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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273화 (1,240/2,000)

1256.. 2학년2학기-71-

'응? 뭐라고?'

[아, 아닙니다. 피곤하실 텐데 얼른 씻고 쉬십시오.]

도훈은 샤워를 마치고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누웠다.

로시의 말대로, 가상 현실 공간의 사용으로 평소보다 빠르게 뇌가 피로해졌기 때문이었다. 마치 빡세게 시험공부라도 한 것처럼 머리가 멍했다.

하지만 이불을 덮고 눈을 감고 있어도 좀처럼 잠이 오질 않았다. 눈을 감으면 당장이라도 가상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새롭게 얻게 된 무공과, 시간과 정신의 방이라고 명명한 가상 대련장이 도훈의 마음을 간만에 뒤흔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단 말이야.'

[안 주무십니까?]

'잠 들려고 하는데 자꾸 아까 생각이 떠올라서. 어떻게 그런게 가능하지?'

[아시다시피 천상계의 기술력은···.]

'아니 설명해 달란 소리가 아니고. 암튼 너무 신기한 체험이었어.'

[천상 크래프트가 꽤 인상적이었나 보군요.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도 않는 주인님이 잠을 못 이루는 걸 보니.]

'그런 곳이 있는 줄 진작 알았다면 진작부터 애용했을 텐데.'

[가상 현실은 포인트가 지속적으로 소모되는 공간입니다. 목적에 맞게 이용하셔야 합니다.]

'가만. 근데 좀 이상하다?'

도훈이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났다.

[네?]

'아니. 생각해보니까 경매장도 가상 현실의 일종이잖아.'

[그렇죠.]

'근데 경매장을 이용하는 데는 별도의 비용이 안 들고.

내말 맞지?'

[비용이 안 드는 것이 아니라, 경매장은 판매자와 낙찰자 양쪽 모두에 수수료를 받고 있습니다. 물건을 사고파는 것에서 이문을 남기기 때문에 완전히 무료는 아니죠.]

'그치만 둘러만 보는 건 무료 아냐?'

[그건 맞습니다.]

'그러면···. 경매장에서 무공 연습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되지? 그럼 비용도 안 들고 공짜로 가상 현실을 체험할 수 있는 거 아닌가?'

[편법을 찾으시려는 노력에 박수를 보내지만, 애석하게도 경매장에서 무공 수련은 금지입니다.]

'왜? 어차피 똑같은 가상 공간인데?'

[경매장에선 마나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법이건, 무공이건 또한 스킬이건 어떤 것도 불가입니다. 주인님 같은 생각을 하는 플레이어들 때문에 원천 차단되어 있습니다.]

'하-. 아쉽네. 그럼 공부는? 공부는 가능하지 않아?'

[책도 없이요? 맨 몸으로요?]

'책을 가져가면···. 아, 안 되겠구나.'

[천상 크래프트안에서 주인님이 사념을 물질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기본 모드의 관리자 권한을 구매하셨기 때문입니다. 혹시나 혼동 하실까봐 말씀드리면, 경매장과 천상크래프트의 공간은 가상 현실이라는 것 말고는 전혀 공통점이 없습니다.]

'쉽게 말해서 게임엔진 같은 건가?'

[네?]

'아니. 그러니까 같은 게임엔진으로 하나는 이것저것 제 약을 가진 경매장을 만들고, 또 다른 하나는 가상의 공간을 꾸밀 수 있는 게임을 만든 거잖아. 게임이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굳이 비유하면 그렇죠.]

'으흠. 이해했어. 결국엔 포인트를 벌어야 입장 가능 하다는 소리네.' 흥분해서 일어났던 도훈이 실망감에 다시 자리에 누웠다.

한때는 몇만 포인트를 넘나들던 잔고가, 지금은 빵원이 되었다는 사실이 무척 뼈아프게 느껴졌다.

'기적의 복리 계산기로 받는 이자도 쏠쏠했는데 통장이 텅 비었으니 당분간 유명무실이네.'

[너무 실망 마십시오. 주인님 평소 지론대로 포인트는 또 벌면 되니까요.]

'미션이 발동해야 말이지. 어떤 땐 시도 때도 없이 터지더니, 최근엔 기별도 없잖아.'

[일전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새로운 인물, 새로운 장소가 미션 생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칩니다. 주인님이 기존과 다름없는 사람들과 교류하고 동선의 변화가 크지 않다면 미션 또한 발동하지 않을 거고요.]

'그래. 어쩔 수 없다. 내일 무조건 미스터 국성 선발대회에 참가신청서 내야겠다.'

[결국 나가기로 하신 건가요?]

'로시 네가 변화를 줘야 한다며? 지금으로선 그게 가장 빠른 방법 같아.'

[포인트 벌이에 열올리는 주인님을 보니 제가 다 뿌듯하군요.]

'내공을 쌓는 것도 좋지만, 수련도 틈틈이 해야 하니까 말이지.'

[좋은 태도입니다. 그럼 안녕히 주무시길.]

'어. 참, 로시.'

[네?]

'너 근데 꽤 예쁘더라?'

[······.]

'잘자.'

도훈이 이내 잠이 들었다.

그의 스마트 워치는 밤새 불빛이 반짝거렸다.

마치 두근대는 심장박동처럼.

* * *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도훈이 눈을 떴다. 뭔가 이상한 기분에 이불을 확 젖히자 잠옷으로 입고 잔 바지가 터질 것처럼 부풀어 있었다.

"끄응-. 이거 또 이러네?"

아침 발기는 남성성의 상징이다. 혈기 왕성한 남자라면 당연히 꼴려 있는게 정상이었다.

하지만 어제 두 번이나 떡을 치며 물을 뺐음에도 터질 것처럼 풀 발기 되어 있는 모습은 도훈 스스로도 학을 뗄 만큼 극성맞았다.

[일어나셨습니까?]

'이거 왜 가라앉지가 않냐?'

[어제 흡수하고 남은 양기가 빠져나가지 못해 몰려 있는 것 같습니다.]

'쓰읍. 말도 안 돼. 섹스가 부족해 꼴리는 건 봤어도, 두번이나 물을 뺐는데 모닝 발기 되는 건 비정상 아냐?'

[음양보합술의 흡수력이 너무 좋아서 그렇습니다. 주인님이 달리 내공을 갈무리할 방법이 없기도 하고요.]

'제길. 그럼 오늘 아침도 또 달려야 하나?' 도훈은 벌떡 일어나 학교갈 채비를 갖췄다. 갈아입을 옷은 대충 백 팩에 쑤셔 넣고, 몸에 착 달라붙는 운동복 차림이었다. 운동화 끈을 질끈 맨 도훈이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후드까지 깊게 눌러쓴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복싱선수같았다.

"그럼 달려볼까?"

내공을 두 다리에 밀어 넣자 장딴지가 단단해지며 추진력이 붙었다. 발바닥을 땅에 딛는 순간 스프링이 달린 것처럼 통통 튕겨 나가는 기분이었다.

'우엇, 어제보다 더 빨라진 것 같은데?'

[속도 조절하십시오. 남들이 보면 이상하게 생각할 겁니다.]

'알았어.'

도훈은 어쩔 수 없이 감속했다. 하지만 일부러 줄인 속도 조차도 일반인의 기준에선 아득히 빠른 속도였다. 순식간에 학교에 도착한 도훈은 잠시 고민했다.

'양기가 너무 충만했나 본데. 이렇게 뛰었는데도 영 지치질 않네?'

[음, 많이 불편하시면 좀 더 몸을 혹사시켜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운동장이라도 더 달려야지.'

도훈은 사범대 뒤편에 있는 운동장으로 향했다. 가운데는 좌우로 축구 골대가 설치되어 있고, 둘레로 우레탄 트랙이 설치된 종합 운동장이었다. 이른 아침이다 보니 드넓은 운동장이 텅 비어 있었다.

'여기가 좋겠어. 빨리 달려도 훈련 중인 육상부라고 착각할 테니까.'

도훈은 그대로 트랙을 내달렸다. 도합 400m 규격의 원형 트랙을 도는데 조금도 속도가 줄지 않았다. 어찌나 빠른지 피치를 올리는 두 발이 보이지도 않았다.

한 바퀴를 모두 돈 도훈이 로시에게 물었다.

'기록 몇 초야?'

[30초입니다.]

'400m에 30초라고?'

[네. 세계신기록 같은데요?]

'음, 육상화로 갈아 신으면 20초대도 가능할 것 같은데.'

[너무 무리 마십시오. 1교시 수업 있는 학생들이 곧 등교할 시간입니다.]

'그래. 달리기는 너무 눈에 띄어서 안 되겠다.'

도훈은 이번엔 운동장 구석에 설치된 멀리뛰기 교장으로 향했다. 달리기는 충분히 측정했으니만큼 도약력이 궁금했다.

출발 지점에 선 도훈이 좌우를 살펴 누가 없는지 확인한 다음 바로 속도를 올렸다. 발판에 이르기까지 빠르게 최고 속도에 진입한 도훈은, 1mm의 오차도 남기지 않고 정확히 발판을 밟으며 날아올랐다.

위로 솟구친 그는 머릿속으로 선수들의 공중 동작을 떠올렸다.

'상체를 앞으로 던지듯 두 팔까지 내밀어서···'

강화된 신체와 협응력은 올림픽 선수급 동작을 그대로 재현시켰다. 도훈은 평소보다 훨씬 멀리 날아간다고 생각했으나, 일단 착지까지 무사히 마쳤다.

쿵-!

멀리뛰기를 끝낸 도훈이 벌떡 일어나 발판으로부터 발뒤꿈치가 찍힌 자국을 어림짐작했다.

"엉? 10m는 넘어 보이는데?"

[맞습니다. 정밀 센서로 측정 결과 발판으로부터 정확히 12 .23m입니다.]

'올림픽 기록이 어떻게 되더라?'

도훈은 핸드폰으로 기록을 검색하다 깜짝 놀랐다.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은 최고 기록이 1991년 도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미국 출신의 육상선수 마이크 파월이 기록한 8 .95m였던 것.

육상계에선 무려 40년 가까이 깨지지 않는 불멸의 기록이었지만, 도훈은 가볍게 점프를 하는 것만으로 넘어버린 것이었다.

'흐익, 괴물.'

[주인님 스스로에게 하는 말씀인가요?]

'이것 참,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가 국성대학교 체육교육과에서 이렇게 썩고 있다니.'

[자중하십시오. 무공을 익힌 사람이 주인님 혼자만은 아니니까요.]

'설마 중국 가짜 고수들 말하는 건 아니지?'

[당연히 아닙니다. 물론 과거의 일부는 실제로 플레이어였을 겁니다. 지금은 과거의 영광을 흉내 내려는 사기꾼밖에 없지만요.]

'근데 좀 이상해.'

[뭐가 말입니까?]

'내가 무공을 익히고 곧바로 세계 기록을 갱신했잖아.'

[그런데요?]

'그렇다면 직업이 운동선수인 플레이어라면 훨씬 더 쉽게 기록을 깰 수 있지 않을까?'

[언론의 주목을 받는 스포츠 스타가 플레이어라면 하루도 지나지 않아 PK단의 집중 포화를 맞을 걸요?]

'아하! 그렇군.'

[능력을 밖으로 내보이는 것은 무척이나 위험한 일입니다. 그래서 늘 조심하시라는 겁니다.]

'알겠어. 근데 어제 가상 현실에서 수련해 보고 좋은 방법이 떠올랐어.'

[뭘요?]

'어쩌면···. 이건 가정인데 내가 정말로 더 강해지면 PK 단 하고 직접 맞짱을 뜰 수도 있을 것 같단 말이지.'

[싸우신다고요?]

'왜? 로시 네가 어제 PK단이 쓰는 술법이니 마법이니 하는 거 보여줬잖아. 무공 익히고 나니까 별로 위협적이진 않던데?'

[흐음. 제가 보여드린 건 일종의 예시입니다. 저보다 훨씬 강력한 존재들이 많을 겁니다.]

'나도 아직 무공을 다 익힌게 아니잖아. 무영보 습득하고도 배울게 잔뜩인데.'

[현재 무영보의 습득률은 40% 정도입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다음으로 배우게 될 것은 방탄기입니다.]

'방탄?'

[네. 호신강기의 일종으로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주인님을 보호해주는 무공입니다.]

'호오. 위력은 얼마나 되는데?'

[아마, 트럭에 치이셔도 한 번은 버티실걸요?]

'히익, 그 정도라고? 근데 왜 한 번이야?'

[방탄기는 내공으로 이루어진 만큼 물리적 타격을 받으면 해제됩니다. 다시 채워지는 데는 시간이 걸리고요.]

'일종의 실드 같은 거군.'

[그렇게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가만. 근데 물리적 충격만이라고?'

[네. 어제 제가 보여드린 마법류의 스킬에는 면역이 되지 않습니다.]

'그럼 어제 던진 침 같은 것만 튕겨낸다는 거야?'

[물리적으로 튕겨낼지 몰라도 맞았으면 위험했을 겁니다.]

'왜?'

[그거 독침이거든요.]

'뭐 이씨! 주인을 암살하려고!'

도훈이 흥분해 날뛰는데 갑자기 누군가 말을 걸었다.

"도훈 오빠? 아침부터 운동하러 나오신 거예요?"

로시와 정신없이 얘기하느라 인기척을 놓친 도훈이 깜짝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한 손에 라켓을 들고 선 강경희였다.

"어, 경희야. 오랜만. 운동가니?"

"네. 아침에 레슨이 있어서요. 근데 오빠는 여기서 뭐하세요?"

경희가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모래사장에 찍힌 도훈의 발자국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헉, 설마 멀리뛰기 연습 하신 거예요? 근데 이거 오빠기록이에요?"

경희는 일찍이 테니스 선수를 했을 정도로 운동을 잘했기 때문에 육상 분야 역시 일가견이 있었다. 대체로 운동신경이 좋은 학생들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육상 선수로 차출되기 때문.

하필 경희가 초등학교 때 학교 대표로 나갔던 종목이 멀리뛰기였기 때문에 도훈의 기록을 보고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세, 세상에. 오빠 진짜로 이거 뛰신 거예요?"

경희가 놀라는 모습에 도훈이 급히 운동화로 발자국을 지웠다.

"에이, 아니야. 연습하려다가 발판을 못 밟고 파울한 거야. 훨씬 넘어서 뛰었어."

"아항."

경희는 바로 도훈의 말을 납득했다.

도훈의 발자국 위치가 실제 기록이라면 세계 신기록을 아득히 뛰어넘는 거리였기 때문이다.

"어쩐지. 근데 멀리뛰기 연습은 왜 하세요?"

"2학기 실기 과목에서 측정하는 것 같더라고. 그냥 달리 기하러 나온 김에 생각나서 뛰어봤어."

"그러시구나. 헤헤. 오빠 저도 어렸을 때 육상부 했었어요."

"경희 너도?"

"네. 여자부 멀리뛰기 선수였어요. 시대회에서 2등인가 했을 걸요?"

"오, 잘하는데? 하긴 다리가···."

테니스 치마를 입은 경희는 허벅지가 놀라울 정도로 튼실했다. 더욱이 햇볕을 많이 받아 까맣게 그을려 있었기 때문에 굉장히 역동적으로 느껴졌다.

"저 다리 두껍다고 놀리시는 거예요?"

"아니. 두껍기는 해도 다 근육이잖아? 난 마른 애들보다 경희 너처럼 튼실한 애들이 좋더라."

"칫."

경희는 삐진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로는 도훈의 칭찬에 기뻐했다.

"근데 아침부터 달리기는 왜요?"

"아···. 나 살빼고 있어."

"살을요?"

"응. 축제때 하는 미스터 국성 선발전에 한 번 나가볼까 하고."

"와! 오빠 거기 나가시게요? 보디빌딩?"

"응. 그래서 체지방 좀 낮추려고."

도훈은 후드까지 달린 땀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더 그럴싸하게 보였다.

"대단하세요! 하긴 오빤 나가기만 하면 우승할지도 모르겠네요."

"내가? 왜?"

"오빠 몸 예쁘시잖아요."

경희가 도훈을 위아래로 훑으며 말했다.

그의 벗은 몸을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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