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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332화 (1,299/2,000)

1315. 여대 잠입-15-

"네네?"

지수는 도훈이 자신을 덮치려는 줄 오해하고 깜짝 놀랐다.

그러나 도훈은 손가락으로 안전 벨트를 가리킬 뿐이었다.

"가까운 거리도 벨트는 매셔야 합니다. 안 그럼 계속 차에서 경고음 울리거든요."

"아, 네, 넵."

지수는 자기 혼자 얼토당토않은 착각을 했다는 생각에 얼굴이 빨개졌다. 생각해 보면 카톨릭 사제가 될 도훈이 엉큼한 행동을 할 리가 없는데도 말이다. 도훈이 운전에 집중하는 사이, 지수가 몰래 도훈의 옆 모습을 훔쳐보았다.

'어쩜···. 옆선도 저렇게 잘 빠졌담?'

보통 동양인의 두상은 평면적이라 앞에서 보면 잘생긴 사람이라도 옆얼굴은 별로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도훈은 옆에서 보는 모습도 서양인처럼 입체적이었다. 특히 얼굴의 중심을 잡아주는 오뚝한 콧대가 매우 높았다.

'수술한 것처럼 콧대가 높네. 근데 신부님이 성형을 할 리 없으니 아마 타고난 거겠지?'

지수가 자신의 옆 모습을 훔쳐보고 있다는 사실은 도훈도 알고 있었다. 무림인이 된 그의 오감은 이제 일반인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뒤통수에 눈이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전후좌우사방의 시야가 한눈에 들어왔다. 카멜레온처럼 눈알이 360도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기척을 감지해 사각지대의 사물까지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입력되는 식이었다.

당연히 앞을 보고 있지만, 도훈은 지수가 정신없이 자신을 훔쳐보고 있음을 느꼈다.

[왜 저렇게 빤히 보는 걸까요?]

'정신 못 차리는 거지.'

[주인님이 너무 잘생겨서요?]

'그런 것도 조금 있겠지만, 지수는 자의든 타의든 성인이 될 때까지 남자를 제대로 못 만나고 살았잖아. 보통의 20대 초반 여자애들 보다 훨씬 남자에 대해 모른단 말이야. 그래서 이성에 대한 호기심 같은 것이 무의식에 깊이 잠재되어 있다가 나를 만나면서 폭발해 버린 것 같아.'

[하지만 주인님을 사제로 인식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제는 당연히 연애도 못 하고요.]

'그러니 더 부담 없지.'

[부담이 없다고요?]

'내가 자기를 꾄다거나 나쁜 맘을 먹지 않는다고 믿으니까, 더 과감해지는 거라고. 남자에 대한 경계심을 낮추는 효과 랄까?'

[한마디로 남자에 대해 불신을 가진 지수양에게, 주인님은 결코 위협적이지 않은 남자인 셈이군요.]

'게다가 잘생기기까지 했으니 오죽 좋아. 평소 궁금했던 남자에 대한 호기심을 풀기엔 최적의 상대라 여기고 있겠지.

'"혹시 점심으로 족발 드셨나요?"

"네?"

도훈의 뜬금없는 질문에 지수가 또 한 번 놀랐다.

"그걸 어떻게···."

"음식 냄새가 나서요. 제가 좀 코가 예민한 편이라."

도훈은 후각 또한 개처럼 발달해 있었다.

아니 그냥 개였다.

"저는 한 조각도 안 먹었어요. 그냥 친구들이 가자고 해서."

"친구들요?"

"네. 같이 다니는 친구들."

"그렇군요."

지수는 점심에 족발을 사 먹었다는 변명이 창피하게 느껴졌다. 실컷 먹어놓고 괜히 친구 핑계를 대는 것 같았다. 지수는 도훈이 오해할까봐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덧붙였다.

"친구들이 워낙 먹성이 좋거든요."

"그래요?"

"정말이에요. 저는 사실 고기 별로 안 좋아해요."

"네."

도훈이 계속 단답으로 대답했기에 지수는 더욱 변명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진짜로 안 먹었는데, 오해받는 게 억울했다.

"진짜예요."

"네, 그러니까 자매님은 고기를 별로 안 좋아하는 데 친구들이 점심때 먹자고 해서 따라갔다는 말씀 아닌가요? 가서 한 조각도 안 드셨고."

"그, 그죠."

"네, 알아 들었어요."

하지만 지수는 그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친구 같지도 않은 친구 때문에 오해받는다는 사실이 너무 혐오스러웠다.

"···실은 이제 친구도 아니에요."

"네? 방금전까지는 친구들이라고."

"친구인 줄 알았어요. 근데 생각해보니 걔들은 저를 한 번도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더라고요."

"으음, 그게 무슨 말씀인지···."

지수는 아차 싶었지만, 어차피 내뱉은 김에 모두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사제인 도훈의 앞에서라면 어떤 말을 해도 이해해줄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이는 마치 상담자에게 내담자가 가지는 의존심과 비슷했다.

"실은 제가 친구를 잘 못 사귀는 편이에요."

"그래요?"

"네, 중학교 때부터 그랬어요. 제가 여중 여고 나왔거든요."

"그러시구나."

"그리고 여대까지 왔으니 사실 초등학교를 제외하면 남자랑은 한 번도 같은 반이 된 적이 없는 셈이죠."

남자를 한 번도 만난 적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었던 지수는 굳이 불필요한 사족을 덧붙였다.

[너무 TMI 아닙니까?]

'넵 둬 봐. 뭐라고 하는지 들어나 보게.'

"여자애들이랑 친해지는 게 저한테는 너무 어렵더라고요."

"왜요? 지수 자매님은 성격도 좋고 되게 상냥하신데."

"정말요? 근데 친구들은 제가 좀 부담스러웠나 봐요."

"부담스럽다뇨?"

지수는 자신이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부잣집 딸이라는 사실을 밝히려다, 그것이 너무 속물적으로 보일 것 같아 말을 아꼈다.

"···암튼, 그런 게 있어요. 그래서 학창 시절부터 단짝 친구가 한 명도 없었어요."

"외로우셨겠군요."

"음. 뭐 그냥 그런대로 지낼 만했어요. 대학도 한 번도 못붙어서 재수, 삼수 할 때는 집에서 과외를 받았구요."

"집에서요?"

"네. 여자 선생님한테요. 그러다 보니 재수할 때도 친구들을 거의 사귀지 못했죠."

"흐음."

"그렇게 대학에 왔는데, 역시나 또래 친구들하고 어울리는 게 힘들더라고요. 삼수해서 들어오니 동기들도 나이 차 때문에 거리감이 있고, 그렇다고 선배들하고 동갑내기처럼 편하게 지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해가 되네요."

"근데 저한테 되게 잘 맞춰주는 애들이 있었어요."

"방금 말씀하신 그 친구들인가요?"

"네."

"그럼 다행 아닌가요? 대학에 와서 드디어 친구를 사귀었으니까요."

"근데 그게 아니었나 봐요. 제 딴에는 친구라고 생각하고 같이 놀았는데, 걔들은 절 이용할 생각만 하더라고요."

"저런."

"저도 뭐 잘한 건 없죠. 걔들하고 어울리기 위해 되지도 않는 이야기에 맞장구를 쳐줬으니까. 사실 속으로는 계속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생각을 말하면 괜히 안 좋게 생각할까 봐 제대로 말도 못 했어요."

[혹시 페미 이야기 아닙니까?]

'그런 것 같지? 친구들하고 드디어 손절했나 본데?'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지만 주인님에게는 오히려 잘된 일이군요. 꼴페미 사상 때문에 공략에 훼방 될 것을 우려하셨는데 말입니다.]

'애초부터 박김지수는 소신을 가지고 여성주의 운동에 뛰어든것도 아니야. 어쩌다 보니 휩쓸려서 동참하게 된 거지.'

[그런데 왜 갑자기 생각을 바꿨을까요? 혹시 주인님의 영향?]

'그건 잘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상관은 있겠지. 이제껏 남자란 존재를 죄다 정신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주인님이 그럼 지수양을 페미 소굴에서 구출하신 셈이군요.]

"안타깝네요. 그래도 대학교 와서 처음 만난 친구라 애틋하게 생각하셨을 텐데."

"아뇨. 이렇게 되고나니 차라리 후련해요."

"네?"

"걔들하고 어울리면 저만 이상한 사람이 됐을 거예요. 오늘을 마지막으로 다신 안보려고요. 그게 맞는 거 같아요."

"아무쪼록 지수 자매님이 현명한 결정을 내리셨을 거라고 믿습니다. 저 건물 맞죠?"

대화하는 사이 어느새 목적지인 건물에 도착한 상태였다.

차에서 내린 두 사람은 과방으로 향했다. 대부분 수업이 끝난 이후라 캠퍼스에 남아있는 학생들이 거의 없어 남자인 도훈도 교내를 편히 돌아다닐 수 있었다.

숫자키로 된 자물쇠를 연 지수가 도훈을 과방으로 안내했다.

"이쪽이에요. 부제님 모시기 누추해서 어쩌죠?"

"아닙니다. 아늑해서 좋네요."

과방의 문 패에는 G.C.D.A 라고 이름이 적혀 있었다.

"동아리 이름은 무슨 약어인가요?"

"네?"

"G.C.D.A 이거요."

궁금해 물은 질문이었지만, 지수는 얼굴을 붉히며 대답을 회피했다.

"별 뜻 아니에요."

"말 안해주시니까 무슨 뜻인지 더 궁금한데요?"

"그게···."

한참 망설이던 지수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Girl Can Do Anything이라고."

"아하. 좋은 뜻이군요."

지수는 자기 잘못도 아닌데 괜히 부끄러웠다.

그럴싸한 구호를 앞세운 동아리였지만, 제대로 운영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 없기 때문이다. 특히, 철학과 사람들로만 운영되는 소모임 형태의 동아리다 보니, 동아리 지원금만 타먹고 실제 활동은 전무했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학교의 예산을 횡령하는 도구 삼아 만든 동아리였다.

'동아리방 하니 괜히 또 태영이 생각나네.'

[군대 간 태영군요?]

'어. 걔 동방에서 딸 잡다가 동방 딸잡이란 전설적인 별명만 남기고 사라졌잖아. 나 같으면 수치사 했을 듯.'

[태영군도···. 짦지만 굵게 대학 생활을 했군요.]

'갑자기 보고 싶은데?'

"아, 앉으세요. 신부님."

"네, 감사합니다. 근데 저 아직 신부 아니라고 계속 말씀드렸는데."

"어차피 곧 되실 거잖아요. 아니에요?"

"음. 그게."

도훈이 내심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세요? 제가 무슨 말실수라도···."

"신학교를 다녔다고 모두가 정식 서품을 받는 건 아니라서요."

"부제님은 잘하실 것 같은데요? 사제복도 되게 잘 어울리시고."

"음···. 모르겠어요. 제가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는지."

"아···."

도훈은 고뇌하는 척 이마를 짚었다.

"보이는 것보다 번뇌가 많거든요."

[밑밥을 까는 건가요?]

'미끼를 던졌으니 지수가 무는지 한 번 보자고.'

"참, 어제 했던 얘기를 마저 해볼까요?"

"네, 신부님. 아, 아니 부제님."

"호칭으로 말고 편하게 이름 부르셔도 됩니다."

"아직 성함을 몰라서요."

"이도훈입니다."

"아···."

지수는 도훈의 이름을 듣고 머릿속으로 곱씹었다.

"어제도 말씀드리다 말았는데, 자매님 주변에 안 좋은 기운이 느껴집니다."

"정말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어제 무슨 특별한 의식을 치러야 한다고 하셨는데···."

"네. 근데 이 의식이란게 좀."

"왜 그러시죠? 편하게 말씀하셔도 돼요. 전 부제님 믿으니까요."

도훈은 망설이는 척 하다 대답했다.

"혹시 엑소시즘에 대해 아시나요?"

"영화로 본 적은 있어요."

"영화는 꾸며진 것입니다. 실제랑은 많이 다르죠."

"아···."

"이 의식은 오직 순결한 사람만이 행할 수 있습니다."

"순결하다는 게···."

"처녀여야 한다는 뜻이죠."

"아···."

도훈의 입에서 '처녀'라는 말이 나오자 지수가 당황했다.

하지만 도훈은 꿋꿋이 대답했다.

"성모 마리아님께선 동정녀셨죠. 순결함이란 그만큼 고결한 가치입니다. 따라서 의식을 행하는 사람도 순수한 처녀여야만 효험이 있습니다."

"그, 그렇군요."

"외람된 질문이지만, 지수 자매님께선···."

"저 남자친구 아직 한 번도 안 사귀어 봤어요. 아까도 말씀드렸는데···."

"네. 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워낙에 중요한 의식이라 좀 더 확실해야 하거든요."

"남자를 사귄 적이 없는데 어떻게···."

"사귀지 않아도 처녀성은 상실할 수 있으니까요."

"네?"

지수가 억울했는지 처음으로 언성을 높였다.

도훈이 다시 진지하게 말했다.

"아, 오해는 마십시오. 물론 자매님 말을 믿습니다만, 조금이라도 저에게 숨기는 게 있다면 큰 사달이 나기 때문에 확실히 하고 싶은 것입니다."

"···네."

"정말 남녀 간 교접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맞는 거죠?"

"마, 맞아요."

지수가 부끄러워하며 대답했다.

"다행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더 여쭤야 합니다."

"어떤 거죠?"

"음···. 사실 첫 번째 물었던 것과 같은 질문인데, 혹시 처녀막이 손상될 정도로···."

"네, 네?"

"자위를 하신 적도 없는 건가요?"

"아니 무슨 그런걸···."

지수는 점점 질문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도훈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워낙 컸기 때문에 의심을 하지 못했다.

"남녀와 교합도 당연히 안 되지만, 처녀막의 유무도 중요 합니다. 처녀막이 없다면 처녀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글쎄···."

지수가 점점 얼굴이 빨게졌다.

"왜 그리시죠?"

"···그건 잘."

"혹시 자위를 한 적이 있으십니까?"

도훈이 민망한 질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통에 지수는 부끄러워 죽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솔직하라고 했기 때문에 지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없는 건 아니지만."

"할렐루야!"

"그, 근데 막 심하게 한 적은···."

"이 의식은 처녀막이 없으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대상자가 처녀막이 있는 처녀여야만 하거든요."

"화, 확실치는 않지만 피가 난 적은 없었어요."

"자매님. 그것으로는 확신이 부족합니다."

"그,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네?"

"제가 직접 확인을 해봐도 되겠습니까?"

"화, 확인을요?"

지수가 화들짝 놀랐다. 처녀막 검사를 한다는 도훈의 말이 어처구니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해는 마십시오. 의식을 위한 과정이니까요. 제가 못 미더우시면 그만두셔도 됩니다."

"아, 아니 부제님이 못 미덥다는 게 아니라···. 그건 너무 민망한데···."

"이해합니다, 자매님. 쉽지 않은 결정이지요. 저도 그래서 의식에 대해 말씀드리기가 망설여졌습니다."

"아···."

"하지만 확실치 않은 상태로 괜히 의식을 했다간, 도리어 큰 화를 입을 수 있습니다. 이 일은 그냥 없던 일로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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