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321화 (1,288/2,000)

1304. 여대 잠입-4-

신호음이 계속 갔지만, 지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통화가 부재중 사서함으로 연결되자 전화를 끊은 도훈은 잠시 후 다시 걸었다.

[어째서 번호를 남기십니까?]

'지금 어디 있는지 확인하려고.'

[연락을 안 받는 것 같은데요?]

'낯선 전화는 잘 받지 않는 모양이야. 아니면 지금 수업 중일 수도 있고.' 과연 도훈의 예상대로 연결이 안 된 대신 문자가 하나 날라왔다.

-지수 : 지금은 수업 중이니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문자로 남겨주세요.

도훈은 바로 답장을 남겼다.

-도훈 : 우편물 때문에 연락드렸습니다. 지금 통화 가능하신가요?

잠시 후지수의 번호로 직접 전화가 걸려왔다.

-우편물요? 저 택배시킨 것 없는데?

공항에서 얼핏 봤던 것처럼 앳된 아가씨의 목소리였다. 살짝 하이톤의 음색이 여성적이면서도 어딘가 예민한 성격이라는 느낌을 받게 했다. 도훈은 아이템을 통해 목소리를 변조한 뒤 통화를 이 어갔다.

"박김지수님 댁 아닌가요?"

-저 맞는데요. 혹시 누가 보냈는데요?

"어디 보자, 한국 장학 재단이라고···."

-장학재단이요? 저 장학금 같은 거 신청한 적 없는데.

"저야 잘 모르죠. 보내신 곳에 연락해 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냥 우편함에 놓고 가 주실래요? 지금 수업 중이라 잠깐 나와서 통화하는 거거든요.

"그게 아니라 등기 우편물이라 받는 분 서명이 필요합니다."

-집에 아줌마···, 암튼 일하시는 분 계실 거예요.

"대리 수령은 가족이 아니면 불가해서요. 혹시 다른 가족분은 안 계십니까?

-음, 지금은 없을텐데···. 그냥 다음에 가져다주심 안되나요?

"등기 우편물이라 수취인 부재 시 자동 반송될겁니다."

-그럼 어떻게 하죠? 당장은 받을 방법이 없는데···.

"아까 수업중이라고 하셨나요? 혹시 어디세요?"

-대학생이에요. 배화여대요.

"아, 그러면 다음 배달 장소가 배화여대 근천데 거기서 직접 받으실 수 있나요? 지금 어디세요?

-어, 지금 인문대 2 강의동 쪽인데···.

"제가 30분 안에 도착해서 연락드릴게요. 잠깐 서명만 해주시면 됩니다."

-네. 연락해 주세요.

[오, 위치를 찾으셨군요.]

'인문대 2 강의동이라고 했지? 정시에 끝난다고 가정하면 조만간 수업 끝나겠군.' 경비원 차림의 도훈은 모자를 눌러쓰고 인문대 쪽으로 향했다.

대학의 건물 배치는 어제 사전답사 때 머릿속에 저장해 놓은 상태였기 때문에 금방 찾아갈 수 있었다.

얼굴이 바뀌어서인지, 아니면 복장 때문인지 모르지만 지나가는 여대생들은 도훈에게 일절 관심을 주지 않았다. 평소 늘 여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던 도훈으로서는, 여자가 대부분인 공간에서 전혀 관심을 못 받는다는 사실이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졌다.

'거참, 얼굴이 깡패네.'

[네?]

'평소 같았음 지나가는 여자들도 힐끔거렸을 텐데, 아무리 얼굴이 바뀌었다고해도 이렇게까지 무관심할 줄 이야.'

[익숙하지 않으십니까? 전생에 40년은 그렇게 사셨을 텐데요.]

'몰라. 까먹었어.'

[개구리 올챙이적 모르는 법이라죠.]

도훈은 인문대 앞 벤치에서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나저나 이 차림으로 지수양을 직접 대면하실 생각입니까?

누가봐도 집배원 차림은 아닌 것 같은데요?]

'만나긴 왜 만나? 어디 있는지 확인하려고 한 거지.'

[그럼 우편물은요?]

'일하는 아줌마한테 대충 사인 받고 전달했다고 하면 되지. 어차피 신경이나 쓰겠어? 장학금 받을 만한 필요도 없는 집구석일텐데.'

[하긴, 금전적으로야 전혀 부족함이 없을 테니까요.]

10여분 쯤 기다리다 수업이 끝났는지 건물에서 여대생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도훈은 순찰을 도는 척 건물 주변을 서성이며 박김지수를 찾았다.

공항에서 한 번 본적이 있는데다, 굉장히 눈에 띄는 외모였기 때문에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왔군.'

건물 입구를 나온 박김지수를 확인한 도훈은 그녀의 차림새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와, 온 몸에 명품으로 도배를 했구만, 아주.'

[딱 보면 아십니까?]

'당연하지. 가방도 그렇고 구두도 그렇고. 입고 있는 옷도 하나 같이 명품밖에 없는 걸.'

살짝 떨어져 지수를 관찰하던 도훈은 문자를 남겼다.

-도훈 : 통화로 본인 확인했으니 우편물은 그냥 일하시는 아주 머니께 맡겼습니다.

스마트폰을 확인한 지수가 내용을 확인하더니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하, 뭐야? 이럴 거면 진작 맡기라니까."

그녀의 옆에 있던 다른 친구가 물었다.

"왜? 뭐래는데? 여기서 누구 만나야 된다지 않았어?"

친구는 박김지수에 비교하면 훨씬 못난 얼굴이었다.

"아냐. 처리했데. 그나저나 나 장학금 받는 거 같던데?"

"지수 네가? 너 1학기 성적 별로였지 않아?"

"뭐래? 줄만하니까 주겠지. 기분인데 내가 점심 사줄게."

"아싸! 정민이도 부를까?"

"그래. 수업 끝났는지 전화해봐."

도훈은 두 사람을 몰래 관찰하며 동시에 그녀의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누굴 찾으십니까?]

'경호원. 근처에 있을까봐서. 최번개 말로는 기사 겸 경호원이 한 명 따라다닌다고 하던데.'

[설마 대학 안에서까지 경호를 할까요?]

'하긴···. 그것도 그렇군.' 도훈이 매의 눈으로 주변을 관찰했지만, 딱히 근접 경호를 하는 사람은 발견하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VIP 자녀도 아니고, 한낱 대부업자의 여식을 24시간 밀착감시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경호원이라기 보단 기사 노릇을 하는 사람을 말하는 거였나?'

[어쩜 그럴수도 있겠네요.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일단 좀 더 성향을 파악해 봐야겠어. 점심 먹으러 가는 것 같으니 따라붙어 봐야지.'

[이 차림으로요? 이대로 학교 밖으로 나가면 더 눈에 띄지 않을까요?]

'당연히 또 변신해야지.'

곧 다른 친구와 합류한 지수가 학교 밖으로 나가자 도훈도 거리를 두고 뒤따랐다. 식당 위치까지 확인한 도훈은 곧바로 근처 건물 화장실에 들어가 평범한 대학생 복장으로 갈아 입었다. 역용 마스크의 효과는 여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의 얼굴은 여전히 생소한 사람의 것이었다.

'계속 염탐해 봐야겠어. 배도 고프니 식사도 할 겸.'

[주인님 무슨 사설 탐정 같으시군요.]

'그것도 잘 어울리지 않아?'

식당에 들어간 도훈은 박김지수의 일행의 옆 테이블에 앉았다.

대학 근처에는 혼밥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딱히 도훈에게 눈치를 주진 않았다.

주문을 마친 도훈은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는 척하며 박김지 수 일행을 면밀히 관찰했다.

지수의 친구들은 지수에 비해 너무나 못난 외모였다.

처음 지수와 함께 있던 여학생은 비쩍 말라 앞뒤가 똑같은 전화번호처럼 분간이 되지 않았다.

'설마 남장 여자인가?'

[네?]

'아니 가슴이 없어도 너무 없는데.'

[주, 주인님···. 그건 좀···.]

심지어 얼굴엔 죽은 깨까지 많아 너무 촌스러운 인상이었다. 여러모로 옆에 있는 미인 지수와는 무척 비견되었다.

'나머지 한명의 상태도 멀쩡하진 않네.'

뒤늦게 도착한 친구는 반면 무척 뚱뚱했다.

살이 많아서 그런지 잠깐 걸었는데도 얼굴에 땀이 나서 진한 화장이 살짝 떡져 있었다. 숨을 쉴 때 마다 약간 쿰척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빼빼 마른 죽은 깨녀와 쿰척거리는 씹돼지라니···. 허참.'

[주인님 인성 좀···. 다른 사람 외모를 그렇게 비하하시면 되겠습니까?]

'미안. 내가 하도 예쁘고 귀여운 여자애들만 보다가 갑자기 시선 강간 당하는 느낌이라···.'

[근데 좀 이상한 조합이긴 하네요. 지수양은 온 몸에 명품을 두르고 다닐 정도로 화려한 걸 좋아하는 스타일인데 주변의 친구들과는 좀 어울리지 않는달까요?]

'뻔하지. 일종의 병풍이랄까?'

[병풍이요?]

'당장 몸에 두른 것만 1000만원은 훌쩍 넘어 보이잖아. 저렇게 자기과시가 심하고, 잘난 게 많은 여자애가 한참 부족해 보이는 친구들을 옆에 끼고 다닌다면 이유는 딱 하나지.'

[뭔데요?]

'자길 더 돋보이게 만들어 주는 병풍.'

[아···. 그런 의미로···.]

'원래 그런 여자들이 있거든. 일부러 못 생긴 친구들만 곁에 두는. 일종의 몰아주긴데, 그러면 자기가 훨씬 더 예뻐 보일테니까.'

[그럼 친구들은요? 그걸 알면서도 옆에 따라다닌다고요?]

'점심 지수가 쏜다고 했지?'

[네.]

'아마도 물주같은 느낌일거야. 쉽게 말해서 돈으로 친구를 붙잡아 두는 거지. 저 친구들도 지수의 목적이 뻔히 보이지만, 그냥 옆에서 콩고물이나 얻어 먹으려고 붙어 있는 것일테고. 서로의 목적이 어느정도 일치하고 있다고 봐야지.'

[아하.]

도훈은 폰을 보는 척 하면서 세 사람의 대화를 엿들었다.

여대생 셋이 모이니 확실히 수다를 떠느라 여념이 없었다.

"있지, 있지. 어제도 한남 새끼가 지하철에 나 몰카 하려고 했다니까?"

"정말?"

"그래서?"

"내가 어이가 없어서 딱 째려보면서 폰 좀 보여달라니까 정색을 하더라고."

"그래서?"

"신고해버리지 그랬어?"

"신고하려고 했지. 근데 다음 역에서 도망치듯 내려버리더라고."

"와, 진짜 저질이다."

"한남 최악."

도훈은 대화를 듣고 있던 중 어이가 없었다.

방금 도촬을 당할 뻔 했다는 사람이 바로 뚱뚱한 지수의 친구였던 것.

'미친년.'

[네?]

'아니, 몰래 찍을 사람이 없어서 저 돼지를 찍겠냐고. 착각도 유분수지.'

[취향이 남다른 변태일수도 있잖습니까?]

'아무리 더러운 취향이라도 저건 아니지. 그냥 멀쩡히 스마트폰보고 있는 사람을 자기 혼자 착각해서 의심한 거겠지.'

[근데 신고한다니 도망갔다지 않습니까?]

'자기 혼자 떠드는 말이지. 그냥 더러워서 피했겠지. 아님 정말로 내릴 곳이었거나. 하여간 꼴페미들 같으니···. 왜 저렇게 피해 의식에 사로 잡혀 있는 건지.'

도훈이 속으로 혀를 끌끌찼다.

사실 세 사람의 대화는 옆에 들릴 만큼은 아니었고, 도훈도 의심을 피하기 위해 슬쩍 떨어져 앉았기 때문에 보통은 자기들끼리하는 대화였지만 무공으로 발달된 도훈의 청각은 일반인 보다 월등히 뛰어났기 때문에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하여간 냄저 새끼들은 왜 그러나 몰라? 그렇게 여자 몸이 보고 싶은가?"

"원래 태어나길 변태로 태어나서 그래."

"소추 자식들이 여자만 밝혀가지고는!"

세 사람은 엄한 남자를 까면서 서로 낄낄 거렸다.

[근데 좀 이상합니다.]

'뭐가?'

[다른 두 사람은 주인님 말대로 경쟁에서 도태된 것에 대한 앙심과 열등감 때문이라곤 해도, 박김지수양은 전혀 그럴 이유가 없어 보여서요.]

로시의 지적처럼 박김지수는 페미를 하기엔 너무 예뻤다.

열에 아홉은 좋아할 것 외모를 가지고도 다른 못난 친구들과 함께 남자를 흉보는 행위가 이해되질 않았다.

'나도 그게 의문이긴 해. 어쩌면 후천적으로 세뇌되었다는 의심도 살짝 들고.'

[후천적이요? 세뇌요?]

'아마도 이런게 아닐까 싶어. 박회장은 늦둥이로 본 외동딸을 끔찍이 아끼잖아.'

[그렇겠죠, 아무래도. 귀하게 얻은 자식이니까요. 게다가 출산 때 와이프까지 잃었다면 더더욱요.]

'아마도 그것 때문에 평생 지수를 안으로 싸고 돌았을 거야. 남자도 못 만나게 하고.'

[호오.]

'여중, 여고, 여대를 나왔을수도 있다는 거지. 남자와 전혀 교류 없이.'

[충분히 가능한 예상입니다.]

'근데 지수가 별로 머리가 안 좋아. 비싼 과외도 붙여 봤지만, 뭐 타고나길 빠가일수도 있고.'

[흐음.]

'그래서 3수 끝에 겨우 배화여대에 왔어. 그것도 점수 맞춰서 철학과로.'

[계속 해보십시오.]

'근데 여대 철학과라는데, 시대의 조류가 그래서 그런지 PC주의나 페미에 경도되어 있단 말이지.'

[대충 뭔지 알 것 같군요.]

'주변 사람들이 다 극단적 꼴페미들 뿐이고, 선배나 친구들도 맨날 저렇게 남자들 흉만 보고 있을 거 아니야.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수도 그런 것에 물들어 버리고 마는 거지.'

[일 리가 있는 의견입니다.]

'내가 봐도 돈 많고 예쁜 지수가 굳이 남자를 혐오할 이유가 없거든.'

[근데 주인님이 얘기한 대로면, 아무리 여대생이라도 학교 밖에선 다른 남자를 만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보통은 그렇지.'

[보통은요?]

'하지만 지수는 아버지 때문에 철저히 통제 받을 거 아냐.'

[아! 기사 겸 경호원이라니···.]

'맞아. 아마도 그것 때문에 학교 밖에서도 남자와의 교류가 금지되었을 거라고. 그러다 보니 완전히 고립된 채 남자라곤 자기 아버지밖에 모르게 된 거지.'

[확실히 공항에서의 모습도 나이에 걸맞지 않게 어리광을 피우더군요.]

'남자와 교류가 전혀 없는 꼴페미 여대생이라···. 공략 난이도가 보통이 아니군.'

[이번에는 좀 어렵겠는데요?]

'아직 시간이 있으니 천천히 빈틈을 찔러 봐야지.'

"식사 나왔습니다."

도훈은 혼밥을 먹으며 작전을 구상했다.

계속 듣고 있던 지수와 친구들의 대화도 귀가 썩을 것 같아서 그냥 무시한 채였다. 매일 같이 한국 남자를 비하하는 얘기를 듣다보면 누구라도 혐오감이 들것은 자명한 이치였다.

식사를 마친 지수와 친구들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속도를 맞춰 먹고 있던 도훈도 계산을 끝내고 밖으로 나왔다.

그때 지수의 앞으로 검은 색 세단이 한 대 도착했다.

도훈은 차에서 내리는 남자를 눈여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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