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262화 (1,229/2,000)

1245.. 2학년2학기-60-

생각해보니 ‘똑똑해져라머리머리’ 열매를 먹은 지 상당 한 시간이 흘렀다. 아이큐 10을 올리는 데 대략 반 년 가량 소요된다고 했으니 선형적으로 증가했다면 절반은 상승했어야 정상이다.

‘그럼 지금 아이큐가 몇인 거지? 100은 넘은 건가?’

[네. 현재 97에서 102로 올라선 상태입니다.]

‘오옷! 드디어 100을 넘었다고?’

혼자 필기를 하던 중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며 기뻐했다. 옆에 있던 동기 하나가 움찔 놀라더니 귓속말로 조용히 물었다.

"형, 왜 그래요? 로또라도 당첨됐어요?"

"어? 아, 아니."

흥분된 감정을 추스르고 다시 수업에 집중했다.

어쩐지 이전보다 교수의 말이 또렷하게 뇌리에 박히는 느낌이었다. 단순히 기분 탓일가?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평균 이하’에서 벗어나셨군요.]

‘아이큐가 높아졌는데 왜 이제까지 체감이 안 됐지?’

[고작 5가 올라갔다고 드라마틱한 변화가 오진 않죠.]

‘하긴. 5 정도면….’ 만약 키가 5cm 커지면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170이하가 170을 넘을 수도 있고, 180이 못되던 사람이 180을 넘어서는 것이니까. 키 높이 깔창 두 개를 포갠것과 같은 현격한 변화.

하지만 아이큐는 다르다. 겉으로는 티도 잘 안 날뿐더러, 실질적으로도 눈에 띄는 효과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흐음. 120 넘으면 뭔가 좀 다르려나?’

[그러시면 앞으로 열매를 한 알 더 드시고 최소 3학년 2학기는 넘기셔야 할 겁니다.]

‘후우-. 시간이 문제구나.’

[지능이 올라가는 것 자체로 감사하셔야 합니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거의 변화가 없는 것이 지능이거든요.]

‘근데 좀 이상하다?’

[뭐가 말입니까?]

‘나 이번에 환골탈태했잖아. 체질이 완전히 새롭게 바뀌는.’

[네.]

‘거기에 지능은 포함되지 않는 거야?’

[환골탈태는 근골을 새롭게 재편하는 걸 의미합니다. 주인님의 뇌가 근육으로 이루어 진 게 아닌 이상 해당이 없죠. 아, 근육이시던가요?]

‘닥쳐.’

[대물 역시 마찬가지고요.]

‘맞아. 잦이는 뼈가 없지! 해면체!’

[정답입니다.]

물론 뼈는 없어도 나는 뼈가 든 것처럼 단단하게 만들 수 있다. 특히 산삼을 먹은 뒤로부턴 혈행이 개선되었는지 이전보다 훨씬 오래 강직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럼 잠시 휴식하겠습니다."

연차시로 이어진 강의에 교수가 중간 휴식을 선언했다.

한때는 실기 수업을 담당했다는데 나이가 드시면서 이론수업 위주로 전향한 우리 과 노교수였다.

"으으, 너무 지루하네."

"2학기 첫날부터 전공수업은 너무한 거 아냐?"

"아직 임용도 안보는 데 우리가 왜 무스카모스턴 지도법을 공부해야 하냐고."

나와 함께 수업을 듣는 2학년 학생들이 하나같이 불만을 토로했다. 실은 나도 꾹 참고 있지만, 교수의 스타일이 너무 지루한 편이긴 했다. 점심 먹고 나서 수업이었다면 졸음을 참지 못했을 것이다.

"참, 도훈이형. 방학 때 운동 많이 하셨나 봐요?"

"어?"

이름이 잘 기억 안 나는 동생이 근황을 물었다.

[김현석입니다. 군대 간 우선군과 친했던.]

‘아하.’

"어째 몸이 더 좋아지신 것 같아서요."

현석이 갑자기 내 어깨를 어루만지더니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우, 우앗! 완전 돌덩이네?"

"에이, 뭔 소리야."

적당히 넘어가려고 했으나, 현석이 갑자기 다른 남학생들에게 소문을 냈다.

"야, 도훈이 형 몸 엄청 단단해!"

"몰랐냐? 이 형 원래 몸짱이잖아."

"그게 아니라 진짜로. 와서 만져봐."

현석은 급기야 도훈의 몸을 만져보라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그 정도라고?"

웅성웅성하며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체육과 2학년은 1학년과 달리 극단적인 남초였기 때문에 대부분 남자들이었다. 남자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는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나는 귀찮은 일이 휘말리기 싫어 딱 잘라 말했다.

"야야. 그냥 헬스장 좀 다닌 거야."

"와. 형 진짜 빡시게 운동하셨나 보네요."

"혹시 대회 나가세요?"

"대회라니?"

모여있던 동생 하나가 흥미로운 얘기를 했다.

"왜, 가을 축제 때 미스 & 미스터 국성 선발하잖아요."

"그런 게 있었어?"

"모르셨구나. 하긴 작년에 처음 열렸으니까요. 형 학교 다닐 땐 없었어요."

"작년에 철학과 남학생이 뽑혔지?"

"이번엔 체육과에서 무조건 탈환해야지."

"형. 한 번 나가보세요."

"맞아요. 형이라면 충분하실 듯?"

난데없는 교내 몸짱 선발대회 출전 권유에 머리가 어질 어질했다.

"됐어. 뭘하러 그런 걸 나가?"

"왜요? 거기 나가서 저희 과 위상도 높이고 좋잖아요."

"회장님이 되시면 우리과 유명해질듯요!"

"맞아요. 작년에 난데없이 인문대에서 뽑히는 바람에 저희 같은 체육 쪽 애들이 얼마나 쪽팔렸는데요."

"근데 우린 사범 계열 아니냐?"

"어쨌든 앞에 체육이잖아."

"형, 그리고 상금도 있데요."

"상금?"

사실 돈에는 별로 관심 없었지만, 일부러 되물었다.

"네. 미스터 국성에 뽑히면 백만원이던가?"

‘겨우 100?’

[대학생에겐 장학금만큼 큰돈이죠.]

‘그래도 너무 적다. 백을 누구 코에 붙여?’

"상금보다는 여자들한테 엄청 인기 많아진 데요."

"맞다. 그때 뽑힌 철학과 남자 얼굴 개씹창인데 몸 하나로 지금 퀸카 사귀잖아. 내가 저번에 길에서 우연히 봤는데 여친 완전 연예인인 줄?"

이건 좀 솔깃했다. 생각해보니 대학에 사범대만 있는 것도 아닌데, 대학 전체에 이름을 알릴 수있는 기회였다.

‘로시, 어떻게 생각해?’

[정말로 출전하시게요?]

‘하기만 하면 1등은 따 놓은 당상 아니냐?’

솔직히 내 입으로 말하긴 쑥스럽지만, 나는 얼굴보다 몸이 훨씬 잘생겼다. 체질 개선으로 환골탈태하기 전에도 균형이 잘잡힌 몸이었는데, 이번에 지방이 싹 빠지면서 현역보디빌더마냥 새끈한 몸이 됐다.

한참 소란스럽던 분위기가 교수가 들어오면서 다시 조용해졌다. 2학년 남학생 하나가 자리로 돌아가기 전에 다시 한 번 당부했다.

"형, 꼭 해봐요. 지원 이번 주 마감이라니까 놓치지 마시구요."

[흐음. 괜찮으시겠습니까? 괜히 얼굴이 알려졌다간….]

‘PK단? 알면 어쩔건데?’

[네?]

‘무공도 있겠다. 백보신권 한방이면!’

[주인님.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하였습니다. 괜히 경거망동 마시고 자중하십시오.]

‘그건 벼니까 그렇고. 나는 대물이지.’

[아무튼 이름이 너무 알려지는 건 위험할 수 있습니다.

교내에 PK단의 프락치가 있다는 건 알고 계시죠?]

하긴. 1학기때 동아리 모집때 우연히 만났다. 단순 씹덕새끼들인 줄 알았는데 PK단의 끄나플이었다.

‘근데 나 무공 배우려면 미션 잡아야 하잖아. 내공심법인가 뭔가 비싸다면서.’

[그렇긴 하죠.]

‘미션을 받으려면 지금 환경에서 벗어나야 하고. 솔직히 사범대에만 계속 숨어 있으면 어떻게 미션을 받겠어? 미대 생도 만나고, 약대생도 만나고. 무용과도 만나고 그러는 거지.’

[설마 인기 많아질 속셈으로 나가시는 겁니까?]

‘암튼, 위험을 감수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거야. 막말로 교내 몸짱대회 한 번 나갔다고 의심을 받는 것도 이상하잖아. 몸 좋은 애들이 한 둘도 아니고.’

[그럴까요?]

‘물론 네 말도 맞아. 무공을 익혔다고 기고만장하는 건 아니야. 이제 나는 겨우 비급 하나 익히는 중이고, 적들은 얼마나 강할지 모르니까. 하지만 그것에 얽매여서 쥐새끼처럼 숨어 있는 것도 너무 자존심 상한단 말이지.’

[아무튼 신중히 결정하십시오.]

‘오케이.’

* * *

수업이 끝나고 점심이 이어졌다.

2학년 2학기부터는 교양 과목은 확연히 줄고 전공 수업이 절반을 차지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수업을 2학년 동기들과 들어야 했다.

"형, 밥 먹으러 가요."

"그래."

물론 10명이 넘는 체육과 학생들이 단체로 식사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게중에는 여자친구와 밥먹는다면서 따로 빠진 애들도 있었고, 집이 가깝다고 집밥을 선호하는 애들도 있었다. 나는 우선이와 친했던 현석이란 동생과 또 다른 동생인 동구와 같이 밥을 먹기로 했다.

현석은 정말로 평범한 대학생이었고, 동구는 전형적인 스포츠맨이었다. 듣기론 운동을 너무 좋아해 매년 철인 3종 경기를 나간다고 했다.

학식을 타기 위해 줄을 기다리는 데 동구가 물었다.

"형. 내일 개강총회 맞죠?"

"어. 수업 끝나고 오후에."

"저희가 뭐 도와드릴 일은 없어요?"

"말로만으로 고맙다. 이번엔 큰 행사가 아니라 집행부애들하고 같이 하기로 했어."

"집행부에 남학생이 별로 없다는데 힘쓸일 있으면 언제 든 부르세요."

"응. 고마워."

밥을 받아 테이블에 앉는데 아까 미스터 국성 얘기를 꺼낸 현석이 다시 물었다.

"형 근데 빈말이 아니라 대회 진짜 한 번 나가봐요. 살빼 신거 보니까 컷팅 엄청 열심히 하신 것 같은데 아깝잖아요."

"아깝긴 뭐가?"

"식단관리 엄청 빡시게 하신 거 아니에요?"

사실 체지방율을 지금처럼 줄이기 위해선 삼시새끼를 퍽퍽한 닭가슴살만 먹어야 할 것이다. 그런 와중에 열심히 칼로리를 태우기 위해 런닝도 해야 하고.

하지만 나의 경우는 환골탈태를 통해 거듭났기 때문에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어어, 근데 그렇게 막 드셔도 되는 거예요? 관리 안하면 금방 살찔텐데."

열심히 학식을 먹고 있는데 현석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물었다.

"야 인마. 밥 좀 편하게 먹자."

"넵, 죄송합니다."

"그리고 난 따로 관리 안해도 살 잘 안붙는 체질이야. 들어봤냐, 중배엽이라고."

"오 내배엽, 외배엽 하는 그거요?"

"어. 딱히 조절 안해도 체지방율이 유지 되더라."

"형은 진짜 타고났네요, 몸 하나는."

"야. 도훈이 형이 몸만 타고났냐. 얼굴도 타고났지."

"하긴. 우리과 몸짱 얼짱인데."

"니들 그렇게 아부 떨어봐야 소용없다.

"헤헤. 커피는 꼭 안사주셔도 괜찮습니다."

현석은 보기보다 넉살이 좋은 것 같다.

그때 동구가 멀리 줄을 서서 기다리는 여학생들을 보더니 물었다.

"형, 쟤들 우리과 1학년 여자애들 아니에요?"

"그렇네? 정음이랑 아영이잖아?"

"옆에 안경 쓴 애가 서현이던가?"

현석과 동구는 미녀 세 명을 보자 숟가락을 든 채 멍하니 쳐다만 봤다.

"와…. 근데 진짜 우리과라서가 아니라 1학년 남자애들은 진짜 복 받았다. 우리 학번은 끽해야 2명뿐인데."

"왜? 현미도 잘보면 이쁘다?"

"넌 눈이 발바닥에 붙었냐? 어딜 비벼?"

"야야. 밥이나 좀 먹자."

"형. 그러지 말고 1학년 애들이랑 같이 먹을까요? 자리도 별로 없는 것 같은데."

현석이 엉큼한 표정으로 말했다.

속이 훤히 보일 정도라 콧방귀나 나올 정도였다. 우리 과에서 가장 미모로 출중한 정음과 아영에, 볼륨감에서 이름을 떨치는 서현까지 함께 있으니 당연히 친해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굉장히 곤란했다.

셋 다 나와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셋이 함께 만나는 자리는 자칫, 청문회로 변질 될 수 있었다.

"그냥 마저 먹고 가자. 다음 수업 바로 있잖아."

"형. 아직 점심 시간 30분이나 남았잖아요."

"에이, 무슨 합석을."

그때였다. 줄을 서서 기다리던 정음이 나를 보더니 활짝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선배! 안녕하세요!"

학교 식당에서 우렁차게 인사하는 정음은 유독 순수해보였다. 남의 시선은 신경쓰지 않는 것인지 내가 아는 척 할 때까지 계속 손을 크게 흔들었다.

"선배, 여기요!"

"어,어. 그래."

"그쪽으로 갈게요!"

정음은 간만에 나를 보더니 반가웠는지 밥을 타자마자 알아서 합석을 했다. 줄줄이 사탕처럼 아영과 서현이 따라왔다. 아영은 수줍은 듯 고개만 살짝 끄덕일 뿐이었고, 서 현은 정음과 아영의 눈치를 살피더니 내 옆 자리로 앉았다.

"오빠 같이 식사 해도 돼죠?"

대답은 나 대신이 입이 귓가에 걸린 현석과 동구가 했다.

"물론이지."

"후배님들과 합석하게 돼서 영광입니다."

세 사람이 나란히 앉아 어느새 식사 테이블이 가득찼다.

되도록 따로 만나고 싶었는데 정음과 아영, 특히 서현이 함께 모이자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젠장. 이 환장할 조합은 뭐람.’

[왜 그러십니까?]

‘서현이 말이야. 질투가 워낙 심하잖아. 스토킹까지 했는데.’

[그래도 저번에 알아듣게 잘 말해서 훼방놓지 않기로 하지 않았던가요?]

‘그랬으면 좋겠는 데 말이지.’

"셋이 같이 수업들어?"

"네."

"우린 하루종일 전공 수업이야. 오전부터 오후까지 내내."

"아하, 그러시구나."

현석과 동구는 옆에 앉은 정음과 아영에게 관심을 보이며 계속 말을 걸었다. 정음은 워낙 선배들에게 깍듯했기 때문에 반응을 보이며 대답했지만, 아영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듣고만 있었다.

‘얼음공주는 여전하군.’

[하지만 주인님에겐 뜨겁죠.]

‘그런 소리 마라. 아영이도 감당하기 힘들다.’

"선배. 아까 효민이가 단톡 보냈는데 내일 집행부만 따로 식사한다고…."

"어. 맞어. 연락받았어? 교수님이 1년간 수고하라고 저녁 사주신데."

"그렇구나."

"선배, 그럼 저희가 따로 준비해야 할 건 있을까요?"

정음은 다른 사람의 눈치가 보이는지 계속 선배라고 불렀다.

정음은 원래 모든 남자 선배들에게 "선배"라는 호칭으로 통일했는데, 나랑 단둘이 있을때만 오빠라고 부르는 식이었다.

"아냐. 내일은 몸만 오면 돼. 식당 예약은 영철이가 하기로 했거든. 식사 끝나고 일정은 각자 스케줄 봐서."

"아하."

"그렇구나."

"뒤풀이도 있는 거에요?"

여학생 셋이 나란히 눈빛을 반짝였다.

퍼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거 셋다 똑같은 생각하는 거 아니지?’

왠지 불안한 기운을 스멀스멀 올라왔다.

생각해보니, 팔선녀 전부가 저녁 식사 후 디저트로 나를 지목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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