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349화 (1,316/2,000)

1332. 여대 잠입-32-

'좋아. 유리와 친해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야.'

[친해질 기회요? 지금 주인님이 추궁 당하는 처지인데요?]

'원래 피해자는 동정을 받는 법이니까.'

[피해자라뇨?]

도훈은 최대한 억울한 표정으로 담배연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사실은···."

도훈이 들려준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핸드폰 와이파이를 잡지 못한 도훈이 무료하게 소파에 앉아 지수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때 데면데면 굴던 금자가 불쑥 말을 걸어왔다.

-커피라도 한 잔 타드릴까요?

-괘, 괜찮습니다.

-사양 말고요.

금자는 무턱대고 커피를 내려왔다.

그러더니 청소를 중단하고 도훈의 앞에 앉더라는 거다.

-과외선생님은 근데 몇 살이에요?

-올해 마흔 좀 넘었습니다.

-진짜? 그렇게 안 보이는데?

-네?

-난 훨씬 젊은 오빤 줄 알았잖아.

금자는 도훈에게 눈웃음을 치며 끼를 부렸다. 당황한 도훈이 말없이 커피를 들이켜자 갑자기 금자가 치마를 입은 상태로 가랑이를 훅 벌렸다고.

"···속옷을 안 입고 있더라고요."

"뭐, 뭐라고요?"

도훈은 처음엔 못 본척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돌렸다고 한다. 너무 부끄럽기도 하고, 상대의 의도를 모르니 섣불리 대응할 수 없었다.

-아저씨, 방금 봤지?

-모, 못 봤습니다.

-거짓말하시긴. 얼굴에 다 티나는 데. 볼 테면 봐도 돼. 여긴 우리 둘밖에 없으니까.

"금자가 정말로 먼저 유혹했다고요?"

"유혹이 아니라 나중엔 협박을 하더라고요."

"협박이요?"

유리는 도저히 도훈이 들려준 이야기를 믿을 수 없었다.

아무리 호의적으로 해석해도 도훈은 금자가 매력적으로 느낄구석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40대 대머리 이혼남을 대체 누가?

못미더워하는 눈치를 보이는 유리를 향해 도훈이 의미심장한 말을 내뱉었다.

"시, 실은···."

"네?"

"제가 소파에 앉아있을 때부터 금자씨라는 분이 계속 저를 쳐다보긴 했습니다."

"쳐다봤다고요?"

"제가 앉을 때 다리를 쩍 벌리는 편인데···."

유리는 도훈의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했다.

신체 구조상 남자들이 쩍 벌려 앉는 건, 미관상 좋고 싫고를 떠나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이해해왔기 때문이었다.

"그거랑 방금 말하신 내용이랑 무슨 상관이죠?"

"저···."

도훈이 민망한 듯 정수리를 긁적였다.

"제가 조금 남다른 편이라···."

"뭐가요?"

"그···. 너무 부끄러워서 말을 못 하겠습니다."

도훈이 계속 얼굴을 붉히자 유리가 침착하게 설득했다.

"사실대로만 말하시면 돼요. 만약 대협씨 말이 사실이라면 이건 회장님께 보고를 올려야 하는 사안이니까요."

"음···. 보시다시피."

도훈이 불쑥 양손을 치우고 허리를 내밀었다.

처음엔 도훈의 의도를 이해 못하던 유리는, 순간 그의 사타구니 주변으로 튀어나온 혈관처럼 도드라진 부분을 발견하고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아, 아니!"

그것은 마치 안 자른 순대를 꽉 끼는 바지에 숨겨둔 모습이었다. 가랑이 중심부에서 뻗어 나온 굵고 실한 것이 한 쪽으로 치우쳐 허벅지 중간까지 다다라 있었다.

"지, 지금 이게 설마···."

"···네."

처녀인 유리는 속으로 몹시 당황하고 말았다.

사실 미군부대에서 근무할 때 함께 복무하던 흑인 군인들의 유별난 사이즈에 대해 농담처럼 들은 적은 많았으나, 실제로 대물의 윤곽을 목도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세, 세상에···. 물건 사이즈가 무슨···.'

"금자씨가 하필 이걸 본 것 같더라고요. 다리를 벌리고 앉으면 자꾸 이게 튀어나와서···."

"흐음."

유리가 부끄러운 듯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말했다.

"그, 그러니까 금자가 대협씨의···. 어쨌든 그걸 보고 먼저 유혹했다는 뜻인가요?"

"아마도 제 생각에는요."

도훈의 자백을 받아낸 유리가 생각에 잠겼다.

'금자라면 충분히 그럴 만해. 워낙 색을 밝히는 여자다 보니, 회장님보다 어린 대협 씨를 보고 눈이 돌아갔을지 알게 뭐람? 게다가 저렇게 밖으로 티가 날 정도로 물건이 실하면·

··.'

"좋아요. 어쨌든 거기까진 대협씨 말이 맞다고 치죠. 그래서 그다음에는요?"

"그다음에는···."

금자는 거부하는 도훈을 집요하게 유혹했다.

나중에는 먼저 추행을 당했노라고 사람들에게 다 알리겠다고 협박했다.

"협박이라고요?"

"네. 제가 먼저 성추행을 했다면서. 집안에서 일하는 여자라고 우습게보고 손을 댔다고요."

"그건 사실이 아니잖아요?"

"하지만, 저한테 말하더라고요. 사람들이 누구 말을 믿어줄 것 같냐면서. 온 지 3일밖에 안 된 과외 선생 말을 누가 신뢰하겠냐고."

"이런···."

-꺼내 봐요.

-뭐, 뭐를요?

-순진한 척하긴. 아저씨 좆 대가리 내놔 보라고. 얼마나 큰지 구경해 보게.

적나라하게 당시 상황을 재현하는 도훈의 묘사 앞에 유리는 점점 듣고 있기가 민망해졌다. 하지만 상황파악을 제대로 해야 박회장에게 보고를 올릴 수 있었기 때문에 꼼꼼하게 이야기를 들었다.

-제, 제발 그만둬 주세요.

-아저씨 잘리고 싶어? 내가 아저씨한테 추행당했다고 회장님한테 불면, 아저씨 무사할 것 같아?

결국 도훈은 어쩔 수 없이 바지를 내려 물건을 꺼냈고, 금자는 그런 도훈의 대물을 잡고 희롱했다고 전했다.

"희롱이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세요."

"···그, 그러니까."

"괜찮으니까 다 말하세요."

"막 물고 빨고···."

"······."

다 말하라던 유리는 낯뜨거운 장면을 상상하다 얼굴이 터질것처럼 달아오르고 말았다. 3류 야설에서나 나올 법한 스토리였지만, 평소 금자의 문란한 성격에 비추어보면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이기도 했다.

"그러다 유리씨가 나오는 낌새를 알아차리곤 소파 밑으로 굴러가 걸레질을 하는 척하더라고요."

"근데 이야기 중에 숨긴 게 있군요."

"수, 숨기다뇨? 제가요?"

"제가 지금 대협씨를 추궁하는 건, 회장님의 서재에 있을 때 신음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대협씨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부분이 전혀 없거든요."

도훈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맞죠? 저한테 아직 말씀 안하신 게 있죠?"

"음···. 사실 이건 저랑은 직접 상관이 없는 일이라···."

"상관이 없다고요? 어떻게 상관이 없죠?"

"금자라는 분이 소리를 낸 건 맞습니다. 하지만 그건 스스로 낸 것이라···."

"네?"

도훈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대충 말을 얼버무렸다.

"제걸 빨다가 혼자 흥분하셔서는 갑자기 밑으로 손을···."

"읍!"

"그게 그렇게 된 겁니다."

내막을 모두 파악한 유리가 미간을 찌푸리며 이마를 짚었다.

만약 도훈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 하더라도 증거는 조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도훈이 진실을 왜곡하거나 자신을 기만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고려해야 했다.

"좋아요. 대협씨 말대로라면 이건 명백한 성추행이고, 금자의 잘못이에요. 하지만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있을까요?"

도훈이 당황스럽다는 듯 되물었다.

"아까 분명 저택에 CCTV가 설치되어 있으시다고."

'아차!' 유리는 스스로 모순을 실토한 셈이 되자 급히 얼버무렸다.

"그, 그렇긴 하지만 정확하게 카메라가 그쪽을 비추고 있는지는 확실치가 않아서요."

"음성이라도 녹음 되지 않았을까요? 분명 저한테 협박한 내용도 있을 텐데요."

"죄송하지만 영상만 녹화되거든요."

"아···."

그때 도훈이 뭔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맞다, 증거가 있어요."

"있다고요?"

"네. 금자라는 분이 저를 협박하겠다고 사진을 찍은 게 있거든요."

"사진이요? 자세히 말해보세요."

금자는 도훈이 대물을 꺼내게 만든 뒤 얼굴이 보이도록 폰카로 전신사진을 찍었다고 말했다.

"그게 정말이라면 확실한 증거겠군요. 본인이 대협씨에게 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그런 사진을 남겨놓은 것은 이치에 맞지 않으니까요. 말하기 어려웠을 텐데 솔직하게 말해 줘서 고마워요."

"자, 잠시만요."

"네?"

"그럼 이제 금자라는 분은 어떻게 되는 거죠?"

유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이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행위예요. 나중에 회장님께 보고드려서 쫓아내겠어요."

"그, 근데···, 회장님께서 제 말을 믿어 주실까요?"

"증거가 있다면서요."

"하지만 저한테 이렇게 말했거든요. 자기가 회장님이랑 특별한 사이라고. 자기 말 한마디면 저를 자르는 건 일도 아니라고요."

"음···. 그래도 이건 잘못한 사람이 명백히 있는데···."

도훈의 말을 듣자 유리도 문제점을 깨달았다.

어찌 됐건 금자는 현재 회장의 총애(?)를 받는 여자였다.

섣불리 건드렸다간, 도리어 도훈에게 불똥이 튈 수도 있었다.

"비서님. 저도 사회생활 오래 해봐서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끝이 안 좋을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만약 회장님께서 사실을 모두 있는 그대로 믿는다고 해도, 계속 저를 과외 교사로 써주실까요?"

"······."

의외로 냉정한 도훈의 발언에 유리도 내심 공감했다.

그녀가 성추행을 당하고도 미군에서 쫓겨난 이유 역시 그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일방적인 피해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안 좋은 소문이 뒤따랐다. 꽃뱀이라느니, 유부남을 꼬드겨 인생을 나락으로 빠뜨렸다드니, 설사 진짜 당했다고 해도 꼭 그렇게까지 잔인하게 했어야 했냐는 둥.

군대라는 남성 중심적이고 폐쇄적인 조직 내에서, 그녀의 행위는 자신의 직속 상관을 파면시킨 항명이라는 말도 안되는 생트집이었다. 결국 동료들의 은근한 따돌림과, 여성으로서 수치심을 견디다 못한 유리는 스스로 군복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결국 제 발로 나가게 되었을 때, 이후 다른 동료들이 홀가분해 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인간관계에 환멸까지 느끼기 까지 했다.

'대협씨 말이 맞아. 이런 문제일수록 신중해야 돼. 자칫 일을 그르쳤다간 오히려 피해자인 대협씨만 억울한 일이 생길수도 있어.'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요. 일단 괘씸하지만, 이 일은 좀 더 신중히 접근해 보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저희 회장님께 고용된 분이고, 저는 회장님의 비서로서 해야할 일을 할 뿐입니다."

도훈을 다독이던 유리는 여전히 바지 안에서 순대처럼 뻗어나온 대물을 보고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 근데 확실히 크긴 크네. 일상생활이 상당히 불편하겠어.'

"대협 씨는 잠시 여기 계세요. 혹시나 금자가 증거인멸을 시도할지 모르니 미리 증거를 확보해 둬야겠어요."

"어떻게요?"

"그건 저한테 맡겨 두세요."

도훈과 얘기를 마친 유리는 다시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사이 금자는 주방에서 정리를 하는 중이었는데, 그릇을 설거지하느라 싱크대 쪽으로 등지고 선 상태였다.

"밖은 아직 덥네요."

"···네."

시답잖은 대화로 주방으로 접근을 시도한 유리는 목이 마르는 척 정수기에 컵을 대고 물을 받았다. 동시에 빠른 눈썰미로 금자의 핸드폰을 찾았다.

커다란 화면의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금자가 평소 집안일을 할 때 아무곳에나 폰을 팽개쳐 둔다는 버릇을 기억하고 있었다.

'저기 있다.'

싱크대 주변 식기 건조대에서 폰을 발견한 유리는 금자의 폰을 확보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참, 아가씨가 병원에 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죠?"

"네."

"저녁은 평소보다 조금 늦게 차려야 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오늘은 소화가 잘되는 죽을 쒀보는 게 어때요?"

"···죽이요?"

설거지를 하고 있던 금자가 기분 나쁘다는 듯 고개를 훽돌렸다.

수행비서와 가정부라는 위치 때문에 보이지 않는 위계가 있긴 했지만, 주방의 일이나 상차림에 대해선 터치를 하지 않는 게 관례였기 때문이었다.

'왜 저래 오늘? 뭐 잘못 먹었나?'

금자는 자신이 어리다고 무시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대로 근무하는 나이 든 파출부에 대해서도 요리 메뉴를 간섭하는 지 묻고 싶었다.

일부러 금자를 도발한 유리는 자연스럽게 핑계를 댔다.

"아까 김기사한테 연락이 왔는데, 접촉사고 이후 아가씨속이 좀 안 좋다고 저녁을 가볍게 준비해 달라고 연락을 받아서요."

괜한 김씨 핑계를 댄 유리의 말에 금자도 화를 누그러뜨렸다.

"알겠어요. 아가씨 요청이라면···."

"혹시 식재료가 필요하면 제가 나가는 길에 사 가지고 올까요?"

"아뇨. 제가 찾아볼게요. 없으면 배달시키면 되니까."

금자는 자꾸 자신의 영역까지 간섭하는 유리의 태도가 못마땅한지 딱 잘라 말했다.

'가지가지 하네 진짜. 자기 일이나 똑바로 하지.'

유리의 태도가 성가셔진 금자는 곧바로 고무장갑을 벗더니 주방 옆 식재료 창고로 들어갔다. 그 순간 유리가 잽싸게 움직였다.

'지금이다.'

금자가 자릴 비운 사이 금자의 핸드폰을 확보한 유리는 비번이 걸린 암호를 빠르게 해제했다. 평소 남다른 관찰력으로 금자의 비번이 굉장히 단순한 '0000' 이라는 숫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미리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핸드폰을 켜고 사진첩에 들어간 유리는 갤러리에 저장된 첫 번째 사진을 보고 놀라 까무러쳤다.

도훈이 묘사한 사진이 정말로 있었던 것.

곧이어 식재료 창고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다급해진 유리가 자신의 폰을 들어 사진을 사진찍었다.

그리고 금자가 다시 주방으로 돌아왔을 땐 시치미를 뚝 떼고 물컵의 물을 마셨다.

"따로 재료를 주문할 필욘 없을 것 같아요."

"다행이네요. 그럼 수고하세요. 저는 마저 일 끝낼게요."

"네."

증거를 확보한 유리는 도망치듯 박회장의 서재로 들어갔다.

벽에 등을 기댄 그녀의 이마에선 땀방울이 주륵 흘러내렸다.

"후-.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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