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396화 (1,363/2,000)

1379. 대학 축제-4-

* * *

도훈과 영철이 담배를 피우러 1층으로 내려간 사이 집행부 회의가 잠시 중단되었다. 학과실에 모인 1학년 여학생들은 서로 담소를 나누며 휴식 시간을 가졌다. 아까부터 핸드폰을 보고 있던 경희가 정음을 향해 물었다.

"이거 괜찮아 보여?”

"뭔데?”

"이번 미스 국성에 입고 나갈 의상인데···.”

정음은 경희가 보여준 모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위로는 탱크탑 스타일 브라에 아래는 몸에 쫙 달라붙는 레깅스였기 때문이었다. 눈을 어디에 둘지 몰라 정음이 민망해하며 말했다.

"오, 옷은 꼭 그런 걸 입어야 해?”

"몸매를 과시하는 대횐데, 당연히 이 정도는 입어줘야 하지 않을까?”

경희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정음이 의상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위는 완전 속옷이나 마찬가지고, 아래는 팬티 자국 다 비칠 것 같은데···.'

어떻게 상상해도 너무나 민망한 의상이었다. 정음이 조심스럽게 경희에게 의견을 제시했다.

"음···. 이 옷은 근데 속옷 자국이 보일 것 같아.”

"팬티 말이야? 당연히 T팬티 같은 걸로 입어야지.”

"뭔데, 뭔데?”

T팬티 이야기가 나오자 옆에 있던 희주까지 관심을 보였다.

그녀는 경희가 미스 국성에 나갈 의상을 고르는 중이라고 밝히자 덩달아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럴 거면 차라리 노팬티가 낫지 않나?”

"헉! 아, 안 입는다고?”

"오히려 입으면 Y존이 더 부각 될 수 있으니까.”

"그, 근데 그러면··· 음···.”

정음은 속옷을 안 입고 레깅스를 입으면 도끼 자국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함께 신청서를 낸 경희와 희주는 그게 무슨 대수냐는 듯 대화를 이어갔다.

"너 피트니스 대회 나가는 여자들이 뭐 입는지 몰라서 그래?

아예 비키니처럼 빤쓰만 입고 나간다니까? 비키니 라인 제모 싹해서 팬틴지 천쪼가린지도 모를 정도로 미니 사이즈로 말이야. 그에 반해 이 정도면 나름 절제한 거라고.”

"으, 으으!”

"희주 넌 뭐 입을 건데?”

"난 돌핀 팬츠. 최대한 짧은 걸로.”

"아! 그거 괜찮네. 위는?”

"크롭티로 하려고. 대신 라운드가 깊이 파인 걸로 입어야 가슴 골이 부각될 것 같긴 한데.”

희주가 장난스레 자기 가슴을 두 손으로 모으며 위로 들어 올렸다. 아무리 여자들끼리만 있다고 해도 민망한 동작에 정음이 시선을 돌려 외면했다.

"아, 대회 직전에 마법 걸리면 좋겠다.”

"왜?”

"그래야 가슴도 더 빵빵해 질테니까.”

"꺄아, 미쳤어. 양희주!”

경희와 희주가 죽이 맞아 깔깔거렸다. 의상에 대해선 전혀 생각을 안 하고 있던 정음은 고민에 빠졌다.

'다들 저렇게 과감하게 입는구나. 나는 그냥 운동복 입고 나가려고 했는데···.'

정음은 여름방학 수영 캠프에서도 혼자서 래시가드를 입었을 만큼 노출을 꺼리는 편이었다. 몸매에 자신이 없다기보다 모르는 사람에게 몸매를 드러내는 데 극심한 부끄러움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정음이 너도 대회 출전하지?”

"으, 응. 어쩌다 보니.”

"입고 나갈 옷은 준비했어?”

"아, 아니. 아직은···. 음. 난 그냥 체육복 입으려고 했는데···.”

"뭐?”

"와하하! 야, 진짜 대회 나가는데 추리닝이 뭐니, 추리닝이.”

"아, 아니 추리닝까진 아니고···. 도장에서 입는 반바지랑 반팔 티 있거든.”

"그거나 그거나? 그러지 말고 내가 골라줄게. 같이 한 번 볼래?”

희주는 정음을 위해 노출이 심한 의상 몇 개를 보여주었다.

주로 가슴이 깊이 파이거나 허벅지에 찰싹 달라붙어 몸매를 부각하는 의상들이었다. 정음은 사진으로만 보는데도 스스로 입은 모습을 상상하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어휴, 난··· 힘들 것 같은데, 소화하기가.”

"왜 그래? 너 몸매 좋잖아?”

"아, 아니야.”

희주나 경희는 1학년 여학생 중에서도 상당한 글래머였다.

물론 끝판왕인 서현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그녀는 그냥 타고나 길 컸다.-둘 다 씨컵 정도의 훌륭한 볼륨을 자랑했다.

그에 비해 정음은 꽉 찬 B 정도. 아무래도 두 사람에 비교하면 살짝 꿀리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뭘 아니야. 너처럼 탄탄한 애가 어딨다고.”

"맞아. 정음인 나도 인정.”

두 사람이 정음을 추켜세웠지만, 정음은 도리어 경희와 희주가 자신보다 몸매가 예쁘다고 생각했다. 전국대회를 준비하는 경희는 자연 태닝 된 까무잡잡한 피부에 탄력 넘치는 글래머였고, 희주는 한국인 같지 않은 새하얀 피부에 '신내바'라 불릴 만큼 비율이 좋아 진짜 모델처럼 느껴졌다.

'흐음. 운동 더 열심히 해야겠다. 도훈 오빠한테 가슴 커지는 운동 같은 거 있는지 물어봐야지.'

세 사람이 한참 미스&미스터 국성 대회에 관련해 이야기를 나누는 한편, 아영과 서현은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심각한 얘기를 하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예산이 너무 빠듯해.”

"다른 과는 어떻게 준비하는데? 다 비슷한 사정 아냐?”

"아닐걸. 1년 예산이 학생 수 대로 정해져서 나오잖아.”

"학생회비?”

"응. 근데 우리과는 작년에 축제 관련 예산을 거의 편성을 안해놨지 뭐야. 다른 예산을 당겨썼다간 2학기 행사 전체가 흔들릴지도 모르고. 어휴, 작년 총무를 누가 했던 거지?”

"그럼 도훈 선배가 얼마나 빌려주는 거야?”

서현은 남들 귀에 들어가지 못하게 조용히 아영에게만 금액을 밝혔다. 별생각 없이 웃고 떠드는 다른 동기들과 달리 아영은 성격이 신중하고 진지했기 때문에 얘기가 통할 것 같았다.

"···흠, 좀 많은 거 아냐?”

"그러니까. 아까 내가 따로 나가서 말씀 드렸거든. 이렇게까지할 필욘 없다고. 아무리 회장이라도.”

"근데?”

"오빠가 다 괜찮다더라고. 돈 걱정 말고 일단 쓰라면서.”

"흐음. 오빠가 몽땅 자비로 충당한 생각일까?”

"뭐, 그럴 생각인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아.”

아영은 도훈의 근사한 2층 저택을 떠올렸다.

'집만 보면 굉장히 잘사는 것 같긴 한데···. 근데 그 집은 운 좋게 싸게 들어간 거라지 않았나?'

이성적인 아영은 도훈이 뭔가를 숨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대학생인데 차도 있고···. 저번에 군대 가는 동기들한테 비싼 전자시계 하나씩 사준 것만 봐도 돈이 없어 보이진 않던데··· 설마?'

아영이 내린 결론은 도훈이 상당한 재산을 물려 받은 부잣집 아들인데, 일부러 숨기는 것 같다는 추측이었다.

'하긴 그럴지도 모르지. 저번에 집에 갔을 때도 가전제품 같은 게 비닐도 안 뜯은 새것이었잖아. 전 주인이 맡겨놓고 간 것이라고 둘러대긴 했는데, 아무리 봐도 최근에 산 거였어.'

아영은 도훈이 뭔가를 숨기고 있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증거가 없었기 때문에 좀 더 캐볼 생각이었다.

'잘생긴 오빠가 돈까지 많다고 소문나면 여자들 더 달라붙겠는데. 흠. 피곤해 피곤해.'

"암튼 그래서 우리 주점이 무조건 대박나도록 계획해야 돼.”

"완판 시키자는 말이지?”

"당연하지. 술은 물론이고 안주까지 싹 다. 그러러면 우리 애들이···.”

서현이 동기들을 쳐다보았다.

왼쪽부터 정음, 경희, 희주. 그리고 오른쪽에 나연, 연두, 효민.

자신과 대화 중인 아영까지.

하나같이 다른 과로 전과하면 에이스 소리를 들을 정도의 미모의 재원들이었다. 집행부의 총무이면서 동시에 실질적인 브레인이라고 할 수 있는 서현은 어떻게 해서든 도훈에게 부담을 덜어주고 싶었다.

'우리 과가 가진 강점은 바로 여자애들이야. 결국엔 저 애들로 얼마나 많은 손님을 끌어들일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될 거야.'

두 사람은 계속 예산을 가지고 씨름했다.

한편 나연과 연두는 아까부터 코스프레 의상에 열중이었다.

두 사람은 학과가 어떻게 굴러가는 지에 대해선 관심도 크게 없었고, 그저 시키면 열심히 할 생각 뿐이었다.

어찌보면 속없이 태평하다고 할 수 있었고, 반대로 생각하면 뇌가 청순한 편이었다.

"와! 나 이걸로 할래.”

"뭔데? 이거 그 총싸움 게임아냐?”

"응. 오바와치. 거기 나오는 송한나라는 캐릭이야.”

"봐봐. 오! 몸매 새끈한데?”

"괜찮지? 총은 물총으로 바꿔서 지나가는 남자들 한 번씩 쏘면 재밌겠다.”

"물총을 쏘겠다고? 그냥 길 가는 사람한테?”

"왜, 쏭크란이라는 태국 축제에서도 아무한테나 물 뿌리잖아.

그런 거랑 비슷한 거지.”

"물 총 맞은 사람이 짜증내면?”

"히히, 이렇게 섹시한 연두가 윙크 한 번 날려주면 다들 기분 풀어지지 않을까?”

듣고 있던 효민이 갑자기 토할 것 같은 시늉을 했다.

"윽, 나 지금 토해도 돼?”

"효민이 뭐야 그 반응! 섭섭하게.”

효민은 최근들어 나연두와 자주 어울리는 편이었다. 처음엔 둘사이에 약간 꼽사리처럼 꼈는데, 이제는 셋이 죽이 맞아 농담도 거리낌 없이 하곤 했다.

"하긴 호객행위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기분 나빠하지 않을 것 같기도.”

"그치그치? 효민이 넌 코스프레 뭐 할 건데?”

"음, 나는 그냥 캣우먼 같은 거 할랬는데.”

"캣우먼이면 물광 전신 타이즈? 어우 야, 그거 몸매 다 드러나는데….”

"왜? 나 정도면 괜찮지 않아?”

"나연이는 뭐할거야?”

"나 스노우 프린세스.”

"그게 뭐야?”

"에잇, 무식하긴. 백설공주 말이야.”

"무슨 니가 공주야. 무수리면 모를까.”

"무수리는 에바지. 여기서 나만큼 공주 코스프레 잘 어울릴만한 사람 누가 있는데?”

연두가 좌중을 돌아보더니 한명을 지목했다.

"저기 아영이.”

"아-.”

평소 동기들 사이에서 얼음공주라 불릴만큼 차갑고 도도한 아영이었기에 나연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어 인정. 아영이는 엘사 하라고 해.”

"겨울왕국?”

"흐흐, 코스프레 짱 재밌겠다.”

"암튼 난 무조건 야한 옷으로 할 거야.”

"미쳤나봐. 그렇게 남자 꼬시고 싶어?”

"그게 아니라 할로윈 축제 같잖아. 언제 그런 옷 또 입어 보겠어?”

세 사람이 꺄르르 떠드는데 도훈와 영철이 음식을 들고 들어왔다. 1층에서 배달원을 만난 두 사람은 음식을 직접 받아서 올라온 것이었다.

"회의고 뭐고 밥먹고 하자!”

"와아!!!”

테이블 위가 싹 다 치워지고 배달음식이 주르륵 깔렸다.

도훈이 돈을 아끼지 않고 시켰기에, 단순이 짜장 짬뽕 뿐만 아니라 탕수육에 군만두, 팔보채에 라조기까지 없는 테이블 위가 넘치도록 음식이 쌓여갔다.

"오빠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니에요?”

"회장님 최고!”

"충성할게요, 회장님!”

출출했던 차에 진수성찬이 차려지자 다들 환호성을 질렀다. 정신없이 음식을 세팅하는 데 정음이 걱정스럽게 귓속말했다.

"…선배. 제가 좀 보탤까요?”

도훈이 무리한다고 생각하고 음식값을 보조하겠다는 소리였다.

엄청난 갑부가 된 도훈에게는 귀여운 제안이었다.

"아니야. 괜찮아, 정음아.”

"그래도…. 너무 많이 시키신 것 같은데.”

"이미 계산했어.”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영철이 자기도 모르게 떠들었다.

"야야, 걱정 마 도훈이 형 코인 대박…. 아, 아차차.”

"코인?”

"무슨 소리에요 영철 오빠?”

영철은 방금 전 발설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곧바로 깨뜨렸다는 생각에 자기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이 오히려 주의를 끌며 계속 여학생들이 물어왔다.

"도훈 오빠 코인 했어요?”

"진짜? 그 비트 코인 말이야?”

도훈은 잠시 영철을 원망하는 표정을 지어보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 자식 말하지 말라니까.”

"혀, 형 죄송해요.”

그리고는 궁금해하는 후배들을 향해 설명했다.

"그냥 우연히 코인에 돈을 넣어놨는데, 좀 많이 올랐어. 그래서 그런 거야.”

"정말요? 수익률이 얼만데요?”

"와, 주변에 코인으로 대박난 대학생 이야기는 들었는데 도훈오빠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구나!”

"종목 좀 찍어주세요. 도지 가나요?”

도훈의 예상대로 코인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사방이 시끌시끌했다. 도훈은 의도대로 되었다는 생각에 속으로 안도했다.

"궁금한 사람은 나중에 차차 설명해 줄테니까, 일단 밥이나 먹자.”

"네, 오빠!”

'역시. 갑작스레 돈을 벌었다고 한다면 코인이 최고지.'

[근데 주인님은 코인은 전혀 안하시지 않습니까?]

'알게 뭐야. 누가 내 계좌 까볼 것도 아니고.'

[그래도 누군가는 보여달라고 하지 않을까요?]

'하긴 그런가? 나중에 조금만 넣어둬야 겠다.' 다들 맛있게 식사를 하는데 아영이 묘한 표정으로 도훈을 쳐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코인이라고? 전혀 예상 밖인데.'

아영은 코인에 대해서 조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도훈의 변명이 뜬금없다고 여겼다. 보통 코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5분도 못 쉬고 핸드폰으로 계좌를 들여다 보는 것에 반해, 도훈은 최근 몇 달간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수상해. 그냥 다른 걸로 돈 벌로 코인이라고 둘러대는 것 같기도. 나중에 직접 물어봐야 겠어.'

체육과 일원들은 도훈이 쏜 식사를 배터지게 먹었다. 식사가 끝난 후 다들 진이 빠져 그릇도 제대로 못 치울 정도였다.

영철은 아까 도훈의 비밀을 실토했다는 사실이 미안했는지 스스로 나서서 그릇을 정리했다.

"형, 다시 한번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됐어 인마. 앞으론 너한테 절대 비밀 말 안해야겠다.”

"아앗, 형.”

도훈이 영철을 놀리고 있는데, 갑자기 도훈의 폰으로 깨톡이 하나 들어왔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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