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395화 (1,362/2,000)

1378. 대학 축제-3-

통화를 끊고 난 도훈은 2층 테라스로 나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이제는 마법을 부리듯 공중에서 담배 한 개비를 자연스럽게 낚아채는 도훈이었다. 뭔가 재미난 생각이 난 도훈은 다시 허공으로 손을 쑥 집어넣더니 한참 뭔가를 뒤적거렸다.

[뭐하시는 겁니까?]

'아니. 예전부터 부자 되면 꼭 해보고 싶은 게 생각나서.'

[그게 뭔데요?]

'잠시만 기다려봐. 이게 이쪽이 맞을 텐데. ···찾았다!' 도훈이 아공간에서 꺼낸 것은 100$ 짜리 지폐였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벤자민 플랭클린의 얼굴이 새겨진 고액권.

도훈은 이번에 새로 배운 전격 마법을 이용해 엄지와 검지 손가락 사이에 조그만 스파크를 일으켰다. 파직! 하는 사운드와 함께 손가락 사이에 푸른색의 뇌전의 기운이 생겨났다.

처음엔 조절이 잘되지 않는지 기운이 자꾸 바깥으로 뻗어나가기 일쑤였지만, 도훈이 정신을 집중하자 손가락 사이에 불이 들어온 퓨즈를 쥔 것처럼 정교한 형태의 스파크가 생성되었다. 푸르다 못해 허옇게 빛나는 뇌전의 기운이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오호, 이렇게 컨트롤 하는 거군.”

도훈이 스파크 사이로 100달러 지폐를 밀어 넣자 지폐가 순식간에 불꽃을 일으키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도훈은 불타는 지폐를 황홀한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담배에 불을 붙였다.

[지,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왜? 100달러짜리 담배 피우잖아. 캬, 이런 맛이구나.'

[아니 돈이 아무리 많아도 그렇지···. 지금 태우고 계신 게 원달러 환율로 10만원 넘는 돈 인건 알고 계시죠?]

'알지. 그게 어때서? 아공간 창고에 차고 넘치는 게 돈인데.'

[아니, 그래도···.]

'그냥 한번 해보고 싶었던 거야. 죽을 때까지 다 쓰지도 못할 만큼 큰돈이 생기면 말이야.'

[자중하시기 바랍니다. 쉽게 얻은 돈이라도 귀하게 쓰셔야죠.]

'알았어. 딱 한 번만 해본 거래도.' 담배 한 개비에 10만원 넘는 돈을 홀랑 태운 도훈이었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이젠 라이터도 필요 없게 되었다면 히죽거리는 중이었다.

'그나저나 박회장 건에 너무 매달렸더니, 체육과 회장으로서 책무에 너무 등한시했던 것 같네. 1학년 후배들이 나 몰래 주막 축제를 기획하고 있었다니.'

[이제라도 아셨으니 다행이죠. 주인님 본분은 어찌 됐건 대학생입니다. 대머리 과외 선생이 아니고요.]

'대머리 분장은 두 번 다신 안 할 거야. 머리카락 없다고 괄시받은 거 생각하면 진짜···. 암튼 그래도 후배들이 알아서 움직여주니 너무 좋군.'

[학회장 날로 먹는다는 소리로 들리는 건 제 착각이겠죠?]

'물론 그럴 순 없지. 일단 내일 만나서 지금까지 진행된 상황 들어보고 나서 직접 진행하려고.'

다음날 학교를 마친 도훈은 국어과 학과실로 집행부 후배들을 불러 모았다. 8선녀와 더불어 영철까지 9명의 후배가 모두 모이자, 1학년 과대를 맡은 정음이 중간브리핑을 읊었다.

"···일단 여기까지 진행했어요. 선배한테 미리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저희들 멋대로 해서 죄송해요.”

설명을 끝마친 정음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오히려 내가 미안해. 축제까지 일주일 남았는데, 학회장씩이나 되가지도 신경을 많이 못 썼네.”

"아니에요. 지난번에 조교 선생님께서 원래 2학기 집행부는 1학년들이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그러셨어요. 회장님은 대외적인 행사에 나서기도 바쁘시다고.”

'저번에 민주가 후배들 기강을 단단히 잡아 놨구나.' 도훈은 민주에게 새삼 고마움을 표하며 중요한 사항에 관한 논의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최우선적으로 결정해야 할 건, 주점에 들어갈 술의 종류랑 메인 안주의 선택이라는 거지?”

"네. 코스프레용 복장들은 남은 기간 알아서 준비하는 걸로 하고요.”

"주류 업체 관계자 미팅은 누가 맡기로 했어?”

"저랑 효민이요.”

서현이 번쩍 손을 들었다.

"어디까지 얘기됐는데?”

"오늘 오전 통화해 봤는데, 외상은 힘들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작년에 윤리교육과가 적자가 나서 외상값 받는데 꽤 애먹었다나?

아무튼 이번엔 무조건 선불로 계산할 거라고요. 대신 이문 없이 도매가로 넘겨주는 조건으로.”

"흠, 그래? 술값을 얼마를 잡아야 하지?”

"여기 문자로 받은 단가표가 있는데 한번 보실래요?”

서현이 핸드폰으로 온 문자를 도훈에게 보여주었다. 브랜드마다 소폭 다르긴 했으나, 맥주나 소주는 마트에서 구하는 금액보다 살짝 비싼 수준이었다. 이를 본 희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금 도매가라면서? 이건 우리 동네 마트보다 더 비싼 것 같은데? 학생이라고 괜히 후려치는 거 아니야?”

희주의 의문에 아영이 대신 대답했다.

"아니야. 그 가격이 맞을 거야. 원래 주류는 소매가보다 도매가가 더 비싸거든.”

"왜?”

"업소용은 세금이 다르게 붙는 걸로 알고 있어. 그래서 가정용이 더 싸다고.”

"아니 그러면 마트에서 그냥 박스로 사는 게 낫지 않나? 뭐하러 주류업자랑 직접 거래해요? 더 싸지도 않을 거면?”

희주의 주장이 그럴싸했기 때문에 몇몇이 동의 차원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번엔 정음이 대답했다.

"음, 원래 일반소비자용 주류를 떼다 팔면 불법이래. 그런 걸로 몇 번 민원이 들어와서, 축제 담당 관계자도 주막 운영에 있어서 그 부분을 가장 강조하더라고. 문제 생기지 않으려면 꼭 정식업체랑 계약하라면서.”

"흠. 누가 그런 걸 신고한대? 자기들도 싸게 먹으면 좋잖아. 우리가 무슨 이문을 크게 남기고 팔지도 않을 건데.”

"학교 축제에는 대학생만 오는 게 아니라 그런가 봐. 졸업한 선배들도 오고, 동네 주민들도 오고, 다른 학교에서도 오고 그러니까.”

잠자코 대화를 듣고 있던 도훈은 결론을 내렸다.

"축제 주막 운영하면서 굳이 불법을 저지를 필욘 없지. 학교에서 정한 방침대로 하는 게 좋겠다. 뒷말 안 나오게.”

"근데 오빠···. 다른 게 아니라 외상도 안된다고 하고 주문해야 하는 최소 물량도 상당해요. 저희 예산으로는 안주 재료 확보하기도 빠듯한데.”

서현이 난처한 듯 말했다. 아무래도 선불로 지급해야 할 금액이 크다보니 타이트한 예산에 압박이 큰 모양이었다. 총무를 맡은 서 현으로선 당연히 보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예산이 얼마나 되는데?”

"그게···.”

서현은 다른 학생들에겐 들리지 않게 핸드폰에 적어 도훈에게 보여주었다. 굳이 총액을 감추는 이유는, 다른 학생들에게 살림살이의 빠듯함을 공개하지 않으려는 이유인 듯했다.

도훈이 숫자를 확인하더니 속으로 씩 웃었다.

'음, 고작 몇 백 가지고 벌벌 떨고 있었던 거야?'

[대학생에겐 당연히 적은 돈이 아니지 않을까요? 주인님 대학 시절을 떠올려 보면···.]

'물론 이해는 가지. 가장 쓰고 싶은 것 많지만 돈 없을 때가 대학 시절이라고들 하잖아. 근데 이게 단순히 돈 문제라면 고민할 필요가 조금도 없잖아. 물주가 여기 있는데.'

도훈은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돈으로 해결하는 게 가장 손쉽고 간단하다는 신조를 가지고 있었다.

"술을 선불로 사는 게 예산이 부족한 문제면 일단 내 돈으로 먼저 낼게.”

"오, 오빠.”

"아니 회장님 그러실 필요까지는···.”

"그냥 집행부에서 각출해서 모으는 건 어떨까요?”

도훈이 총대를 멘다는 소리에 후배들 전원이 만류했다.

그들이 보기에도 몇백은 족히 들어가는 데다, 혹시나 주점이 망할 경우 회수도 안 될 자금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학회장이라고 해도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할 순 없다는 생각이었다.

다들 도훈이 회장으로서 책무 때문에 무리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도훈은 다른 것도 아니고 돈 몇백에 쩔쩔매는 게 더 피곤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100달러 짜리 지폐로 담뱃불을 붙이고, 5만원권으로 똥도 닦을 수 있는 그였기에 더욱 그랬다.

"아니야. 이럴 때 회장이 나서는 거지. 너희들은 예산에 관해선 신경 쓰지마.”

"그래도 오빠 혼자 다 책임 지는 게 어딨어요?”

"맞아요, 그럼 저희가 마음이 불편해서···.”

도훈은 쉽게 설득될 것 같지 않아 거짓말을 했다.

"실은 최근에 이사하면서 보증금이 좀 남았어. 딱히 어디 쓸데도 없고 그냥 통장에 들고만 있는데, 이럴 때 요긴하게 쓰면 좋잖아. 안 그래?”

듣고 있던 아영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제시했다.

"저···. 오빠. 최소 요구량은 환불 안된다는 조건 알고 계시죠?

저희 주점 잘 안되면 오빠 혼자 독박 쓰는 거예요.”

"괜찮아. 너희들이 이렇게 열심히 해주는데 못 팔고 남기진 않을 것 같아서.”

"서, 선배···.”

"그래, 애들아 우리 열심히 하자.”

"맞아. 우리가 열심히 해서 완판 시키면 되지.”

도훈의 희생(?)으로 집행부 후배들의 결속이 더욱 단단해졌다.

물론 돈에 관해서라면 도훈은 얼마든지 지출해도 조금의 타격도 없었다.

"그럼 안주가 남았나? 메뉴로 나온 게 뭐뭐있지?”

"어묵탕이랑 수박화채요.”

"마른 안주랑 오징어 구이도 있어요.”

"나 계란말이 가능한데.”

"저도 도울게요.”

도훈은 9명의 후배들의 역할부터 나눠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기서 요리 좀 해본 적 있는 사람?”

도훈의 물음에 희주와, 아영, 그리고 서현과 경희가 손을 들었다. 도훈은 자신이 직접 먹어본 결과 자취를 오래한 희주가 가장 적격일 것 같았다.

"희주가 대표로 주방 맡는 걸로 하고, 나머진 같이 도와줘.”

"네.”

"나머진 서빙?”

"네.”

"영철이는 남자애들이랑 테이블 차리고 치우는 거 해. 남는 애들은 설거지 돕게 하고.”

"저, 테이블 임대도 해야 하는데….”

대학 축제 때 임시로 여는 주점이지만, 준비할 부분의 의외로 많았다. 도훈은 오랜 회사 생활을 경험으로 후배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며 예산지원을 맡았다.

돈에 조금도 구애받지 않는 모습에 총무인 서현이 난처해졌다.

"오빠, 저랑 따로 잠시만 얘기할 수 있을까요?”

"어.”

학과실 밖으로 나간 서현은 도훈에게 사정을 얘기했다.

"오빠. 술값이 외상이 안 되면서 주점 꾸릴 예산이 많이 빠듯한 상황이에요. 오빠도 보시면 알겠지만 그렇게 무조건 오케이 하시면….”

"서현아.”

"네?”

"그냥 해.”

"아니 그게 아니라 제가 계속 계산을 하고 있는데….”

"괜찮으니까 그냥 해. 부족하면 얼마든지 나한테 말하고.”

"오빠 돈으로 하는 건 너무 위험해요.”

"걱정 마. 손해볼 생각은 조금도 없으니까.”

도훈은 자신의 지갑사정을 걱정해주는 서현이 고마웠다.

다시 학과실로 돌아온 도훈은 회의를 마치고 후배들에게 말했다.

"식당 움직이긴 힘들 것 같아서 아까 짜장면 집에 주문해 놨어.

곧 올테니까 저녁들 먹고 가.”

"정말요?”

"언제 또 주문까지 하셨데요?”

"오빠. 이건 회비로 해요. 제가 괜히 오빠한테 저녁 쏘라고 했나봐요.”

"괜찮다니까 그래.”

도훈은 연신 괜찮다고 말하며 영철과 함께 건물 밖으로 나갔다.

"영철이랑 담배나 한 대 피우고 올게.”

함께 바람 쐬러 나온 영철도 도훈을 걱정했다.

"형.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니에요? 부족한 돈을 형이 다 메꾸면…. 저희야 좋지만 형이 많이 힘드실 것 같은데요.”

도훈은 계속되는 후배들의 걱정에 조금 피곤해졌다.

현금만 수백억 있다는 말을 차마 할 수가 없었기에 뭐라 설명하기가 마땅치 않았던 것.

'흐음, 안 되겠는데. 돈 있는 티는 안내려고 했는데 오히려 해명을 못하니 더 피곤하네. 뭔가 방법을 찾아야겠어.'

도훈은 영철의 입이 싸다는(?) 것을 이용하기로 했다.

"영철아 이건 너한테만 얘기하는 건데.”

"네, 형.”

"실은 내가 비트코인을 좀 사둔게 있거든.”

"코, 코인요? 형 그런것도 관심있어요?”

"응. 아까 말한 대로 이사할 때 보증금이 좀 남았는데 은행 예금에 넣기는 뭐하더라고.”

"아…. 그럼 그걸다….”

"어. 아무거나 몰빵해서 넣어뒀는데 5배쯤 오른 거야.”

"헉! 다, 다섯배요?”

"암튼 그래서 그런 거야. 요새 좀 여유가 있어.”

"형 진짜… 와. 그런 것 있으시면 저도 좀 알려주시지.”

"몇달 전만 해도 코인이 이렇게 터질 줄 몰랐잖아. 그리고 이건 리스크가 커서 괜히 주변 사람에게 추천할 게 못 돼. 나도 운 좋게 벌었지만, 쪽빡 찰 수도 있는 일이고.”

"그렇긴 하죠.”

"암튼 애들한테는 말하지 말고. 알았지?”

"네, 형.”

[영철군이 정말 말하지 않을까요?]

'안 한다고 하면서 입이 근질거려서 결국 몇 명에게 말하겠지.

그럼 일주일 안에 학과에 소문 싹 퍼질걸?'

[영철군을 이용하는 셈이군요.]

'여자친구도 만들어 줬는데, 그 정도는 써먹어도 되지 않아?'

[그건 사실상 방생….]

"여자친구랑은 잘 지내?”

"아…. 히히, 덕분에요. 요새 사이 좋아요.”

"그렇다면 다행이네.”

"아참, 다음에 한 번 형이랑 같이 식사나 하자던데 시간 괜찮으세요?”

"나랑?”

"네.”

'무슨 꿍꿍이지?'

[주인님을 골탕먹이려는 건 아니겠죠?]

'설마 그렇게 까지 하겠어.'

"뭐 시간되면.”

"그래서 축제 때 부를까 해요.”

"축제때?”

도훈은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지만, 사촌동생이라고 뻥을 쳤는데 마다하기도 뭐해서 대충 얼버무렸다.

"그래, 뭐 봐서 축제 때 부르는 걸로.”

"어, 형 배달한 음식 도착한 것 같아요.”

마침 오토바이 한 대가 철가방을 들고 사범대 1층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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