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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365화 (1,332/2,000)

1348. 여대 잠입-48-

"그, 그건 새벽에 일 때문에."

"새벽에? 그때도 두 번이나 싸지 않았어? 두 번으로 부족한가 보지?"

"으음, 아무래도 건강하니까···."

"정말?"

금자는 여전히 대물을 붙잡은 채였다.

"두 번 정도로는 끄떡없다는 얘기야? 예전에는 그럼 몇 번이나 했는데?"

"서, 서너 번?"

"와···. 역시 대머리가 정력이 세긴 세구나."

"아, 아니야. 머리 벗겨지기 전에도 그랬다고."

"장난이지. 그나저나 순진한 아가씨 앞에서 이렇게 꼴렸다간 큰일 날 것 같은데 내가 도와줄까?"

"지, 지금?"

"뭐 어때? 화장실에서 큰 거 보고 왔다고 하면 되지."

[캬, 금자양은 정말 욕구가 무시무시하네요. 어젯밤 그렇게 해놓고도 아침 되서 또 달려드니 말입니다.]

'옹녀야 옹녀. 아주 남자 잡아먹을 여자라니까?'

도훈은 일단 거부했다.

"아, 안 될 것 같아."

"왜?"

"아직 집안에 사람도 많은데다 장소도 마땅치 않고."

"후후. 내가 그것도 모를까 봐? 아무도 모를 장소가 한 군데 있어."

"그게 무슨 소리야?"

"이 저택 말이야. 누가 지은 줄 알아?"

'난들 어떻게 알아?'

"그거야 건축가가···."

"나도 다른 이모한테 들었는데, 이 집을 설계한 건축가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었대."

"그럼?"

"러시아 사람. 파블로프스키라던가?"

[누굽니까?]

'금시초문인데? 근데 왜 러시아 사람이지?'

"모르겠는데."

"나도 듣기만 들었어. 예전에 소련이랑 미국이랑 냉전이 한창일 때 러시아 부호들의 저택을 도맡아 설계했다더라고."

"냉전 시대라고?"

"암튼, 그래서인지 겉으로 보이지 않게 저택 내부에 비밀 아지트를 꼭 함께 지었다는 거야."

[오, 방공호 같은 개념인가요?]

'핵전쟁을 대비한 지하 벙커 아닐까? 이 저택에 그런 공간이 있었다고?'

도훈은 금자가 들려준 얘기에 흥미가 생겼다.

"그, 그런 곳을 네가 어떻게···."

"당연히 알 수밖에. 지하실에 있는 세탁실을 통해 들어갈 수 있거든. 구경하고 싶으면 따라와."

금자는 도훈을 데리고 지하실로 내려갔다.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던 도훈은 생각보다 지하실의 위치가 깊다는 데 위화감을 느꼈다.

'확실히 구조가 특이하긴 하네.'

[어째서 말입니까?]

'보통 저택에 지하실을 둔다고 해도 이렇게 깊게 땅을 파진 않을 거란 말이야. 어차피 끽해야 창고로 쓰이는 자투리 공간이니까. 근데 이건 지하 2층 깊이야. 틀림없이 비밀공간을 만들기 위해 지하를 넓게 만든 거야.'

[오, 박 회장이 왜 그랬을까요? 러시아 건축가를 불러서 집의 설계를 맡겼다니.]

'이제부터 그 이유를 알아봐야지.'

지하실 문을 연 금자가 불을 켰다. 화장실처럼 타일로 꾸며진 공간이었는데, 구석에는 선반이 있어 평소 안 쓰는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그 옆으로는 커다란 세탁기와 건조기가 놓여있었다. 아침부터 빨래를 돌린 것인지 세탁기 두대가 힘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와···. 저택에 이런 곳이···."

도훈이 흥미롭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신기하지? 나도 처음에 지하실에 전용 세탁실이 있다는 소릴 듣고 깜짝 놀랐다니까? 저쪽에 보이는 기계는 드라이도 가능한 기계야."

놀랍게도 세탁실에는 양복이나 셔츠도 세탁할 수 있는 드라이클리닝 전용 세탁기까지 갖춰져 있었다. 금자는 박 회장이 평소 양복과 셔츠를 즐겨 입기 때문에 매일 드라이클리닝을 한다고 푸념했다.

"그럼 이곳이 네가 말한···."

"아니."

금자가 씩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라고?"

"물론 여기도 몰래 불장난을 하긴 좋은 곳이지. 소리도 밖으로 안 새어 나가고 나 말고는 누가 오지도 않으니까. 근데·

··."

금자가 갑자기 선반에 다가가더니 한쪽을 잡고 벽으로 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꿈쩍도 않을 것으로 보이던 선반이 옆으로 슬라이딩해 밀려 나갔다.

"어어?"

"놀랐지? 잘 보면 밑에 레일이 설치되어 있어."

선반은 도서 대여점에서 주로 사용하는 레일형 선반이었던 것. 선반을 밀치고 벽면이 드러나자 문처럼 보이는 벽면이 드러났다.

"짜잔. 여기가 바로 그 러시아 건축가가 설계했다는 비밀의 문이야."

"지하실에 이런 곳이···. 잠깐. 근데 여기 함부로 들어가도 돼? 박 회장이 혹시라도 알면···."

"어떻게 알겠어, 그 영감탱이가?"

금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문을 열었다.

이번에는 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아하. 어쩐지 지하실이 유독 깊다 싶더니, 지하 1층으로 통하는 공간이구나.'

[놀랍군요. 이곳이 그럼 유사시를 대비한 벙커 시설인 걸까요?]

'일단 따라 들어가 보자.'

금자가 핸드폰 라이트를 켜더니 비밀의 공간으로 안내했다.

도훈은 오랜만에 긴장된 표정으로 따라 들어갔다.

"나도 우연히 발견했어. 어쩌다 선반을 잡고 밀었는데 쑥옆으로 밀리더라고. 선반을 치우니까 이 문이 나타났고."

"근데 안에는 뭐가 있는 거야?"

"한번 맞춰봐."

계단을 타고 오르자 천장이 유독 낮은 조그만 방이 나타났다. 말 그대로 텅 빈 방이었는데, 원룸보다 조금 작은 사이즈였다.

금자가 벽면을 더듬더니 스위치를 켰다. 잠시 후 깜빡이는 불빛과 함께 내부에 백열등 하나가 들어왔다.

[전기 배선까지 갖춰져 있군요.]

'그러게 말이야. 의도적으로 만든 공간이라는 건 확실해지는군.'

"내가 말한 비밀의 장소가 여기야. 어때? 끝내주지?"

"세상에···."

천장 가운데 백열등 불빛에만 의지하다 보니 내부는 무척 어두운 편이었다. 하지만 도훈이 안력을 돋우자 보통 사람보다 훨씬 주변이 밝아지며 전체 공간이 한눈에 들어왔다.

'음, 정말 핵전쟁에 대비한 시설인 건가?'

도훈은 벽면을 둘러보다 이상한 부분을 발견했다.

유심히 보지 않으면 절대 알아챌 수 없었겠지만, 그의 눈에는 또렷이 보였다.

'공간이 하나 더 있어!'

[네?]

'저기 벽 말이야. 다른 곳과 무늬가 틀어져 있잖아.'

도훈은 미묘한 오차를 발견했고, 그것이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통로라는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금자는 그 사실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여기에 라꾸라꾸침대 같은 거 하나 가져다 놓으면 딱 맞지 않아?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여기서 너랑 나랑 실컷 즐기는 거지. 뭐하면 그냥 여기 들어와 살래? 먹을 건 내가 가져다줄 테니까."

'미친년. 내가 무슨 기생충인 줄 아나.'

[네? 갑자기 웬 기생충이요?]

'아니야.'

"그, 그건 좀···. 내가 사실 폐소공포증이 있어서."

"폐소공포증이라고?"

"밀폐된 공간을 잘 못 견뎌. 벌써 숨이 막히는 것 같아."

도훈은 일부러 식은땀을 흘리며 입을 크게 벌리고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도훈이 워낙 리얼하게 연기했기 때문에 지켜보던 금자도 덩달아 놀랐다.

"세상에, 왜 그래? 어디 안 좋아?"

"아, 아니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서. 우리 그냥 나가면 안될까?"

"아···. 좋은 곳 알려줬더니."

금자는 아쉬운 눈치였지만, 도훈이 워낙에 상태가 안 좋아 보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비밀공간에서 다시 빠져나왔다.

도훈은 자신이 확인한 장소를 한 번더 눈여겨 본 다음 금자를 따라 세탁실로 다시 내려왔다.

그때 갑자기 도훈의 폰이 울렸다.

"이크, 지수 학생 같은데?"

"받지 마."

"안 돼. 너무 오래 밖에 나와 있어서 의심하는 것 같아."

"그냥 무시하라고. 똥 싸느라 못 받았다고 하면 되잖아."

"그게 아니고, 아침에 시험 때문에 일부러 남은 건데 괜히 시험 망치면 나한테 책임을 뒤집어씌울지도 모르잖아. 그러다 잘리면?"

"하-, 진짜 쬐그만 게 도움 하나도 안 되네."

금자는 어쩔 수 없이 도훈을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도훈은 커피만 받아들고 잽싸게 지수의 방으로 돌아갔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요? 전화는 또 왜 안 받으시고요?"

"미안···. 아침을 오랜만에 먹었더니 갑자기 배가···."

"맞다. 근데 이혼 이야기는 뭐예요? 오빠 이혼했다고 했어요?"

지수가 아침 식사 때 우연히 나온 내용을 꺼냈다.

"응. 면접 볼 때 결혼은 했느냐고 묻더라고. 특수분장으로 마흔 살이라고 속였는데 그 나이까지 결혼을 안했으면 이상할 것 같더라고. 그래서 그냥 했다가 이혼했다고 거짓말했어."

"오빤 진짜···. 근데 아침에 보니까 분장이 좀 지워진 것 같아요. 드문드문 오빠 얼굴이 보여요."

"나도 화장실에서 거울 보고 깜짝 놀랐어. 들키는 줄 알고."

"가발은 안 답답해요?"

"가려워 미치겠어. 집에 가자마자 머리 감을 거야."

"힝, 오빠가 나 때문에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아요. 다음엔 밖에서 봐요."

"근데 운전기사 아저씨가 감시하지 않아?"

"김 씨 삼촌요? 괜찮아요. 대학 안으로는 절대 안 들어오기로 했으니까."

"저번에도 들어왔잖아?"

"그때가 특이한 경우예요. 원래는 학교에 있을 땐 거의 신경 안 써요."

"오케이. 그나저나 곧 학교 가야 하니까 얼른 공부하자."

"안 하고 싶은데···. 오빠랑 이렇게 함께 있을 시간도 얼마 없는데···."

"아니야. 내가 생각해봤는데, 너무 안하는 것도 미안할 것 같아. 과외비까지 많이 받았는데···."

"괜찮아요. 우리 아빠 돈 많으니까."

"그거랑은 별개지."

"아녜요. 어쩌면 오빠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을 걸요?"

"응?"

"저번에 보니까 현찰을 무슨···."

'현찰이라고?'

[현금 말하는 거 아닙니까?]

'알지. 생각해보니까 뭔가 이상하긴 한데?'

[네? 어떤 점이요?]

'박 회장 이 새끼 말이야. 겉으로는 건물주 행세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사창가에 여자 팔아넘기면서까지 돈을 버는 양아치 새끼잖아.'

[그건 그렇죠.]

'검은돈을 은행에 넣어두는 바보는 없을 거 아니야. 자금추적당하면 국세청에게 탈탈 털릴 테니.'

[아!]

'아까 그 비밀의 방. 혹시 금고 아닐까?'

[네?]

'맞네! 지하 벙커를 만든 목적이 비밀 금고를 설치하려고 했던 거였어!' 도훈은 갑자기 퍼즐이 딱 들어맞는 기분이었다.

젊어서부터 사채업을 했던 박 회장이 정상적으로 자금 세탁을 했을 리 만무했다. 더러운 돈은 검찰의 추적을 받기 마련이고, 어찌 됐건 쌓아놓은 현금을 숨길 장소가 필요했을 것이다.

사채업소에서 주기적으로 수금되는 현금도 적지 않을 텐데, 그 돈들이 모이는 저수지가 과연 어디일까?

'바로 자기 집 금고지. 그곳보다 안전한 곳이 어딨겠어?'

[아하! 그럼 금자가 우연히 찾은 비밀공간이 실은 박 회장의 비밀 금고였던 모양이군요.]

'그런가 봐,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 봐야겠어.'

[다시 비밀금고로 가보시려고요?]

'그렇지.'

도훈은 다시 배를 잡고 아픈 시늉을 했다.

"으읏, 갑자기 또 배가···. 아침을 진짜 잘못 먹었나?"

"괜찮아요? 제가 소화제 가져다드릴까요?"

도훈이 인상을 찌푸리자 지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아, 아니야. 소화제가 아니라 지금은 화장실에 가봐야 할것 같아. 미안, 혼자서 문제 좀 풀고 있을래?"

"네, 오빠."

도훈은 몰래 지수의 방을 빠져나왔다. 금자가 거실에서 청소하고 있는지 청소기 소리가 들려왔다.

도훈은 발걸음 소리를 죽이더니 기척 없이 지하실로 몰래 내려갔다. 세탁실 선반을 밀자 비밀의 문이 나왔고, 도훈은 불도 켜지 않고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계단을 올라 아까 그 비밀의 공간에 다다른 도훈은 미약한 조명을 켜 아까 확인했던 벽 사이의 틈을 확인했다. 손으로 만져보자 예상했던 대로 사람 하나가 드나들 수 있는 조그만 문이 느껴졌다.

다른 곳은 돌처럼 딱딱한 데 반해, 이곳은 나무로 만들어진 합판이었다.

"예상대로군."

도훈이 슬쩍 힘을 주어 밀자 여닫이문처럼 문이 안으로 밀려들어 가며 또 다른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가 그럼 박 회장의 비밀 금···. 잉?"

그러나 잔뜩 쌓여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현금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은행에서나 볼 것 같은 금고가 모습을 드러냈다.

함선에 달린 타륜과 같은 육중한 철문이었다.

[헉! 이게 뭡니까?]

'미친 새끼. 아주 초대형 금고를 집안 지하실에 박아 뒀구나.' 도훈은 낭패감에 휩싸였다.

만약 자물쇠가 있는 금고였다면 만능열쇠로 얼마든지 열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박 회장의 대형 금고는 비번을 맞춘 상태로 동시에 지문인식을 통해야만 열리는 첨단 시스템으로 보호되고 있었다.

'하-. 씨발, 일단 돌아가야겠다.'

괜히 함부로 만졌다가 금고가 폐쇄되거나, 경보가 울릴 것을 우려한 도훈이 빠르게 포기했다. 금고가 어디로 도망가지는 않을 터이니 다음 기회를 노리기로 한 것이었다.

다시 지수의 방으로 돌아가기 전 도훈은 건물 밖으로 나와 담배를 꺼내 물었다. 혼자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어쨌든 금고를 확인한 것만으로도 엄청난 정보야. 박 회장에게 확실한 타격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은 셈이니까.'

[설마 박 회장의 금고를 털 생각이십니까?]

'상관없잖아? 저기 들어있는 현금은 공식적으로 세상에 없는 돈이야. 훔쳐 가도 신고도 못 할 거라고.'

[그리고 돈을 사랑하는 박 회장은 엄청나게 괴로워하겠지요.]

'문제는 비번을 알아내는 것과 지문을 따는 건데···. 스킬과 아이템을 활용하면 방법이 있을 것 같아.'

도훈이 담배를 피우며 고민하고 있는데, 대형 세단 한 대가 저택을 나서는게 보였다. 박 회장이 외출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별채에서 김 씨가 나오더니 도훈을 보고 물었다.

"어? 과외는 끝내신 겁니까? 안 그래도 아가씨 등교할 시간이라서 모시러 가려고 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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