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7.. 이사-7-
"이사요? 주인님 이사 가세요?"
"응."
"어디로요? 민주도 알려주세요."
"이사하고 꼭 부를게."
[근데 8선녀 다른 멤버들한테는 로테이션을 짜주셨으면서 왜 민주양은 그대로 두셨습니까?]
'보다시피 민주는 애니콜이잖아. 내가 언제 어디에 있든 부르면 와줄거라는 확신이 있으니까.’
[하아. 너무 순종적이라 오히려 벤치신세로군요.]
'아니지.’
[아니라고요?]
'혹시 간헐적 강화라는 말 알아?’
[그게 뭔가요?]
'인간이 도박에 중독되는 이유는, 보상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거야. 10번 주사위를 굴려도 10번 내내 꽝인 경우도 허다하니까.’
[그게 민주양이랑 무슨 상관이죠?]
'아무리 호감이 높다해도 출근길에 물 빼달라고 부르는 남자를 어떻게 생각하겠어?’
[미친놈이라고 생각하겠죠.]
'맞아. 그게 정상이지. 자신을 아껴주지 않는다고 여기고 화가 나야 한단 말이야. 막대하는 느낌이잖아. 배려도 없이.’
[근데요?]
'민주는 거기서 쾌감을 느껴.’
[흐음.]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데서 자극을 받는단 말이지. 입장을 곤란하게 한다거나, 수치스럽게 만드는 것, 때론 대놓고 질투를 유발하는 행위에서 보통 사람들은 자존심을 상해하는데 민주는 반대로 고통을 쾌락으로 승화시켜버린단 말이야.’
[피학적인 성향이라 그렇다는 거군요.]
'맞아. 그리고 이런 막돼먹은 짓은 주기가 일정하면 안돼.’
[아까 말한 간헐적 보상 말인가요?]
'내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괴롭힐 줄 안다면 도리어 민주의 기대감은 줄어들게 될 거야. 예고된 괴롭힘은, 마치 정해진 월급을 받는 것 같은 기분일 거거든.’
[아하!]
'그래서 민주는 프리롤이야. 이렇게 두서없이 불러대는 것에 더 짜릿해 하니까.’
[역시 주인님은 고단숩니다. 거기까지 생각하셨다니.]
'맞춤형 같은 거지.’
"민주야, 쌀게."
"아, 아··· 주, 주인님! 오늘은···."
"그냥 임신해버리라고."
찍- 찍찍!
도훈은 설사 될리도 없지만 민주를 자극하기 위해 멋대로 안에 질싸를 했다. 민주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만족스러운 듯 한참 바닥에 처박혀 헐떡였다.
적당히 마무리를 끝내고 민주가 급히 출근 준비를 했다.
"학교까지 태워다 드릴까요?"
"아니, 됐어. 난 1교시 수업이 없어서."
"아···."
"먼저 가. 덕분에 아침부터 개운해졌어."
"네. 언제든 제가 필요할 때 불러주세요."
"당연하지. 넌 내 좆집이니까."
"네, 주인님. 민주는 주인님의 좆물받이에요."
민주는 도훈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드러냈다. 민주가 먼저 떠나자 도훈은 급히 주식 개장 전 사전 작업을 준비했다.
'읏,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개장 전에 서둘러야 겠다.
’도훈은 주식 프로그램을 열어 어젯밤 소영이 찍어준 종목을 하나씩 살폈다.
[근데 뭘 찍으시려고요?]
'지금 운빨 대폭발이니 딱 보면 감이 오지 않을까?’ 다들 생소한 이름이었지만, 어차피 단타를 하려는 도훈에게 있어 무슨 기업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3개의 종목을 뚫어져라 지켜보던 도훈은 마침내 하나를 찍었다.
"이걸로 정했어."
[네? 3억을 태우는데 그냥 감으로 찍는 다고요? 한번만 더 심사숙고 해보심이.]
'어차피 확률 게임이야. 너 침팬지 이론 알아?’
[그건 또 뭡니까?]
'날고기는 펀드 매니저랑 침팬지랑 주식 대결을 하면 누가 이길거 같아?’
[당연히 펀드매니저죠.]
'그럴 것 같지?’
[아닙니까? 그래도 주식에 대해 수년간 연구한 전문간데 ···.]
'실제로 영국에서 실험을 해봤다는 거 아냐. 침팬지에게임의로 주식 몇 개를 고르게 하고, 동시에 펀드 매니저들에게도 주식을 고르게 한뒤 6개월 뒤에 수익을 비교하는.’
[어떻게 됐습니까? 결과가?]
'아무 차이 없대. 오히려 침팬지가 근소하게 앞섰다던가?’
[어떻게 그럴 수 있죠?]
'원래 주식이라는 게 그렇단 소리야. 누구도 앞날은 예측할 수 없어. 그래서 소영이 단타를 말렸던 거고.’
[아···.]
'어차피 난 지금 운빨 대폭발 상태야. 소영이 찍어준 종목은 세력이 개입해서 오를 가능성이 농후한 종목들이고.
이 종목들은 다들 시총이 작다는 특징이 있지.’
[그게 무슨 상관이죠?]
'내가 3억을 태워버리면 강력한 매수 신호로 여길 수 있다는 거야. 즉, 내가 세력처럼 위장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거야.’
[오!]
'오케이 장 시작했다. 일단 간다.’
[건투를 빕니다.]
도훈은 장이 열리자마자 1억을 먼저 투하해 주식을 매입했다.
한 번에 사지지도 않아, 시가로 매수를 하는데도 사는 동안 계속 가격이 뛰었다.
1억을 넣고 나자 도훈도 사람인지라 살짝 쫄렸다.
'어우씨, 전생에도 이렇게 많은 돈을 한방에 박은 적은 없는데.’
[쉽게 번 돈이라 그런지 막 던지는 감이 있군요.]
'어차피 인생 한방.’
처음엔 도훈의 개입으로 순식간에 10% 가까이 급등했던 주식은 어느 순간 천천히 떨어지더니 급락하기 시작했다.
[주인님 어째 흐름이 안좋은데요.]
'기다려봐. 차익실현 때문에 조정받는 거니까.’ 하지만 그래프는 점점 가팔라지더니 플러스가 찍히던 계좌가 순식간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도훈도 살짝 긴장했는지 이마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주인님! 30분만에 마이너스 10%입니다. 천만원이 공중 분해 돼버렸는데요?]
'호들갑 떨지마. 일시적 조정에 흔들리면 죽도 밥도 안된다고.’ 도훈은 스스로를 다잡는 것처럼 말하더니, -15%에서 갑자기 1억을 더 투하했다.
'여기서 물탄다.’
[떨어지는 칼날을 잡는 게 아닐까요?]
'있어 봐. 무조건 반등 오니까.’
도훈은 운빨만 믿고 주식을 고른 것이 패착이 아닐까하는 후회가 들었다. 가진 돈의 2/3를 밀어 넣었지만, 오히려 손해는 점점 커져 어느덧 3000만원 가량을 날린 상태였다.
[주, 주인님. 이건 아닌 것 같은데요.]
'여유를 가지라고.’ 도훈은 점점 식은땀이 났다.
참다 못한 그는 추리닝 바람으로 원룸 옥상에 올라가 담배를 피우며 마음을 달랬다.
'하아-. 분명 안소영이 추천해준 종목인데···.’
도훈은 혹시나 몰라 소영이 추천한 나머지 종목들을 살폈다.
놀랍게도 나머지 종목은 둘다 10% 이상 급등하고 있었다.
[주인님이 고른것만 떨어지는 군요.]
'이럴 리가 없는데···.’
[지금이라도 모두 빼서 갈아타는 게 어떻습니까?]
'이미 늦었어. 지금 옮겨봤자 시드도 줄고 상승폭도 적어서, 본전도 못 건진다고.’
[이대로 두면 하한가 맞을 텐데요?]
도훈은 다시 실시간 차트를 확인하고는 이마를 짚었다.
중간에 1억이나 물타기를 했는데도 주가는 곤두박질하며 어느덧 ?25%를 기록하고 있었다.
'씨발, 이게 아닌데.’
[주인님이 틀렸을수도 있지 않을까요?]
'운빨 대폭발 이후 고른 거잖아. 분명 행운이 따르는 종목이었다고.’
[그 운빨이 꼭 주식에 작용하리라는 법은 없지 않을까요?]
이쯤되자 도훈도 점점 흔들리기 시작했다.
만약 3억을 모두 넣고 하한가를 맞는다면 하루사이 1억에 가까운 돈이 공중분해 되는 것이었다. 1억을 벌고자 했다가 1억을 잃게 되는 셈.
도훈은 마음이 조급해졌는지 연달아 담배만 피웠다.
어느덧 그의 슬리퍼 아래 담배꽁초만 5개비가 넘게 쌓였다.
[주, 주인님 하한가 직전입니다. 오늘 망한거 같은데요.]
'야수의 심장으로.’
[네?]
'어쩌면 이건 세력들의 매집이었을지도 몰라. 분명 반등 올 거야.’
[행복회로 오지게 돌리는 건 기분탓일까요?]
'그럴 리가. 모두가 Yes를 외칠 때, No라고 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거야. 나머지 1억까지 모두 태운다.’
[주, 주인님!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은데요.]
'아니야. 날 믿어봐.’ 도훈은 떨리는 손으로 나머지 1억마저 모두 사들였다.
'물타다가 대주주 된다더니 혹시 그짝 나는 건 아니겠지.
’[하아···. 주인님이 이렇게 대책없는 분인줄은 몰랐습니다. 소영양이 이래서 단타는 하지 말라고 말렸는데···.]
'기다려 보라니까?’
[학교나 가시지요. 이러다 지각하겠습니다.]
주가창을 보는 사이 어느새 등교시간이 임박해 오고 있었다.
수업에 늦을 순 없었기 때문에 도훈은 마음을 내려놓고 등교 준비를 했다.
차를 타고 학교에 가는 동안에도 틈틈이 주식을 확인했지만, 뚜렷한 반등은 보이지 않았다. 도훈도 이쯤되자 탄식을 내뱉으며 '손절’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2억 남짓이라도 건져서 갈아 탈까?’
[······.]
'아니야. 그냥 끝까지 간다. 아직 전반전 끝났을 뿐이야.’
수업에 들어가긴 했으나, 도훈은 오전 내내 집중할 수 없었다. 단 몇 시간 만에 1억 가까이를 날려버렸으니 맨정신을 유지하기도 힘든 하루였다.
'어으, 씨발. 내가 미쳤지. 다신 주식 안해야지.’
[이제라도 손절을···.]
그때 호가창을 보고 있던 도훈이 갑자기 눈을 크게 치켜 떴다.
'어? 뭐야. 왜 오르지?’
[네?]
'봐봐. 갑자기 뛰고 있는데?’
놀란 도훈은 급히 해당 종목의 뉴스를 확인했다.
'대, 대박!’
[네?]
'호재다. 이걸 기다리고 있었구나?’
[뭔 소립니까?]
'세력 새끼들이 오후에 호재가 뜰 걸 알고 매집을 위해 주가를 바닥으로 떨군 거라고.’
[저, 정말입니까?]
'어쩐지 내가 틀렸을 리가 없지!’
주가가 반등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갑자기 거래량이 폭발하더니 도훈이 고른 종목이 거래상위에 순식간에 자리매김했다.
평가액은 불과 10분만에 플러스 전환되었고, 그래프는 허공을 뚫을 것처럼 박차고 올라갔다.
도훈은 손발이 덜덜 떨리며 불어나는 잔고를 계속 새로 고침했다.
'플러스 천, 천백, 천이백! 됐다. 터졌어!’
[주, 주인님 본전 넘게 찾았으니 빼는게 낫지 않겠습니까?]
'전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야.’
[시작이라뇨? 아침에 장 열리자 마자 사셨으면서···.]
'아니지. 매수는 타이밍이지만, 매도는 예술이란 말이 있어. 사는 건 아무나 할 수 있어도 파는 건 그만큼 어렵다는 소리야. 특히 3억의 지분을 든 내가 한꺼번에 던지면 오히려 상승장에서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고.’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렇게 되면 물타기 하며서 분할 매수했던 게 오히려 다행이야.’
[다행이라고요?]
'먼저 산 1억은 시초가에 샀으니까 상한가를 쳐도 30%버는 거지만, 마지막에 넣은 1억은 ?30%에서 샀기 때문에 상한가 찍으면 60%를 버는 거거든.’
[오오! 그런 계산이!]
'하지만 바닥을 찍었던 종목이 다시 상한가까지 가는 건 기적에 가까워. 그런 요행을 바래선 안 되고, 목표액을 정한 뒤 분할매도로 차익실현을 해봐야지.’
도훈은 수업 중에도 계속 주식창을 보며 타이밍을 맞춰 가진 지분을 순차적으로 매도했다. 반등 직후 폭발적인 상승세는 아니었지만, 해당 종목은 계속 올라 +20%까지 오른 상태였다.
야금야금 분할매도로 주식을 던지던 도훈은 한번 더 오는 폭등기에 모든 주식을 털어버렸다. 놀랍게도 그가 남은 보유분을 털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주가가 곤두박질쳤으며 마감 직전에는 +12%를 기록하며 장을 마감했다.
장이 끝나고 잔고를 확인해보니 도훈의 하루 수익률은 35%가 찍혀있었다.
[세, 세상에 하루 만에 1억을 넘게 버신 겁니까?]
'봤지?’
[정말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이런···.]
'아까 하한가 찍었을 때 못참고 던졌으면 망했을 거야.
나름 뚝심으로 버틴 보상이라고 봐야지.’
[아까 분명 주인님도 손절하시려고 했던 거 같은데요?]
'끝내 안 했잖아.’
[네?]
'그럼에도불구하고 참았다고. 그게 중요한 거지. 존버의 승리니까.’
[여튼 대단하십니다. 안소영양의 종목 추천과 운빨 대폭 발의 시너지가 빚은 결과로군요.]
도훈이 수익에 뿌듯해 하고 있는데 마침 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번호를 보니 안소영이었다. 도훈이 기쁜 목소리로 받았다.
"누나, 일하시는 중 아니세요?"
-잠깐 짬내서 전화했어. 혹시 오늘 주식 샀니?
"네."
-내가 찍어준 거 다 올랐지? 거봐, 내가 뭐랬어.
"고마워요 누나. 아참, 근데 이거 주말까지 못 빼죠?"
-음, 보통은 이틀간 묶이니까 인출이 안되지. 왜 급해?
"알고는 있는데 혹시 방법이 있나 해서요."
-정 급하면 매도담보대출이라는 시스템이 있긴 해.
"그게 뭐에요?"
-그니까 매도대금을 근거로 98%까진 대출로 뺄 수 있거든. 근데 수수료가 있어서 잘 쓰진 않지.
"아하, 고마워요."
-암튼, 오늘 재미봤다고 단타 자주 하면 안된다? 단타는 주식 아니고 도박이란 걸 명심해. 나 또 일해야 해서 이만 끊을 게.
"네, 누나! 덕분에 오늘 좀 땄으니 제가 다음에 맛난 거 사드릴게요."
-풉-. 사주는 건 나보다 돈 잘벌 때 사도 돼. 몸으로 때 워.
도훈은 소영에게서 얻게 된 정보로 현금을 다시 확보할 수 있었다. 주식을 하느라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오후수업까지 모두 끝나고 말았다.
"이런. 오늘은 도서관가서 복습이라도 해야겠다. 대관절뭘 공부한 건지 알 수가 없네."
도훈이 도서관으로 향하는데 누군가 그를 불렀다.
"저기요, 잠시만요."
낯선 여자 목소리에 소리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던 도훈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니,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맞죠? 그래도 학교는 안 속였네? 먹튀씨?"
여자가 허리춤에 손을 얹으며 도훈을 노려보았다.
잔뜩 화가 난 모습에 도훈은 어찌해야 할지 순간 고민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