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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345화 (1,312/2,000)

1328. 여대 잠입-28-

* * *

"그러니까 나한테서 빌린 돈을 못 갚겠다는 소리네?"

사방이 꽉 막힌 지하실.

희미한 조명 아래, 피 칠갑한 사내가 의자에 묶여 있었다.

사내는 퉁퉁 부어오른 눈을 애써 떴다.

"으으, 바, 박회장. 제발 목숨만 사, 살려주게."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박회장은 의자에 묶인 사내와는 완벽하게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그는 광을 잔뜩 낸 구두에 혹시나 핏방울이 튈까봐 거리를 두고 섰다.

"아이고, 김사장님. 제가 뭐 죽이기라도 한 답니까? 무슨 말씀을 그렇게 섭섭하게 하십니까? 저희 애들이 말귀를 잘 못 알아 듣고 험하게 다룬 점에 대해선 사과 드리겠습니다.

근데···."

인자하게 굴던 박회장의 목소리가 돌연 딱딱해졌다.

"돈을 빌렸으면 장기를 팔아서라도 갚아야지, 씨발놈아.

감히 누구 돈을 떼 먹으려고?"

순식간에 변신하는 박회장의 모습에 김사장이라는 사내가 움찔 놀라고 말았다. 소문으로만 듣던 악랄한 사채업자의 모습 그대로였다.

"아, 아니. 벌써 갚은 이자만 해도 원금을 넘어···."

"하-. 말귀를 좆나게 못 알아듣네 씹새끼가."

박회장은 갑자기 옆에 서 있던 건달쪽으로 몸을 돌렸다.

"야."

"네, 회장님."

"내가 이 따위 모습 보려고 귀한 시간 내서 여기까지 왔어?"

"죄, 죄송합니다."

짝-!

박회장이 벼락같이 뺨따귀를 날렸다. 덩치가 큰 건달은 찍소리도 못하고 얻어 맞기만 했다.

"죄송하면 다야? 이딴 식으로 밖에 일 못 해?"

"죄송합니다."

짝!

박회장은 다시 뺨을 걷어붙이더니, 그래도 분이 안 풀리는지 구둣발로 정강이를 냅다 걷어찼다.

"악!"

"똑바로 서 이 새끼야!"

정강이를 걷어차인 건달이 자세가 무너지자 박회장이 옆에 있던 검은 옷의 사내에게 말했다.

"칼 줘봐."

"······."

"칼 줘보라고. 손목 하나 잘라버리게."

"회, 회장님!"

박회장의 명령을 받은 사내는 허리춤에 검은색의 막대기를 차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묵 빛의 검집에 든 일본도였다. 손목을 자르겠다는 소리에 김사장이란 사람까지 나서서 말렸다.

"바, 박회장. 내가 돈을 갚을 테니 제발 그만하게."

"그만?"

박회장은 다시 김사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만이라는 말이 나와? 대체 뭔 수로 갚을 건데?"

"공장 부지라도 팔겠네. 제, 제발!"

"담보를 뭘로 잡을 건데?"

"뭐, 뭐라고?"

"당장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입 터는 건줄 내가 모를줄 알고?"

"아, 아니. 20년을 바쳐 온 내 공장을 넘기겠다는 데, 그것도 못 믿겠단 말인가?"

"난 원래 사람 잘 안 믿거든. 이렇게 하지. 듣자 하니 대학생 딸내미가 하나 있다고 하던데, 서연대 2학년에 다니는."

"그, 그게 무슨 뜻인가!"

"무슨 뜻이긴? 일주일 안에 공장부지 정리해서 빚 청산 못하면 니 딸년을 창녀촌에 팔아서라도 받아내겠다는 소리지."

박회장은 눈하나 깜빡하지 않고 김사장을 윽박질렀다.

아귀같은 그의 모습에 김사장은 질릴대로 질려버렸다.

"아, 알겠네. 제발 내 딸은 건드리지 말게. 제발 부탁하네!"

김사장이 눈물 콧물 다 쏟으며 사정했다.

목적을 달성한 박회장은 그제야 환하게 웃으며 다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김사장님. 진작 이렇게 협조적으로 나왔으면 서로 얼마나 좋습니까? 꼴이 이게 뭡니까 진짜, 속상하게."

방금 전까지 악마같이 굴던 박회장이 안면몰수하고 태도를 싹 바꾸는 모습은 사이코 패스처럼 섬뜩한 장면이었다.

박회장은 마무리를 부하들에게 맡긴 후 지하실을 빠져나왔다.

그의 뒤에선 일본도를 찬 경호원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건물 밖으로 나온 박회장은 그제야 손에 끼고 있던 라텍스장갑을 거칠게 벗어 던졌다.

"젠장. 이런 것 하나 스스로 처리 못 해서 파주까지 오게 하고 말이야."

"······."

보디가드는 원래 과묵한 사람인지, 아니면 일본인이라 한국말을 못 알아 듣는지 전혀 반응이 없었다. 그럼에도 박회장은 독백처럼 계속 떠들었다.

"나 때는 말이야, 내가 한창 현역으로 활동할 때는 돈 받으러 갔다가 못 받아오면 퇴근할 생각도 못 했다고. 하여간 요즘 것들은 빠져 가지고."

"······."

"켄타로. 아까 칼 달라고 할 때 왜 가만있었어?"

켄타로라 불린 의문의 사내가 오랜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놀랍게도 그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은 한국어였다.

"···제가 칼을 뽑으면 누구 하나가 피를 봐야 끝나거든요."

"뭐? 하하하! 이 친구 진짜, 한마디 할 때마다 뼈를 울리는 구만. 하긴 그렇지. 손목 자를 때 쓰기엔 아까운 칼이지. 하하하!"

"······."

켄타로는 그 한마디를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박회장은 과묵한 켄타로가 싫지 않았다.

'켄타로는 쓸데없는 소릴 안 해서 좋단 말이지? 실력도 확실하고.'

켄타로는 박회장이 데리고 다니는 보디가드 중 유일한 외국인이었다.

성명은 고스케 켄타로, 하지만, 재일교포 출신인 부모님의 영향으로 한국어도 곧잘 하는 편이었다.

겉으로는 건실한 사업가 행세를 하는 박회장은, 어두운 일을 할 때만 켄타로를 동행시켰다. 혹은 해결사로서 일을 맡길 때도 늘 켄타로에게 부탁했다. 말수는 적고, 행동은 확실한 켄타로는 한 번도 박회장을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그나저나 바로 병원으로 가야되는 건 아닌가 모르겠네.

아까 김씨한테 연락왔는데."

경기도 파주까지 일을 보러 가던 박회장은 딸인 지수가 4중 추돌사고의 피해자로 병원에 간 일을 보고 받았다. 다행히 큰 사고가 아니라 단순한 접촉 사고라는 설명에 끝까지 마무리했지만, 일이 끝나자 갑자기 딸 생각에 걱정이 든 것이었다.

"일단 병원부터 들르자고."

"······."

차에 오른 두 사람은 곧바로 서울로 출발했다. 하지만 운전하는 내내 켄타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박회장도 익숙한 듯 켄타로에게 말을 걸지 않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들었다.

* * *

"네, 무슨 일이시죠?"

유리가 급하게 노트북을 덮었다.

중요한 업무였는지 급히 가리는 모습이었지만, 방해를 받았는데도 짜증 부리지 않는 모습에 도훈이 감격했다.

'음, 확실히 인성은 바르단 말이지.'

[주인님은 착한 여자를 좋아하시는 군요.]

'예쁜데 착하면 금상첨화지.'

도훈이 어색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내며 말했다.

"저···."

"네? 말씀하세요."

"방해가 되셨다면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와이파이를 좀 잡으려고 하는데 비번을 잘 몰라서요."

"네? 아, 와이파이요."

"제가 폰에 데이터 제한이 걸려있어 가지고··· 하하."

"그러세요? 잠시만요. 저도 잘 몰라서···. 혹시 밖에 일하시는 분에게는 여쭤봤나요?"

"아, 화장실에 가셨는지 안 보이셔서요."

"그래요? 음, 저도 여기서 따로 와이파이를 잡아 본 적은 없어서요."

"그렇습니까? 죄송합니다. 실례가 많았습니다."

도훈이 불쌍한 척 물러서자 그 모습이 딱해 보였는지 유리가 붙잡았다.

"잠시만요. 노트북이 무선으로 잡아 쓰는 걸 보면 잡히긴할 거에요. 공유기에 비번이 적혀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아, 그렇습니까?"

유리는 도훈을 위해 공유기가 설치된 곳으로 이동했다. 공유기는 책상 맞은편 벽면 TV받침대 밑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무릎을 꿇은 채 허리를 숙여 기계를 살펴야 했다.

'지금이다. 감시 장비 준비해.'

[넵.]

도훈은 유리의 시선을 돌린 후 재빨리 서재 구석에 놓인 화분 아래에 감시 장치를 설치했다. 조약돌 크기의 물건은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자갈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8k이상의 화질을 배터리 충전 없이 무선 전송 가능한 천상계의 아이 템이었다.

장치를 설치하면서도 도훈은 믿을 수 없었다.

'근데 이런 볼품없는 장비가 최첨단 CCTV의 기능을 수행 한다는 거야?'

[나노의 세계에선 크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0 .1나노의 세계에선 탱크도 동전 사이즈로 압축 가능하거든요.]

'와···. 정말 천상계의 기술력은 놀랍구나.'

[서재는 그렇다고 치고, 안방에 설치는 어떻게 하시려고요?]

'핑계를 대봐야지.'

"어, 찾았어요. 이거 같은데요?"

그 사이 공유기에 붙은 비번을 확인한 유리가 도훈에게 와이파이 비번을 알려주었다. 도훈은 핸드폰에 비번을 넣는 척 시늉을 하고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 이게 아닌 것 같은데요?"

"네? 혹시 잘 못 적으신게 아니고요?"

"네. 다시 쳐봤는데 비번이 바뀐 것 같습니다."

"아···."

최초에 부여받은 와이파이 비번이라도 사용자 설정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었다. 유리는 박회장이 비번을 바꾸었다고 생각하고 안타까워했다.

"죄송해요. 나중에 아가씨 오시면 물어봐야 할 것 같아요."

"네."

도훈이 풀죽은 듯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다 문득 벽면에 연결된 인터넷 선을 보고 물었다.

"아, 혹시 인터넷 선이 이쪽으로만 들어오나요?"

"네?"

"저 방은 어떤가 해서요."

"회장님 방이요?"

도훈이 가리킨 방은 서재에서 바로 연결되는 박회장의 방이었다. 유리는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잘 모르겠지만, 회장님 방은 출입 금지라서요."

"아···.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괜히 일하시는 데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도움을 못 드렸네요."

유리는 끝까지 도훈을 배려하며 말했다. 감시 카메라 설치를 끝낸 도훈은 안방까지 확보 못 한 것을 아쉬워하며 일단 서재에서 물러났다.

다시 거실로 돌아온 도훈은 소파에 앉아 스마트워치를 켰다.

연동된 장비를 링크시키자, 놀랍게도 조그만 디스플레이 화면에 박회장의 서재 모습이 실시간으로 전송되었다.

'헐, 대박. 진짜 카메라였네?'

[천상계 아이템 성능을 의심하시는 겁니까?]

'그럴 리가. 잘 됐다. 몇 개 더 사서 집안 구석구석 설치해 놔야겠다.'

감시 장비의 성능을 확인한 도훈은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장치를 설치했다. 장치는 필요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존재했는데, 주변과 어울리는 소품으로 바뀌자 누구도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감쪽같았다.

'근데 이게 어떻게 베터리 충전이 가능한거야?'

[쉽게 말하면 태양열과 흡사한 원리입니다.]

'잠깐. 그럼 볕 드는 곳에 설치해야 하는 것 아니야?'

[아뇨. 형광등의 빛만으로도 충전이 가능할 만큼 고효율의 집광장비를 쓰기 때문에 베터리가 떨어질 가능성은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대단하네.'

[확대도 가능합니다.]

'확대?'

[화면을 터치하시고 손으로 벌리시면 특정 화면을 넓게 볼 수 있습니다.]

'근데 이거 시계로 보기엔 크기 자체가 너무 작은데.'

[스마트 워치 화면을 스마트 폰으로 미러링 하시면 보기 편하실 겁니다.]

'미러링이라고? 그게 가능해?'

[모르셨습니까? 측면의 용두를 세 번 눌러보십시오.]

도훈이 스마트 워치 측면에 붙은 용두를 딸각딸각 누르자, 갑자기 폰의 블루투스 기능으로 스마트워치가 연동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바탕화면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어플이 자동설치 되었는데, 어플을 실행시키자 스마트 워치의 화면이 핸드폰으로 넘어가며 넓게 확대되었다.

'오옷! 이런 기능이!'

스마트 폰 화면도 크다고 할 수 없었지만, 조그만 시계의 디스플레이에 비하면 훨씬 컸다. 도훈이 카메라의 화면을 동시에 띄우자 스마트폰 화면이 자동으로 8분할 되면서 전체를 동시에 띄웠다.

'우아, 이렇게 선명하게 나오다니.'

[각각의 카메라는 확대 및 광폭설정, 그리고 상하좌우 화각 조절역시 가능합니다.]

'놀랄 노자로군.'

[시험해 보시죠.]

도훈은 일부러 유리가 일하고 있는 박회장의 서재 화면을 터치했다. 분할되었던 화면 중 유리가 의자에 앉아있는 화면이 팝업되면서 클로즈업 되었다.

[양 끝의 화살표 버튼을 누르면 카메라의 각도 조절이 가능합니다.]

'오, 근데 갑자기 자갈이 움직이면 티나지 않을까?'

[몸체는 움직이지 않고 내장된 카메라 렌즈만 움직이기 때문에 상관없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도훈은 카메라의 각도를 조절해 유리가 앉아 있는 서재를 가운데로 옮겼다. 동시에 두 손가락을 벌리자 화면이 확대되며 유리의 얼굴이 스마트폰을 가득채웠다.

'이야, 이건 진짜 대단하네. 몰카 찍는 기분이야.'

[실제로 몰카 맞는데요.]

'흠흠, 그런가? 소리도 들을 수 있어?'

[네. 마이크 장비가 내장되어 소리까지 전송됩니다. 기본적으로 음소거 모드지만요. 한 번 켜보시겠습니까?]

도훈이 화면에 나온 스피커 모양을 클릭하자 스마튼 폰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노트북 키보드를 두들기는 소리 말고는 별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흐음. 각도를 좀 조절해볼까?'

도훈은 몰카를 찍는 다는 생각에 신이 나서 이번엔 카메라 각도를 밑으로 내렸다. 유리의 얼굴을 비추고 있던 화면이 점점 밑으로 내려가더니 책상 밑의 다리쪽으로 이동했다.

유리가 앉은 박회장의 책상은 밑이 가림막 없이 뻥 뚫려있는 구조였기 때문에 짧은 치마를 입은 유리의 다리가 적나라하게 내비쳤다.

검은 스타킹을 신은 유리의 다리는 각선미가 훌륭했기 때문에 도훈은 침을 꼴깍 삼키며 화면을 더욱 확대했다.

'오오, 조금만 더 당기면 팬티가 보일수도.'

[아, 아니 주인님. 그건 너무 변태같은데요.]

도훈이 스마트폰 화면에 몰입해 유리의 가랑이 사이를 확대하고 있는데 불쑥 뒤에서 누군가 말했다.

"···하, 진짜 가지가지 하네. 야동을 볼 거면 집에 가서 보시든가?"

집안을 청소하고 돌아다니던 금자가 소파에 앉은 도훈의 뒤에서 그의 스마트 폰을 힐끔 쳐다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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