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7. 여대 잠입-47-
아침 식사 분위기는 미묘했다.
주방에서 후라이를 준비하는 금자는 콧노래를 부르며 흥얼거렸고, 늦잠을 자는 바람에 겨우 잠에서 깬 지수는 피곤으로 눈가에 진한 다크 서클이 져 있었다.
그중에서도 유리가 가장 눈에 띄었는데 늘 단정하고 이지적인 느낌을 주던 평소와 달리, 오늘 아침에는 유달리 허둥대고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앗, 죄송해요."
방금도 금자가 프라이팬에서 건네준 프라이를 접시에 옮기다 식탁에 흘리는 실수를 저질렀다. 유리가 쩔쩔매자 금자가 평소와 달리 씽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두세요. 제가 치울게요, 비서님."
왠지 유리의 허둥대는 모습이 귀엽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낯선 모습에 박회장도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유비서가 밤잠을 설쳤나 보군. 그렇게 일이 많았던가? 야근도 아니고 철야를 할 정도였으면."
"네? 예, 회장님."
"근데 어디서 잤나?"
"네?"
유리는 마치 어젯밤의 비행을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보다 못한 금자가 도움을 주었다.
"비서님께서 밤늦게까지 일하시다 피곤해 하시길래, 게스트룸 남는 곳을 내어드렸습니다."
"그래? 나는 그런 줄도 몰랐군. 전 선생은 어제 잘 주무셨고?"
전선생이란 '전대협'이라는 인물로 위장한 컫는 말이었다.
도훈은 아침 일찍 급하게 인피 면구를 다시 쓰느라 어제와 다르게 얼굴이 살짝 틀어진 상태였다.
그러나 안 좋은 쪽이 아니라, 본래 도훈의 얼굴이 많이 남아 평소보다 더 잘생겨 보였다.
"넵, 회장님 덕분에."
"우리 전선생은 잠자리가 아주 편안했나 보군. 얼굴이 아주 폈구만 그래, 하하!"
박회장의 말에 지수가 가슴 졸였다.
도훈의 특수분장이 밤새 옅어졌다고 착각한 것이었다.
'설마, 아버지가 눈치챈 건 아니겠지?'
하지만 다행히 박회장의 눈썰미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특히 사람을 볼 때 이목구미를 꼼꼼히 보는 편이 아니었고, 도훈의 경우엔 대머리라는 뚜렷한 특성으로만 기억했다.
도훈의 달라진 모습을 알아챈 건 오히려 유리였는데, 그녀는 도훈의 얼굴이 평소와 살짝 다른 점을 느꼈다.
'이상해. 원래 저렇게 젊어 보였던가?'
어제까지만 해도 40대의 늙은 얼굴이었던 도훈은 얼핏 봐선 30대 중후반 정도로 보였다. 그러나 유리는 그것이 자신이 도훈에게 좋은 감정을 가졌기 때문에 생긴 콩깍지의 일종이라고 여겼다.
'하아, 그나저나 어젯밤엔 진짜 기절하는 줄 알았는데.'
유리는 첫개통식(?)을 강렬하게 치르는 바람에 밤잠을 설쳤다. 특히 섹스 직후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걷지도 못했을 정도.
잠을 청하려 해도 밑이 쿡쿡 쑤시는 통에 좀처럼 잠이 오질 않았다. 성교통의 일종으로 강렬한 섹스를 겪고 난 뒤 뒤따르는 후유증이었다.
물론 심적인 부분의 고민도 있었다. 앞으로 도훈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 금자와의 비밀동맹을 무탈하게 끌고 갈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잠을 설친 유리는 오전부터 제대로 집중할 수 없었다.
"···유비서?"
"예, 예?"
"오늘 오후 일정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네만?"
유리가 다른 생각에 잠겨있다가 박회장의 말을 놓치고 말았다.
"아, 저 그, 그게···."
유리가 허둥대자 박회장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이거 원, 컨디션이 영 아닌가 보군. 오늘은 그냥 푹 쉬는 게 어떤가?"
"네?"
"아니. 늘 휴가도 없이 일만 하지 않았나? 오후 일정은 철우랑 함께 처리할 테니 오늘 하루는 집에 가서 푹 쉬고 오라는 말일세."
"그러실 필요는···."
"내 걱정돼서 하는 말이야."
"···죄송합니다."
유리에게 강제로 휴무를 부여한 박회장은 이번엔 도훈에게 말했다.
"밤늦게까지 딸아이 지도하느라 수고 많았소."
"아닙니다. 배려해주신 덕분에 잠도 잘 자고, 이렇게 맛있는 아침도 차려주셨는데요."
"아···. 평소 아침 식사를 잘 안 하시오?"
"네. 아침을 거를 때가 많아서요."
박회장은 도훈이 이혼남이란 걸 들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도 부인을 잃고 가정부를 들이기까지 고생했던 시절이 떠올랐던 것이다.
"괜찮으면 가끔 이렇게 식사나 하고 가시오."
"아, 아닙니다."
"물론 그냥은 아니고, 우리 딸아이 지도를 부탁하는 차원에서 말이요."
"네, 넵."
"지수는 언제 학교 가니?"
"11시 수업이라 밥 먹고 샘이랑 공부 좀 하다가요."
"그래. 그럼 오늘도 잘 부탁드리겠소."
"넵."
식사를 마친 도훈은 혼자 마당으로 나와 담배를 피웠다.
[박회장이 유독 주인님께 살갑게 대하던데요?]
'어제 새벽에 그 일 때문인 것 같아. 환심을 제대로 샀나봐.'
[고작 몇 마디 대화 좀 나눴다고요?]
'원래 그 나이 되면 돈보다는 친구가 더 소중한 법이거든.
대화할 사람이 필요했나 보지.'
[그렇군요. 근데 아침에 세 여자 반응이 제각각이더군요.
평소랑 다들 달라서 분위기가 어색했습니다.]
'금자는 신났지 뭐. 애초에 밝히는 여자한테 힘 좋은 기둥서방 하나 생겼으니 춤추고 싶은 심정이겠지. 양기를 받으면 기운이 충전되는 타입이랄까?'
[그럼 유리양은 그 반대인가요? 기운을 빼앗기는?]
'그렇다기보다는 살살한다고 했는데 아마 첫 경험이라 충격이 컸나봐. 아다를 쓰리섬으로 뗀 셈이니.'
[하긴.]
'지수는 어려서 그런지 체력이 달리는 거 같고.'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하실 계획입니까?]
'포섭한 조력자 셋을 이용해 봐야지. 내부로부터 박회장을 무너뜨리는 거지.'
[금자, 유리, 지수양 말씀인가요?]
'그렇지.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도 있잖아. 여자 셋이 모였으니 아예 기둥뿌리까지 뽑을 수 있지 않을까?' 도훈이 혼자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누군가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가볍게 목례를 한 사내가 말을 걸었다.
"새로 오신 과외 선생님이시라고요?"
"앗, 안녕하십니까."
도훈이 긴장한 척 하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 바람에 정수리 뒤쪽의 남은 머리카락이 앞으로 확 넘어오며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연출되었다.
[일부러 그러시는 거죠?]
'당연하지. 김씨는 위험인물이야. 우습게 보여야만 방심할 테니까.' 도훈에게 말을 건 사내는 김씨였다.
별채에 상주하는 그는 아침에 마당을 산책하다 도훈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어젯밤 여기서 주무셨나 보군요."
"아···. 네, 그게 지수양이 오전에 시험을 치른다고 해서요."
"암튼 이렇게 봬서 반갑습니다. 전 아가씨 운전기사입니다. 편하게 김씨라고 불러주십쇼."
김씨가 살갑게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도훈은 최대한 힘을 뺀 채 그의 손을 맞잡았다. 능글거리는 웃음 뒤로 묘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나를 탐색하고 있구나.'
[그냥 저 사람 버릇인가 봅니다. 지난번에도 주인님을 경계하더니만.]
'그러게. 하여간 거슬리는 녀석이야.'
"근데 선생님은 올해 연세가?"
"네, 올해 마흔하납니다."
"오, 그렇게까지는 안 보이시는데. 아무튼 저보다 형님이 시군요."
"그런가요?"
"전 올해 서른일곱입니다. 편하게 형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아, 네 뭐. 편한대로."
악수를 마친 김씨는 도훈에 대한 경계가 다소 누그러져 있었다. 도훈의 덩치가 제법 커 의식했던 모양인데, 손을 잡아보니 굳은살 하나 박힌 데 없는 손이었다. 평생 앉은뱅이로 공부만 한 백면서생의 촉감이었다.
물론 이는 도훈의 위장이었다. 축골공으로 손바닥의 근육을 모두 감추고, 굳은살 또한 매끄럽게 만들었던 것.
경계심이 사라지자 김씨가 도훈에게 살갑게 말을 건넸다.
"형님, 제가 깜빡하고 담배를 못 챙겼는데 저도 한 대만 주시겠습니까?"
"아, 네 물론입니다."
"말씀 편하게 하시죠. 한참 형님이신데."
"그, 그럴까?"
도훈에게 담배를 건네받은 김씨가 고개를 돌리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연장자인 도훈을 배려한다기 보다 조직생활을 오래하면서 배인 습관같은 것이었다.
"후-. 아가씨는 요새 어떻습니까?"
"지수학생은··· 음, 늘 열심이긴 하지."
"공부랑은 좀 멀죠?"
"응? 그게···."
"괜찮습니다. 저야 아가씨가 어렸을 때부터 봐왔으니까요.
솔직히 공부엔 크게 재능은 없는 것 같더라고요, 그때부터."
"뭐, 딱히 공부를 잘해야할 필요도 없을 것 같으니까."
도훈은 일부러 대저택을 돌아보며 말했다.
물려받을 재산이 많으니 딱히 공부가 의미가 있겠냐는 소리였다.
"그렇긴 하죠. 무남독녀 외동딸에··· 늦둥이면. 나중에 남편 될 사람만 복받은 거죠."
"혹시 지수학생이 만나는 남자라도?"
"없습니다."
"그래?"
"회장님께선 시답잖은 놈들이 지수 양에게 꼬이는 걸 싫어하시거든요."
"아···."
'그렇구나.'
[네?]
'박회장이 지수를 아끼는 이유가 꼭 아버지로서의 질투같은 게 아니었나 보군.'
[그럼요?]
'어차피 나중에 재산 싹다 물려줘야 하니 짱짱한 사윗감으로 고를 심산인가 봐. 그러면 아무래도 처신을 잘해두는 게 좋거든. 부잣집 딸이라고 멋대로 방치했다간 개차반 되는 경우가 많거든.'
[아아, 애자매의 첫 번째 딸이 생각나는군요. 그 유학녀.]
'맞아. 근데 지수는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보호되었잖아.
여중, 여고, 심지어 여대. 김씨라는 보디가드까지 붙여서 처녀성 지켜오고 있단 말이지. 나중에 어디 정관계 유력자 아들이랑 맞선이라도 볼 예정인가 보지. 지참금도 두둑하니까.
'[근데 주인님이 다 망치셨잖습니까? 그것도 40대 대머리 얼굴로요.]
'크크크. 그러니까 말이야.'
[나중에 박회장이 알면 정말 피가 거꾸로 솟겠는데요?]
'그러라고 하는 짓인데 당연하지.'
"암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지수가 저한테는 조카같은 존재라서요."
"네, 아무렴요."
* * *
"아아···. 오빠는 아침부터···."
방금전 김씨의 부탁은 개나 줘버리는 도훈이었다.
그는 등교하기 전 마무리 과외를 한다는 핑계로 지수방에 들어가 몹쓸짓을 하고 있었다.
상의 사이에 손을 넣어 젖가슴을 주물러댔던 것이다.
"어젠 거의 기절했더라?"
"흐, 흐응···. 오빠가 하도 심하게 해가지고···."
"별로였어?"
"아, 아뇨. 너무 좋았어요. 진짜로 기절할 만큼. 깨보니까 아침인거 있죠?"
"그랬구나. 젖꼭지 또 딱딱해진 것 같은데?"
"아, 아앙···. 오빠가 만져주니까 그렇죠."
"브래지어 불편한데 벗겨줄까?"
"···네."
도훈이 옷 뒤에서 후크를 풀었다. 브래지어가 툭 떨어지자 도훈은 본격적으로 지수의 가슴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이래 가지고 한국사 시험을 잘 볼 수 있으려나?"
"아앙···, 사, 상관없어요 시험따위."
"네가 시험 못 보면 내가 잘리는 거 아냐?"
"앗, 그럼 안 되는데."
"결과가 언제 나오지?"
"결과는 안 알려준대요. 2학기말에 종합해서 성적 나온다고."
"그럼 그때까진 안 잘릴지도."
"히힛, 오빠 걱정마요. 성적 안 나와도 제가 아빠한테 답지를 밀려썼다고 뻥칠 거니까."
"역시. 우리 지수네. 오빠 과외 안 잘리게 신경도 써주고.
상을 줘야지?"
지수는 이미 도훈에게 푹 빠진 상태였다.
그리고 이를 이용해 도훈도 슬슬 본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처음엔 교회오빠 콘셉트로 신학도생 말투를 내었으나, 점점 본연의 양아치스러운 말투와 행동으로 지수를 가스라이팅하는 중이었다.
도훈이 상의를 휙 벗기더니 젖꼭지를 입으로 빨았다.
"흐, 흐흡!"
"소리내지마. 밖으로 들렸다간 너나 나나 끝장이니까."
끄덕끄덕.
도훈은 젖꼭지를 빨면서 동시에 밑으로 손을 내려 지수의 팬티 위를 어루만졌다. 가슴의 애무로 축축이 젖은 팬티가 느껴졌다.
"장난 없네. 팬티가 이리 돼가지고 아침에 등교나 할 수 있겠어?"
"하, 하앙··· 오빠 때문이잖아요."
그때였다.
도훈의 예리한 청각으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이크. 누가 온다.'
도훈은 재빨리 자세를 바로하고 지수에게 경고했다.
"누가 오는거 같아. 옷 제대로 입어."
"네? 누가요?"
"얼른."
도훈의 확고한 표현에 지수가 서둘러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그 순간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리며 벌컥 문이 열렸다.
"간식 가져왔습니다."
'허락도 없이 문을 열 거면 노크는 대체 왜 한 건데?' 금자가 과일이 담긴 접시를 들고 온 것이었다. 지수는 금자의 등장을 예상한 도훈을 향해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알았을까 하며 놀라는 표정이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참, 마실 걸 깜빡했네. 선생님 혹시 커피 드시나요?"
"커피요? 아, 네 좋죠."
"제가 금방 가져다 드릴게요."
말로는 금방 가져다준다는 금자가 지수 몰래 도훈에게 손짓으로 사인을 보냈다. 말과 행동이 다른 모습에 도훈이 그녀의 의도를 눈치채고 헛기침을 했다.
"흐, 흠. 아닙니다. 제가 직접 가져 오겠습니다."
"선생님, 저 이거 모르겠는데."
지수는 도훈이 직접 커피를 가져온다는 말에 눈치를 주었다. 도훈이 하녀를 부리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줄 알고 그럴 필요가 없다고 돌려 말하는 것이었다.
"잠시 화장실도 들를까 해서."
"아··· 네."
도훈과 오붓한 시간을 방해받은 지수가 뾰루퉁 입술을 내밀었지만, 도훈은 금자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금자는 밖으로 나가자 마자 도훈을 향해 씩 웃으면서 말했다.
"눈치는 빠르네. 근데 둘이서 안에서 뭐했어? 공부하는 소리는 전혀 안들리던데?"
'눈치 빠른 금자가 의심하고 있구나.' 도훈은 시치미를 떼며 대답했다.
"뭐하긴. 문제 풀이 시켜놓고 지켜보고 있었지."
"근데 이건 왜 이렇게 커졌는데?"
금자가 대뜸 바지 위로 도훈의 대물을 움켜쥐었다.
걸핏하면 남의 잦이를 잡는 것이 습관인 여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