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397화 (1,364/2,000)

1380. 대학 축제-5-

* * *

깨톡을 확인하자 익명의 사람이 보낸 쪽지였다.

제 이름을 쓰지 않고 익명으로 바꿀 수 있는 오픈채팅방으로 나를 초대한 것이었다.

??? : 오늘 끝나고 볼래요?

나는 곧바로 핸드폰을 덮었다.

'누구지?'

[자기 이름으로 안 보내고 굳이 익명을 사용한 걸 보면 누군가가 장난을 치는 게 틀림없군요.]

'장난이라.'

분명 의도가 있다고 생각했다.

'날 시험하고 있군.'

[시험이라뇨?]

'여기 있는 여자애들 전원 로테이션 멤버잖아. 영철이 빼면.'

[그렇죠. 요일별로 번갈아 만나고 계시죠.]

'근데 굳이 이름을 숨기고 쪽지를 보냈다? 이건 백퍼 나를 떠보는 거야.'

[뭘 떠본다는 말씀인가요?]

'내가 자기말고 다른 여자애들하고 따로 만나는지 확인하려고.'

[아앗, 그런 발칙한.]

'그치? 꽤 발칙한데? 이럼 내가 누군지 모를 줄 알고?'

난 바로 마음의 소리 스킬을 쓸까 하다가 일단 짐작해보기로 했다.

'소거법으로 우선 찾아볼까?'

[소거법이라뇨?]

'내가 지금 답장을 보내면 핸드폰을 확인하는 사람이 있을 거 아냐. 걔가 곧 범인이지.'

[오, 역시 똑똑하십니다.]

난 몰래 테이블 밑으로 핸드폰을 내린 다음 익명의 상대에게 답장을 보냈다.

도훈 : 누군데 너?

빠르게 답장을 보낸 뒤 매의 눈으로 8선녀 전체를 훑었다. 동시에 여럿을 관찰해야 했지만, 보통 사람보다 동체시력이 월등히 좋은 나에게 있어선 크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부르르-

??? : 제가 누군거 같은데요?

답장이 다시 오는 순간까지 걸린 시간은 도합 1분여.

그리고 그 사이에 폰을 만지고 있던 사람은 모두 넷이었다.

'희주, 경희, 서현, 나연 중 하나인가?'

[나연양이랑 연두양은 둘이 같은 화면을 보고 있던데요? 아까부터 무슨 코스프레 의상 검색해 본다고.'

'어쩌면 그게 위장일지도 모르지.'

[아, 그럴지도.]

'근데 네 말대로 나연이를 제외한다면 경희, 희주, 서현 셋중 하나라는 뜻이겠군.'

셋이 남자 일차적으로 희주를 배제했다.

'아무래도 희주는 아닐 것 같아.'

[왜요?]

'저번에 집까지 찾아가서 달래줬잖아. 근데 벌써 요구하는 건 선 넘은 거지.'

[그럼 경희양이랑 서현양 중 한 명일까요?]

'후보를 압축했으니 둘만 확인하면 되겠네.'

나는 마음의 소리를 이용해 경희의 속마음을 떠보았다.

{이번 미스 국성대회만큼은 정음이를 꼭 이겨야겠어. 솔직히 정음이가 나보다 운동신경은 뛰어날지 몰라도 몸매는 내가 더 낫지 않나?}

경희의 속마음을 확인한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안중에도 없고 정음이만 신경 쓰고 있는데?'

[그래 보이네요. 하긴 두 사람은 오래된 라이벌 이니까요.]

'라이벌이라기 보다는 모짜르트와 살리에르같은 관계겠지.'

[그럼 누가 모짜르튼가요?]

'그야 당연히 몸 천재 정음이고.'

[아무튼 이제 남은 후보는 서현양 뿐이군요. 예전에 스토킹을 했던걸 생각하면 가장 유력하긴 합니다만.]

나도 로시의 말에 동의하며 서현의 속마음을 읽었다.

{오빠가 돈을 너무 많이 써서 미안해 죽겠어. 어떻게 해서든 이번 체육과 주점을 흑자로 남기고 말거야.}

서현의 속마음을 읽은 난 당황했다.

'어랍쇼? 둘 다 아닌데?'

[그럼 뭐죠? 설마 또 희주양일까요?]

나는 확인을 위해 다시 답장을 보냈다.

-도훈 : 누군지 몰라도 나 이런 장난 별로 안 좋아한다.

다시 답장을 기다리는데 이번엔 누구도 폰을 만지는 사람은 없었다. 그 와중에도 다시 답장이 날아왔다.

-??? : 아앗, 죄송해요 주인님. 그냥 장난치려고 한 건데.

'주인님이라고?'

[허어, 민주양인거 같군요.]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학과실 문이 벌컥 열리면서 민주가 들어왔다. 양 손엔 유명 커피숍에서 산 커피 트레이가 들려있었다.

"짜잔!"

"앗, 조교 선생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

갑작스러운 민주의 등장에 후배들이 환호했다. 손에 든 커피 트레이를 보니 진작부터 음료를 주문하고 기다렸던 모양이었다.

"우리 체육과 후배님들이 열심히 축제 준비를 하는데 선배가 돼서 가만있을 수 있나. 퇴근하는 길에 잠깐 들렀어."

"와아!"

"조교샘 센스 짱이다!”

"뭘 좋아할지 몰라서 이것저것 골라 시켰으니까 알아서들 나눠드시고.”

안 그래도 후식이 필요하던 차에 커피가 오자 다들 좋아하는 눈치였다. 영철이 나서서 커피를 받아 나눠주는데 민주가 나를 향해 말했다.

"도훈이가 회장일에 참 열심이구나."

"아닙니다. 이번엔 후배들이 주도적으로 하고 있어요."

'괘씸한데? 민주가 감히 나를 떠보다니. 그러면서 모르는 척 연기하는 거 봐.'

[주인님이 하도 안만나줘서 그런 거 아닐까요?]

'그랬었나?'

[8선녀들이야 로테이션 때문에라도 주기적으로 만났지만 2학기 들어 민주 양을 거의 방치하듯이 했잖습니까?]

'방치는 무슨? 내가 누구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박회장 집까지 쳐들어갔는데?' 사실 박회장에 대한 대리복수로 이어진 시발점은 바로 민주에게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녀의 외삼촌이 민주네 유산을 꿀꺽하려고 변호사랑 짜고 맞선을 주선했는데 그 외삼촌을 골탕먹이기 위해서 타짜로 위장해서 한방 먹인 적이 있었다.

그와중에 미쓰리라는 다방레지 한명을 알게 되었고, 그때 도움을 준 미쓰리의 부탁을 받고 대리 복수를 감행한 것이었다. 덕분에 미션도 몇 개 해결하고, 결과적으론 엄청난 부자가 되었지만.

'생각해보니까 미쓰리한테 돈 좀 쥐어줘야 겠다.'

[그 다방 레지요?]

'어. 복수도 복수지만, 어쨌든 인생이 꼬여서 아직까지 몸 팔고 다니잖아. 새출발할 수 있는 자금 정도는 쥐어줘야지. 덕분에 부자가 된 셈이니까.'

[그것도 일종의 기부군요.]

'그렇다고 봐야지?'

"학과 행사를 위해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니 선생님은 무척 기쁘구나. 혹시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렴. 내가 물심양면으로 도울게.”

민주는 특히 '물심양면'을 말할 때 나를 쳐다보며 힘을 주어 말했다. 몸도 마음도 다 주겠다는 뜻이겠지?

"네, 조교 선생님."

민주는 커피만 전달해주고 학과실을 나가면서 나한테 씽긋 웃어 보였다. 감히 나를 시험하려 들다니. 오늘 혼내줘야겠군.

* * *

도훈은 회의가 끝나자 곧바로 민주에게 연락했다.

"너 어딘데?"

-아앗 주인님. 답변이 없으셔서 바로 집으로 왔는데.

"장난해? 당장 튀어와.”

-아, 아앗. 어디로 갈까요?

민주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반응을 봐선 도훈이 불러주기만 목 빠지게 기다렸던 눈치였다.

"음···. 학교는 좀 그렇고, 너네집 가는 길에 공원 하나 있지? 대숲길 있는 곳.”

-네, 네 주인님.

"거기로 10분 안에 튀어와. 복장 엄수하고.”

-보, 복장이라면···.

"오피스 룩에 커피색 스타킹.”

-아, 아앗. 10분이면 갈아입을 시간이···.

"말하는 동안 20초 지났네?”

뚝-

도훈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너무하신 거 아닙니까? 거리만 봐도 족히 10분은 걸리겠는데요.]

'나를 골탕 먹였으니 똑같이 해주는 거야.'

[그래도 좀 심하신 것 같은데.]

'민주는 압박감을 느껴야 흥분하는 타입이야. 바짝 조여야 한다고.'

[아···.]

도훈 역시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대나무로 오솔길을 만든 공원은 도심 한가운데 위치했다. 주변에 공원 주차장도 있어서 젊은 연인들의 밀회코스로 애용되는 곳이었다.

문제는 국성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기에 대학생들도 도보로 자주 드나든다는 것이었다.

'민주가 체육교육과 조교라는 걸 아는 학생을 만나면 곤란하니 위장을 해야겠는데.'

[그럼 대머리 가발을 다시?]

'장난해? 그냥 모자 쓰고 마스크 쓰면 그만이야.'

도훈은 인벤토리에서 변장 도구를 꺼내 마스크를 쓰고 야구모자를 눌러썼다. 얼굴의 반 이상을 가렸으니 아는 지인을 만나도 알아채기 힘들 것이다.

주차장에 도착해 5분쯤 기다리자 누군가 급하게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민주 차네.'

[어이쿠. 저러다 사고 나겠습니다.]

'어쨌든 늦었지.'

민주는 차를 대충 구석에 주차하더니 급하게 뛰어내려 도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차 안에서 대강 지켜보니, 도훈이 시킨대로 흰블라우스에, 검은색 H라인 스커트를 입고 하이힐을 신은 모습이었다.

회사에서 막 출근한 오피스 걸처럼 무척이나 세련되고 도회적인 매력이 넘쳤다.

'크, 민주는 역시 오피스룩이 잘 어울린단 말이지.'

"5분 늦었네.”

-아, 아! 주인님 신호도 무시하고 밟았는데.

"어쨌든 늦었네.”

-죄송해요 주인님. 주인님이 시키신 복장을 갖춰 입다 보니까···.

"지금 내 앞에서 변명하는 거야?”

-아니에요, 주인님. 민주가 잘못했어요.

"잘못했지?”

-네, 주인님 어디 계세요?

민주가 도훈의 차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도훈은 그녀를 더욱 곤란하게 만들 계획이었기 때문에 호락호락 응해주지 않았다.

"나 찾지마.”

-네, 네? 주인님 그게 무슨 말씀···.

"한 번만 더 고개 돌리면 나 그냥 집으로 간다.”

-아, 앗!

주차장 한가운데서 수화기를 든 민주가 얼음처럼 굳었다.

"그럼 이제 벌을 받아 볼까?”

-미, 민주를 혼내 주세요 주인님.

도훈은 어떻게 하면 민주가 흥분할지 생각했다. 선선한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산책하러 나온 시민들이 간간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수치심에 흥분하는 타입이니까 수치스럽게 만들어야지.'

"강민주.”

-네?

"지금 그 자리에서 빤스 내려.”

-패, 팬티를요?

"입 아프니까 두 번 말하게 만들지 말고.”

-주, 주인님 근데 사람들 돌아다니는데···.

"나 집에 갈까?”

-아, 아니에요! 주인님 바로 내릴게요.

도훈이 차 안에 숨어 훔쳐보는데 주차장 한가운데 서 있던 민주가 쭈뼛거리며 좌우를 살폈다.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간혹 보였기 때문에 시선을 피하기 위해 무척 신경쓰는 모습이었다.

도훈이 쩔쩔매는 민주를 재촉했다.

"금테 둘렀어?”

-네, 네?

"무슨 빤스 쪼가리 한 장 내리는데 그렇게 뜸을 들여? 진짜로 가?”

도훈이 위협을 위해 시동을 켰다.

부르릉-

핸드폰 너머로 시동 걸리는 소리가 들리자 민주가 조급해졌다.

-버, 벗을게요. 지금 바로!

민주가 급하게 팬티를 잡고 쑥 내렸다. 발목까지 내리자 하이힐때문인지 균형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렸지만, 끝낸 팬티를 모두 벗어내는 민주였다.

-버, 벗었어요!

"다음부턴 빨리빨리 지시에 따르라고. 맘에 안 들면 그냥 가버릴 테니까.”

-네, 네··· 주인님.

노팬티가 된 민주는 점점 수치심이 이는지 목소리가 흥분되가 시작했다.

'저럴 줄 알았다니까? 민주에게 쾌감이란 여러 사람들 앞에서 수치사 당하는 걸 거야.'

[너무 부끄럽겠는데요.]

'아직 멀었지.'

"팬티만 벗으니 재미없네. 위에 브라도 벗어.”

-브래지어를···.

"10초 준다.”

-주인··· 아니, 지금 벗을게요!

민주가 급하게 블라우스 앞 단추를 풀었다.

다행히 눈 앞을 지나가는 사람은 없었지만, 언제 누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뻥 뚫린 장소였다.

서둘러 단추를 풀어낸 민주는, 앞쪽에 달린 버클을 풀어 브래지 어를 해체했다. 도훈은 젖가슴이 덜렁거리는 장면을 보며 속으로 씩 웃었다.

'흐흐. 민주 완전 젖었겠는데.'

[근데 상의를 탈의하지 않는 이상 브라를 완전히 제거하긴 어려울텐데요···.]

'그거야 민주가 해결할 일이고.'

민주가 다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브라를 빼내려는데 갑자기 주차장 입구로 헤드라이트를 켠 차가 진입했다. 놀란 민주가 화들짝 앞섶을 여미고 돌아섰다.

그 모습을 본 도훈이 차갑게 말했다.

"10초 끝나버렸네.”

-아, 아앗 주인님 방금은···.

"아까부터 자꾸 변명하는 태도가 마음에 안 들어.”

-죄송해요 주인님, 일부러 그런 게 아닌데.

"너 거기 딱 서있어.”

도훈이 통화를 끊고 차문을 열고 나갔다. 모자에 마스크까지 썼지만, 호리호리한 체형으로 보아 누가봐도 도훈이었다.

그는 어쩔 줄 모른 채 주차장 한가운데 선 민주의 뒤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허리를 한 팔로 껴안으며 귓속말했다.

"대숲길 쪽으로 걸어 자연스럽게.”

"아, 아앗 주인님!”

민주는 도훈을 보자 반갑게 맞이했지만, 도훈은 일부러 냉정한 표정을 유지하며 민주를 산책로로 인도했다.

두 사람은 연인처럼 꼭 붙어 걸었다. 노팬티에 브라까지 풀어해 친 민주는 도훈과 나란히 걷는 것만으로 부쩍 흥분해 버렸다.

도훈이 그 기색을 알아챘는지 허리를 감아쥔 손을 위로 뻗어 민주의 젖가슴을 와락 움켜쥐었다.

"하아! 주, 주인님!”

"감히 나를 시험해? 니가?”

"아, 아니에요.”

"아니라니? 그럼 오픈톡으로 왜 채팅 보냈는데?”

"그, 그냥···.”

"그냥? 장난해 나랑? 응?”

도훈은 더욱 세게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애무라기엔 너무나 거친 손길. 하지만 그럴수록 민주는 더더욱 흥분해갔다. 젖가슴에 빨간 손자국이 남을 정도로 강하게 쥐는데도 누가 볼까봐 밑이 젖어버리는 것이었다.

"하, 아앙, 주인님···.”

"왜? 내가 1학년 후배들이랑 만날까봐서?”

"그, 그건···.”

"내가 누굴 따먹고 다니든 무슨 상관인데?”

"흐, 흐응.”

"그건 내 자유 아니야? 내 좆대로 한다는데 네가 왜 신경쓰냐고?”

"흐, 흐흑···. 주, 주인님.”

"말해봐. 합당하면 봐주고, 괜한 질투면 가만 안 둘 거야. 내가 그런 거 질색한다고 분명 경고 했을텐데?”

젖꼭지를 꼬집힌 민주가 울먹이며 말했다.

"미, 민주도··· 민주도 주인님 잦이를···.”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