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4. 여대 잠입-24-
* * *
"어? 도훈이 형?"
3일 만에 학교에 나가 처음 마주친 사람은 다름 아닌 영철이였다. 영철은 막 전역했을 때보다 훨씬 상큼하게 변해 있었다.
병장 때부터 조금씩 길렀다는 머리는, 어느새 자릴 잡아 완연한 민간인으로 보였다. 가을의 초입에 걸맞게 흰색 옥스퍼드 남방에 갈색 면바지를 입었는데, 허리띠를 하지 않고 체크 멜빵으로 포인트를 주어 패션 피플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하고 있었다.
"오랜만이다 영철아. 어라, 너 염색했냐?"
"네, 갈색으로 살짝. 아, 그게 아니고 어디 갔다가 오신 거에요? 며칠째 안 보이시던데?"
"조교 선생님한테 못 들었어?"
"안 그래도 1학년 애들이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개인 사정으로 못 나온다고만 들었거든요."
[강민주 조교가 부고를 알리지 않은 모양이군요.]
'하긴. 직계도 아니고 친척 상을 굳이 학생들에게 알릴 필욘 없겠지.'
"그냥 일이 좀 있었어."
"아하, 전 또 무슨 일 있는 줄 알고."
"너야말로 요새 무슨 일 있는 거 아니냐? 완전 멋있어졌는데?"
"네? 아 그게···."
정곡을 찔린 영철이 쭈뼛거리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직 못 들으셨구나."
"뭘?"
"혹시 채원이한테 연락 안 왔어요?"
"채원이? 내 사촌 동생? 평소엔 따로 연락하는 사이는 아닌데?"
"저는 채원이가 말할 줄 알고 형한테는 따로 말씀 안 드렸거든요."
"응? 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저희···. 어제부로 사귀기로 했어요. 헤헤."
"뭐, 뭐?"
[앗, 주인님의 예상대로군요.]
'내 이럴 줄 알았다.'
"진짜? 진심으로?"
"아···, 그게···. 형이랑 저번에 채원이 집 가서 같이 잤었잖아요."
"그때부터?"
"아, 아뇨. 그때는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근데 그 뒤로 따로 연락을 주고 받다가···."
"와, 이 자식. 그럼 계속 썸타고 있었어?"
"네. 그래서 어제 큰 맘 먹고 제가 고백했거든요."
"그래서 채원이가 사귀자든?"
"네. 헤헤. 다 형 덕분이에요."
"와, 이거 진짜 축하를 해야 할지."
"왜, 왜요?"
"아니, 나야 채원이를 어려서부터 쭉 봐왔잖아. 걔가 남자 친구 사귄다고 하니까 기분이 좀 이상하다. 그것도 학과 후배를."
[채원 양은 원래 주인님을 좋아하지 않았습니까?]
'맞아.'
[근데 주인님과 학과 선후배인 영철군하고 사귄다고요?
혹시 변절이라도 한 걸까요?]
'변절은 무슨. 나한테 팽당하고 복수하려는 거지.'
[복수요?]
'왜, 그런 심리 있거든. 약간 NTR 느낌이긴 한데, 일부러 전 남친이나 전 여친의 지인하고 홧김에 사귀어 버리는 거.'
[일부러 기분 더러우라고요?]
'그것도 있지만 다른 표현으로는 질투심 유발 작전 같은 거지. 자길 방치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식으로.'
[호오, 주인님은 근데 '일'도 타격 없지 않습니까? 채원양을 영철군에게 소개해주고 엮어준 당사자니까요.]
'그렇지. 그리고 아직 사귀기는 했는데 진도는 전혀 못 나간 것 같군. 나는 사귀지도 않고 따먹었는데.'
[그건 어떻게 압니까?]
'둘이 섹슈얼한 뭔 짓을 했다면 이미 어장관리에서 경보가 울렸을 거 아냐?'
[아하. 아직 채원양이 어장에 들어 있으니.]
'뭐, 사실 어떻게 보면 영철이만 불쌍하게 된 거지. 내가 먹고 버린 계집애 설거지하는 꼴이잖아.'
[혹시라도 나중에 채원양이 다 폭로해 버리는 거 아닙니까?]
'그렇게는 못 할 걸.'
[왜요? 보란 듯 영철군하고 사귀기까지 했는데 주인님이 그러거나 말거나 무관심하다면···.]
'그건 정말 나랑 안 볼 각오로 벌여야 하는 일이거든. 하지만 내 좆 맛을 본 이상 쉽게 손절은 못 할거라고 봐.'
[자부심이 대단하군요.]
'잦이에 부심이 있긴 해.'
영철은 한동안 내가 말이 없자, 충격을 받은 줄 알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형, 저 정말 채원이한테 잘할게요. 저 좋은 놈은 아니지만, 군대 갔다 온 뒤로 진짜로 마음 잡았거든요. 어제 여사친들 번호도 다 차단시켰어요."
"···새끼. 내가 무슨 채원이 부모님이냐? 그런 걸 왜 나한테 말해?"
"그, 그래도 채원이랑 형이랑 사촌이니까."
"사촌도 멀면 남이랑 다를 바 없어. 암튼, 축하한다. 잘해 봐."
"앗, 감사합니다. 형! 전 그럼 수업 가봐야 해서."
"응."
영철은 나에게 이실직고하고 후련한지 한결 가벼운 걸음으로 멀어졌다.
"새끼, 그렇게 좋나?"
헛웃음을 지으며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잠시 후 득달같이 채원에게서 깨톡이 날아왔다.
-채원 : 오빠, 영철 오빠한테 들었죠?
-도훈 : 어, 방금.
-채원 : ······.
-채원 : 저한테 무슨 할 말 없어요?
-도훈 : 축하한다.
-채원 : 하-. 어이없네. 두고 봐요, 영철 오빠랑 엄청 찐하게 연애해 버릴테니까.
-도훈 : 응, 파이팅!
채원은 더 답장이 없었다. 열받아 부글부글하고 있을 채원을 생각하니 다시 웃음이 터졌다.
"푸하하. 내가 질투할 줄 알았나? 어림없는 소리하고 있어."
"지금 누구랑 얘기하는데? "
한참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모자 쓴 여학생 한 명이 다가왔다.
"오수정?"
"어쭈? 선배 봤으면 냉큼 인사부터 박아야지, 회장이 빠져가지고."
간만에 본 수정이 농을 건넸다. 그녀는 늘 쾌활한 성격이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데도 더욱 반가웠다.
"안녕하십니까, 졸업반 선배님!"
"그래. 회장 네가 수고가 많다. 근데 너 요새 여자 만나?"
"아닌데?"
"방금 이어폰으로 통화한 거 아니었어?"
나는 고개를 좌우로 돌려 인이어 이어폰이 없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아니라니까."
"뭐야? 방금 누구랑 얘기하지 않았나?"
"그냥 혼잣말한 거야."
"너 이상한 버릇 있구나?"
"하하. 그나저나 여긴 어쩐 일? 도서관에서 공부할 시간 아닌가?"
그때 수정이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했다.
거의 맨살에 스트라이프 티 하나만 걸친 터라, 기지개를 켜자 가슴의 무브먼트가 역동적으로 비추었다. 어우, 새끈하긴.
"뜨아아아! 졸려서 잠깐 학교 산책 중이었어. 그러다 흡연구역에서 혼자 담배 피우고 있는 널 발견한 거고."
"눈 썰미도 좋네. 난 줄은 어떻게 알고?"
"키가 그렇게 큰데 딱 보면 척이지. 어? 너 근데···."
수정이 갑자기 내 어깨와 삼두를 더듬었다.
"너 요새 운동하니?"
"운동이야 매일 하지."
"아니 그게 아니라···."
수정이 스스로 팔짱을 끼더니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나의상반신을 훑었다.
"아닌데, 뭔가 몸이 달라진 느낌인데."
역시 수정은 눈썰미가 좋았다.
하긴 마지막으로 수정을 볼 때가 여름 캠프였으니 환골탈 태 전일 것이다. 매일 본 애들은 점진적인 변화과정을 함께 하느라 차이를 못 느끼지만, 오랜만에 본 수정은 내 몸이 변한 것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요새 좀 빡시게 하고 있거든. 체지방도 걷어내면서."
"응? 왜? 너 몸 좋잖아."
"학교 축제 때 미스터 국성 나가보려고."
"미쳤구나?"
"응?"
"설마 여학생들 앞에서 팬티만 입고 서겠다는 거야?"
"팬티는 아니고 상탈만 할 거야. 하체는 노출 부담 때문에 심사에서 제외하기로 했거든."
"그거나 그거나지. 와, 이도훈이 진짜···."
"왜? 체육과 대표로 나가려는 건데."
"대표는 무슨! 내가 모를 줄 알고? 네 속셈 뻔히 보인다.
몸 자랑해서 여자애들한테 인기 끌려는 거잖아."
[역시 눈치가 빠르군요.]
'수정이가 은근 여우거든.'
"뭔 소리야?"
"뻔하지. 흥, 하여간 맨날 여자들 따먹을 생각만···."
"야, 야! 학교에서 말 조심 좀 하지?"
"엄연히 있는 파트너는 방치하고 쓸데없는 짓하고 있으니까 하는 말 아냐."
아무리 둘만 있다고 해도, 흡연 구역은 대로변에 붙은 곳이었다. 당장 주변을 지나 드는 학생들도 보일 정도지만 수정은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였다.
"아니 넌 임용시험 준비하고 있으니까."
"흥. 임용 보는 사람은 뭐, 욕구도 없니?"
[왜 저러는 걸까요?]
'하필··· 그 날인가 본데.'
[그날요?]
'욕정 터진 날.'
[아···.]
'팔선녀 로테이션 돌기 전까진 간간이 뚫어줬는데, 한동안 방치했잖아. 그러다 욕구불만에 쌓인 모양이야.'
[저런. 주인님 잘못이군요.]
'임용공부 하는 줄 뻔히 아는데 그렇다고 먼저 부르기도 그렇잖아.'
"시험 얼마 안남지 않았아? 100일 깨진 거 아닌가?"
"그래. 1차 시험까지 100일도 안남긴 했지. 그렇다고 한 시간도 못 낼 까봐서?"
"아니 나는 그게 아니라···."
"됐어, 흥. 너 다른 여자 생겼구나?"
[원래 많았는데···.]
'수정이는 짐작만 할 뿐 몇 명인지는 모를 걸.'
"아니야."
"아니면 뭐 혼자라도 푸시나?"
수정이 갑자기 바지 앞에 손을 쥐고 흔드는 시늉을 했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돌발행동에 급히 그녀를 저지했다.
"야야, 왜 그래?"
"뭐? 나 지금 폭발 직전이라니까? 누가 나 방치플레이 해서?"
"알았어, 알았어. 일단 진정하고."
나는 수정을 진정시키며 그녀를 다독였다.
"맹세코 다른 여자 때문에 그런 건 아냐. 네가 공부하고 있는 줄 아니까 일부러 연락 안한거지."
"흥. 나보고 그말을 믿으라고?"
"진짜라니까?"
"증명해."
"증명이라니?"
"성의를 보이란 말이야."
"지, 지금? 나 오후 수업 남았는데···."
"오케이. 수업 언제 끝나는데?"
"어···. 그러니까 3시?"
"너 우리집 어딘지 알지?"
당연히 알다마다.
라면 먹고 가래서 맨 처음 수정과 한 곳이 수정의 자취방이었다.
"응."
"수업 끝나고 바로 와. 가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진심이야?"
"도훈아. 나 진짜 이런 얘기 안 하려고 했는데···."
"어."
"아까 책상 모서리에 여기 살짝 부딪혔는데 자위하고 싶어 지더라."
수정이 몸에 쫙 달라붙는 레깅스의 가운데를 가리켰다.
그러고보니, 맨날 헐렁한 추리닝만 입고 다니던 수정은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레깅스 차림이었다.
"그, 그 정도라고?"
"몰라. 나 지금 미칠 것 같으니까 니가 책임져. 다 너 때문에 이렇게 된 거잖아."
"아니, 그게 왜 나 때문이야?"
"너랑···. 시작만 안 했어도 이런 생각도 안 날 거 아냐!
이씨!"
수정이 강짜를 부리는 바람에 더 말다툼할 순 없었다.
"아, 알았다고. 이따 끝나고 바로 갈게."
"정말이다? 약속했다?"
수정은 어제 짜증을 냈냐는 듯이 환히 웃었다.
조변석개로 휙휙 바뀌는 그녀의 종잡을 수 없는 감정 기복에 뒷골이 당겨왔다.
'어휴, 욕구불만이 심했나 보네. 저 성격 좋은 수정이가 저렇게 히스테릴 부리는 걸 보면.'
"알았어. 근데 너 레깅스는 좀 자제해. 뭐야 이게."
"왜, 어때서? 요새 여자들 많이 입어."
"아니 그게 아니라, 학교에 입고 다니면 남자들이 쳐다보잖아. 안 민망해?"
"몰라. 막 땡기니까 일부러 더 노출하고 싶었나 보지. 니가 오늘 풀어주면 이제 안 입을게."
"어휴, 진짜."
"암튼 있다 봐!"
수정은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대로변을 향해 걸어갔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오늘 로테이션도 있는데.]
'하루 두탕이야 뭐.'
[그게 아니라 오늘 저녁엔 지수양 과외도 있을 텐데요. 그럼 3탕인데.]
'3탕은 음···. 내공으로 버텨봐야지.'
[만약 돌발미션 대상인 유리양까지 기회가 보이면요?]
'유리는 미룰 수 없지. 각 나오면 4탕이라도 간다.'
[죽어나겠군요, 오늘 하루.]
'그러게 말이다. 잦이 뽑힐 듯.'
* * *
수정은 도훈과 만나기 전 이미 한시간 전에 도서관에서 나와 집으로 향한 상태였다. 오자마자 집에서 샤워를 시작한 수정은 절로 콧노래를 불렀다.
"흐응, 흐응~ 한다, 한다~."
수정은 산책 중 도훈을 마주친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늘은 넘겼으면 도훈에게 먼저 연락을 하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흐응-. 아직 하기도 전인데 밑이 젖어버렸네?'
샤워를 하던 수정은 사타구니 밑이 축축한 것을 느끼고, 얼굴이 빨개졌다. 배란기마다 주기적으로 치미는 성욕이, 요즘 따라 유난히 심해졌다. 수정은 그것이 시험에 대한 압박과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휴-. 시험 다가오니까 점점 초조해지고, 자꾸 딴 생각만 드네. 나 진짜 올해 붙을 수 있을까?'
본능에 휘둘릴수록 더 절제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수정은 참았다가 오히려 병날것이 두려웠다.
'그래. 오늘 도훈이랑 시원하게 한 판 하고, 다시 마음 다 잡아야지.'
샤워를 마친 수정은 몸에서 향기나 나도록 바디 로션까지 듬뿍 발랐다. 젖은 몸을 수건으로 꼼꼼히 닦는데, 밑은 여전히 축축했다.
'어휴. 시작도 전에 젖어 있으면 도훈이가 날 어떻게 생각하겠어?'
수정은 티슈를 이용해 밑을 한 번 싹 닦았다.
하지만 잠시 후 마주칠 도훈의 거대한 육봉을 떠올리자, 금새 또 밑이 흥건해져버렸다.
"에라, 모르겠다."
수정은 더 이상 밑 닦기를 포기하고 팬티와 브라를 걸친채 도훈을 기다렸다. 마침 도훈이 도착했는지 원룸의 초인종이 울렸다. 약속시간보다 10분이나 빠른 시간이었다.
'히히, 도훈이도 하고 싶었나 보네? 10분이나 일찍 오다니.'
수정은 서프라이즈를 해줄 요량으로 팬티에 브라만 입고 벌컥 문을 열었다.
"안에 계셨네요? 택배입···."
그러나 초인종을 누른 사람은 도훈이 아닌 택배기사였다.
"죄, 죄송합니다! 문밖에 놓고 가세요!"
수정이 화들짝 놀라며 쾅- 다시 문을 닫았다.
택배 기사는 뜻밖에 눈호강에 얼굴을 붉히며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수정은 팔불출 같은 스스로의 행동에 현관 문 앞에 주저 앉고 말았다.
"흑흑, 시집 다 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