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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382화 (1,349/2,000)

1365. 여대 잠입-65-

* * *

"오빠 좋아요?"

"으, 으으···. 미치겠어."

오늘도 물론 과외 따윈 없었다.

지수는 책상 밑으로 기어 들어가 열심히 잦이를 빨아 주었다. 남의 돈 받고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다. 돈 받고 서비스도 받고.

"나도 빨아 줄까?"

"괜찮아요. 난 오빠 거 빨기만 해도 좋은 걸요."

지수는 내 잦이를 아이스크림이나 초콜릿 정도의 간식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게 그렇게 맛있나? 음, 남자로선 상상하기 힘든 미감이다.

"아아, 근데 이러다 누가 오면 어떻게 하지?"

맨 처음에는 방문을 열어 놓고 수업을 했다. 괜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였는데, 박회장에게 어느 정도 신뢰를 얻으면서 방문을 닫는 것 정도는 괜찮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문을 걸어 잠글 수는 없었다. 20대 여대생과 40대 중년 남성 사이라도, 엄연한 남녀 사이. 문을 잠그고수업을 한다는 건 누가 봐도 수상하게 여길 것이다.

"누가 오겠어요? 아버지도 이미 외출하셨는데."

박회장은 김씨와 잠깐 어딜 나갔다 온다고 했다.

유리와 또 다른 하녀는 일이 끝나고 진즉 퇴근했을 시간.

이 집에 유일한 훼방꾼은 금자뿐이었다.

[하필 남은 사람이 주인님을 호시탐탐 노리는 금자라서 문제군요.]

'그러니까. 하필 질투심도 많은데 말이야.' 금자는 심지어 지수와의 관계도 의심한 적 있었다. 남녀가 둘이 붙어 있으면 뭔가 사달이 벌어진다고 생각하는 부류로 보인다. 물론 지금의 이 꼴을 보면 금자의 생각이 꼭 틀린 것만은 아니지만.

"오빠, 나랑 있을 땐 원래 얼굴로 있으면 안 돼요?"

"왜? 다른 사람 같아?"

"아니, 꼭 그런건 아닌데···. 오빠 얼굴 제대로 보고 싶어서요."

"음, 특수분장한 얼굴은 당장 고치기 힘들어. 대신 가발은 벗어 볼게."

"정말요?"

나는 곧바로 가발을 벗어 던졌다. 대머리 가발을 벗기자, 원래의 머리가 나타나며 머리 긴 전대협으로 변했다. 여전히 잘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그래도 훨씬 젊어 보인다.

"와, 이러니까 10살은 더 젊어 보여요."

"남자도 머리빨이 은근 크긴 해."

"히히. 나 지금 넣고 싶어요."

책상 밑에 들어가 있던 지수가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속옷도 안 입고 있었기 때문에 곧바로 치마를 걷어 올리더니 의자에 앉아 있는 내 위로 올라타려고 했다. 앉은방아를 찧겠다는 소리였다.

"잠깐."

"왜요?"

"일하시는 분께서 간식을 가져다 줄 타이밍이 한참 지난 것 같은데?"

"오빠 혹시 배고파요?"

"아니 그게 아니고, 지금까지 안 왔으면 곧 들어올 수도 있다는 뜻이잖아."

"아···. 그럼 제가 가서 가져올까요?"

"지수 네가?"

"언니한테 간식 받아오면 이 방에 올 일이 없을 것 아니에요?"

선수를 치겠다는 지수의 생각이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공부하는 학생이 직접 간식을 받으러 가는 건 좀 이상해 보여. 차라리 내가 다녀올게. 너 자습시켜놓고 잠깐 화장실 가다가 들른 것처럼."

"아, 그것도 그렇겠네요."

지수를 설득한 나는 다시 벗어놓은 가발을 뒤집어쓰고 밖으로 나왔다. 천상계 제품은 착용감이 우수해서 마음에 든다. 보기 흉한건 마찬가지지만.

[금자 양이 신경 쓰여서 그러십니까?]

'아무래도 수상해. 진즉 들를 때가 됐는데, 평소랑 달리 너무 조용하니까. 동태 좀 살피고 와야겠어.' 나는 지수의 방에서 빠져나와 핸드폰으로 감시카메라를 확인했다. 저택 구석구석을 비추게 된 카메라가 동시에 여러 곳의 화면을 띄웠다.

'어라? 유리도 아직 서재에 있는데?'

[네? 유리양이 퇴근을 안 했다고요?]

'음, 금자랑 나만 남게 되는 상황을 경계한 것 같은데···. 잠깐, 주방에 이 남자는 또 누구지?'

금자가 있는 주방을 비추는 카메라에 낯선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화면을 확대해 보니 굉장한 거구의 남자였다. 어딘가 익숙한 모습이다.

'이크, 그 야간 경호원이잖아?'

[근육 돼지 말씀인가요?]

'어. 여긴 대체 왜 들어왔지?'

내가 알기론 야간 경호원은 별채에만 주로 기거했다.

그가 저택 안으로 왔다는 사실에서 나는 뭔가 이상한 눈치를 챘다.

'이 새끼들, 오늘 배신한다더니 혹시 사전 작업하러 온 건가?'

[사전 작업이라뇨?]

'저택 안에 뭔가를 설치한다거나 하는···. 잠깐. 이 새끼 지금 뭐하는 거지?'

카메라를 계속 지켜보는데 갑자기 거구의 경호원이 식탁에서 일어나 금자에게 슬금슬금 다가가고 있었다. 수상한 낌새에 나는 재빨리 주방으로 달려갔다. 집이 아무리 넓다고 해도, 나에겐 한 달음이면 내딛을 수 있는 거리였다.

"저···."

갑작스러운 나의 등장에 돌아서 있던 금자가 고개를 뒤로 돌렸고, 금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던 경호원이 당황해하며 허둥거렸다.

"누구요?"

"네? 아, 저는 지수 학생 과외 선생입니다만."

"아···. 난 또 누구시라고."

"왜요? 만석씨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아, 아니 냉장고에서 물 좀 꺼내 먹으려고."

"저한테 달라고 하시지. 근데 선생님께선 무슨 일로?"

"지수 학생이 목 마르다고 마실 것 좀 가져다 달라고 해서요."

"어머, 내 정신 좀 봐. 간식 챙겨드린다는 걸 깜빡했네요. 잠시만요."

금자가 간식거릴 챙기는 사이 만석이라 불리는 경호원이 나를 못마땅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뭐지? 이 새끼 방금 뭔가 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속마음을 읽어 보시는게 빠르지 않을까요?]

'아, 마음의 소리.'

마음의 소리 아이템으로 만석의 생각을 읽었다.

{아씨, 하필 이 타이밍에 저 새끼가···. 금자 자빠뜨리기 직전이었는데.}

만석은 금자를 몰래 덮치려고 했던 것이다.

타이밍 좋게 내가 훼방을 놓은 것이었다.

'아니 저 새끼가?'

[주인님 참으십시오. 아직 일을 그르쳐선 안 됩니다.]

'당연히 참아야지.'

나는 만석의 속셈을 모르는 척 하며 그에게 물었다.

"근데 이쪽 분은 처음 뵙는 것 같은데···."

대답은 금자가 대신했다.

"아, 저희 회장님 밑에서 일하는 분이세요. 밖에 별채에 계시는."

"아아, 그러면 운전하시는 분이랑 같이 계시는 분이구나."

"맞아요. 두 분은 처음 뵙겠네요."

"전대협이라고 합니다."

"···만석이요. 고만석이."

만석은 여전히 불만 어린 표정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나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초면인데 악수나 합시다."

"그러시죠."

만석이 우락부락한 손을 내밀었다.

{대머리 새끼. 한 번 골려 줘야겠군.}

그의 생각을 읽은 나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만석과 악수를 시작했다. 예상대로 그는 손을 잡자마자 강한 악력을 가해내 손을 짓눌러왔다.

{어때? 뼈가 으스러질 것 같지? 그러게 왜 남의 일을 방해해? 뒤질라고.}

만석은 덩치에 걸맞게 원체 힘이 좋은 편이었지만 그것은 일반인을 상대로 할 때의 일이었다. 나는 악력을 잔뜩 주는 그에게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와, 운동 많이 하셨나 봐요. 몸이 되게 좋으시네."

"···으, 응?"

만석은 자신이 아귀힘을 꽉 주는데도 끄덕 없는 나에게 오히려 당황한 듯 보였다. 평생동안 힘으로 누군가에게 꿀린 적이 없었을 테니 놀랄만도 하다.

{이, 이 새끼 뭐지? 이게 아무렇지 않다고? 꼴에 사내새끼라고 자존심 부려보겠다 이거야? 아예 뼈를 으스러뜨려야 정신을 차리겠다는 거지? 적당히 손봐줄려고 했는데, 화를 자초하는 구나.}

만석이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전력으로 악력을 가해왔다.

이번엔 살짝 느낌이 왔지만, 그래 봐야 나의 내공에 견주기엔 역부족이었다. 아마도 만석은 쇳덩이를 움켜 쥔 느낌이리라.

"우아, 손아귀 힘이 엄청 좋으시네요."

"괘, 괜찮습니까?"

"네? 아니 뭐 이 정도야···."

"둘이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악수가 길어지자 금자가 수상하게 여기며 우리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만석이 결국 포기하고 손을 먼저 뗐다. 그는 한참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했다. 단숨에 제압당할 줄 알았던 내가 아무렇지 않게 악수를 받아내자, 몹시 당황한 눈치였다. 게다가 혼자서 쇳덩이를 상대로 힘을 뺀 상태니, 손이 저릿저릿 울릴 것이다.

"악수했죠. 보시다시피."

"근데 만석씨는 왜 그렇게 숨을 거칠게 쉬어요?"

"나, 나? 아, 아니에요. 아무것도. 어···. 그나저나 밥 잘먹고 갑니다."

"어? 벌써 다 드신 거예요?"

"허기만 때우려는 거라 이 정도면 괜찮습니다."

만석은 허둥대며 저택을 빠져나갔다. 간식을 챙기던 금자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희한하네. 저녁 안 먹었다고 밥 차려 달랄 때는 언제고."

"저녁 안 드셨대요?"

"근데 웬 존댓말? 여기 우리 둘밖에 없다니까?"

금자는 자신이 무슨 봉변을 당했을 뻔 하는지도 모르는 듯 곧바로 꼬리를 흔들며 나를 유혹해왔다.

"아니. 지금은 안 돼. 지수 문제 풀이 시켜놓고 와서 바로 돌아가 봐야 해."

"흥. 나 보러 온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고 지수 학생이 갑자기 목 마르다고 해가지고, 겸사겸사 들른 거지."

"웃겨? 지는 발이 없나 손이 없나? 맨날 가져다주니까 이젠 자기 과외선생까지 부려먹고 있네. 지가 학생이야 선생이야?"

금자가 씩씩거렸다.

"아니야. 그냥 담배나 한 대 피울까 해서 겸사겸사 나온 거야. 지수 학생이 시킨 게 아니라."

"알았어. 과일 좀 깎고 있을 테니까 후딱 피우고 오든가."

"고마워."

나는 저택 밖으로 나오자마자 곧바로 별채로 향했다.

[근데 만석에게 힘을 과시하셔도 상관없으십니까? 수상한 점을 눈치챘을 것 같은데요?]

'왜? 근육 돼지에게 덩치가 전부가 아니라는 가르침을 준 건데.'

[아니 이러다 놈들이 괜히 주인님을 의식해서 주인님까지 해꼬지 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 말입니다.]

'그러라고 한 건데?'

[네?]

'정당방위 때는 힘을 써도 상관없다며? 놈들이 나를 건드리면 그땐 정말 명분이 생기는 거니까.'

[아···. 설마 일부러.]

'맞아. 내가 볼 땐 이 새끼들 어차피 이 집에 있는 사람들다 해치울 기세야. 만약 내가 그때까지 남아있다면 나도 타깃이 되겠지.' 나는 담배를 피우는 척 별채 안으로 귀를 쫑긋 세웠다.

마침 만석이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과외선생이 남아있는데?"

-누구? 아아, 그 대머리 아저씨? 왜?

"아니, 방금 악수를 했는데···. 이 새끼 뭐하는 새끼지?

진짜로 과외 선생 맞아?"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야? 바빠 죽겠는데.

"아니 혹시나 다른 수상한 낌새 없었어? 박회장이 우리 몰래 또 다른 경호원을 고용했다거나 하는."

-별소릴 다 듣겠네. 나도 아까 우연히 만났는데, 그냥 평범한 아저씨잖아. 풍채는 제법 있어보이긴 한데, 만석이 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그게 아니라 내 악수를···."

-바쁘니까 쓸데없는 소리 마. 지금 중국 브로커 만나러 가는 길이니까. 오늘 밤 퇴로를 확보해 놓지 못하면, 오히려 우리가 곤란해지는 건 알고 있지? 박회장 그 인간 석산파랑 줄이 닿아있어서 빨리 돈 갖고 안 튀면 도리어 우리가 당할수도 있어.

"아니 아는데···. 암튼, 이상해. 이 새끼 뭔가 있어."

-참나. 괜히 덩치는 산만해 가지고 간덩이는 무슨···. 긴장했냐?

"뭔 소리야? 그게 아니라 내가 악수를···"

-몰라 일단 끊어. 나 지금 도착했으니까.

뚝-

수화기에서 나오는 목소리까지 모두 캐치할 정도로 청력을 집중했더니 머리가 살짝 띵했다.

[최철우는 주인님을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것 같군요.]

'괜찮아. 만석이라는 놈은 나를 의심하고 있으니까. 아마도 내가 집에 늦게까지 남아있다면 나까지 같이 손보려 하겠지. 그럼 나도 가만 당해줄 순 없고.'

[근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대화를 들어보니 상대는 만반의 준비를 한 상태 같은데요? 호신용으로 뭐라도 준비하셔야 하는게 아닌지.]

'난 맨몸이 그냥 무기야. 아까 봤지? 근육 돼지 새끼가 용을 써도 어쩌지 못하는 거.'

[그렇긴 합니다만···.]

'덤비기만 하라고 해. 아주 그냥 곤죽을 만들어 버릴 테니까. 그리고 이 새끼들 가만 보니까 금자건 유리건 모두 입막음 할 생각인가 본데?'

[곱게 놔두진 않을 것 같습니다만.]

'좆대가리 함부러 들이밀면 그냥 좆을 잘라 버릴려고.'

[주, 주인님.]

'어쨌든 박회장이 당하는 건 신경 쓰지 않을 참이야. 거기까진 원하는 대로 하게 내버려 두려고. 하지만 내 여자들을 건드리거나 나를 건드렸다간, 저 놈들은 제명대로 못 살게 될 거야.'

[작전은 세우셨습니까?]

'일단은 힘을 숨기고 있으려고. 그리고 결정적일 때, 빡!'

[역시 주인님은 다 계획이 있으시군요.]

'어차피 놈들이 날고 기어봐야 내 손바닥 안이야. 잘만하면 손도 안대고 코풀수도 있겠어.' 나는 다시 저택으로 돌아가 금자가 챙겨 준 간식을 들고 지수에게 향했다.

"지수학생. 간식···. 아, 아앗."

지수의 방문을 연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책상에서 공부하고 있어야 할 지수가, 홀딱 벗은 채 침대에 누워 나에게 손짓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간식도 받아왔으니 이제 방해할 사람 없는 거죠? 올라와요, 오빠.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녀는 다리를 내 쪽으로 활짝 벌리며 요염하게 손짓했다.

어휴, 그냥 여기저기서 박아달라고 난리를 피우는 구만.

나는 간식을 내려놓고 지수에게 달려들었다.

간식거리가 떡하니 있는데 뭣하러 헛걸음을 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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