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0. 여대 잠입-50-
* * *
"완전 연예인이라고요, 회장님!"
오랜만에 보는 희주가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성형한 친구를 1년만에 만나는 생소한 느낌이랄까?
완전히 자리를 잡은 이목구미와, 더욱 늘씬해진 바디라인은 절로 탄성이 나왔다. 게다가 학교에서 선글라스라니···.
진짜 연예인은 오히려 희주가 아닌가 싶다.
"···야, 너 많이 예뻐졌다?"
"그쵸그쵸? 안 그래도 요새 물올랐다는 소리 많이 들어요, 히히."
빻은 얼굴의 대명사 희주의 변신은 전적으로 나의 공이었다.
못난 얼굴을 고쳐주려고 얼마나 많은 얼싸를 시도했던가?
하지만 막상 그 결과를 내 눈으로 보자 입이 안 다물어질 지경이었다.
'로시? 원래 저렇게 예뻤나?'
[희주양이요? 주인님의 마법의 정액을 자주 바른 덕 아닙니까?]
'아니 그때도 예뻐졌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눈이 부실 정도인데?'
[급격한 변화는 대부분 초반에 이루어지지만, 완벽하게 다듬어지는데까지 한 두달이 더 걸리는 편이죠. 아마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로시의 말대로라면 한층 업그레이드된 희주의 외모는, 마법의 정액의 효과가 완전히 스며드는데 걸리는 물리적인 시간차였던 것.
내가 만든 작품이지만, 정말로 기가 막히는 수준이다.
신께서 자신의 피조물을 보고 감탄하셨다면, 바로 지금과 같은 순간이 아니었을까?
"···다른 곳도 물 올랐는데, 한 번 구경하실래요?"
희주가 은근슬쩍 색드립을 날렸다.
아아, 적응 안된다.
저렇게 예쁜 얼굴로 험한말 하지 말라고.
"무, 무슨 소리야. 수업가는 중 아니야?"
"수업 가는 길이긴 해요."
"근데?"
"수업보단 오빠가 좋으니까, 한 번쯤 째면 어떼요?"
"야야. 아서라. 니가 째도 나는 수업 안 빠지니까."
"피. 줘도 못 먹긴."
"뭐?"
나는 과격하게 희주의 노란 머리를 흐트러뜨렸다.
짐짓 화난 표정을 지어보았지만, 나도 모르게 심장이 쿵쾅거리며 뛰고 있었다. 설레잖아, 이 녀석!
"아, 암튼 오빠 축제 때 몸짱 선발대회 나가신다고요?"
"미스 & 미스터 국성? 어. 왜?"
"지금 축제까지 2주 남았다고 참가 신청서 접수하던데 같이 내러 가실래요?"
"같이?"
희주가 몸짱 컨테스트에 나가는 줄은 모르고 있었다.
혹시나 싶어 정음이를 추천했는데 희주도 노리고 있을 줄이야. 하긴, 몸매로 치면 희주가 어디가서 빠지진 않지만.
"네."
"근데 너도 나가기로 한 거야?"
"왜요? 제가 부족해요?"
희주가 갑자기 밑가슴을 두 손으로 받치더니 으쓱 들어올렸다.
"근데 이 정도 가슴이면 봐줄만 하지 않아요?"
"야!"
아오, 천박해.
예뻐진 얼굴 함부로 쓰지 말라고!
하여간 희주는 저런게 문제다.
본인이 빻았을 때의 습관을, 예뻐진 지금에도 전혀 고치지 않고 있다. 어찌보면 털털함으로 불릴 수도 있겠지만 얼굴과 매칭이 안 되니 나로선 환장할 따름이다.
"암튼, 엊그제 동기 단톡방에서 정음이가 그러더라고요."
"뭐라고?"
"몸짱 컨테스트 나가기로 했다면서."
[정음양이 주인님 얘기는 쏙 뺐나 보군요.]
'정음이는 배려심이 많아서 그래. 괜히 내가 추천했다는 소릴 했다간 여자애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날 테니까.'
"정음이가 나간다고?"
"그니까요. 저도 나갈까말까 사실 고민하고 있었는데 정음이 나간다는 얘기 듣고 마음 굳혔어요."
"너 어째 정음이한테 라이벌 의식 느끼는 거 같은데?"
"음, 뭐. 라이벌이라고 해도 상관없어요."
"호오."
"원래 경쟁은 치열할수록 재밌는 법이잖아요. 안 그래요?"
과연 희주다.
이 상황을 즐기고 있다.
빻았을 때도 한 성깔하긴 했는데, 예뻐져서도 남들에게 지는 걸 싫어한다. 아니, 승부욕이 세다긴 보단 정음이라서 더 그러는 것 같다.
"어쩌면 경희도 나갈지도."
"경희도?"
경희의 참전 소식은 역시 뜬금없었다.
정음이를 자극하기 위해 슬쩍 꺼내긴 했지만, 정말로 나갈 줄이야. 전국체전이 코앞인데 준비할 시간은 있는 건가?
"네. 그리고 말은 안했지만 몇 명더 나갈수도 있을 걸요?"
"아니, 이게 뭐라고 체육과만 우르르 나가?"
"저희 애들이 한 몸매 하잖아요?"
희주가 생글거리며 모델 포즈를 취했다.
힙을 과도하게 뺀 채 옆으로 돌아선 모습이었는데, 바디라인이 말 그대로 작살이었다.
아오, 바로 뒤치기 때리고 싶네.
"워워, 오버하지 마. 우리과에선 날고 긴다고 해도 국성대에서 내노라하는 사람들 다 모일텐데."
"상관없어요. 저만 열심히 하면 되죠. 암튼, 같이 등록하러 가실래요?"
"음···. 수업이···."
"에이, 아직 10분 남았잖아요. 5분이면 돼요."
어차피 참가 신청서는 작성했어야 하긴 한다.
나는 희주와 함께 잠시 사체과가 있는 건물로 향했다.
[미스 & 미스터 국성]은 사회체육과에서 주관하는 공인 대회로, 벌써 몇 년째 이어진 전통있는 축제 대회라고 한다.
최근 유튜브나 인스타가 유행하면서 바디프로필을 남기는 게 일종의 놀이처럼 번졌는데, 그 덕에 운동을 좋아하는 대학생들도 많이 늘어 다른 때보다 참가자도 많이 늘어난 상태였다.
무슨 아이돌 공연도 아닌데, 참가 신청을 하러 온 학생들의 대기열이 건물 밖까지 쭉 늘어서 있었다.
"와, 첫날이라 그런지 사람 엄청 많아요."
"그렇네."
줄 지어선 사람들은 하나같이 몸매가 훤칠하고 늘씬한 선남선녀가 많았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서도 희주는 군계일학으로 빛이 났다. 특히나 선글라스까지 쓰고 나온 바람에 더욱 이목을 끌었다.
"와, 저 염색머리 좀 봐."
"몸매 미쳤다."
"이번 대회 진짜, 장난 아니겠는데?"
다 들린다, 십새끼들아.
희주 주변에 남자들이 제 딴엔 소곤거린다고 했지만, 귀가 밝은 나로서는 속속들이 들을 수 밖에 없었다.
물론 희주는 사람들의 시선에 민망해하기보다 즐기는 쪽이었다. 은근히 짝다리를 짚으며 포즈를 취하는데 옆에 있는 내가 창피했다.
[희주양은 정말 독보적인 캐릭터 같습니다. 여풍당당이랄까?]
'빻았을 때부터 저랬어 쟤는. 몸부심은 그때도 상당했지.'
[근데 여자들이 주인님도 쳐다보는 거 같은데요?]
'흠, 괜히 희주 때문에 나까지 주목받네.' 나와 희주를 보고 소곤거리는 건 여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삼삼오오 모여있던 여자들은, 내쪽은 쳐다도 보지 않고 자기들끼리 쑥떡거렸다.
"와, 저 남자 몸 좋은데."
"둘이 사귀나?"
"남자가 아깝다야."
"나 저 사람 누군지 아는데."
"누구?"
"왜, 사범대 킹카 있잖아. 유명하던데?"
"정말?"
사범대 킹카라는 소릴 직접 듣고 있자니 귀가 빨개질 정도로 쑥스러웠다.
"흠흠. 이거 오래 걸릴 것 같은데 다음에 다시 올까?"
"있어봐요. 줄 선게 아깝잖아요. 금방이면 될 것 같은데."
희주 말대로 길게 늘어선 대기열에 비해 생각보다 빠르게 줄이 줄어들었다. 잠시 후 테이블 앞에 선 나와 희주를 남녀학생이 각각 신청서를 받았다.
"남자분은 이쪽요."
나는 사회체육과 남학생이 건네 준 신청서를 작성했다.
이름과 학번 그리고 전화번호와 분야를 선택하는 게 전부였다.
'이래서 줄이 빨리 사라졌구나. 쓸 것도 없네.'
하지만 쓰다보니 뭔가 헛갈리는 게 있었다.
"어, 혹시 분야는 뭔가요?"
"아, 분야요. 세종류 중에 원하시는 거 고르시면 돼요. 피지크는 말 그대로 몸태를 보는 거구요, 보디빌딩을 우리가 흔히 아는 거랑 비슷해요. 마지막으로 스트랭스 대회는 이번에 새로 추가됐는데 힘이 가장 센 사람을 뽑는 거에요."
쉽게 말해 미스터 국성 종목이 세분화되었다는 소리였다.
피지크는 몸이 예쁜 사람.
보디빌딩은 근육이 발달한 사람.
스트랭스는 말 그대로 스트롱맨을 뽑는 것 같았다.
'셋 중 어딜 참가하지?'
[주인님은 셋다 해당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가?'
[어깨도 딱 벌어지고 허리도 날렵해서 피지크에도 적합하고, 또 등근육이나 대퇴근을 보면 보디빌더로서도 손색이 없죠. 게다가 힘은 뭐···.]
'정말 그렇네.'
"꼭 하나만 참가해야 하나요?"
"네?"
사회체육과 학생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말했다.
"아, 보통 보디빌딩 하시는 분이 스트렝스도 같이 하시긴해요. 딱히 참가에 제한은 없습니다. 어차피 대회 시간이 다 달라서요."
"아···. 저 그럼 다 할게요."
"네?"
"셋 다 신청한다고요."
"아니···. 아, 네 뭐. 신청은 자유니까요. 참가비는 만원입니다. 참가비는 현직 보디빌더이신 심사위원의 심사비와, 대회 상금, 그리고 대회 준비에 필요한 비품을 사는데 사용될 예정입니다. 투명한 회계를 위해 사용 내역은 모두 공개하고, 남은 잔금은 불우이웃 돕기에 쓰일 겁니다."
"아, 네."
확실히 전통 있는 대회다 보니 학생들이 주최하는 대회임에도 나름 체계가 있었다. 신청을 마친 나와 희주가 줄을 빠져나오는데 우연히 같은과 남자 후배들을 만났다.
"앗, 회장님! 안녕하세요!"
남자 다섯명이 동시에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마치 내가 조폭 두목이 된 것 같았다.
"야야, 오버하지 말고. 너네들도 혹시 참가 신청서 내러 왔냐?"
"어떻게 아셨어요? 어, 희주 안녕."
"응 안녕."
"근데 회장님도 롤 대회 나가시게요?"
"응? 롤이라니?"
알고 보니 후배들 다섯 명은 다른 과에서 주관하는 컴퓨터게임 대회에 참가를 하고 온 것이었다. 아직 이주 남았다는데 벌써부터 참가열기가 들끓는 걸 보니 확실히 축제는 축제인 모양이다.
"나랑 회장님은 몸짱 대회 나가려고."
"오, 희주!"
"진짜? 여자애들 몇 명 나간다는데?"
"우리도 이거 나갈걸 그랬나?"
"아서라. 너희들도 회장님처럼 꾸준히 운동하면 모를까."
"워워, 그런 소리 말고. 만난 김에 음료수나 마실래?"
"엇! 감사합니다 회장님!"
후배도 만난 김에 오랜만에 지갑을 열었다.
다들 수업이 엇갈려 있어, 잠시 후 음료수만 들고 금방 헤어지긴 했지만.
희주는 가는 동안에도 나에게 문자를 남겨왔다.
-희주 : 흥, 줘도 못 먹은 거 후회하실 걸요?
'나참, 희주는 정말 변한 게 없구나.'
[그래서 더 매력적이지 않습니까? 예뻐져도 늘 그대로라는 점이요.]
'하긴. 그나저나 우리과도 주막 준비하려면 박회장 미션서둘러야겠는데?'
[아무래도 그렇겠죠?]
나는 다시 수업을 들어가서 계속 박회장 미션을 고민했다.
'비번을 알아내는 건 의외로 쉬울지 몰라.'
[어떻게 말입니까?]
'유도심문 같은 걸 해서 속마음을 읽으면 저도 모르게 튀어나오지 않겠어?'
[하지만 어떻게 유도심문을 하시려고요? 설마 금고 비번으로 뭘 설정했는지 대놓고 묻겠다는 건 아니겠죠?]
'흠···. 그것도 그렇네.'
강제로 실토를 하게 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박회장을 입막음하거나 아니면 평생 그와 척을 지고 살아야 한다.
관건은 내가 훔친 지도 모르게 금고를 터는 것이며, 마지막에 알아채더라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의심받게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오케이, 비번은 그렇다치고. 지문이 더 쉽겠네. 사방 곳곳에 박회장의 지문이 묻어 있을 거 아냐.'
[근데 어떤 손가락인줄은 아시고요?]
'엉?'
[10개의 손가락 중 어떤 손가락으로 금고를 여는 줄 알고 다 체취하시겠다는 겁니까?]
'보통 오른손 엄지나 검지 아냐?'
[모르죠. 일부러 안쓰는 손을 썼을지도.]
'음, 그것도 문제네.'
생각보다 금고를 여는 것은 까다로운 문제였다.
'혹시 천상계 아이템중에 금고 터는 비책 같은 건 없나?'
[있다고 해도 저런 현대식 금고에 대한 방법은 없을 겁니다. 보통 시프들이 쓰는 금고는 자물쇠 형태니까요.]
'그런가···.'
[음, 아니면 박회장이 금고를 직접 열고 들어가게 하는 방법은 어떻습니까?]
'응?'
[박회장도 분명 금고를 열고 들어가는 날이 있을 거 아닙니까? 그때 맞춰서 비번과 지문을 확인할 수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요?]
'오오! 그런 방법이?'
생각해보니 로시가 맞았다.
내가 굳이 비번과 지문을 알아내기 전에, 박회장이 직접 문을 열고 들어가는 장면을 목격하면 되는 것이었다.
'초소형 CCTV!'
[네. 그것만 있으면 박회장의 행동을 영상으로 담는 건 일도 아니죠. 지금도 주인님이 미리 설치한 감시카메라들이 저택의 곳곳을 비추고 있으니까요.]
도훈은 생각난 김에 핸드폰 어플을 통해 박회장 집안 곳곳을 확인했다. 도훈이 설치한 곳을 비추던 카메라에선 저택에서 일하고 있는 금자와 나이든 하녀의 모습이 드문드문 비추었다.
'내가 왜 이 생각을 못했지? 역시 인공지능은 다르구나!'
[하하, 저야 늘 주인님을 보조할 뿐이니까요.]
'방법을 알았으니 이제 끝났어. 일주일 안이면 박회장 미션은 끝낼 수 있겠어.'
[근데 박회장의 돈을 훔쳐서 어디에 쓰시려고요?]
'좋은데 써야지. 난 딴 돈의 절반만 가져가. 나머지는 다 불우이웃 돕기에 기부해 버리려고.'
[역시 주인님은 돈 욕심이 없으셔서 좋습니다.]
"거기, 학생. 수업 중에 핸드폰만 자꾸 볼 거면 밖으로 나가주겠나?"
"아, 앗, 죄송합니다."
계속 폰만 보고 있던 나는 교수에게 걸려 혼이 나고 말았다.
나이든 교수는 혀를 끌끌 차더니 다시 수업을 재개했다.
'일단 다시 수업에 집중해야 겠다. 요새 너무 놀아서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아.'
축제준비도 미션도 좋지만, 일단은 공부를 해야한다.
2학기에도 수석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의 목표기 때문이다.
나는 남은 수업을 열공모드로 바꾼 채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