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316화 (1,283/2,000)

1299. 이사-29-

최번개의 문자엔 다음과 같이 적혀있었다.

-배화여대 1학년, 철학과 재학 중, 현재 나이 23, 이름 박김지 수

[여대도 여대지만 나이랑 학년이 매치가 안 되는데요? 어떻게 1학년이 스물셋이죠?]

'딱 보니까 사이즈 나오네. 삼수했나 본데?’

[아…. 학교를 늦게 들어갔나보군요.]

'거기다 철학과면 말다했지. 보통 문사철이 가장 점수가 낮으니 3수까지 해서 문 닫고 들어간 듯.’

[근데 이름이 좀 특이하지 않습니까? 박지수면 박지수고 김지 수면 김지수지, 박김지수는 또 뭡니까?]

이름을 보자 느낌이 팍 왔다.

'혹시 꼴페민가?’

[네?]

'부모성 같이 쓰기라고 모계의 성도 함께 쓰는 경우야. 결혼하면 아버지 성을 따르는 남성주의적 사상에 반기를 들면서 나온 운동이거든.’

[그럼 정말로 성이 박김이라고요?]

'어.’

[뭔가 이상한데요? 그럼 나중에 결혼해서 애를 낳으면 성이 4개가 되는 겁니까? 남자고 부모성을 같이 쓴다면요.]

'그래서 모순이라는 거야. 나중에는 최이박김황문임조 누구누구를 쓸 것도 아니고 말이지.’

[음….]

'젠장. 이거 정말 최강의 난적을 만난 것 같은데.’

[왜요? 여대생이라서요?]

'여대는 그렇다 쳐. 여대라고 남자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니까.

강사로 위장을 하던, 대학교 교직원이라고 속이든 어떻게든 잠입할 수 있겠지.’

[그럼요?]

'근데 내 예상대로 꼴페미라면 이건 좀 심각하거든.’

[아…. 그때 그 2학년 페미니스트였던 우현미….]

'거기다 하필 점수 맞춰 간 데가 철학과잖아. 여대 철학과에서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어떤지 느낌 와?’

[와우! 극단적인 남성 혐오 주의자일수도 있겠군요.]

'아마도. 게다가 심지어 아빠가 존나 부자야. 아쉬울 게 없다는 거지.’

[음….]

'이건 정말 최악의 난이돈데….’

새로운 공략대상에 고민하고 있는데 샤워를 마친 두 사람이 생글거리며 나왔다. 만족스러운 섹스였는지 둘 다 무척 상쾌한 표정이었다.

"다 씻었어?"

"네. 오빠도 얼른 씻어요. 물 받아놨어요."

"물?"

"네. 기왕 왔는데 목욕 하시라고."

나연과 연두는 서로를 쳐다보며 계속 웃었다.

뭔가 꿍꿍이가 느껴지는 웃음이었다.

"굳이 목욕까지."

"아잉, 얼른요."

두 사람은 젖은 몸을 마저 닦지도 않고 나를 욕실로 끌어들였다. 가운데 커다란 욕조에는 입욕제가 풀어져있고, 군데군데 장미꽃잎이 뿌려져 있었다.

"이게 다 뭐야?"

"글쎄, 서비스로 입욕제 안에 들어있더라고요. 공짠데 안 쓰고 가면 아쉽잖아요."

"음…. 그래 뭐."

욕조 안으로 발을 담그고 들어가는데 서로를 보며 씩 웃던 두 사람이 밖으로 안나가고 같이 따라들어왔다.

"응? 너희들 다 씻은 거 아니었어?"

"맞아요."

"근데 왜 따라들어와?"

"아잉, 오빠 씻겨 드리려고요."

"저희가 특별히 서비스 해드릴게요♥"

나참.

만족을 모르는 나연과 연두와 2차전이 욕조에서 재개되었다.

* * *

"어우, 좆 빠지는 줄 알았네."

저녁이 다 되서야 집으로 돌아온 도훈은 찌뿌둥한 허리를 두들겼다.

[동시에 두 명은 무리죠?]

'한 번까진 괜찮았어. 근데 욕실에서 두번째로 덤벼들 땐 진짜 감당이 안 되더라고.’ 도훈은 온 몸을 다해 서비스(?) 해주던 두 사람을 떠올리며 절 래절래 고개를 저었다. 귀두가 벗겨질 만큼 대차게 박아댄 탓인지 한동안은 섹스 생각도 안 들 것 같았다.

[그나저나 박김지수양은 어떻게 공략하실 생각입니까?]

'맞다. 그거 생각하다가 두 사람한테 붙잡히는 바람에…. 일단 내일 오전 사전답사를 가볼까 해.’

[답사요?]

'배화여대에 어떻게 잠입할 수 있을지 방법을 찾아봐야 하니까.

’[넵.]

다음날.

모처럼 일요일에 시간이 난 도훈은 배화여대로 향했다. 흔히 여대를 금남의 구역이라고 하지만, 대학 내에 남자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문제는 도훈이 평소의 얼굴로 돌아다닐 경우 이목이 집중된다는 것이 문제였다.

'음… 아무래도 변장을 해야할 것 같은데.’

[변장이요?]

'여대생이라고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거든. 그냥 여러 이유로 여대에 진학했을 뿐, 어차피 밖에서 남자 만나는 건 똑같단 말이지.’

[그렇게죠.]

'근데 또 학교 특성상 또래 남자들을 볼일은 많이 없을 거 아냐.

그런데 내가 원래 차림으로 대학교 내를 돌아다닌다고 생각해봐.’

[너무 눈에 띄겠군요.]

'최대한 평범하게 꾸며야 해. 어떤 차림이 좋을까?’

일요일 오전 배화여대 안을 배회하던 도훈은, 유니폼을 입고 돌아다니는 경비원을 발견했다. 방법업체 소속으로 보이는 젊은 사내를 본 도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거네.’

[네?]

'요샌 학교 방범을 사설 업체에 용역을 주거든. 여대라서 치안이나 이런 쪽에 더 신경 쓸 테니 대원들도 많을 거고.’

[오.]

'저사람 기억해 놔야겠다.’

도훈은 역용 마스크로 복제할 얼굴을 머릿속에 기억했다.

변장을 하더라도, 전혀 생소한 얼굴이면 다른 경비대원에게 의심살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경비대원으로 위장해 잠입을 하신다고 박김지수양과 접촉할 수 있을까요?]

'일단 기회를 엿봐야지.’ 도훈은 대학 건물지도를 사진 찍어 대학 내 구조를 파악하며 사전 답사를 마쳤다. 일단 잠입하는데 까지는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근데 대학 수업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응? 무슨 수업?’

[주인님이 배화여대에 잠입하시면 국성대 수업은 출석할 수 가없는데요?]

'아, 그렇네.’ 도훈은 고민한 끝에 전공수업에 결석계를 내기로 했다.

'아무래도 큰아버지를 죽여야겠어.’

[네? 이도훈은 큰아버지가 없으신데요?]

'아니. 없는 사람을 죽여서 장례식 간다고 뻥 친다는 거야.’

[아….]

'전공 교수님들에게 점수 잘 따놨으니 수업 한 번씩 빠진다고 해도 별문제는 없을 거야. 정 뭐하면 민주에게 부탁해도 되고.’

[조교백이 좋긴 좋군요.]

'이제껏 성실하게 학과 생활 했으니 이럴 때 써먹어야지.’

계획을 마친 도훈은 사전답사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정음과 데이트를 하기로 한 날이었다. 도훈은 최대한 멋있게 차려입고 정음을 데리러 갔다. 수수하게 차려입은 정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빠!"

정음은 도훈을 보자마자 몹시 기뻐하며 그를 반겼다. 일요일마다 있는 정기 데이트지만 도훈은 정음을 만날 때가 가장 행복했다. 다른 8선녀들은 일이 생기거나 바쁘면 못 만나더라도, 정음과의 약속은 꼭 지키는 그였다.

"정음아!"

정음은 잘생긴 도훈을 보자 눈을 떼지 못했다. 어찌된 일인지도훈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외모가 발전했는데, 학기초에 비하면 거의 환골탈태한 수준이었다.

'어쩜…. 오빠는 볼 때마다 더 멋있어지는 것 같아.’

실제로 환골탈태 이후 도훈의 외모는 더욱 수려해졌는데, 신체 구성이 바뀌면서 체내의 노폐물들이 모두 빠지면서 피부가 티하나 없이 깨끗해진 덕이었다. 여드름 자국이라던가, 흉터 같은 모든 잡티들이 제거되고 갓 태어난 아기 피부처럼 보드랍고 밝은 피부톤으로 탈바꿈 되었던 것. 또한 균형 잡힌 몸은 더욱 좋아져 군살하나 없는 이상적인 체형으로 변해 있었다.

정음은 완벽한 도훈을 볼 때마다 자신이 초라해지는 것 같았다.

'아…. 더 꾸미고 나올 걸.’

정음이 부끄러워하자 속마음을 알아 챈 도훈이 정음의 외모를 칭찬했다.

"예쁘게 하고 나왔네."

"아, 아니에요. 민망해요."

"왜?"

"오빠한테 제가 안 어울리는 것 같아서요."

"무슨 소리야 그게?"

도훈이 말도 안 된다는 듯 대꾸했다. 비록 학기 초보다 월등히 잘생겨진 도훈이지만, 도훈에게는 세상 어떤 여자보다도 정음이 예뻤다. 애초에 도훈은 잘생겨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점점 잘생겨지는 것에 대해서 크게 신경쓰지 않는 주의였다. 그것과 반대로 매력은 계속 올라갔지만, 도훈은 처음 마음을 준 정음에게는 늘 변함이 없었다.

앞으로 정음보다 훨씬 예쁜 여자를 만나더라도 그 마음은 변치 않을 것 같았다.

"그냥…. 오빠는 점점 멋있어 지는 것 같은데, 저는 별로 달라진 게 없어서요."

"정음이 네가 왜? 내가 볼 땐 세상에서 제일 예쁜데."

도훈이 정음의 옆구리에 팔을 끼웠다. 정음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뭐 먹고 싶어?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아무거나요."

"그러지 말고. 비싼 것도 괜찮아."

도훈은 정음에는 무엇도 아끼고 싶지 않았다.

1학기 교생 실습을 나갈 때 없는 용돈을 모두 모아서 실습복을 선물했던 그녀였다. 주식투자로 부자가 된 지금, 그녀에게 돈을 쓰는 건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그게 아니라…. 오빠랑 먹으면 뭘 먹어도 맛있어서요."

"하하."

정음이 가식적인 말을 못한다는 것을 아는 도훈은 그 대답에 크게 기뻐했다. 이는 도훈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나가자. 드라이브도 할겸."

도훈은 정음을 차에 태우고 시내로 나갔다.

"과 대표는 할만해?"

"네. 애들이 많이 도와줘요."

"정음이는 늘 열심히니까 잘할 거라 믿어."

"감사합니다."

정음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많이 가까워진 지금에도 정음은 도훈에게 늘 깍듯하고 예의 발랐다. 도훈은 그 모습마저 보기 좋았다.

'정음이는 늘 한결같단 말이지.’

[그래서 좋아하시는 거 아닙니까?]

'그런 것 같아. 일단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거든.’

[주인님이 감정을 가지고 대하는 몇 안되는 여성분이니까요.]

'감정은 다 있지. 만났던 여자 중에 싫은데 만난 여자는 별로 없어.’

[하지만 정음양처럼 챙겨주는 분도 거의 없지 않습니까?]

'그건 그래. 정음이는 그냥 옆에 있으면 응원해주고 싶은 성격이랄까? 나에겐 조금 과분한 것 같기도.’

[아시니 다행이군요. 솔직히 정음양이 아깝긴 하죠.]

'음, 인정.’

"오빠는 요새도 많이 바쁘세요?"

"응. 평일 저녁엔 맨날 도서관가고 또 짬내서 운동하니까."

"운동이요?"

"어. 다음 달 있을 미스터 국성에 참가하기로 했거든."

"네, 애들한테 들었어요."

도훈은 축제에 이벤트로 열리는 몸짱 선발대회에 참여하기로 했다. 하지만 운동을 따로 하진 않았다. 무공으로 인해 바뀐 체질은 별다른 노력없이도 그를 최상급 보디빌더 수준의 체지방을 유지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숨만 쉬어도 하루에 4시간씩 운동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가 나타났기 때문에 운동을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또한 이따금 들어가는 가상현실에서 무공을 수련하는 동안, 무의식적으로 그의 몸은 운동을 한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내고 있었다.

"목적없이 운동하니까 재미가 없더라고. 그래서 한 번 출전해 보려고."

"잘 하실 것 같아요. 오빠 몸 좋으시잖아요."

"그런가? 난 잘 모르겠던데."

"아니에요. 정말 몸이 예쁘세요."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네?"

도훈의 짖궂은 질문에 정음이 얼굴이 빨개졌다.

자주 몸을 섞으며 알몸을 직접 봤기 때문이라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 그건…."

"그러고 보니까 너도 한 번 나가볼래?"

"제, 제가요? 저는 자신 없어요."

"왜? 너도 운동 열심히 하잖아."

정음은 과거 태권도 국대 선발전에 출전했을 정도로 빼어난 태권도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로 인해 운동했던 체육관에 사범자 격으로 알바를 하고 있었다.

"저, 전 창피할 것 같아요."

"왜? 여자부도 있던데. 그냥 출전이라도 해봐."

"아니에요."

도훈은 몸매에 자신없어 하는 정음이 아쉬웠다.

'정음이가 진짜 진국인데.’

[바스트가 좀 약하지 않습니까?]

'에이, 명색히 보디빌딩 대회인데 가슴 큰게 무슨 상관이야? 그리고 정음이가 뭐가 작아. C컵 가까이 될텐데.’

[그런가요?]

'오히려 이런 대회는 바스트는 적당하고 오히려 전체적인 근육의 발달정도가 중요해. 정음이는 태권도를 오래해서 하체는 엄청 발달한 편이니까, 상체만 좀만 만들면 될걸?’

[그렇다고 한달도 안남았는데 그게 될까요?]

'충분하지 않을까? 운동 신경이 워낙 좋으니.’

도훈은 무공을 배우기 전부터 정음을 운동천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중간에 부상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국대급의 센스를 갖춘 그녀였다.

'그냥 해본 말인데 생각해보니까 정음이가 나가면 정말 가능성있겠는데?’

[정말로요?]

갑자기 흥미가 돋은 도훈은 정음을 설득했다.

"재밌겠다. 같이 나가보자."

"아, 아니에요. 자신없어요. 부끄럽기도 하고."

"왜? 같이 나가면 좋지. 난 너랑 같이 나가고 싶은데?"

"같이요?"

도훈과 함께라는 말에 정음이 솔깃했다.

그녀는 어떻게든 도훈과 함께하는 추억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응. 우리 표지모델 촬영도 같이 했잖아. 함께 출전하면 결과에 상관없이 추억에 남지 않을까?"

"아…. 그, 그렇긴 한데. 근데 운동할 데가 없는데요."

"우리 집에서 해."

"오빠 집이요? 아, 이사한 집이요?"

도훈은 아직 정음을 집으로 초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구조인지 알지 못했다.

"집에서 운동이 가능해요? 홈 트레이닝 말씀하시는 거예요?"

"아니. 집에 운동기구 사놨어."

"집에 운동기구가 있어요?"

"응. 조금 큰 집으로 이사했거든. 말 나온 김에 오늘 식사하고 우리 집에 가볼래?"

"아…. 저, 정말 괜찮은데."

"일단 한 번 해봐. 재밌을 거야."

도훈은 벌써부터 정음과 함께 운동하는 것을 상상하며 기분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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