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7. 여대 잠입-7-
* * *
"악령은 아닙니다. 다만···."
"다만 뭐요?"
지수의 목소리가 조급해졌다. 누구라도 자신에게 불길한 기운이 느껴진다고 하면, 설사 미신을 불신하는 사람이라도 신경이 쓰일 것이다. 더구나 지수는 그런 쪽으로 쉽게 휘둘리는 특성을 가진 여자였다.
"음···. 지금 얘기하긴 복잡하고, 혹시 시간이 되시면 조금 이 따가 말씀드려도 될까요?"
"조금 있다가요?"
"네. 제가 심부름을 나온 길이라 얼른 신부님께 물건을 전해드리고 와야 하거든요."
"아···."
지수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시계를 확인했다.
손목에 찬 조그만 시계는 딱 봐도 명품이었다.
"어쩌지···. 하교하는 줄 알고 밖에서 김씨 아저씨가 기다리고 계실 텐데···."
지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도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선약이 있으신 모양이군요."
"아니에요. 선약은 아니고 막 집으로 가려던 참이라···. 전화해서 좀 늦는다고 할게요. 먼저 일 보고 오실래요?"
"괜찮으시겠습니까? 혹시 저 때문에···."
"아니에요. 가끔 일이 있으면 늦을때도 있거든요."
"그런가요? 그럼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꾸벅 고개를 숙이곤 건물로 들어갔다.
아니 가는 척 하면서 슬며시 옆으로 빠져 지수의 행동을 몰래 훔쳐보았다. 지수는 핸드폰을 들더니 통화를 하고 있었다.
"···네, 아저씨. 갑자기 조모임이 잡혀가지고요. 아뇨, 길어야 한 시간 정도?"
대화를 엿들으니 학교 밖에있는 김씨란 운전기사와 통화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마지막 수업에서 교수님이 갑자기 과제를 내주는 바람에요.
아빠한테는 조금 늦는다고 전해주세요."
지수는 통화를 마치고는 초조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나는 재빨리 건물로 들어가 내부 구조를 파악하고는 정문으로 걸어나왔다.
"오래 기다리셨죠?"
"아니에요. 근데 하신다는 말씀이···."
"음, 여기서 하기엔 조금 그렇고 안으로 들어가시겠습니까?"
"성당 안으로요? 안에 얘기할 데가 있을까요?"
"네. 있습니다."
대학 내에 마련된 성당은 굉장히 단순한 구조였다. 하지만 아까 잠깐 내부를 둘러보는 동안 둘만 있을 조용한 장소를 미리 파악한 상태였다.
"이쪽입니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나는 지수를 조그만 방으로 이끌었다.
문패에는 <고해성사>라고 씌여져 있었다.
"여긴 고해성사 하는 곳 아닌가요?"
"조용히 얘기할 마땅한 장소가 없어서요. 신부님께 잠시 쓴다고 말씀드려놨습니다."
"아···. 네."
지수를 고해성사실에 들여보낸 뒤 나는 옆 방으로 향했다.
<신부님 실>이라고 적힌 곳은 문이 잠겨 있었지만, 어차피 나에게 자물쇠는 의미없었다.
문을 따고 안으로 들어가자 두 개의 방이 조그만 칸막이를 통해 연결되어 있었다. 칸막이를 막아선 암막 커튼 때문에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긴 어려웠다. 그때 칸막이 건너편에서 인기척을 느꼈는지 지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신부님이세요?"
"네, 부제입니다."
"아···. 여긴 처음 들어와 봐요."
"그렇죠. 평소엔 지은 죄를 고백할 때 오는 곳이니까요."
고해성사실 내부는 무척 좁았다. 화장실보다 조금 넓은 크기의 조그만 방에 의자 하나만 달랑 놓여 있었다. 게다가 비밀 유지를 위해 암실에 가까울 정도로 채광이 좋지 않아 살짝 으스스한 기분이 들었다. 벽면 반대편의 지수도 비슷한 상황인지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 오니까 괜히 죄지은 사람 같네요."
"자매님, 인간은 누구나 원죄를 안고 태어났습니다."
"아···. 죄송해요. 그런 것은 잘 몰라서. 암튼 아까 하시려던 말씀이 뭐였어요? 저한테 불길한 기운이 느껴진다고 하셨던거요."
"네. 그전에 자매님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박···김지수요."
"네? 박지수인가요, 김지수인가요?"
"그러니까, 박김지수요."
"성이 박씨라는 건가요?"
"아뇨아뇨. 부모성 함께쓰기 때문에 아버지 성과 어머니 성을 같이 쓰고 있어요."
"아···. 혹시 개명도 하신 건가요?"
"아뇨. 그건 아닌 데 그냥 그렇게 부르기로 해서···."
"자매님. 사람마다 타고난 이름이 있습니다. 그것은 본인이 선택하는 게 아니라, 부모님께서 지어주신거구요."
"네···."
"그럼 일단 지수 자매님으로 알겠습니다."
"네."
"저는 편한 대로 부르셔도 됩니다."
"그럼 신부님이라고 할게요."
[근데 고해성사할 때는 원래 익명 아닙니까?]
'원래는 그렇지.'
[근데 왜 이름을 밝히라고 하셨나요?]
'어차피 지수도 처음이니까 아무것도 모를 거 아니야. 일단 이름에서부터 문제를 삼으려고.'
[문제요?]
'지수에게 묻은 페미니즘을 떼어낼 생각이거든.'
"지수 자매님. 근데 부모성 함께쓰기는 어떻게 하시게 된 건가요?"
"아···. 그게. 대학교에 와서 여성주의운동에 대해서 배웠거든요."
"여대에 진학하고 나서요?"
"네. 친구들도 대부분 그렇게 쓰기로 해가지고···."
"음···. 자매님. 제가 볼 땐 거기서부터 조금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문제라뇨?"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사람에게 주어진 이름은 운명 같은 것입니다."
"운명···."
"근데 그 운명을 함부로 바꾸었으니 어찌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헉. 설마 제가 이름을 바꿔서 불길한 기운이 따라다니게 된 건가요?"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영향은 있습니다. 지수 자매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일찍 돌아가신 어머님께서 수호천사처럼 지수님을 지켜주시고 계십니다."
"우리 엄마가··· 수호천사."
"네. 한데 갑자기 20년 넘게 알고 있던 딸의 이름이 바뀌었으니 어찌 혼란스럽지 않을까요?"
"그치만 김씨 성은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함께 쓰는 건데요?"
"어머님께선 오래전 분이라 잘 이해하지 못하실 겁니다. 본인의 딸을 박지수로 알고 있지, 박김지수로 알고 있지는 않으니까요."
"아···."
"이름이란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사제의 길을 걷고 있지만, 구마도 행하는 사람으로서 미혹된 것들 또한 어느 정도 믿는 편입니다. 이름을 바꾸면 팔자가 바뀌기도 한다는 데 어찌 영향이 없겠습니까?"
"그렇구나···. 그냥 저도 모르게 분위기에 휩쓸려가지고."
"자매님. 혹시 대학에 와서 안 좋은 일이 자주 생기지 않으셨습니까?"
"안 좋은 일이요?"
"네. 무엇이든요."
"음···."
지수가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그러고 보니 있는 것 같아요. 저번에 한 번은 교통 사고 날뻔도 하고···. 아, 맞다. 지갑 잊어버린 적도 있어요."
"그겁니다!"
[네? 아니 당연히 그 정도 일은 일어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맞아. 하지만 안 좋은 일을 떠올리라고 하면, 그것이 우연이 아니라 마치 불길한 기운 때문에 발생한 것처럼 느끼게 되거든.'
[이거 완전 사긴데요?]
'당연히 사기지.'
"네?"
"이름을 바꾸고 나서 계속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 겁니다."
"아!"
"이제 확실히 아시겠죠?"
"그, 그치만···."
"그리고 또 결정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거요?"
지수는 점점 내 말에 빠져들었다. 무엇보다 고해성사실이라는 밀폐된 공간이 그녀의 심리를 위축시킨 듯했다. 평소에도 다른 사람에게 잘 휘둘리는 지수에게는, 최적의 조건이 마련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 상태면···. 평생 독신으로 살지도 모릅니다."
"도, 독신이요?"
"네. 혹시 대학와서 남자를 사귀어 본 적이 있나요?"
"아, 아뇨 그건···."
"음. 확실합니다. 이대로면 평생 수절하듯 혼자 살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네? 어째서요? 저는···. 살면서 그렇게 인기가 없지는 않았거든요."
"하지만 그렇다고 남자가 다가온 적도 없죠?"
"그게···. 음···. 좀 사정이···."
"어떤 사정이죠?"
"말씀드리기 복잡한데···."
"편하게 말씀해보세요. 여긴 고해성사를 하는 곳이니까요. 이곳에서 말한 죄는 모두 하느님께서 사해주십니다."
"아···."
'이쯤에서 슬슬 자극해 봐도 되겠지?'
[자극이라뇨?]
'성 경험이 한 번도 없는 여자에게 난생처음으로 성욕을 느끼게 만들어 주려고.'
[네?]
'몸에 좋은 크림으로.' 나는 몸에 좋은 크림을 손에 펴 바른 뒤 암막 커튼 너머로 불쑥 손을 내밀었다.
"자매님. 제 손을 잡아 보십시오."
"소, 손을요?"
"네. 저의 영적인 기운으로 자매님의 두려움을 덜어드리겠습니다."
내 손바닥 위로 지수가 손을 포갰다.
그순간 지수가 놀라며 움찔 손을 뺐다.
"앗!"
"왜 그러시죠?"
"그, 그게···. 좀 이상해서."
"괜찮습니다. 몸 안의 안좋은 기운들이 성령에 놀라 저항하는 것입니다."
"그렇군요."
지수가 다시 천천히 손을 잡았다. 나는 그녀가 다시 빼지 못하도록 꽉 붙잡았다.
"흐, 흐음!"
"조금은 낯선 기분이 들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몸 안의 삿된 기운을 몰아내는 것이니 믿고 맡기셔도 됩니다."
"아···. 그, 그런가요?"
크림을 옅게 발랐기 때문에 자극이 강한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수는 손을 잡으며 처음으로 강한 자극을 느끼는 지 자꾸 몸을 움찔거리는 게 느껴졌다.
"자매님은 저처럼 아직 순수한 영혼을 가지셨군요."
"아···. 그게···."
"괜찮습니다. 저는 바로 알 수 있거든요."
"네···."
"어떤 사정인지 편하게 말씀해보세요. 왜 지금껏 남자를 못 만나셨죠?"
"흐응···. 실은 아버지가 굉장히 엄하세요."
"아버님께서요?"
"네. 그래서 어렸을때부터 또래 남자들이 접근하는 걸 굉장히 싫어하셨거든요. 저는 그래서 늘 여자애들하고만 놀았어요."
"으음."
"지금 다니는 대학도 아버지께서 정해주신 거예요. 다른 종합대에 가면 질 나쁜 남자들 만날 수도 있다면서···."
"저런···. 하지만 여대를 다니는 것과 이성친구를 사귀는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맞아요. 근데···. 아버지가···. 아, 신부님 저 몸에서 열이 나는 것 같은데 괜찮은 건가요?"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저의 성령의 기운 때문에 삿된 기운들이 밀려나가면서 생기는 열감이니까요. 이마를 제 손등에 대보시겠습니까?"
"이마를요?"
잠시 후 지수가 엎드리며 이마를 손등에 올렸다.
그 순간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쳤다.
"아앗!"
"왜 그러시죠?"
"이마를 댔는데 더 이상해졌어요."
"어떻게 이상한가요?"
"모, 모르겠어요. 그러니까···."
"솔직히 말씀하셔야 합니다. 솔직하지 않으면 저도 똑바른 해답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으음···. 그니까···."
[지수양이 안절부절 못하는 것 같은데요?]
'당연하지. 성감을 자극하고 있으니까. 아마 지금쯤 팬티가 축축해지고 있을 걸?'
"흐, 흐으응···. 시, 신부님."
"왜 그러십니까?"
"워, 원래 이렇게 몸이 뜨거워 지는 건가요?"
"맞습니다. 안 좋은 기운이 빠져나가면서 생기는 증상입니다.
어쩌면 체액으로 빠져나올 수도 있습니다."
"체액이라면···."
"여러가지가 있지요."
잠시 후 반대편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 아앗!"
"왜 그러시죠?"
"아, 아니에요. 신부님."
지수의 목소리가 당혹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왜 저러죠?]
'팬티 지린 걸 방금 깨달았나 본데?'
[헐!]
'아무리 처녀라도 저게 뭔지는 알겠지. 자위 같은 걸 안해봤더라도 말이야.'
"흐,흐응··· 시, 신부님 이제 놓아주셔도 될 것 같아요."
"참으십시오. 계속 밀어내야 합니다."
"아아··· 그게···. 흐응···."
"숨소리가 거칠어지는군요. 혹시 어디 아프신 건 아니죠?"
"아, 아아···. 아니에요. 기분이 좀···."
"네?"
"아니에요, 신부님···. 흐읏!"
"자매님. 설마 평생 혼자 살고 싶으시진 않으시죠?"
"아니에요."
"남자를 특별히 싫어하신다던가."
"그, 그건···. 물론 이상한 남자들은 싫지만···."
"그럼 참으셔야 합니다. 지금은 힘들겠지만 몸 안에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나면 훨씬 나아질 겁니다."
"···네. 흣."
[적당히 괴롭히시죠? 아직 경험도 없는 처녀에게 너무 가혹하군요.]
'아직 자극이 부족해.'
"아무래도 삿된 기운이 너무 강한 것 같습니다. 제가 혹시 상태를 봐도 괜찮을까요?"
"네, 네?"
"옆 방으로 옮기겠습니다."
나는 신부실을 나와 지수가 들어가있는 고해성사실로 옮겼다.
몸에 좋은 크림에 자극받아 잔뜩 흥분한 지수는 나를 보자 부끄러워 하며 시선을 피했다.
"시, 신부님."
"잠시 들어가겠습니다."
원래 1인실인 고해성사실에 두 사람이 들어가자 발디딜 틈도 없이 비좁았다. 지수는 최대한 구석으로 몸을 웅크린 채 밀려오는 성욕을 가까스로 자제하고 있는 듯 했다.
나는 그녀를 보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런···. 제 생각보다 상태가 많이 안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많이 안 좋은가요?"
"네. 혹시 숨쉬기가 곤란하신가요?"
"아···. 그게···. 네 조금 답답한 것 같기도."
"땀도 조금 나시는 것 같은데요?"
"맞아요."
"땀이 나는 것은 좋은 현상입니다. 몸에서 나쁜 기운이 빠져나가고 있다는 거니까요. 제가 잠시 상태를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네."
나는 웅크리고 있는 지수에게 다가갔다.
생전 처음 받는 성감의 자극에 지수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마 팬티는 축축이 젖고 유두도 곤두섰을 것이다.
성욕이 차오른 그녀의 이마를 짚으며 조심히 땀을 닦아주었다.
"많이 힘드신가 보군요."
"하아, 하아···. 네. 몸이 이상해요."
"저런···. 이건 아무래도 보통의 방식으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하아, 하아, 그,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하죠?"
"특별한 의식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의식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