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291화 (1,258/2,000)

1274.. 이사-4-

* * *

모텔을 나오기 전까지 2번이나 더 정음과 사랑을 나누었다.

어찌나 그곳이 찰진지 마지막엔 잦이가 뽑힐 것 같은 느낌이었다. 늦은 새벽 정음을 집까지 바래다주고 집으로 오는 아직도 귀두가 얼얼하다.

'어우, 간만에 무리했네.'

[역시 정음양입니다. 내공까지 갖추신 주인님이 버거워하실 정도라니.]

'아니야. 2번까진 나름 버틸만 했어. 근데 마지막은 진짜 ···.'

정음의 대단한 점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한번으로도 천상의 쾌락을 느끼기엔 충분하지만, 간만에 봐서인지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정음양도 은근히 성욕이 강하단 말이죠?]

'그런 것 같기도···. 솔직히 대실 한 번에 3번은 선 넘었지.' 최근 들어서 한 여자랑 두 번 이상한 적은 손에 꼽았다.

대부분은 한 번으로 충분했는데, 정음과 함께있다 보면 20분도 채 지나지 않아 곧바로 잦이가 꼴렸다. 꼴리면 뭐 ….

그것이 명기의 중독성일까?

"아우, 몰라. 피곤하다. 집에 가자마자 한숨 때려야지."

[내일 등교는 어쩌고요?]

'오전 수업 없는 날이잖아.'

[아하!]

일부러 일주일에 하루는 오전 수업을 모두 빼두었다. 중간에 휴식이 필요할지 몰라 수강 신청에 특별히 공을 들인 결과였다.

"간만에 늦잠 잘 테니까 깨우지 마."

[넵.]

다음날 자고 일어나니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어젯밤 정음의 음기를 잔뜩 흡수해서인지 몸 전체에 생기가 넘쳤다. 아니 넘치다 못해 팬티가 텐트를 치고 천장을 뚫을 것처럼 솟구쳐 있었다.

'오우씨, 모닝 풀발기!'

[모닝은 아니죠. 이미 정오가 가까워져 오는데요?]

'아차. 오늘 집 알아보러 가야 하는데.'

[지금요?]

'시간이 없잖아. 이번 주말 사이 이사 끝내 버리게.'

지금 살고 있는 원룸 보증금을 받기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쌓아둔 현금이 차고 넘치는 마당에, 미리 새 집을 구하고나서 돈은 나중에 받아도 무방했다. 역시 돈은 많을수록 좋은 것 같다.

오후 수업 전에 집을 알아보기 위해 서둘러 나섰다.

차를 타고 나서는 데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응? 이 번호는···.'

나는 목소리를 변조해 전화를 받았다. 박회장의 부하 최실장이었다. 김양을 겁박해 강간했던 양아치 새끼.

"···말해."

웃음기 쫙 빼고 목소리를 깔자 바짝 긴장한 최실장이 대답했다.

-형님. 회장님 귀국건 때문에 연락드렸습니다.

"박회장?"

-저···. 그게 원래 이번 주말 돌아오시기로 했는데, 마카오 일정이 지체되는 바람에 2주 정도 더 머무신다고 합니다.

"뭐?"

최실장이 난처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정말입니다. 저도 오늘 아침 급히 연락받았거든요.

최실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박회장에 대한 대리 복수는 늦출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놈은 나에게 약점을 잡혀 있으므로 함부로 경거망동은 못 할 것이다.

"알았어. 다른 변동 사항 있으면 즉각 보고하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네, 형님.

"내가 늘 지켜보고 있으니까 허튼 생각 말고. 무슨 뜻인지 알지?"

-명심하겠습니다.

[저 말이 사실일까요?]

'최번개 시켜서 출입국 내역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어.

근데 굳이 시간 끌어 봐야 뭐 하겠어? 일단 복수는 잠시 미뤄두는 수밖에.' 나는 곧바로 최번개에게 연락해 박회장의 입국 동향을 살피라고 지시한 뒤 대학 근처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찾았다. 일부러 돈 많은 부잣집 아들 행세를 위해 최대한 좋은 옷으로 차려입은 상태였다.

"어서오십쇼."

"전셋집 좀 알아보려고 왔는데요."

방문한 곳은 국성대 정문에 위치한 가장 큰 공인중개사사무실이었다. 사무소장은 4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사내였는데, 순식간에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러더니 제법 돈이 될 손님으로 여겼는지 곧바로 저자세를 취했다.

"혹시 국성대 다니는···."

"네."

"아하, 그러시군요. 잠시 이쪽에 앉으시죠. 차는 뭘로 드릴까요?"

"커피 한 잔 주세요."

"네. 미쓰리, 여기 커피 두 잔."

사무실 여직원에게 커피를 시킨 중개소장이 대뜸 명함을 내밀었다. 명함에는 김덕만이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자취하실 원룸을 보시는 건가요?"

"자취는 맞는데 원룸은 아니고요. 혹시 단독주택 나온 매물 없을까요?"

"주택요?"

김덕만은 의아한 눈치였다. 보통 대학생이 자췻집을 구한다고 하면 대체로 원룸, 기껏해야 투룸 정도를 생각했던 모양이다.

"아무리 대학가 주변이라도 주택은···. 또 요새 집값이 많이 올랐거든요. 전세라도 가격이 상당합니다."

"네, 알고 있어요. 금액 신경 쓰지 마시고, 2층 집에 방 4개 이상으로 보여주세요."

"혼자 사시는데 단독주택 2층에 방이 4개짜리라···."

덕만은 혼자 중얼거리면서 계속 내 눈치를 살폈다. 그만한 돈을 지불할 여력이 있는지 의심하는 모습이었다. 굳이 있는 티를 내고 싶진 않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재력을 과시를 해야 했다.

"제가 평소에 음악 작업을 하거든요."

"음악이요?"

"네. 작곡합니다."

"아, 작곡가세요? 아깐 국성대 학생이라고···."

"네, 맞아요. 대학생인데, 작곡도 해요. 실은 어려서부터 계속 곡을 써와서 저작권료 수입이 좀…."

"아하!"

덕만이 이해를 했다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가 어림에도 돈이 많은 이유와 굳이 단독주택까지 필요한 이유가 동시에 납득된 표정이었다.

"작업실에 따로 방음 설비는 할 건데, 어차피 흡음제를 벽에 붙이는 정도라 건물을 손상시키는 일은 없을 거예요.

"

"알겠습니다. 지금 몇 군데 생각나는 곳이 있는데 전화 좀 돌려보겠습니다."

"커피 드세요."

그때 사무실 여직원이 커피잔을 들고 왔다.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깜찍한 여직원은 나를 보더니 씽긋 웃어 보였다.

'하여간 이놈의 인기는···.'

[젊은 여자만 보면 사족을 못 쓰는군요.]

'여자들이 알아서 호감을 표시하는데 어쩔?'

[자중하십시오. 난봉꾼처럼 아무나 찔러보지 마시고요.]

'알았다고.'

차를 홀짝이는 동안 덕만이 몇 차례 전화를 돌리더니 말했다.

"오늘 두 군데 정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둘러볼 시간 되시나요?"

"네. 근데 만약 결정되면 바로 계약 가능한 건가요?"

"바로요?"

"네. 되도록 이번 주말에 이사 끝내고 싶어서요. 신곡 준비도 서둘러야 하고."

"아···. 그러면 한 군데밖에 없습니다. 다른 곳은 이사계획이 한 달 뒤라고 해서."

"그럼 거긴 지금 빈집인가요?"

"네. 이사는 이미 나간 상태고, 팔지는 않고 전세만 줄거라고 하네요."

"좋네요. 그럼 지금 둘러보죠."

"넵. 제 차로 가시죠."

커피를 다 마시고 덕만과 함께 이동했다.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주택가였는데, 높은 담벼락에 대문도 그럴싸한 집이었다.

"본래 교수님이 사시던 집이었습니다. 지금은 퇴임하셔서 외국으로 잠깐 나가셨다고 하더군요."

"외국요? 그럼 집주인분이랑은 어떻게 연락해요?"

"위임을 받은 사촌 조카가 한국에 있습니다. 방금도 그분이랑 통화한 거고요. 계약에는 문제없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 생기면 중개사 못 하죠."

"아."

"실은 조카분께선 기왕 외국 나가 사는 거 이 기회에 정리를 하자고 했는데, 굳이 안 팔고 전세로 내준다고 하네요. 나중에 마음 바뀌면 귀국할지도 모른다면서. 근데 건평이 넓다 보니 가격이 제법 나가는데 괜찮으실까요?"

덕만이 열쇠로 대문을 열며 물었다.

"얼만데요?"

"음, 전세가 5억입니다. 사실 연식이 오래되서 그렇지 신축이었으면 더 받았을 겁니다. 위치도 좋고, 내부는 리모델링 다 해놔서 완전 새집 같거든요."

"일단 한 번 보죠."

5억을 불러도 눈 하나 깜짝 않는 태도에 덕만도 어느 정도 재력에 대해 감을 잡은 듯했다. 그는 아까보다 더 허리를 굽혀 집 구석구석을 소개했다.

"마당이 있어 반려동물을 키울 수도 있습니다."

"조경은 따로 한 건가요?"

"아마 집주인분이 틈틈이 가꾸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나름 괜찮은데요?"

"네. 그 교수님 전공이···. 건축 쪽이었을 겁니다."

"그렇군요."

"이 집도 직접 설계하셨다고."

"직접요?"

"네. 그래서 더 애착을 보이시는 것 같습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덕만은 전문가답게 집 구석구석을 상세히 소개했다.

1층에는 방 3개 화장실 하나.

2층은 커다란 방 하나와 테라스가 있었다. 1층과 2층은 외부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어, 별도의 공간으로 봐도 무방했다.

"계속 안 나가면 1, 2층을 따로 세줄 생각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근데 혼자 사시기엔 좀 넓지 않으실까요?"

"아니에요. 어차피 작업실도 필요하고 옷방이나 운동하는 공간도 따로 필요하니까요. 말씀하신 것처럼 내부 리모델링이 잘 돼서 따로 보수할 건 없겠네요."

"네. 원래 가족 단위로 살기 좋은 집인데, 하필 대학가 근처라 그런 수요는 별로 없고···. 뭐 이래저래 그런 이유로 아직 안 나가고 있지만, 집 자체는 무척 좋습니다. 가격도 크기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고요."

덕만은 저렴이라는 말에 힘을 주어 말했다. 5억도 전셋집치고는 적은 금액이 아닌데, 그나마 사정상 적게 불렀다는 걸 강조하는 것 같았다.

[근데 혼자 살기엔 너무 넓은 거 아닙니까? 괜찮으시겠습니까?]

'넓은 건 어차피 상관없고, 전체적인 구조가 마음에 드네.'

[구조요?]

'어. 확실히 건축하는 사람이 자기 살집으로 만들어서 그런지 여러모로 신경 쓴 게 느껴진달까? 외국을 나가면서 왜 안 팔았는지 알 것도 같아.'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군요. 근데 자금은 충분하신가요? 5억이면 투자한 돈 일부를 회수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살짝 모자라긴 한데, 잔금 치르기 전까지 불려봐야지.'

[네? 불려다뇨?]

"마음에 드네요. 이 집으로 계약하겠습니다."

"벌써 결정하셨습니까?"

"네. 둘러보니 괜찮은 거 같아서요."

"그럼 바로 사무실 가셔서 계약서 쓰시죠."

* * *

공인중개사 덕만은 아침부터 횡재한 표정이었다.

최근 실거래 수요가 확 줄면서 오전에는 파리만 날리는 게 일상이었는데, 나이도 어려 보이는 대학생이 대뜸 5억짜리 전셋집을 당일 계약한다는 것이었다. 양쪽에서 받은 중개수수료만 챙겨도 상당할 것이라는 생각에 입이 귓가에 걸렸다.

"내용은 꼼꼼하게 살펴보셨죠?"

"네. 근데 혹시 특약 조건을 걸 수 있을까요?"

"어떤 특약이요?"

"제가 대학 졸업 때까진 이사를 안 할 생각인데, 복학하고 아직 2학년이라 앞으로 2년 반 정도 남아있거든요. 근데 계약 기간을 2년으로 정하면 좀 애매할까 해서요."

"2년보다 더 길게요? 그건 상관없습니다. 집 주인님분은 어차피 외국에 계셔서 한국으로 돌아올 일은 거의 없을 것 같거든요."

"그럼 계약이 끝나도 연장이 가능하도록 약관을 수정할 수 있나요?"

"원래 별도 통보가 없으면 묵시적 연장이긴 한데···. 얼마나 더요?"

"2년 계약이 끝난 다음에는 1년 단위로요."

"가능합니다. 이후 전세금에 변동이 생기면 법정 상승폭에 맞추는 조건으로 하죠."

"감사합니다."

"저, 그럼 계약금은···."

"얼마나 드려야 하나요?"

"통상 10%입니다."

"그럼 지금 5천만원 드리고 주말에 이사 끝나고 잔금 치를 때 나머지 일괄로 드릴게요."

"알겠습니다. 아, 마침 조카분 오셨네요."

도훈은 집주인의 대리인이라는 조카와 함께 전세계약서를 작성했다. 공인중개사가 보증하기는 하지만, 법적인 서류였기 때문에 도훈 스스로도 꼼꼼히 훑었다.

등기부등본상의 담보 설정을 꼼꼼히 살펴보았으나, 딱히 문제가 될 부분은 없었다.

"근데 되게 젊은 분이시네요."

"아, 작곡가라고 합니다."

"작곡가요?"

계약서의 도장을 다 찍고 나서 조카라는 사람이 도훈을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유명한 분인가요? 혹시 무슨 곡을?"

"어차피 익명으로 곡을 발표해서 제 이름으론 못 찾으실거예요. 굳이 밝히진 않겠습니다."

"아···."

"암튼, 잘 부탁드립니다."

"네, 저야말로. 혹시 불편한 사항 있으시면 저한테 직접 연락하시면 됩니다. 삼촌이 외국에 계시니까요."

"네."

부동산 계약을 마치고 나온 도훈은 한결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으으! 드디어 지긋지긋한 원룸에서 탈출이다!"

[축하드립니다. 근데, 나머지 잔금은 정말 해결 가능하십니까? 이삿날까지 잔금 지불이 안되면 계약금을 날릴수 있는데요.]

'뭐? 나머지 4억 오천? 한 1억 정도만 더 땡기면 되지 않을까? 그거야 주말 안으로 가능하지.'

[설마 또 도박을 하시겠다고요?]

'뭔 소리야? 외국 카지노면 몰라도 한국에선 불법인 거 몰라? 당연히 아니지.'

[그럼요? 어떻게 1억을 버신다는 말씀인가요?]

'합법적 도박장 있잖아. 국가 허락한.'

[그런 게 있었습니까?]

'어, 주식.'

[헉! 주식이요?]

'상한가 치는 종목만 골라내면 한 방에 30%까지 가능하단 말씀이야. 다행히 주식 고수도 한 명 알고 있고.'

도훈의 호언장담에 로시가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주인님. 주식이 그렇게 쉬웠으면 누구나 돈을 벌었겠죠.

손실의 위험도 감수해야 합니다.]

'걱정 마. 다 방법이 있으니까. 그나저나 오후에 한 번 연락해봐야겠다.' 도훈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넘기며 오후 수업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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