨 처음 치맥 주문할 때 술 시킨 것도, 나중에 편의점가서 소주 5병 사온 것도 걔였고.'

[미리양은 그렇다 치고, 신아양이랑 범우군은 왜 저렇게 취할 정도로 마셨을까요?]

'모르지. 처음에야 목만 축인다고 생각했겠지. 근데 술이 술을 부른다고 점점 돌이킬 수 없게 된 것 같아. 진짜 맨정신으로 취한 사람들 보고 있으니 코미디가 따로 없네.'

도훈이 가장 괴로웠던 건 본인은 전혀 취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온전한 정신으로 취한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으니, 다들 정신병자처럼 느껴졌다.

'하나같이 정상이 아냐. 일단 다시 계획을 수정해야겠다.'

[어떻게요?]

'원래 파티룸으로 잡았던 방은 범우가 쓰러져 있으니 버리는 수밖에.'

[그럼 미리양와 신아양을 새롭게 잡은 방에서 한방에 해치우겠다는 겁니까?]

'그게 되겠어? 미리는 심지어 처년데. 둘이 별로 친하지도 않고.'

[하긴 첫 경험치곤 너무 충격이겠군요.]

'하지만 거기서 미리를 공략할 건 맞아.'

[네? 방금 쓰리섬은 안 하신다고.]

'스리섬은 아니지. 신아는 쓰러져 자고 있을 테니까.'

[설마 자는 사람 옆에서?]

'술판이 벌어져 엉망이 된 파티룸보단 그게 낫지 않겠어? 게다가 범우는 아직 의식은 있는 것 같으니.'

[하아, 주인님도 정말···.]

'일단은 그게 최선이야.'

결심을 마친 도훈이 다시 모텔방으로 올라갔다.

새로 대실한 옆방 문이 열려 있어 들어가 보니 미리가 낑낑거리며 신아를 부축해 침대에 눕히는 중이었다.

"오, 오빠 좀 도와주세요!”

"어, 잠깐만.”

도훈이 옆으로 가서 신아를 부축하는데 이미 기절해버린 신아는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그런 와중에도 혼잣말로 끊임없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씨뎅··· 나 잘하는데···.”

"뭘 잘한다는 걸까요?”

"모르지.”

도훈은 시치미를 떼며 신아를 바로 눕혔다. 혼자서 신아를 부축해 오느라 애를 쓴 미리가 지쳤는지 소파에 등을 기대고 쓰러졌다.

"어휴, 저 옷 빨아야 할까 봐요.”

"옷은 왜?”

"신아가 아까 속이 안 좋았는지 살짝 토했거든요. 제 옷에 다 튀었어요.”

미리는 증거를 내밀 듯 토사물이 묻은 옷자락을 보여주었다.

"일단 여기서 좀 옷 좀 빨게요.”

"그럼 난 범우한테 가볼게.”

"범우 오빠보다는 신아가 더 걱정이에요. 누워있다고 토하면 위험하니까 오빠가 잠깐만 지켜봐 주세요.”

"···그럴까?”

미리는 상의를 세척한다며 가운 하나를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도훈은 멍하니 소파에 앉아 오신아의 상태를 확인했다.

'슬슬 입질이 들어오는데?'

[미리양이 유독 적극적이군요.]

'자빠지기로 작정한 것 같아. 준다는데 마다할 필욘 없지. 어차피 공략 대상이라면.'

화장실 안으로 들어간 미리는 곧바로 상의를 벗었다. 브래지어만 걸치고 거울 앞에서 서자 괜히 민망해졌다.

'아···. 드디어···.'

단단히 마음을 먹고 오긴 했지만, 막상 도훈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도훈 오빠가 거절하면 어떻게 하지? 자빠지면 다 넘어간다곤 하지만···.'

술김에 사고를 친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조모임을 술판으로 만든 미리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무리 마셔도 도훈은 전혀 술에 취한 기색이 안 보였다.

'술이 그렇게 셀 줄은 몰랐는데.'

어쨌든 본인은 취했으니 상관없었다. 취한 척 쓰러지면 남자인 도훈이 알아서 해주리라 믿었다. 적당히 세척을 마친 미리는 가운을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어휴, 다 젖어서 일단 말려야 할 것 같아요.”

"저런.”

가운을 걸치고 나온 미리가 젖은 상의를 활짝 펼쳐 크게 흔들었다. 마치 안에 속옷만 입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 같았다.

"드라이기로 말려 볼래?”

"아니에요. 괜히 드라이기 소리에 신이 깰지도 모르니까. 어차피 범우 오빠랑 신아 깨기 전까진 여기서 기다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하긴 그렇네.”

의자 등받이에 빨래를 말린 신아가 도훈이 앉아 있던 소파 옆자리에 앉았다. 일부러 가운 틈을 벌려 고개만 돌리면 가슴이 보일만한 각도였다.

"근데 오빠는 하나도 안 취했나 봐요?”

"나? 취했는데.”

"얼굴이 하나도 안 빨간데요?”

"티가 잘 안 나는 체질이라 그래.”

"저 이마 만져봐요, 엄청 뜨겁지 않아요?”

적극적으로 나가기로 결심한 미리가 도훈의 손목을 잡더니 대뜸 자기 이마에 손바닥을 얹었다. 열이 나는지 확인하는 척하면서 은근슬척 몸에 터치를 유도한 것이었다.

"좀 뜨겁네.”

"그러니까요. 몸에 열이 나 죽겠어요.”

"에어콘이라도 틀어줄까?”

"아니에요. 좀 있다 보면 괜찮아 지겠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미리는 점점 취한 척 연기하며 자세가 흐트러졌다. 그리고는 덥다는 듯이 갑자기 가운 자락을 잡고 펄럭이기 시작했다.

"휴-, 이제 술기운이 올라나 봐요. 자꾸 땀이 나네.”

도훈이 힐끔 곁눈질로 보니 펄럭이는 가운 사이로 미리의 봉긋한 가슴이 보였다.

'아주 대놓고 유혹질이네.'

[이쯤 되면 주인님도 슬슬 반응을 보이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신아는 완전히 뻗었지?'

[네. 기절한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너 다 보인다.”

"네?”

"아니, 그렇게 하니까.”

"어머, 오빠 혹시 제 가슴 봤어요?”

미리가 정색하며 가운을 여몄다. 하지만 말투로 봐선 전혀 싫은 기색이 아니었다.

"니가 보여 줬잖아.”

"뭘 또 보여줘요? 전 더워서 그런 건데···.”

미리는 짐짓 화난 척 입술을 내밀었다.

"오빠 은근히 응큼하시네?”

"뭐래?”

"방금 야한 생각한 거 아니에요?”

"아니거든.”

"아닌데. 이상한데···.”

미리는 은근슬쩍 도훈의 바짓가랑이 사이를 쳐다보았다. 앉은 자세에서도 밖으로 윤곽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물이 민망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도훈은 손사래를 치며 부정했다.

"오해야. 이건 원래···.”

"원래 뭐요?”

"그니까 아휴··· 됐다. 미안.”

"뭘 또 미안해요. 그럴 수도 있죠.”

"응?”

미리가 도훈의 반응을 보고 확신을 가졌는지 슬슬 그에게 들러붙기 시작했다. 사회적거리 두기는 완전히 무시한 채 완전한 밀착이었다.

"오빠 솔직히 저한테 관심 있죠?”

"무슨 의미야?”

"그냥 뭐···. 여자로서?”

"아닌데.”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요?”

미리는 도훈이 한발 물러서자 더욱 적극적으로 들이댔다. 술기운의 힘을 빌린 것도 있지만, 도훈이 다른 남자들과 다르게 자꾸 거리를 두는 것에 골이 났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꼬시고 말겠어.'

"근데 왜 자꾸 저한테 차갑게 굴어요?”

"내가 언제?”

"계속 그랬잖아요. 톡해도 단답만 하고, 따로 만나도 시큰둥하고. 지금도 계속 뒤로 빼기만 하고. 일부러 그러시는 거 아니에요?”

"아니라니까?”

"치, 그냥 관심 있으면 있다고 하면 되지. 남자가 뭐가 그렇게 겁이 많아요?”

미리의 도발에 도훈도 슬슬 반응을 보였다.

"내가? 뭐가 겁난다고?”

"저한테 반할까봐요.”

[헐, 완전 도끼병 말긴데요. 저런 나르시스트는 또 처음 보네요.]

'시건방이 하늘을 찌른다니까? 남자들이 다 자기 좋아하는 줄 알지.'

[공대에서 너무 떠받들어 살다 보니 보통 사람하곤 인식체계가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주제를 좀 알려주고 싶은데 공략 대상이라 어쩔 수가 없네.'

"왜이래 자꾸? 신아도 옆에 있는데.”

"신아 지금 자는데요?”

"아니, 그래도···.”

"왜요? 신아 옆에 없었으면 덮치고 싶어서 그래요?”

"야, 넌 무슨···.”

"오빠.”

"?”

"지금 저랑 하고 싶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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