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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393화 (1,360/2,000)

1376. 대학 축제-1-

* * *

대략 1시간 전, 도훈이 금자와 유리와 한참 뒤엉켜 있던 시각.

도훈은 섹스 중에도 계속 벽시계를 힐끔 거렸다. 최철우가 말한 습격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흐음, 지금쯤 쳐들어올 때가 됐는데···.'

도훈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빠르게 두 사람을 절정으로 몰아갔다. 도훈의 인정사정없는 박음질에 유리와 금자가 정신줄을 놓고 쓰러졌다.

두 사람을 보내(?)버린 도훈은 예민한 청각을 이용해 귀를 기울였다. 내공으로 강화된 그의 청력은 집중하면 벽을 뚫고 수십 미터 거리의 소리까지 청음이 가능했다.

'별채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데?'

세 사람이 뒤엉켜 있는 게스트 룸과 별채까지는 상당한 거리였기 때문에 보통 사람은 들을 수 없는 수준의 소리였다. 하지만 도훈은 이를 감지해냈고, 잠시 화장실 간다는 핑계를 대고 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빠른 속도로 별채까지 내달렸다.

'싸우는 소리군. 놈들의 습격이 벌써 시작된 건가?'

시간을 확인해보니 아직 자정에 이르기엔 20여분이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영문을 알지 못한 도훈은 저번처럼 처마 끝에 박쥐처럼 매달려 환기구로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저건 김씨랑 만석이잖아?'

헬스 기구가 잔뜩 쌓인 운동 룸에 두 사람이 대치 중이었다. 만석은 아령을 들고 김씨는 날카로운 칼을 들고 있었는데, 칼의 생김새로 보아 일식집에서 쓰이는 사시미로 보였다.

'뭐하는 거지?'

[놈들이 배신에 참여하지 않았던 김씨부터 먼저 제거하려는 게 아닐까요?]

'그런가 본데. 근데 왜 나머지는 안 보이지?'

현재 상황은 1:1의 대치 구도였다. 둘 다 신중한 자세로 거리를 벌린 채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도훈은 괜히 끼어들었다가 혹시나 금고를 열지 못하게 될까 봐 잠자코 지켜보았다. 힘을 드러내는 순간은 무조건 최후로 미뤄야 했다.

'플레이어한테 착한 사마리안 법 같은 건 없지?'

[그게 뭡니까?]

'구제가 필요한 상황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처벌받는 규정 말이야.'

[딱히 그런 건 없습니다. 능력을 이용해 불필요한 위력을 가하거나 협박이나 심신 미약 같은 항거 불능을 상태에서 미션이나 업적을 해결하는 경우에만 문제가 됩니다.]

'맞다. 현행법을 추종한 댔지? 어차피 착한 사마리안법은 우리 나라에 없으니까.'

[아무튼 100프로까지는 아니지만, 대충 법에 저촉된다고 판단되면 안 하시는 게 좋긴 합니다.]

'그럼 살인은?'

도훈은 가상현실에서는 수도 없이 살인을 해보았지만, 현실에서는 아직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궁금해 물었다.

[당연히 안되지요. 그건 100% 징계 대상입니다.]

'하지만 정당방위에 의한 건 상관없잖아?'

[정당방위라 할지라도 쓸데없는 과한 보복이면 제재를 먹을 수 있습니다.]

'가령 주먹으로 맞았는데 상대를 죽인다던가하는?'

[네.]

'그럼 내가 실제로 살해 위협을 받는 상황이면 문제없다는 거네.'

[그렇죠. 그건 현행법에서도 마찬가질 겁니다. 상대가 명백한 살해 의도가 있는 경우라면 면책사윱니다.]

'오케이 알겠어.' 도훈이 태평하게 로시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두 사람이 뒤엉키기 시작했다. 머리를 향해 떨어지는 아령을 재빨리 피해낸 김씨가 사시미 칼로 만석의 복부를 빠르게 찔렀다.

푹-

'어라? 만석이 칼 맞았는데?'

[그치만 그 바람에 김씨도 붙잡힌 것 같은데요?]

만석을 찌른 김씨는 칼을 회수하지 못했다. 만석이 복근에 힘을 꽉 주면서 칼날을 물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동시에 김씨의 허리를 곰처럼 붙들었다.

'완전 미친놈이네 저거. 설마 같이 죽자는 건가?'

[칼에 찔렸다고 즉사하는 건 아니니까요.]

허리를 붙들린 김씨는 고통에 발버둥치며 박힌 칼을 휘저었다.

장기가 헤집어지는 상황에서도 만석은 끝까지 팔을 풀지 않았다.

허리를 꺾어 버릴 심산인 것 같았다.

"으으! 이 괴물 새끼!"

"으으…. 말했지 내가? 혼자 죽지 않겠다고!"

처절한 칼부림 끝에 둘 다 바닥으로 쓰러졌다. 만석은 온 몸에 피칠갑한 채 과다출혈로 인해 현장에서 즉사했다. 반면 김씨는 허리 쪽에 심대한 타격을 입긴 했지만, 죽진 않고 잠시 기절한 모습이었다.

'결국 김씨가 이긴 것 같군.'

[하지만 그도 전투 불능 상태입니다. 나머지 일행들이 온다면 김씨를 확인 사살하겠죠.]

'그래선 곤란하지.'

도훈에겐 김씨의 존재가 필요했다.

그는 재빨리 지붕에서 낙하하며 별채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는 만석의 시체 깔린 김씨의 경동맥을 짚으며 맥박을 확인했다.

'확실히 살아있어. 하지만 이대로 발각된다면 결국 죽게 되겠지.'

[어쩌시려고요?]

'내가 배운 무공을 응용하면 김씨를 가사 상태에 빠뜨릴 수 있을 거야.'

[가사 상태요?]

'죽은 척 위장시키는 수법이지. 나중에 김씨가 꼭 필요할 때가 있거든.'

도훈은 백보신권의 마지막 무공 점혈법을 이용하여 김씨의 맥박을 최대한 늦게 뛰게 만들었다. 1시간 뒤에 풀리겠지만, 당장은 김씨를 죽은 것처럼 위장시킨 것이다.

'됐다. 다시 돌아가자.'

* * *

실제로 1시간여가 지난 김씨가 겨우 눈을 떴다.

"으으, 무거워."

150kg에 육박하는 만석의 시신에 깔려 있던 김씨는 몸을 돌려 겨우 빠져나왔다. 허리가 부러질 듯 아팠지만, 치명적인 부상은 아닌 것 같았다.

"젠장, 돼지 새끼. 죽을거면 곱게나 죽지. 그나저나 지금 몇시지?"

김씨는 시간을 확인하고는 화들짝 놀랐다. 잠깐 정신을 잃었다고 생각했는데 새벽 1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이럴 때가 아니야. 어서 회장님을!"

고스케가 이중간첩 노릇을 하기로 했지만, 자신이 기절하는 바람에 일이 틀어질 것을 우려한 김씨가 재빨리 저택으로 뛰어 들어갔다.

저택엔 기묘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김씨는 불길한 기운을 감지했다.

'뭔가 이상한데? 이렇게 조용할 리가···.'

박회장의 서재에서 들리는 흐느끼는 소리에 김씨가 사시미 칼을 들고 재빨리 달려갔다. 그는 곧 발가벗겨진 유리와 금자가 의자에 묶여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라 시선을 외면했다.

"어, 어떻게 된 거요?"

"도와주세요!"

"고스케가 회장님을 배신했습니다!"

"뭐라고? 고스케가 왜?"

"빨리 지하실로 가보세요. 고스케가 지수 아가씨랑 회장을 데리고 내려갔어요!"

"이런 젠장!"

유리의 다급한 목소리에 김씨가 사시미칼을 꽉 움켜쥐었다. 기절했다가 막 깨어난 김씨는 지금의 사태가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유리와 금자는 왜 발가벗겨진 채 묶여 있는 거야? 그리고 고스케가 배신했다는 건 또 뭔 소린데?'

김씨는 스멀스멀 자신의 불길한 예감이 맞아 드는 것을 느꼈다.

아까 양평의 저택에서도 생각했지만, 박회장의 일망타진 계획은 고스케가 만약 다른 마음을 품을 경우 최악의 자충수로 변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전개된 상황으로 보면 그의 예감이 현실이 된 것 같았다.

'젠장. 유리씨 총이라도 빌려 왔어야 했는데!'

고스케가 배신했다면 그를 정면으로 상대해선 답이 없었다. 하지만 급박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김씨는 날 듯이 지하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그가 금고방에 도착했을 때 마주한 장면을 충격적이기까지했다.

"헉! 이, 이게 무슨 일이야?"

금고 방 안에는 네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칼을 맞아 쓰러진 박회장과, 반 토막 남은 일본도를 들고 죽은 고스케. 그리고 지수와 도훈이었다.

"회, 회장님이!"

박회장은 바닥에 흘린 출혈양으로 보아 보나마나 즉사였다. 김씨는 가장 먼저 지수의 상태부터 살폈다. 다행히 지수는 숨을 쉬고 있었다. 별다른 외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충격으로 기절한 모양이었다.

팬티만 입고 쓰러진 대머리 과외선생도 보였으나 그는 김씨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김씨는 고스케가 어떻게 죽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회장님이 고스케의 칼에 찔려 죽은 것은 확실한데, 고스케는 어떻게 된 거지? 검은 왜 반토막 나 있고?'

"으으···."

그때 신경도 쓰지 않고 있던 도훈이 신음을 내지르며 천천히 깨어났다. 김씨가 도훈을 붙잡고 물었다.

"정신이 들었습니까?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다, 당신도 저 일본인하고 한패는 아니죠?"

"난 회장님 편이요. 어째서 두 사람이 동시에 쓰러져 있는 겁니까?"

"그게···."

도훈은 사건을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고스케의 협박으로 모두 금고 방으로 끌려온 상황에서, 문을 열어준 박회장이 불쑥 고스케를 금고 안에 가두려고 시도했다. 고스케는 다급히 검을 찔러 문이 닫히는 걸 막았으나 그 와중에 검이 두동강 나고 말았다.

"그래서 검이 부러져 있던 거군."

"네."

도훈은 박회장과 합심해서 고스케를 금고 안에 가두려고 했으나 고스케가 힘으로 밀고 나와 도훈을 먼저 가격해 기절시켰다는 내용이었다.

"저는 검자루에 머릴 맞고 쓰러졌습니다. 그 뒤로 어떻게 된 건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데 희미하게 기억나는 장면은 회장님이 부러진 칼날로 고스케를 찌르는 모습이었습니다."

"회장님께서 직접요?"

"네. 그 뒤론 의식을 잃고 말았습니다."

"음···."

도훈의 설명을 대충 들은 김씨는 이어진 상황을 추측했다.

'고스케 정도의 인물이 한방에 죽지 않았을 거야. 아마도 마지막 힘을 짜내서 박회장을 찔렀고, 두 사람이 그렇게 동귀어진 해버린 모양이야.'

한 시간전 자신이 만석과 함께 죽을 뻔한 상황을 떠올리자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했다.

"잠깐. 근데 과외선생 당신이랑 아가씨는 어째서 여기로 오게 된 겁니까?"

"아가씨는 인질이었고, 저는 짐꾼이었습니다."

"짐꾼?"

"네. 금고에 현금이 많은 거라고···. 저보고 실어다 나르라고 해서···."

김씨는 그제야 굳게 닫혀 버린 금고문을 쓱 쳐다보았다. 비번을 알고 있던 유일한 사람인 박회장이 방금 죽어버렸다는 사실도.

'세상에…. 회장님이 지수양에게 금고의 정체를 알려주지 않았다면 저기 든 돈은 어떻게 되는 거지?'

김씨도 이 금고의 장치가 특별하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함부로 열어볼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죽은 시체를 처리하는 게 급선무였다.

"일단 알겠소. 내가 여기를 수습할 테니 아가씨를 데리고 1층으로 올라가 기다리십시요. 아, 그리고 묶여 있던 다른 여자들도 풀어주고."

"네, 알겠습니다."

김씨는 지수를 안고 가는 도훈을 향해 신신당부했다.

"그리고 오늘 본 일은 누구에게도 발설해서 안 됩니다. 무슨 뜻인지 잘 알겠죠? 이건 우리 조직 내부에서 발생한 문제니, 저희들끼리 처리할 문제입니다."

"꼭 명심하겠습니다."

도훈이 1층으로 올라가 다른 여자들을 풀어주며 지하에서 있던 일을 설명했다. 고스케가 죽었다는 사실에 두 사람은 안도했으나, 박회장까지 죽었다는 말에 둘 다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금자는 오로지 박회장의 첩이 되는 목표로 하녀생활을 계속해왔고, 유리는 박회장의 경호원이었는데 졸지에 경호 대상을 잃어버린 꼴이 된 것이었다.

이후 사태는 김씨가 급히 수하들을 불러들여 진두지휘해 사태를 수습했다. 박회장의 밑에는 업장을 관리하는 말단 조직원들이 다수 있었고, 그들에게 있어 김씨는 상당히 높은 존재였다.

더욱이 박회장을 비롯한 최철우 등등이 모두 죽어버리는 바람에 실질적인 조직의 후계자는 박회장의 딸인 지수에게 넘어갔고, 지수를 보좌하는 김씨는 자연스럽게 지휘권을 갖게 된 것이었다.

김씨는 사방에 흩어진 시체들을 수거해 차를 이용해 어딘가로 날랐다. 또한 충격으로 정신을 잃은 지수를 병원으로 실어 보낸후 경호원을 붙여 보호토록 했다.

아침이 되자 사태가 어느정도 일단락되었다.

김씨는 도훈에게 다시 한 번 신신당부했다.

"오늘 일로 충격이 컸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저희 조직에서 수습할 일이니 절대로 경찰에 알리거나 신고해서는 안 됩니다. 무슨 소린 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알겠습니다. 절대 신고안하겠습니다."

"그냥 안 좋은 꿈을 꿨다고 생각하고 다 잊고 사십시오. 그리고 앞으론 지수 아가씨 과외는 더이상 안나오셔도 됩니다."

"지수 학생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가요?"

"…쇼크를 크게 받았는지 여전히 의식을 못 차리고 있다고 합니다. 어쨌든 회장님의 유일한 혈육이니 앞으로 사업을 이어받을지 정리할지 결정해야 할 겁니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제가 보좌할 거고요."

도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군. 김씨 같은 충성스러운 부하가 지수 곁에 있어서.'

[그 때문에 그를 살려두신 겁니까?]

'시체들도 처리해야 하고, 뒷일도 생각해야 하니까. 박회장이 죽고 나면 아직 어린 지수 혼자서 모든 걸 정리할 순 없잖아.'

[역시…. 금자와 유리양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뭐, 그들에게는 내 정체를 들키지 않았으니 이대로 떠나면 될 것 같아. 금자는 박회장이 죽었으니 이곳을 떠나든지 하겠지. 유리도 마찬가지고. 뭐, 둘 다 남아서 혼자 남은 지수를 돕는 방법도 있을테지만.'

[결국 주인님은 노났군요. 미쓰리의 대리복수 미션을 성공하고, 박회장이 남긴 거액의 현금을 몽땅 독차지 하셨으니까요.]

'아직 차지한 건 아니고 마법의 문고리만 연결해 놓은 상태야. 봐서, 돈 찾으러 가야지.'

도훈은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저택에서 빠져나왔다. 유리가 아쉬운 표정으로 쳐다보았지만, 당장은 혼란에 빠진 조직을 수습하는 게 급선무라고 판단했는지 더는 미련을 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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