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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344화 (1,311/2,000)

1327. 여대 잠입-27-

호감도는 역대 최저.

불구대천의 원수도 아니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저만큼 적개심을 갖는 것도 기이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 이유가 단순히 얼굴이 못생겨서라니···. 도훈은 진심으로 화가 났다.

'이름도 무슨 60대 할머니 같은 게.'

[금자요?]

'그래. 불친절한 금자씨! 그러고 보니 그 배우도 이름과 안어울리게 이쁘긴 했구나.'

얼굴과 이름이 매칭이 안 되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사실 얼굴이 이름을 따라갈 이유는 없었다. 다만 도훈은 상대가 자신을 혐오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본인도 금자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기 힘들었다.

'주는 것도 없이 미운 여자는 오랜만이구만.'

[어쩔 수 없습니다. 주인님 몰골이 말이 아니니까요.]

'왜? 제법 풍채도 있겠다, 나름 남자답지 않아?'

[너무나 본인 위주의 해석이군요. 이제껏 주인님이 여자들에게 호감을 쉽게 살 수 있었던 이유는 단지 잘생겼기 때문입니다. 주인님도 알고 계시잖습니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본인에게 보이지 않는 매력이 넘친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외모에서 1차로 걸러지기 마련. 예선도 통과 못 한 사람에게 본선의 기회를 주기란 쉽지 않았다.

이미 금자에게 있어 도훈은, 인터넷 수리하러 온 A씨나 택배를 배달해 주는 B씨 정도의 신세였다. 쉽게 말하면 듣보잡취급을 받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괄시가 도를 지나치네.'

도훈은 금자의 청소를 피해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냥 기다리기 무료해서 그런데 바깥 좀 둘러보고 오겠습니다."

"그러시든가요."

여전히 쌀쌀맞은 대답. 오히려 보기도 싫은 도훈이 제 발로 나가준다니 반기는 목소리였다.

'넌 씨, 두고 보자. 잘생긴 얼굴로 돌아와서 뒤지게 따먹어버릴 테니까.'

도훈은 이를 갈며 저택 밖으로 나갔다. 박회장의 집은 건물 크기에 비해 마당은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었는데 잔디가 깔린 마당을 잠깐 둘러보고 나니 더 둘러볼 곳도 없었다.

그때 별채로 보이는 조그만 건물이 눈에 띄었다.

'응? 저 건물은 뭐지?'

건물 입구는 셔터가 내려와 있었는데, 차를 주차하는 차고 지처럼 보였다. 옆으로는 사람이 쉴 수 있는 조그만 숙소가 있었다.

'아하, 여기가 박회장 보디가드가 머무는 곳이려나?'

[보디가드요?]

'왜, 24시간 3교대로 돌린다잖아. 그럼 심야에도 박회장의 지근거리에서 호위를 해야 할 거 아냐? 집안에 들일 수 없으니 바깥의 별채에 따로 공간을 만든 게 아닐까?'

[주인님의 추측이 맞는 것 같습니다.]

박회장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해야 하는 도훈의 입장에서 보디가드가 머무는 숙소는 요주의 관찰 대상이었다. 도훈은 별채에서 안채까지의 거리를 가늠해 보며 시간을 어림했다.

'유사시에 1분 이내에 도달 가능한 위치군.'

[근데 지난번 유리양은 서재 옆 방에서 대기하고 있지 않았던가요?]

'주간에는 근접 경호를 펼친다고 봐야지. 그래도 잘 때는 옆에 재우진 않을 테니까.'

[하긴 그렇겠군요.]

'그리고 아까 금잔가 뭔가와 비밀스러운 관계도 유지하는 중이라며. 설마 경호원을 옆방에 두고 하녀랑 떡 치진 않을 거 아냐?'

[지당한 의견입니다.]

'하여간 돈 많은 놈들치고 여자 안 밝히는 놈을 못 봤다니까.'

[한데 최번개는 분명 박회장이 여자 문제는 깔끔하다고 했지 않나요?]

'여태 결혼도 안 하고 독신으로 살았다는데, 집 안에 들인 하녀랑 붙어먹고 있는지 누가 알았겠어? 최번개도 이건 알기 어려웠을 걸.'

[근데 이상합니다.]

'뭐가?'

[내연녀의 존재가 있는데 어째서 미션 대상에 그의 딸인 지수양이 타깃이 된 걸까요?]

'세부 미션 내용이 뭐였지?'

[박회장이 사랑하는 사람을 빼앗는 것이었죠.]

'문제에 답이 있네.'

[네?]

'박회장이 하녀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정보창에는 그녀가 박회장의 정부라고 뻔히 나왔는데요?]

'섹스를 하는 사이라고 사랑한다는 뜻은 절대 아니거든.

날 보면 이해가 쉽지 않아?'

[아···.]

'그리고 금자 역시 박회장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도 아닐 거야. 몸을 대줘서라도 안주인을 차지하려는 꿍꿍이속 때문에 상호 이해가 맞아 떨어진 것뿐. 막말로 대학생 딸이 있는 50대 박회장을, 겨우 서른 초반인 금자가 왜 좋아하겠냐고?

안 그래도 외모 따지는 년이.'

[박회장도 나름 동안에 미남 아닙니까?]

'그래봐야 환갑 다된 할아범이지. 고추나 제대로 서나 모르겠네.'

[한마디로 주인님 생각엔 두 사람이 정서적 교감 없는 육체적인 관계일 뿐이라는 거군요.

'그렇지. 박회장도 남자다 보니 정액을 싸지를 곳은 필요할 테니. 솔직히 금자라는 하녀가 헛물 켜고 있다고 봐야지.'

[흐음.]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혼자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셈이랄까. 막말로 박회장 같은 지독한 인간이 뻔히 자기 재산 보고 달려드는 하녀 속셈도 눈치 못 챌 까봐서? 아주 금자를 손바닥에 가지고 놀고 있을걸?'

[허어.]

도훈이 밖에서 로시와 얘기를 하고 있는데, 정문이 열리며 차 한 대가 들어왔다. 차고지 앞에 멈춰 선 차에서 익숙한 얼굴이 내렸다.

"엇, 유리씨?"

운전석에서 내린 사람은 박회장의 보디가드 유리였다. 도훈은 박회장이 함께 온 줄 알고 긴장했으나, 뒷좌석에는 아무도 없었다.

"안녕하세요, 대협씨 맞죠? 아가씨 과외 선생님으로 오신."

"네, 안녕하세요.

유리는 도훈의 이름과 직함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근데 여기서 뭐하세요?"

경호원 숙소를 둘러보고 있다고 할 수 없는 도훈이 변명을 지어냈다.

"아···. 안에서 잠시 기다리다가 담배를 태울까 하고."

도훈이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담배를 꺼내자 유리도 곧이 곧대로 믿는 눈치였다. 그만큼 도훈의 위장은 성공적이었다.

"얘기는 들으셨죠? 아가씨께선 잠시 병원에 들러서 검진 중입니다."

"많이 다쳤나요?"

"아뇨. 특별한 이상은 없지만 혹시 모르니까요."

도훈이 담배를 들고 쭈뼛거리자 유리가 흔쾌히 말했다.

"편히 피우세요."

"아, 그래도 괜찮을지."

"네. 상관없어요."

"근데 회장님은···. 같이 안 오셨네요?"

"아, 오늘은 다른 일정이 있으셔서요. 저는 회장님이 맡긴 일이 있어서 잠시 들렀습니다."

유리는 경호원이기도 하지만 공식 직함은 수행비서였다.

그녀는 박회장의 여러 업무에도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었는데, 박회장이 부탁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 집으로 들른 것이었다.

"네."

유리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지, 아니면 혼자 담배를 피우는 도훈의 말동무가 되어주고 싶었는지 한동안 그의 곁에 머물렀다.

"죄송합니다. 담배 연기가 하필···."

"전 괜찮아요. 예전에 흡연자들 사이에서 많이 지내봐서."

[미군에 소속되어 있을 때를 말하는 걸까요?]

'아마도 그렇겠지? 근데 유리는 굉장히 좋은 사람이구나.

청소한다고 집 밖으로 쫓아낸 금자에 비하면, 이건 뭐 천사가 따로 없네.'

[여러모로 박회장 같은 인물 밑에서 썩기엔 아까운 사람입니다.]

'그러게. 얼굴도 금자보단 훨씬 고급지게 예쁘구만. 박회장도 눈이 단단히 뼜지. 저런 유리 거르고 금자라니. 류현진 거르고 나승현도 아니고.'

[네? 류거나요?]

'아니, 그런 게 있어.'

[근데 유리양 성격상 상사와 사적인 관계를 맺진 않겠죠.

더구나 아직까지도 처녀를 지키는 걸 보면요.]

'하긴 그런가?'

대화가 잠시 끊어지자 유리가 어색했는지 도훈에게 먼저 물었다.

"듣기론 중동에서 오래 계셨다던데."

"네."

"어디에 계셨어요?"

"어, 그러니까···. 아부다비 쪽인데···."

"아하. 저도 가본 적 있어요."

"네? 중동을요? 어떻게요?"

"음, 전 직장이 해외파견이 많았는데 3년 정도 근무한 적이 있었어요."

"오, 혹시 전에는 무슨 일하셨는데요?"

유리는 U.S. army 소속일 때 해외파병을 말하는 듯했으나, 도훈에게 정체를 숨기기 위해선지 다른 직업을 둘러댔다.

"그냥 뭐···. 일종의 다국적 기업이랄까? 그 정도로만 알아 주세요."

"이야, 능력자셨구나."

"아니에요. 운이 좋았죠."

유리는 도훈과의 대화가 재밌는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수업은 할 만하세요?"

"지수양이요? 아···. 그게 뭐라고 해야할 지."

"좀 힘들죠?"

"네? 아니 뭐 힘들다기 보다는."

"편하게 말씀하셔도 돼요. 아가씨가 언어 쪽에 재능이 있는 편은 아니라서."

"네, 좀 가르치기 벅차긴 하더라고요. 하하!"

[이상하군요. 유리양이 주인님을 무척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요?]

'그러게. 심심했나?'

도훈은 유리가 자신에게 친근하게 구는 이유를 추측해보았다.

'아무래도 대화를 나눌 사람이 주변에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

[대화요?]

'박회장하곤 직접적인 고용관계다 보니 거리감이 있을 거고. 우선 미국에서 한국으로 넘어 온 입장이잖아.'

[아, 그렇죠. 본래 미군 부대 소속이었으니까요.]

'그러니 한국에 딱히 친구도 없을 테고···. 집안에 일하는 사람들하곤 대화가 안 통할 것 같긴 해.'

박회장의 집에서 일하는 파출부는 모두 둘이었는데, 한 명은 나이가 너무 많았고 나머지 한 명은 바로 싸가지 없는 금자였다. 나이는 엇비슷하지만 서로 극과 극의 성향인 만큼 둘은 견원지간 이상으로 사이가 나쁠 가능성이 컸다.

[흐음, 어찌 보면 딱한 처지군요. 먼 한국에 와서 용병으로 고용된 셈인데 마음 터넣고 대화 나눌 사람조차 없다니.]

'오죽하면 40대 아저씨인 나와 얘기를 나누겠어? 그만큼 외롭다는 뜻이겠지.'

[이거 잘하면 사이즈 나오는 거 아닙니까?]

'외모에 대한 편견만 없다면 슬쩍 찔러볼 순 있을지도. 마침 지수도 늦게 온다니 한 번 견적을 내보자.'

"그럼 전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다음에 또 봬요."

"네."

유리가 집 안으로 들어가자 도훈도 잠시 있다 따라 들어갔다. 금자는 거실 청소를 끝내고 다른 곳으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도훈은 유리를 찾아 박회장의 서재로 이동했다. 동시에 집안에 혹시나 CCTV 같은 게 있는 지 면밀히 확인했다.

24시간 경호원을 배치할 만큼 철두철미한 박회장이라면 보안에 신경을 많이 썼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집안에는 별도의 감시 장비가 보이지 않았다.

'의외로 집안에는 뭐가 없는데.'

[그러게요. 하긴 개인 경호원이 붙어 있는데 별도의 감시장비가 집안에 필요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오케이 좋아. 그러면 내가 이 집에서 무슨 일을 벌이든 녹화 걱정은 없다는 소린데.'

도훈은 길을 잃은 사람처럼 집안 구석구석을 살폈다. 거사를 치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방이 여럿 있는데 실질적으로 사용하는 방 외에는 그냥 게스트룸 같은 건가?'

도훈이 무심결에 화장실 문을 열었을 때였다.

안에선 금자가 치마를 걷은 채 팬티를 올리고 있었다.

"···뭐하세요 지금?"

놀랍게도 금자는 팬티를 올리면서도 도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아, 앗, 죄송합니다. 사람이 있는 줄 모르고."

금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팬티를 끝까지 올리더니 경멸스러운 말투로 도훈에게 말했다.

"사람이 교양이라곤 없나, 참나."

"네, 네?"

"얼른 문이나 닫으라고요!"

결국 도훈이 꾸벅 고개를 숙이며 문을 닫아주었다.

우연히 맞닥뜨린 장면에 도훈은 속으로 어이가 없었다.

'봤어?'

[네? 금자양 팬티요? 흰색이던데요.]

'아니, 나한테 들키고도 눈하나 깜짝 안하는 모습.'

[네. 놀랍더군요. 어떻게 저 상황에서 아무렇지 않게 행동할 수 있죠?]

'나를 개 좆밥으로 여기고 있다는 소리야.'

[그게 무슨 뜻이죠?]

'나를 위협적인 남자로 여겼다면, 비명을 지르고 난리를 쳤을 걸. 무슨 강간범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 그러고 보니 너무 침착하던데요. 소름끼칠 정도로.]

'그러니까, 나를 남자로 여기지도 않는다는 거지. 대놓고 끝까지 팬티 올리는 거 봐.'

도훈이 서 있는데 손을 씻고 나온 금자가 문밖으로 나오더니 도훈을 향해 한마디 했다.

"뭐예요 진짜? 매너 없게."

"죄, 죄송합니다."

도훈이 다시 사과했다.

금자는 혀를 끌끌차며 말했다.

"꼴에···. 하여간. 주제를 알아야지."

금자는 도저히 하녀라곤 여겨지지 않는 경멸적인 말투로 도훈을 노려본 다음 그를 지나쳤다. 마치 귀부인이 흑인 노예를 능멸하는 것과 유사한 느낌이었다.

도훈은 속으로 어이가 없었다.

'아 놔, 저 쌍년이 보자보자하니까 진짜!'

[어이가 없네요. 이미 안주인 같은 행세군요.]

'그러니까 말이야. 제대로 돌아버린 듯.'

[그건 그렇고 주인님이 이렇게 무시 받는 것도 오랜만이군요. 얼굴 빻은 호빠 선수일때도 이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대머리가 이렇게 멸시 받는 줄 알았으면 가발은 안쓰는 건데.'

[화를 다스리시지요. 어쨌든 금자양은 계획에 없는 상대니까요.]

'후읍, 후읍. 그래야지.'

도훈은 겨우 화를 진정시키고 유리가 있는 박회장의 서재로 향했다. 서재의 문은 살짝 열려 있었는데, 문틈으로 보니 유리가 박회장의 서재에서 노트북을 펴고 작업을 하고 있었다.

도훈은 일부러 헛기침 소리와 함께 인기척을 냈다.

"흠흠, 저 혹시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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