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408화 (1,372/2,000)

1391. 대학 축제-16-

* * *

영어 회화 조모임이 예정된 금요일까지 도훈은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밀린 공부도 완료해야 했고, 1학년이 주축이 되어 준비한다곤 하지만 축제 주점 준비에도 신경 썼다. 몸은 하난데 할 일은 태산이었다.

'어휴, 미스터 국성 준비는 하나도 못 했는데···.'

[준비하고 자시고가 있습니까? 주인님은 나가면 우승일텐데요.

]

'그게 말처럼 쉽나. 보디빌더들 포징하는 것도 연습해야 하니까 말이야.'

[자세 잡는 거 말씀이시죠?]

'어. 그냥 무턱대고 나가서 몸에 힘주고 서 있는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

도훈이 또 하나 신경 쓰고 있는 것은 국성대 몸짱 남녀 선발대 회라고 할 수 있는 미스&미스터 국성이었다. 일단 참가신청서는 냈지만 막상 대회가 시시각각 다가오는데도 전혀 준비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근력운동은 더 안 해도 상관없는데,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미리 공부를 좀 해봐야겠는데.'

[음, 주인님이 모르는 분야라 도와주실 분이 필요하군요. 간만에 미나양에게 도움을 청하는 건 어떠신가요?]

'송미나? 아, 맞다.'

헬스장에서 처음 인연을 맺은 송미나는 현재는 필라테스 학원의 원장이지만, 한때 대형 헬스클럽의 퍼스널트레이닝 강사 출신이었다. 보디빌딩을 전문적으로 익혔으니 만큼, 아무래도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은 빠삭할 것 같았다.

오랜만에 미나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이 되질 않았다.

'수업 중인 모양인데?'

[여전히 바쁜가 보군요. 필라테스 학원 잘 된다고 하더니.]

'그러게. 부재중 남겼으니 좀 있다 연락하겠지.'

미나와는 방학 때 사이판 여행을 끝으로 한동안 연락이 뜸한 상태였다. 사실 대학생인 도훈에게나 방학이지, 필라테스 학원 처지에선 성수기기도 했다. 여름을 맞아 다이어트에 나선 젊은 여성들이 우르르 몰려들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미나도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PT강사로도 엄청 잘 나갔는데, 보란 듯 필라테스 학원을 차려서 자리 잡는 거 보면요.]

'그러게. 사업수완이 좋다고 해야 하나? 잘나가는 코치랑 원장은 전혀 별개의 영역일 수도 있는데 말이지.' PT로 이름 날린 트레이너가 헬스장을 차리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를 잘 가르쳐주는 일과, 소규모긴 해도 업체 하나를 오롯이 자기 책임하에서 경영하는 것은 전혀 다른 분야이기 때문이다.

특히 헬스나 필라테스의 경우는 자영업종이라곤 해도 초기 투자 비용이 상당한 편에 속한다.

임대료가 제법 나가는 커다란 공간을 확보하는 것에서부터, 안에 들어가는 장비들의 가격대가 굉장히 고가이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원장의 입장에서 강사들을 고용하고 회원을 유지하는 것도 일개 PT강사의 일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 대단한 일을 이제 20대 중반의 어린 원장인 미나가 척척 해내더란 말이지. 얼굴만 예쁜 게 아니라 몸매도 끝장이야 정말.'

[네? 아니 어투가 어딘가 어색한데요? 보통 얼굴만 예쁜 게 아니라 머리도 좋다고 해야 맞지 않습니까?]

'나도 그러려고 했는데, 몸매가 끝장인건 사실이니까.'

도훈이 미나를 속으로 칭찬하고 있는데 마침 전화가 걸려왔다.

-도훈아!

미나는 간만에 통화 연결이 된 도훈을 반갑게 맞이했다.

-잘 지냈어? 별 일 없고?

"나야 늘 잘 지내지. 수업 중이었어?”

-응. 오늘 강사 한 명이 연차를 써서 그거 메꾼다고···. 어휴생리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데 참 뭐라 할 수도 없고.

"요새도 회원들 많나보다.”

-뭐, 그럭저럭? 방학 특강반 끝나곤 좀 빠지긴 했지만 저녁 시간대 직장인 회원님들이 많이 들어와서.

원래는 미나가 누나였기 때문에 존댓말을 쓰던 도훈은, 싸이판 여행이후로는 완전히 친구처럼 편하게 말을 놓기로 했다. 대신 호칭은 여전히 누나였다.

"누나. 나 뭐 좀 물어볼 것 있어서 연락했는데.”

-응, 말해.

"내가 우리학교에서 열리는 보디빌딩 대회에 출전하거든···.”

도훈은 대회와 관련해서 여러 가지 궁금한 것들을 미나에게 물었다. 미나는 확실히 전문적으로 보디빌딩을 배웠던 사람이니만큼 해당 분양에 대해 빠삭하게 꿰고 있었다.

-들어보니 학교에서 열리는 아마추어 대회 수준 같은데, 엄청 디테일하게 심사하거나 하진 않을 거 같은데?

"그래도 뭐부터 준비해야할지 모르겠어서.”

-음, 근데 좀 애매한 게 여자들이랑 남자들은 포징 자체가 많이 다르거든. 심사 포인트도 다르고. 아니면 내가 예전에 알던 분 소개해 줄까? 같이 트레이너 생활했던 분인데, 여러 대회 나가서 수상 경력도 화려하거든. 나보다는 대회를 준비했던 선수분에게 조언을 받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도훈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미나도 아예 모르진 않겠지만, 남녀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하는 분야니까.

"그래도 괜찮겠어? 괜히 수고스러울 것 같은데.”

-아니야. 엄청 친했던 오빠라.

미나의 입에서 오빠라는 이야기나 나오자 도훈은 순간 질투심이 밀려왔다.

-요새 더 잘나가는 것 같더라고. 강남 쪽에서 PT숍 하는데 연예인들도 가끔 배우러 오나보더라.

'음, 미나 입에서 다른 남자 얘길 들으니까 왜 기분이 나쁘지?'

[주인님도 참. 미나양이 주인님을 얼마나 좋아하는 줄 알면서 질투를 하시고 그러십니까?]

'그거랑은 별개지.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남자 PT강사 중에 변태같은 놈들이 얼마나 많은데? 몸 좋은 걸로 여자회원한테 어필하면서 자세 교정해 준답시고 은근슬쩍 터치하고.'

[아무리 그래도 주인님만 하겠습니까?]

'암튼, 괜히 기분 나쁘네.'

"···음, 친한 사인가 보네?”

-어, 완전. 옛날에 6개월간 같이 일했었거든.

"개인적으로 연락하고 그런 사이야?”

-무슨 소리야? 뭐야? 꺄아, 설마 도훈이 너 질투하는 거야?

"질투는 무슨. 그냥 누나가 오빠라고 부르는 사람은 첨 들어봐서.”

-어우, 도훈아! 내가 너 말고 다른 남자가 어딨다고 그래? 푸흡!

미나는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꺄르르 웃었다.

-그래도 기분 좋네. 도훈이 너가 질투도 다 해주구.

"질투하는 거 아니거든?”

-알았어 알았어. 근데 일적으로 친했던 거지 그런 사이 아니야.

그 오빠 그리고 이미 유부남이고.

유부남이란 소리에 도훈이 살짝 안도했다.

-풉-. 암튼 연락 한 번 해볼게. 근데 너무 바쁘셔서 시간이 되려나 모르겠다. 주말에는 빌 것 같기도 한데. 혹시 이번 주말 시간 되니?

스케줄을 확인한 도훈은 금요일 이후 일정이 빈다는 것을 떠올렸다.

"응. 토요일 일요일 둘 다 상관없어.”

-그럼 내가 미리 연락해 놓을게. 주말에 한번 보자. 넌 원체 빨리 배우니까 하루면 충분히 기본적인 것을 익힐 수 있을 거야.

"고마워 누나.”

-뭘, 우리 사이에. 암튼 그럼 알아보고 연락해줄게!

"응.”

-도훈아.

"어?”

-오늘 좀 귀엽다?

"아, 아니 질투 아니라고!”

미나는 계속 깔깔 거리다 전화를 끊었다.

졸지에 속좁은 남자가 된 도훈이 머리를 긁적였다.

'젠장. 괜히 의식했나?'

[그러게요. 주인님답지 않게 말입니다.]

'그래도 신경 안 쓰이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냐? 상대는 잘나가는 PT강사래지, 미나도 예쁘니까 그 놈이 껄떡거렸을 것 같아서.'

[그게 질투라는 겁니다. 그리고 엄밀히 말하면 주인님 만나기 전의 일인데요.]

도훈도 물론 이성적으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심정적으로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뭐 유부남이라니까 안심이 되긴 하네. 주말에 짧고 굵게 특강 받아봐야 겠다. 간만에 미나도 좀 보고.'

* * *

도훈이 미스터 국성 대회에 신경 쓰는 만큼, 1학년 출전자들도 대회가 부담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중에서도 정음은 무척 열심히 했다. 그녀는 도훈이 알려준 턱걸이를 매일 빠짐없이 하면서 가슴키우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매일 5세트 씩. 힘이 빠지면 보조기구를 동원해서라도 횟수를 채우던 그녀는 요즘 들어 점점 가슴골이 맞닿는 느낌을 받았다.

'크기가 좀 달라진 것 같은데?'

운동을 마치고 샤워를 하던 정음은 거울 앞에서 버터플라이 자세로 가슴을 모아보았다. 양 팔꿈치에 밀린 가슴이 가운데로 모이며 가슴골을 형성하는데, 확실히 예전보다 훨씬 골짜기가 깊이 패이는 느낌이었다.

'진짜로 효과가 있는 건가?'

물론 등 운동을 통해 어깨 쪽이 넓어져 허리가 더 쏙 들어간 느낌이 들긴 했다. 하지만 가슴이 커진 건 온전히 마법의 정액 효과가 발현됐기 때문이었다.

샤워를 마친 정음은 브래지어를 하면서도 크기가 확실히 달라진 걸 실감했다. 후크를 채우는 데 이전과 달리 상당히 타이트한 느낌이 든 것이다. 마치 생리 직전 가슴 안에 몽울이 져 빵빵해졌을 때보다 더 조이는 느낌이었다.

'지, 진짜 커졌나 봐. 신기해라.'

순진한 정음은 그때까지도 가슴이 커진 이유가 도훈이 알려준 운동 때문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효과를 발휘하는 마법의 정액으로 인해 정음의 가슴은 현재 꽉B에서 C정도로 커진 상태였다.

정음이 탈의실에서 옷을 입고 있는데, 막 운동을 끝내고 온 경희가 속옷을 입은 그녀를 발견했다.

"어, 육정음. 밖에서 기다려 같이 가자. 금방 씻을 게.”

"응. 경희야.”

경희는 모처럼 짬을 내 교내 헬스장에 들른 참이었다. 정음의 옆 록커에서 경희가 운동복을 훌훌 벗기 시작했다.

'와···. 경희 피부 엄청 탔구나.'

경희는 대회 준비로 계속 땡볕에서 훈련을 했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난 피부와 속피부가 제법 차이가 나는 편이었다.

"이상하지?”

"응?”

"아니 피부톤이 속살이랑 많이 달라서.”

"운동 때문에 어쩔 수 없잖아.”

"어쨌든 심사에 감점 사유가 될 것 같아서 주말에 태닝하기로 했어.”

"태닝?”

"응. 인공 태닝기에 들어가는 거. 희주도 같이 가기로 했는데 너도 갈래?”

공교롭게도 미스 국성에 출전하는 두 사람이 모두 태닝을 한다는 소리에 생각도 않고 있던 정음도 솔깃했다.

"그거 하면 좋아?”

"음, 나는 피부톤 맞추려고 하는 거고···. 희주 걔 말로는 원래 보디 빌딩하는 사람들은 다 하는 거래. 훨씬 근육이 선명하게 보인다나?”

"희주는 근데 피부가 엄청 하얗잖아?”

"그래서 더 컴플렉슨거 같더라고.”

러시아 혼혈인 희주는 피부가 창백할 정도로 하얀 편이었다. 피부톤이 제법 밝은 편인 정음에 비해서도 한 단계 더 밝았다.

"음···. 난 잘 모르겠어.”

"뭐, 안 내키면 말고. 사실 나도 티나지만 않으면 안하고 싶은데, 팔다리랑 몸이랑 워낙에 차이가 나서.”

경희를 그렇게 말하면서 훌렁 속옷까지 벗었다. 경희도 가슴으로는 체육과 내에서 빠지지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방금 전 자신의 가슴을 확인했던 정음은 뭔가 위화감이 들었다.

'엇? 나랑 크게 차이가 안나는 것 같기도.'

"암튼 밖에서 좀만 기다리고 있어? 내가 편의점에서 바나나 우유 사줄게.”

"으, 응.”

경희가 샤워실로 들어간 뒤에도 정음은 한참 동안 탈의실에 서서 자신의 몸매를 확인했다.

'확실히 커졌어. 경희랑 비교해보니까 더 잘 알겠어.'

정음은 노력의 성과가 따르는 것같아 자기도 모르게 기쁘게 미소 지었다. 다음에 도훈이 보면 더 좋아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 * *

"완전 어이 털렸다니까 진짜?”

집으로 돌아온 미리가 비싼 구두를 현관에 아무렇게나 벗어 던졌다. 그녀는 저녁을 굶는다며 곧바로 자기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몸을 던졌다.

"난데없이 후배들이랍시고 소개시키는데, 하-. 진짜 일부러 나 맥이는 것도 아니고.”

미리는 집에 오기 30분 전부터 통화하던 고등학교 때 친구와 계속 수다를 떠는 중이었다.

-혹시 그 오빠 너한테 관심 있는 거 아냐?

"뭐래. 미친년이.”

미리는 친한 친구에 욕설을 내뱉으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입은 웃고 있었다.

-아니. 아무래도 이상하잖아. 너한테 유난히 틱틱거린다면서?

"틱틱 거리는 정도가 아니야. 무슨 안중에도 없다는 듯 행동한 다니까?”

-그러니까. 남자들 일부러 그러는 거 있어. 관심보이면 괜히 속마음 들킬까 봐 겉으로 츤츤거리는 거. 난 오히려 그게 더 수상한데?

"정말 그런가?”

늘 위로를 해주는 친구와 통화를 해서 그런지, 하루 종일 기가 꺾여 있던 미리는 점점 행복회로를 돌리는 중이었다.

'듣고보니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혹시 그 오빠···.'

-맞다니까? 너랑 밀당하는 거? 꺄하하하하, 윤미리 완전 임자 만났네?

"임자는 무슨. 내가 남자한테 휘둘릴 사람으로 보이니?”

-지금 엄청 휘둘리고 있구만 뭘. 너 솔직히 그 오빠한테 관심있지?

친한 친구가 무심결에 한 질문에 미리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갑자기 도훈의 잘생긴 얼굴이 떠오르면서 심장이 빨라지고, 얼굴이빨개지는 것이었다.

"아, 아니야.”

-맞네. 뭘. 너도 관심 있으니까 나한테 30분 째 하소연 하는 거 아냐. 너한테 안 친절하다고.

"아니라니까? 그냥 좀 짜증나서 그랬어.”

-생각해봐. 그게 아니면, 뭣하러 너 만나는 자리에 일부러 여자 후배들 불렀겠어? 딱 보니까 질투심 유발이네.

"음···. 그런가?”

-내가 볼 때 그 오빠도 너한테 마음은 있는 것 같아. 이번에 파티룸 잡고 조모임 하기로 했다며?

"응.”

-그럼 그냥 숙박으로 끊어 버리는 게 어때? 다른 조원 집에 보내고 나중에 둘이서 진짜 파티를 시작하는 거지.

"뭐, 뭐래. 미쳤나봐. 내가 그 오빠랑 단둘이 모텔에 남아서 뭐 하라고?”

-뭐하긴? 남녀가 모텔에서 할 게 그짓밖에 더 있니? 꺄하하하!

친구가 계속 놀리는 통에 미리의 얼굴이 뜨거워졌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