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320화 (1,287/2,000)

1303. 여대 잠입-3-

-정말이니? 어쩜 좋아. 학과 차원에서 화환이라도 보낼까?

"아니에요. 그러실 필요까진 없어요."

-그래도···. 교수님한테 말씀드려볼게.

"정말로 괜찮아요."

한사코 장례식장에 체육과 명의로 화환을 보내겠다는 민주를 겨우 고사한 도훈은 식은땀을 흘렸다.

'어휴, 씨. 없는 큰아버지 괜히 돌아가셨다고 뻥치려니까 괜히 미안하네.'

[그러게 말입니다.]

민주는 그래도 빈손은 예의가 아니라면서 개인 이름으로라도 조의를 하겠다고 했다. 도훈은 차마 그것까지 마다할 순 없어 뜬금없이 계좌로 용돈(?)까지 받게 되었다. 멀리 갈 때 여비로 쓰라며 예상보다 넉넉히 보내는 바람에 도훈은 미안하면서도 고마웠다.

[민주양이 주인님을 정말 아끼시는 군요.]

'그러게. 용돈까지 챙겨줄 줄이야. 다른 학생들에겐 알리지 말라고 했으니 더 소문나진 않겠지?' 겨우 결석계를 제출한 도훈은 본격적인 여대 잠입 계획에 나섰다.

[어쨌든 총 3일의 휴식을 받아내셨군요.]

'응. 공략엔 충분한 시간이지.' 도훈은 변장도구 세트를 이용해 배화여대 경비원 복장으로 갈아입었다. 변장 도구 세트는 맞춤복처럼 기존의 옷을 복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도훈은 순식간에 경비대원 차림으로 변신했다.

[몸이 너무 커보이지 않겠습니까?]

'쩝···. 그런가?' 문제는 다른 사람보다 훨씬 커보이는 그의 체격이었다.

몸에 딱 맞게 복장을 갖추다 보니 근육질의 체형이 고스란히 드러나 이목을 너무 끄는 것 같았다.

[축골공으로 체격을 조금 줄여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것도 가능해?'

[네. 많이는 아니더라도 좀 더 사이즈를 줄일 순 있을 겁니다.]

로시의 조언을 받은 도훈은 근골을 조정해 평소보다 사이즈를 좀 더 줄였다. 마치 계체량 통과 전 수분을 쫙 빼 몸무게를 감량하는 것처럼 도훈의 몸이 전체적으로 줄어들었다.

'이제 좀 평범해 보여?'

[평범보다는 훨씬 좋아보이긴 합니다만, 아까보단 낫네요.]

도훈은 이어 주말에 봤던 경비원의 얼굴을 떠올리며 역용 마스크를 만들었다. 잠시후 실제 경비원과 흡사하게 생긴 인피면구가 만들어졌다.

'오, 정말 감쪽같은데?'

[천상계의 기술력은 최고니까요.]

체형을 바꾸고, 복장을 갖춰입고, 얼굴까지 고치자 도훈은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변했다. 다만 목소리만큼은 변조를 하지 않았는데, 어차피 자신을 알아볼 사람이 없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준비를 마친 도훈이 밖으로 나가려는데 로시가 말했다.

[주인님. 신분증!]

'신분증? 아···.' 도훈은 순간 경비원이 차고 있던 패찰이 떠올랐다.

명찰도 없이 다녔다간, 경비원 코스프레를 하고 돌아다니는 다른 변태(?)들과 구분할 수 없기 때문에 당연히 신분 확인을 위해 패찰을 패용하는 모양이었다. 도훈은 일전에 쓴 신분증 복사도구를 이용해 정교하게 위조된 신분증까지 만들어냈다.

잠시후 완벽한 도플갱어로 거듭난 도훈이 거울 앞에 섰다.

'이러면 정말 감쪽같지?'

[놀랍습니다. 완벽한 위장이군요. 서로 마주치지만 않는다면 절대 들킬 일 없을 것 같네요.]

'설마 그 넓은 대학교에서 마주칠 일이 있겠어?'

차를 타고 여대로 이동하는 동안 도훈은 배화여대 철학과 학과 사무실에 연락했다.

"여보세요?"

-네, 배화여대 철학과입니다.

"아, 다름이 아니고 센서 점검등이 들어와서요."

-누구세요?

"대학 경비실입니다."

-아···. 네. 뭔가 문제가 있나요?

"철학과 건물 동의 센서가 오작동을 일으키는지 자꾸 알람이 떠서요."

-정말요? 그런 얘기는 처음 듣는데···.

"어제 새벽부터 갑자기 그런 것 같더라고요. 어차피 지금은 주간이라 센서가 작동하지 않는데, 그대로 두면 야간에 계속 경비원들이 들락거려야 할 거예요."

-아, 네. 그럼 와서 점검 좀 해주세요.

"네. 이따가 방문 드리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도훈에게 로시가 물었다.

[철학과 학과 사무실은 왜요?]

'일단 박김지수에 대한 신상부터 털어보려고.'

[학적을 캐보시겠다는 말씀입니까?]

'그렇지. 최번개가 알려준 정보는 너무 단편적이니까.' 대학에 도착한 도훈은 경비대원 모자를 눌러쓰고 인문대 철학과 사무실로 향했다. 확실히 여대다 보니 현재 본인이 다니는 국성대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지나가는 대학생들이 모두 여자였는데, 남자가 드물다 보니 자신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게 느껴졌던 것이다.

'오, 여기가 완전 꽃밭이구나.'

[그렇게 눈에 띄는 여학생들은 잘 안 보이는데요?]

'꽃도 꽃 나름이겠지. 저쪽은 호박꽃, 저기는 패랭이꽃. 오우, 할미꽃은 또 뭐야?'

[크흠.]

'가끔 저렇게 장미도 한 송이 있고.'

여대라고 해서 다들 예쁜 건 아니었다.

오히려 평균만 놓고 보면 국성대 체육과 1학년 여학생 물이 훨씬 좋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물량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처럼 여학생들의 숫자가 많다 보니 미인들도 그만큼 많은 것 같았다.

[근데 남학생들도 없는데 굉장히 잘 꾸미고 다니네요? 화장도 대부분 한 것 같고.]

'원래 여자들은 남의 시선을 잘 의식하니까.'

[그게 무슨 뜻이죠?]

'가령 남자들만 모인 대학이 있다고 생각해봐.'

[군대요?]

'아니 그건 대학이 아니고. 암튼 남자가 대부분이 학과 있잖아.

공대라던가.'

[네.]

'남자들은 어차피 제 잘난 맛에 살아서 남자들끼리만 모여있으면 정말 대충 다니거든. 머리도 안 감고, 세수도 안하고, 심지어 일주일 째 같은 옷으로 다니는 놈들도 있을 걸.'

[어우, 그건 좀 더럽네요.]

'암튼 그게 남자들 특성이야. 딱히 외모로 경쟁할 이유가 없을 땐 정말 개판으로 다닌단 말이지. 근데 여자들은 또 달라. 남자가 있든 없든 늘 자기 관리를 하지.'

[그건 왜 그렇죠?]

'어차피 학교가 여대일 뿐 집에서 오고 가는 등하교 길이나, 혹은 학교 끝나고 나서부터는 계속 여자들하고만 있는 게 아니잖아.

설사 남자를 안 만난다고 해도, 여자들끼리는 은근히 경쟁심 같은 게 있거든.'

[신기하군요. 저는 외모를 가꾸는 이유가 이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고만 생각했는데.]

'물론 그게 가장 크지. 세상에 만약 여자들만 산다면, 화장도 안하는 여자들이 대부분 일걸. 여자들이 자기만족 만으로 외모를 가꾼다는 말은 정말 허황된 소리라는 거야.' 도훈이 그런 생각을 하며 계단을 오르는데 쿵쾅거리며 계단을 내려오는 학생들이 보였다. 서로 팔짱을 끼고 길을 막느라 도훈은 어쩔 수 없이 한 쪽으로 비켜서야 했다.

살집이 비대한 여학생은 짧은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화장까지 안 해서 얼핏 보면 남잔지 여잔지 구분이 안 갈 정도였다.

"그러니까 그 냄저가 말이지···."

쿵쾅거리는 여학생은 옆에 학생과 쉴 새 없이 떠들고 있었는데, 도훈은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뭐냐, 저 씹돼지는. 덩치도 산만한게 어디서 길막이야.'

[주인님. 자중하시죠.]

'딱 사이즈 보니까 탈코 중인 페미구만. 뭘.'

[탈코요?]

'탈코르셋 운동.'

[그게 뭡니까?]

'코르셋이 여성형 몸매 보정 도구잖아.'

[그거야 알죠. 중세 유럽에서 여자들이 가슴을 돋보이게 하고, 허리를 가늘게 보이려고 입었던 보정 속옷 아닙니까?]

'맞아. 일부 과격한 페미들이 주장하는 건데, 코르셋을 강제로 입힌 게 남성주의적 시각이라는 거지.'

[남자가 시켜서 입는 게 아니라, 여자들이 자신의 몸매 보정을 입는 거 아닙니까?]

'아니 그러니까, 남성 중심의 사회적 압력이 가해져서 어쩔 수 없이 코르셋을 입게 되었다는 거야. 화장을 하는 것도 그렇고, 예쁜 옷을 입는 것도 그렇고, 심지어 비싼 돈 들여 성형을 하게 된 이유도 모두 예쁜 여자를 좋아하는 남자에게 맞추느라 어쩔 수 없기 강요당했다는 거야.'

[으음, 독특한 사상이군요.]

'그래서 탈코르셋, 말 그대로 앞으론 남자 눈치 안보고 그냥 자기들도 멋대로 살겠다는 거야.'

[그 멋대로 산 결과가 저런 거라면···.]

'뭐, 화장을 안하는 거야 그럴 수 있다고 치는데 자기관리부터 좀 하지···. 어휴.'

"···뭐야 씨팔, 좆나 한남충 새끼가."

쿵쾅녀는 구석으로 피한 도훈을 힐끔 쳐다보더니 대놓고 들으라는 식으로 욕설을 지껄였다.

난데없는 시비에 도훈은 열이 받았지만, 괜히 트러블을 만들고 싶지 않아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길 막하지 말고 좀 비키시던가?"

길은 자기들이 막아놓고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쿵쾅녀를 향해 도훈은 싸대기를 날리고 싶었다.

'어우, 저 씹 돼지 비켜줘도 지랄이네. 자기가 살쪄서 좁은 걸 왜 내 탓으로 돌려?'

[흐음, 정말 성격이 못 됐군요.]

'하여간 이래서 탈코하는 애들 치고 예쁜애들을 못 봤다니까?

지들이 꾸며도 안 되니까 다른 예쁜 여자들까지 하향 평준화 시키려는 거잖아. 하여간 못 된 것들.'

"경비원이면 경비원답게 처신 잘해요."

"···네, 넵."

쿵쾅녀를 끝까지 한 마디를 덧붙이고는 계단을 내려갔다.

얼굴이 시뻘게진 도훈은 심호흡을 하며 겨우 마음을 진정시켰다.

'참을 인, 참을 인···.'

[뭐하십니까?]

'사람 하나 살리는 중이야.'

[네?

'자칫하면 살수가 나갈 뻔 했거든. 진짜 원펀치에 저 세상 구경시켜줄 수 있는데.'

[자중하십시오. 무공을 익힌 주인님은 지금 살인기계에 가까우니까요.]

'당연하지. 내가 민간인이랑 싸워서 뭐하겠어. 그리고 극단적인 페미는 그냥 정신병자라고 생각하는 게 편해.'

[정신병자요?]

'마음이 아픈 애들이라고. 그냥 그러려니 해야지. 똥이 무서워 피하나?'

도훈은 겨우 마음을 진정하고 철학과 사무실을 찾았다.

똑똑-

"네, 들어오세요."

철학과 사무실에 도착해 꾸벅 인사를 하는데 조교로 보이는 30대 여성이 도훈을 반겼다.

"아까 전화 주신 분 맞죠?"

"네."

철학과 조교는 방금 마주친 쿵쾅녀에 비하면 천사에 가까웠다.

몸매도 늘씬하고 성격도 사근사근해 무척 비교되었다.

'진짜 멀쩡한 여자들이 훨씬 착하다니까?'

[주인님 편견 아닙니까?]

'아니야. 솔직히 페미들이 페미가 된 건 본인 잘못만은 아닐지 몰라. 남자들이 다들 멀쩡한 여자들만 좋아하니까, 번식 경쟁에 밀린 열등감을 과격한 페미니즘 방식으로 표현하는 거랄까?'

[근데 당연한 거 아닙니까? 굳이 둘 중 고르라면야···.]

'맞아. 남자들도 경쟁에서 밀리면 도태되는 건 매한가지니까.'

"센서가 이상이 있다고요? 제가 볼 땐 멀쩡해 보이는데···."

철학과 조교가 천장 위에 부착된 모션감지 센서를 가리켰다.

흰색의 기계에서 간헐적으로 빨간불이 반짝거렸는데, 당연히 고장은 아니었다.

"네. 오작동을 하는지 경비실에서 계속 울리더라고요."

"아···."

"일단 한 번 보겠습니다. 혹시 의자 좀 빌려 주실 수 있나요?"

"의자요? 네. 잠시만요."

조교가 어디론가 쪼르르 달려가더니 강의실에서 빈 의자를 가져다 주었다. 도훈은 신발을 벗고 올라 센서를 만지는 척 했다.

조교는 한동안 쳐다보다가 오래 걸릴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도훈에게 양해를 구했다.

"제가 처리할 서류들이 많아서 잠시 일 좀 할게요."

"네. 저는 신경쓰지 마십시오."

도훈은 하릴없이 센서를 만지작거리며 조교의 컴퓨터에 주목했다.

'저기 박김지수의 신상 파일이 들어있겠지?'

[네. 근데 조교가 저렇게 자릴 지키고 있는데 컴퓨터를 들여다 보실 수 있을까요?]

'기다리면 기회는 와.'

도훈의 말대로 30여분이 지나자 조교가 자리에서 잠시 일어났다.

"저, 교수님 좀 뵈고 와야 하는데···. 잠시 나갔다 올게요."

"그러세요. 거의 다 고친 것 같아요."

"네."

도훈은 학교 소속의 경비원 차림이었기 때문에 조교는 당연히 안심하고 학과 사무실을 나섰다. 마침내 혼자 남게 된 도훈은 벌떡 의자에서 내려와 조교의 컴퓨터 내용을 확인했다.

검색어를 뒤지자 여러 파일들이 나왔는데, 도훈은 그중에서 1학년 신입생 관련 파일을 주목했다.

'이거네, 학생 기초 자료 조사.'

도훈이 엑셀 파일을 열자 신입생들의 개인 정보가 담긴 내용이 보였다. 도훈은 검색어로 박김지수를 찾아 관련된 내용을 일일이 핸드폰으로 찍었다.

잠시 후 조교가 들어왔을 때 도훈은 수리를 완료한 것처럼 조교에게 말했다.

"다 된 것 같습니다. 경비실하고 통화해 봤는데, 이제 이상 없다네요."

"수고하셨어요."

"네, 그럼 가보겠습니다."

"저, 잠시만요."

컴퓨터 앞에 앉아있던 조교가 갑자기 도훈을 불렀다.

도훈은 혹시나 들킨 줄 알고 긴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뭐 잘못 됐나요?"

"아뇨, 그게 아니라 고생하시는 데 음료도 대접 못 해드렸네요."

조교는 뒤편에 소형 냉장고를 열더니 음료수 캔 하나를 도훈에게 건넸다.

"앗, 감사합니다."

"그럼 고생하세요."

매너 좋은 조교와 인사를 마치고 나온 도훈은 기분이 좋은지 음료수 캔을 따 마시며 씩 웃었다.

'역시 예쁜 여자들이 착하다니까.'

[주인님 편견이겠죠.]

'아까 그 쿵쾅이랑 비교하면 천사네 천사.'

[그 사람이 유독 못된 거구요.]

'암튼 아까 찍은 걸로 신상 좀 확인해야겠다.'

도훈은 핸드폰에 찍은 사진을 확대시켜보며 박김지수의 정보를 확인했다. 최번개가 알려준 단편적인 정보보다 훨씬 많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오케이. 핸드폰 번호 확보했고.'

도훈은 곧바로 박김지수의 폰에 전화를 걸었다.

[주, 주인님? 뭐하십니까?]

'쉿-. 가만 있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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