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9. 여대 잠입-9-
* * *
"원래 저 그런데 안 다니는데 친한 친구 한 명이 자꾸 꼬시더라고요. 클럽에 가자면서···."
"음···."
"전 정말 안 가겠다고 했는데, 혼자 가기 심심하다고 며칠째 조르더라고요. 정말 같이 가서 한 시간 춤만 추고 오자면서···. 딱 한시간만 놀자고."
"그렇군요."
"실은 제가 원래 남자 친구 사귀기 전에 몇 번 간 적 있었거든요. 근데 그때는 정말 새벽까지 춤만 추고 집으로 바로 돌아와 가지고···."
'혓바닥이 긴 걸 보니 핑계만 오지게 늘어 놓는 구만.'
[원래 사람은 누구나 자기 합리화를 하니까요.]
'이럴 때일수록 비난하면 안 돼. 지지하고 수긍해 줘야지.
저 여자는 지금 위로를 받고 싶을 테니까.'
"그럴 수 있죠. 원래 클럽이라는 곳이 춤을 추러 가는 곳이니까요."
"혹시 신부님도 가보셨어요?"
"네?"
"아, 아니에요. 제가 실언했어요. 암튼 그래서 지난 토요일에 눈 딱 감고 클럽을 갔어요. 근데 오랜만에 클럽 가니까 너무 기분이 좋더라고요. 남자 친구가 군대가서 자주 못 만나는 것 때문에 약간은 우울했거든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쵸?"
"그런 곳에 가는 것 자체가 나쁜 행동은 아니니까요."
"흑···. 근데 제가 그때 너무 기분이 좋아서 원래 한 시간만 놀다 가려고 했는데 두 시간, 세 시간이 넘은 거예요."
"저런."
"처음엔 술도 거의 안 마셨는데, 갈증나서 술도 마시고···
. 그러다 친구가 둘이서 온 남자들이 있는데 밖에서 가볍게 얘기만 하고 가자고 해서···."
"같이 가자고 했던 친구가요?"
"네. 제가 먼저 막 가자고 한 건 아니고요, 친구가 무턱대고 약속을 해버려서 어쩔 수 없이 따라갔어요. 첨엔 안 나가겠다고 말했는데 친구가 이미 약속을 했는데 못 지키면 안 된다고. 그냥 딱 맥주 한잔만 하고 들어가자고···."
[변명이 너무 추한데요? 없는 친구만 나쁜 사람 만들고 있군요.]
'원래 그렇지 뭐. 친구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로 자신의 잘못을 최대한 감추는 거지. 결국엔 군대 간 남친 몰래 클럽에 따라간 것도, 한 시간만 놀기로 해놓고 새벽까지 논것도, 남자들이 나가자고 꼬시니까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따라 나간 것도 모두 스스로의 결정이잖아.'
하지만 도훈은 속마음과 달리 끝까지 그녀를 지지했다.
조건 없는 신뢰를 통해 그녀의 마음을 달래려는 것이었다.
"자매님. 얘기를 들어보니 자매님이 잘못한 건 없어 보이 는데요?"
"그치만···."
"네?"
"거기서 제가 잘못을 저질렀어요."
"어떤 잘못을요?"
"음···. 신부님께 이런 말까지 말씀드려야 할지···."
"괜찮습니다. 괘념치 말고 다 고백해 보세요."
"제가 한 짓이 너무 부끄럽고 창피해서요."
"하느님께선 모든 걸 용서해 주십니다. 고백하고 회개하세요."
"그러니까···. 막상 밖으로 따라 나갔는데 친구가 데려온 남자들이 되게 잘생긴 거예요. 저번 달에 남자친구가 휴가 나와서 봤을 땐 여름에 진지공사 한다고 얼굴도 새까맣게 타고 살도 쭉 빠져가지고 되게 초라해 보였거든요. 근데 클럽에서 만난 남자들은 다들 귀티나게 잘 생겼더라고요."
"으음···."
"그리고 오랜만에 남자랑 술마시고 만나니까 너무 기분을 주체할 수 없는 거예요."
"그럴 수 있죠."
"솔직히 남자친구 있냐고 물었는데 거기서 없다고 거짓말을 해버렸어요."
"아멘!"
[예?]
'아, 이거 아니야?'
[아니 너무 오버 아닙니까?]
'몰라. 그냥 아무렇게나 추임새 넣은 거야.'
"저 정말 나쁜 여자죠? 흑흑. 그냥 남자 친구 있다고 솔직히 말했어야 했는데···."
"엉겁결에 당황해서 자기도 모르게 말이 헛 나올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러니까요."
"그, 그런걸까요?"
"네. 하지만 지금 말씀하신 이야기만 가지고는 큰 죄를 지은 것 같진 않아 보이네요. 남자 친구의 존재를 부정한 것이 떳떳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게 바람을 피웠다고까지·
··."
"그게 다가 아니에요, 신부님."
"네?"
"어··· 그러니까···."
여자가 갑자기 이야기를 망설였다.
신부 행세를 하는 도훈에게 어디까지 솔직하게 말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이었다. 보통 신부는 결혼을 하지 않고 평생 독신으로 살기 때문에, 성적인 부분까지 모두 얘기하는 것이 몹시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느껴진 것이었다.
"솔직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죄를 사하여 주십니다."
"그···. 자버렸어요."
"네?"
"아니 그러니까 원나잇이라고···. 죄송해요."
"원나잇이 무엇인가요?"
[주인님.]
'뭐?'
[가증스러운데요. 주인님이 걸핏하면 하는 짓이면서.]
'왜? 신부니까 원나잇을 못 들어봤을수도 있잖아?'
"어··· 그게···. 음··· 그러니까 처음 본 남자랑···"
"네. 처음 본 남자랑."
"어··· 성관계를···."
"아!"
"흑흑, 죄송해요.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닌데 술도 적당히 취하고, 애들도 잘생겨 보이고, 갑자기 친구가 잠깐 바람 쐬러간다고 다른 남자애랑 나가더니 30분 째 돌아오지도 않고··
·."
"그래서요?"
"갑자기 제 파트너가 그러더라고요. 둘이 지금 어디 간 것 같냐면서. 바람 쐬러 나간 거 아니냐고 하니까, 나갈 때 이미 술값을 계산하고 갔다는 거예요. 안 돌아올 거라고. 둘이 아마 모텔 갔을 거라고."
"할렐루야."
[아니 이 타이밍에 할렐루야는 뭡니까?]
'나도 모르게 집중해가지고.'
"전 너무 당황했어요. 그러려고 따라온 게 아닌데···. 친구한테 전화하니까 전화를 받지도 않고···. 제 파트너는 계속 조르고···."
"졸라요?"
"제가 마음에 든다면서···. 같이 자자고···."
"저런. 거절하지 그랬습니까?"
"처음엔 당연히 싫다고 했죠. 저 그런 여자 아니라고. 처음 본 남자랑 막 자고 그러는 사람 아니라고."
"그런데요?"
"근데 계속 꼬시더라고요. 제가 너무 예쁘다면서. 이상형을 만난 것 같다고. 이대로 보내기 싫다면서···."
[쯧쯧. 이젠 남자한테 책임을 전가하는 군요.]
'하여간 자기 잘못은 하나도 없네.'
"그래서 따라나갔나요?"
"모르겠어요. 그때 제가 정신이 나갔나 봐요. 친구는 연락도 없지, 술은 취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겠지, 제 파트너는 자꾸 옆에 다가와서 막···."
"네?"
"막 스킨십을···."
"험험!"
"제가 좀 그런 것에 약하거든요. 그리고 남자친구 못 본지 오래 됐기도 하고···. 왜 막 여자들도 그런 날 있거든요, 땡긴다고 해야 하나? 신부님도 그런적 있지 않으세요?"
"저는 오직 주안에서 행복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말을···."
"아닙니다. 계속 해보세요."
"점점 강도가 심해지더니···."
"심해지더니?"
"나중엔 막 가슴을 만지더라고요."
"아···."
"제가 또 그쪽이 약해서···. 아, 부끄럽네요."
"아닙니다 자매님. 용기를 내서 죄를 회개하세요."
"그러다 키스까지 하게 됐는데, 정말 못 참겠더라고요. 결국 처음 본 남자애랑 모텔에 갔는데···."
"그렇게 바람을 피게 된 거군요."
"저는 정말 나쁜 년이에요, 흑흑."
"그런 생각 하지 마십시오."
"신부님. 이제 남자친구를 어떻게 보죠?"
"자매님.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기에 인간인 것입니다. 살다가 한 번쯤 실수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니 너무 자책하지 마십시오."
"그게 아니라···."
"네?"
"토요일에 보고···. 연락이 오더라고요. 어제."
"주일에 말인가요?"
"네···. 제가 너무 생각난다면서··· 또 보고 싶다고."
"아니 그땐 술도 안 취하지 않았습니까?"
"그쵸."
[술기운이란 말도 죄다 뻥이군요.]
'간만에 좆맛을 봤으니 다음날도 생각났겠지. 이해할 만도 해.'
"그래서요?"
"이건 아니다 싶어서 솔직히 말하려고 나갔어요."
"군대 간 남자친구가 있다고 말하려고요?"
"네."
'거짓말 하고 있네.'
[제가 봐도 그렇습니다.]
"좋은 태도입니다. 잘못을 하더라도 죄를 뉘우치면 되는 것이니까요."
"근데···."
"네?"
"근데···. 진짜 만나서 다 말했거든요? 저 사실 남자친구도 있고, 어젯밤엔 너무 취해서 실수한 것 같다고. 거짓말해서 미안하다고. 그러니까 갑자기 그 남자애가 그러더라고요."
"뭐라고요?"
"무슨 상관이냐면서."
"아니!"
[와, 그 남자도 보통이 아닌데요?]
'오히려 좋았을 걸?'
[네?]
'원래 그렇잖아. 임자 있는 여자가 배는 맛있다고. 군대 간남자친구 있는 여자 원나잇으로 홀랑 따먹었으니 성취감 오질 듯.'
[아니 주인님. 그게 할 소립니까? 인성 진짜···.]
'내 말은 그냥 그 남자애가 그랬을 거란 말이야. 내가 그렇다는 게 아니고.'
"첨엔 진짜 어이 없더라고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
"그래서 뭐라고 했습니까?"
"제가 사람 잘못본 것 같다고. 이런 사람인 줄 알았으면 어제 같이 자지도 않았을 거라고."
"흐음."
"걔가 다시 그러더라고요. 처음부터 속인 건 저라고요. 그러더니 갑자기 또 손을 잡는 거예요."
"손을요? 그래서요?"
"뿌리치려고 했어요. 싫다고. 그러니까 또 조르는 거예요.
어차피 한 번 했는데, 또 하면 어떠냐고. 남자친구 있는 거 신경 안 쓸 테니까 같이 자자고."
"오, 주여."
"흐흑. 그냥 거기서 뿌리치고 나왔어야 했어요. 저도 모르게 또 생각해 보니까, 이미 엎질러진 물 같기도 하고···. 또 토요일날 좋았으니까···. 아니, 그러니까 오랜만에···. 모르겠어요 왜 그랬는지.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더라고요. 전 정말 나쁜 여자예요."
[쯧쯧.]
'그냥 솔직히 좆맛이 그리웠다고 하면 될 것이지 더럽게 변명도 많네.'
"아닙니다, 자매님. 이해합니다."
"신부님이 어떻게 이해해요? 신부님은 아무것도 모르시잖아요."
"그래도 이해합니다."
"진짜··· 저는 최악이예요. 결국 어제도 두 번이나 해버렸어요."
"아아···."
"끝나고 나니까 걔가 저한테 그랬어요."
"남자친구랑 헤어지고 사귀자고요?"
"아뇨."
"그럼요?"
"남자 친구 몰래 섹파나 하자면서."
"섹파요? 그게 뭡니까?"
[주인님이 더 가증스러운거 아시죠?]
'순진한 신부님이 모를수도 있지.'
"섹스 파트너요."
"아니 그건···."
"맞아요. 사귀지는 말고 그냥 하고 싶을 때 같이 섹스나 하자면서. 어차피 지금 기다리는 남자친구랑 결혼할 것도 아니지 않느냐면서···."
"그래서 뭐랬습니까?"
"저는···."
"솔직히 말하셔야 합니다. 주님께서 모든 걸 알고 계십니다."
"솔직히···. 저도 좋았어요."
"네?"
"이런 말 하면 정말 제가 나쁜년 되는 건데, 남자친구보다 잘하더라고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남자친구랑 사귈 때는 좋았는데, 막상 자주 못 보게 되니까 첨엔 엄청 보고 싶다가 점점 시들해졌거든요.
저도 사람인데, 저도 이제 겨우 스물둘밖에 안 됐는데··· 꽃같은 나이에 허송세월하면서 남자친구만 바라보는 게 너무 화가 났어요. 알아요. 제가 나쁜 년인 거. 죄책감도 많이 들었지만, 어차피 남자친구는 모를테니까 ···."
"저런."
"저는 죄많은 여자예요. 주님께서 제 죄를 용서해 주실까요?"
"······."
불순한 의도로 시작한 고해성사였지만, 도훈은 젊은 여대 생의 진실한 고백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망설였다.
'이것 참···.'
[응징하십시오 주인님. 주인님의 좆대로.]
'응징을 떠나서 비극이긴 하네.'
[뭐가 말입니까?]
'원나잇까진 이해할 수 있어. 뭐, 누구나 비밀은 있는 거니까. 실수했다고 치면 그만이야. 근데, 나중에 모든 사실을 알고도 섹파 제안을 한 그놈은 정말 쓰레기 같은 놈이야.'
[흐음, 동족혐오가 지나치시네요.]
'알아 나도 똑같은 부류라는 거. 암튼 아무것도 모르고 최전방에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남자친구가 제일 불쌍하고, 군대 간 남자친구를 그리워하면서도 육욕에 눈이 멀어 바람을 피운 저 여자도 불쌍하고.'
[그럴거면 헤어져야 옳지 않습니까?]
'순서가 꼭 정방향으로 가라는 법은 없지.'
[그게 무슨 말씀이죠?]
'보통은 헤어지고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게 맞지만, 다른 이 성을 만나고 나서 헤어지는 경우도 많다는 거야.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지.'
[골치 아프군요.]
'뭐 어쨌든, 이미 벌어진 일이고 나는 나대로 미션에 최선을 다해야 겠지.'
"자매님."
"···네?"
"후회 하십니까?"
"후회해요. 어젯밤 한 숨도 못잤어요. 아니, 잠깐 잠들었는데 악몽까지 꿨어요. 군대 간 남자친구가 총들고 저를 쫓아오는 꿈이요."
"많이 괴로우셨나보군요."
"흑흑···. 이제 저는 어떻게 하면 좋죠?"
"사실대로 말하는 건 어떻습니까?"
"사실대로요? 안 돼요. 걔는 저를 철석같이 믿고 있거 든요. 제가 다른 남자랑 바람피웠다는 사실을 알면 탈영할지도 몰라요."
"그게 두려워서 진실을 외면하면 더 큰 화가 들이닥칠 겁니다."
"알아요···. 알지만···. 전 왜 이렇게 한심할까요?"
"아닙니다, 자매님.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저는 자매님이 무조건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하느님 말씀은, 결혼하고 나서의 일을 경계하는 것이지 처녀적의 자유분방함을 꾸짖는 것은 아니니까요."
"정말 그럴까요?"
"자매님의 몸은 자매님의 것입니다. 신체의 의사결정 또한 자매님의 뜻대로 하는 것을 비난할 순 없구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고마워요. 너무 죄책감에 시달려서 도통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었거든요. 사실 해결책을 바라는 것은 아니었어요. 그냥 누구에게라도 솔직하게 털어 놓고 싶었거든요."
"마음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네. 훨씬요."
"그럼 기도합시다. 아, 저 그런데···."
"네?"
"한가지 궁금해서 여쭤보는 건데요."
"네, 신부님."
"클럽에서 만난 남자랑 섹파를 하기로 한 건가요?"
"···네?! 그, 그건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