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394화 (1,361/2,000)

1377. 대학 축제-2-

* * *

사건이 있은 후로부터 사흘 뒤.

도훈은 하나의 짧막한 사고 기사를 접했다.

양평의 한 별장이 화재로 전소되면서 다수의 인명피해가 발생했다는 내용이었다. 사망자는 상당한 재력가였던 박모 회장과 그의 경호원들로 밝혀졌다. 소방 당국에선 누전으로 인한 발화를 화재의 원인으로 지목했고, 오래된 목조건물에 불이 옮겨붙는 바람에 잠결에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전원이 사망에 이르렀다고 추정했다.

기사를 접한 도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씨가 나름 깔끔하게 마무리했구나. 이제 저들은 어떻게 되지? 나처럼 염라대왕 앞으로 끌려가는 거야?'

[네. 그리고 전생의 지은 죄에 따라 경중을 따질 겁니다. 셋 다 지은 악행이 많으니 지옥행이 예상되는군요.]

'그러게 착한일 좀 하고 살것이지. 쯧쯧.'

[주인님은 좀 괜찮으십니까?]

'뭐가?'

[처음으로 손에 피를 묻히셨으니까요,]

도훈도 태어나 처음 사람을 죽이게 된 셈이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을 수도 있는 사건.

'며칠 좀 께름칙했는데 이젠 괜찮아.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면 도리어 내가 반으로 쪼개졌을걸? 날 죽이려 한 놈한테까지 동정을 배플 필욘 없지. 내가 무슨 성인군자도 아니고.'

[별 지장 없다면 다행이고요.]

'솔직히 가상현실에서 미리 체험하지 않았다면 그때 무척 망설였을거야. 아무리 무공을 익혔다고 해도 사람에게 살수를 펼친다는 건 맨정신으론 힘든 일이거든.'

[안 좋은 꿈을 꿨다 여기십시오. 어쨌든 주인님 의도대로 미션도 해결하고, 박회장의 유산도 혼자서 꿀꺽 하셨으니까요.]

사건이 발생한 다음날 도훈은 미리 연결해둔 마법의 문고리를 타고 금고로 되돌아갔다. 그리고는 그곳에 쌓여있는 모든 현금을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어차피 박회장이 죽은 이상 금고를 열 방법이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들킬 염려도 없었다. 결과적으론 주인 없는 돈이니까.

'혼자서 꿀꺽은 아니지. 어차피 박회장은 서울에 빌딩을 몇채씩 가진 건물주였다고. 부동산 비중이 훨씬 많았을 걸? 그건 모두 지수가 물려받을테니.'

[어쨌든 개인으로선 상상할 수도 없는 거금이잖습니까? 더 이상 돈에는 연연하지 않아도 될 만큼이요.]

'그 중 절반은 계획대로 기부할 거야.'

[어디에요?]

'그건 차차, 고민해 봐야지. 아무곳에나 덜컥 기부했다가, 나쁜 놈들 배만 채워줄 순 없는 노릇이니.'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나저나 이제 사건도 마무리 되었으니 스킬북을 펼쳐볼 때가 된 것 같은데.'

도훈은 앞선 박회장의 대리 복수를 성공하며 복수의 신 미션을 달성했다. 박회장을 직접 처단한 것은 그의 부하였던 고스케였지만, 결과적으론 도훈이 일조한 바가 컸기 때문에 미션이 완성된 것이었다.

복수의 신 미션 보상은 3개의 스킬 강화 특전.

도훈은 이미 사흘 전 미션 성공 보상에 대한 알림을 받았으나, 최대한 신중히 결정하기 위해 선택을 보류한 상태였다.

[그렇다면 유리양 미션을 해결하고 받은 랜덤 스킬북을 먼저 열어보셔야 맞지 않을까요?]

'맞다. 그것도 있었지?' 중간에 돌발미션을 받은 '보디가드의 봊이가드를 해체하라' 미션 보상은 랜덤 스킬북. 당시엔 박회장 미션 해결이 먼저라서 마찬가지로 보상을 먼저 받고 묵혀둔 상태였다.

혹시 무슨 스킬을 받을지 몰랐기 때문에 도훈은 먼저 랜덤 스킬북을 펼쳐 보기로 했다. 만약 새로 받게 된 스킬이 쓸모가 있다고 판단되면, 복수의 신 미션으로 받게 된 스킬레벨업을 거기에 사용하는 편이 효율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좋아. 한번 까보자.'

도훈은 스마트워치를 조작해 랜덤박스를 화면에 띄웠다.

어떤 스킬이 나올지 몰라 간만에 두근두근 거렸다.

[누르시면 스킬이 공개됩니다.]

'알았어.'

도훈이 박스를 누르자 상자가 열리는 그래픽과 함께 새로운 랜덤 스킬이 공개되었다.

*전격강화(3Lv)

-당신의 몸에 1만 볼트의 전기가 흐릅니다.

-내공을 전격속성으로 발출할 수 있게 하는 스킬입니다.

-내공이 바닥나기 전까지 전격속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다음 스킬레벨로 올리기 위해선 400포인트가 필요합니다.

-다음 스킬레벨에 도달하면 전격을 유지하기 위한 효율이 10% 증가합니다.

-다음 스킬레벨에 도달하면 전격의 전압이 2배로 상승합니다.

랜덤박스로 스킬을 열어본 도훈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전격강화라고? 이게 뭐야?'

[주인님의 내공을 전기적 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는 스킬입니다. 공격 보조스킬 중 하나랄까.]

'잠깐, 난 클래스가 섹선데? 근데 공격 스킬이 나왔다고?'

[원래 랜덤 스킬북은 어떤 스킬이 나올지 예상 못 합니다. 그나마 써먹을 수 있는 스킬이 나온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합니다. 잘못하면 쉐프처럼 고기굽기 같은 어처구니 없는 스킬이 나올 때도 있으니까요.]

'아니 차라리 그게 이것보단 나아보이는데? 몸에 전기가 흐른다니, 내가 무슨 블랑카도 아니고.'

[네?]

'암튼 이거 평소엔 써먹지도 못할 스킬 같은데?'

스킬을 받아든 도훈의 표정이 실망감으로 역력했다. 로시가 그런 도훈을 위로했다.

[물론 주인님에게 해당 스킬은 크게 와닿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당연한 거 아냐? 지금 무공만으로 UFC헤비급 챔피언도 때려 눕힐 수 있다고. 근데 주먹에 전기가 흘러봐야 어디다 쓰겠어?'

[주인님께서 무공을 익히신 목적을 까먹으신 것 같군요.]

'까먹다니 당연히···. 아차, PK단.'

[그렇죠. 해당 스킬을 일반인을 상대로 쓸일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앞으로 PK단을 상대할 땐 어떤 스킬보다 유용하게 쓰일 수 있죠.]

'맞다. 그 생각은 못했네. 아주 쓸모 없는 건 아니구나.'

[한번 시험해 보시겠습니까?]

'그래. 언제 써먹을지는 모르지만, 사용법은 익혀둬야지.' 도훈은 내친김에 강화 실패 가능성이 없는 5레벨까지 스킬 레벨을 올렸다. 두단계 더 강력해진 전격 스킬은 이제 4만볼트의 전기를 내뿜게 되었다.

'스킬 개방.'

[넵.]

도훈이 주먹을 쥐고 전격 스킬을 발휘하자 그의 주먹 주위로 푸르스름한 뇌전이 맺히기 시작했다. 설명만 봤을 땐 몰랐는데 비주얼 효과가 무시무시했다. 마치 오래전 오락실에 봤던 풍신류 캐릭터들의 기술 같았다.

'오옷, 이거 생각보다 엄청나잖아? 지금 내 주먹에 4만볼트 전기가 흐르는 거지?'

[네. 어지간한 사람은 닿기만 해도 바로 기절해 버릴 겁니다.]

'장난아닌데? 근데 이거 내공이 쭉쭉 빠지는 느낌이네.'

전격 스킬은 도훈이 가진 내공을 전기적 에너지로 치환하는 스킬이었다. 연료를 태우는 방식과 비슷했기 때문에 무한히 사용하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현재 내공 소모로 계산해 볼 때 전격 스킬의 유지 시간은 대략 20분 가량으로 추정됩니다.]

'20분? 너무 짧은 거 아냐? 그 안에 승부를 못 내면 오히려 내공이 먼저 소진된다는 소리잖아? 내공이 없어지면 무공도 쓸모가 없는데?'

[맞습니다. 그러니 꼭 필요한 순간에만 아껴 쓰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음, 일단 알겠어. 그나저나 이 스킬을 레벨업 할필욘 없을 것 같군.'

[제 생각에도 그렇습니다. 그래봐야 무공 스킬을 보조하는 속성마법의 일종이니까요.]

'제일 많이 사용하는 정보창은 결정했는데, 나머지 두 개를 고르기가 참 애매하단 말이야.'

[마음의 소리 스킬은 어떠신지? 그것도 최근 빈도수가 높은 스킬인데요.]

'그건 강화 시켜봐야 거리만 늘어날 것 아냐. 딱히 의미는 없을듯.'

[아니면 섹스 관련 스킬은 어떻습니까?]

'뭐? 커져라 여의봉 같은?'

[그것도 있고요.]

'지금 최대 풀발기가 24cm 였나?'

[맞습니다. 아마 추가로 강화에 성공하면 30cm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도훈은 30cm를 어림하기 위해 30cm 자를 찾아보더니, 곧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건 잦이가 아니라 흉기네. 포기.'

[왜요?]

'물론 외국에는 저 정도 대물을 받아낼 여자가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여긴 한국이고, 내가 공략하는 대상들 대부분은 한국여 성이잖아. 당장 풀사이즈인 24cm까지도 몇번 써먹지도 못했는데 무작정 길이만 늘리는 게 무슨 필요가 있겠어? 쓰지도 못하면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지.'

[그런가요? 음, 그럼 혀컴 스킬이나 듀얼쇼크 같은 스킬은요?]

'무슨 씹창낼 일 있냐? 지금도 충분히 과해. 그런것 말고 강화했을 때 가장 효과가 극대화될 수 있는 스킬은 없을까?'

[모든 스킬은 사용하기 나름이라, 어떤식으로든 강화에 성공하면 도움은 될 것 입니다.]

'싸이코 메트리나 이지선다도?'

[둘 다 가능은 하죠. 훨씬 정교해질 겁니다.]

'아니다. 고생끝에 얻은 스킬 레벨업 기회인데 어쩌다 가끔 쓰는 스킬을 강화하는 데 투자할 순 없지. 차라리 백보신권 스킬이 낫겠다.'

[무공 스킬에 말입니까?]

'응. 무공도 스킬의 일종이잖아. 백보신권 하나만 투자해도 거기 딸린 세부 스킬들도 동시에 강화되는 거 아니야?'

[음, 세부 스킬은 별도의 성취도가 있으므로 따로 강화가 되진 않습니다. 하지만 백보신권이 강화되면 내공소모도 같은 부분은 개선이 되겠지요.]

'차라리 그게 낫겠다. 애매한 스킬에 투자하느니 무공이라도 올리는 게. 그럼 정보창이랑 백보신권은 정했고, 나머지 하나만 정하면 되겠군.'

도훈은 고민하다 답이 안나오는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혹시 스킬강화도 한 번에 3개를 다 골라야 하나?'

[그건 아닙니다.]

'그렇다면 두 개만 미리 업그레이드하고 나머지 하나는 유보해 둬야겠다. 나중에 더 좋은 스킬을 받을지도 모르니까.'

[그것도 괜찮은 방법 같습니다.]

'좋아. 그럼 복수의 신 보상으로 받은 스킬레벨업으로 정보창스킬과 백보신권을 강화시켜줘.'

[알겠습니다. 백보신권도 마저 5레벨 까지 올린 뒤 모두 8레벨까지 스킬을 강화하겠습니다.

잠시 후 스킬 강화에 성공했다는 문구가 스마트 워치에 나타났다. 도훈이 변경사항을 확인하려는데 불쑥 전화가 걸려왔다.

"응? 서현이가 이 시간에 웬일이지?"

학교를 마치고 저녁 9시가 다 되었기 때문에 후배 서현의 전화는 조금 뜬금없었다.

"여보세요? 서현아 왜."

-오빠. 늦은 시간인데 죄송해요. 애들하고 단톡방에서 얘기하다가 오빠한테 물어보고 결정해야 할 것 같아서요.

"응. 말해."

알고 보니 서현은 개인적인 용무가 아닌 학교 축제 때 운영키로한 주막에 관련해서 대표로 전화를 건 모양이었다. 1학년 과대는 정음이지만, 아무래도 서현이 가장 똑똑하고 말주변이 좋다보니 총대를 멘 느낌이랄까.

-축제 때 저희과 말고도 주막을 많이 연다고 들었거든요. 저희 사범대에서만 주막 운영하는 학과가 거의 5개는 넘는다고요.

"그랬어?"

-네. 까딱 손님들이 분산되면 본전도 못 건질수도 있다고···.

제 친한 친구가 윤리교육과에 있는데 작년에 주막 열었다가 쫄딱망해서 올해는 과에서 안하기로 했다는 거예요.

"흐음. 그 생각은 미처 못 했네."

-그래서 1학년 집행부 애들끼리 의견을 좀 나눠봤거든요. 컨셉을 확실히 정해서 하면 어떻겠냐고요.

"컨셉이라니?"

-그냥 단순히 주막만 열어선 개성이 없으니까, 여자애들이 의상컨셉을 잡고 서빙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요.

서현이 거론된 의상컨셉을 열거했다.

-일단 교복이랑···.

"잠깐 교복이라니?"

-아, 저희 작년에 졸업했잖아요. 찾아보면 다들 집에 고등학교 때 입었던 교복이 있을 것 같아서요.

"술 먹는 주점에 여고생 컨셉은 좀 아니지 않나? 물론 성인이긴 한데 남들이 보기엔 부적절할 것 같기도 하고."

-음, 물론 이건 의견 중 하나에요. 오빠가 들어보시고 결정해 주세요.

"그래. 또 뭐 있는데?"

-두 번째는 치어리더 컨셉이에요.

"백퍼 나연이랑 연두 의견같은데."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암튼 체육과 특징에 맡게 치어리딩복장을 입고 서빙을 하는 거죠. 가끔 응원곡 틀어서 실제로 치어 리딩 시범도 보이고요.

"교복보단 낫긴 한데, 노출이 좀 심하지 않을까?"

-오빠. 어차피 저희과 강점이 그거잖아요. 1학년 여자애들이 물 좋은 거. 강점을 밀고 나가야죠.

"아니···. 너도 우리과 1학년 여자애인데 스스로 그런말 하면 민망하지 않아?"

-아, 암튼. 그렇다고요. 맞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있어요.

"뭔데?"

-코스프레요.

"코스프레?"

-네. 게임이나 영화같은 데서 나오는 캐릭터로 분장하는 거예요. 가량 캣우먼이나 블랙 위도우, 아니면 겨울왕국에 나오는 엘사같은.

도훈이 곰곰이 들어보니 나름 괜찮은 아이디어로 보였다. 코스프레는 꼭 의상이 야할 필요도 없고, 남학생들도 컨셉을 잡기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게 제일 나은 것 같은데?"

-정말요? 사실 저도 코스프레가 가장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벌써부터 집행부들 끼리 준비하는거야?"

-벌써라뇨. 축제까지 일주일 남았는데요. 당장 내일부턴 안주로 낼 메뉴 준비하고, 주류업체 관계자랑 미팅도 해야 하는데요.

"으잉? 거기까지 진도가 나갔다고? 회장인 나 빼고 너희들끼리 추진하고 있는 거야?"

-정음이가 오빠 많이 바쁜 것 같다고 이번엔 1학년들끼리 주축으로 해보자고 해서요. 언제까지 선배들한테 신세질 순 없다면서.

"나 참. 그래도 회장도 모르게 일을 진행하냐. 미안하게."

-미안하면 낼 애들한테 밥이라도 한 끼 사요. 요새 바쁘다고 얼굴도 안 비치시면서.

도훈은 차마 돈 세느라 정신없었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이제 바쁜건 끝났어. 오케이. 그럼 내일 수업 끝나고 집행부모이라고 해. 그간 진행된 상황도 듣고, 저녁이나 같이 하자고."

-아싸! 약속 어기지 마요,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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