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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260화 (1,227/2,000)

1243.. 2학년2학기-58-

"이번에 니가 양보해."

나연이 우선권을 주장했다.

"내가 왜?"

"저번에도 네가 먼저 였잖아."

"그땐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지."

"와, 양심 없네 진짜?"

"이게 어떻게 양심 문제니?"

"공평하게 돌아가면서 하는 게 맞지."

"아니지. 그때그때 정하는 것도 공평한 방법 중 하나야."

두 사람은 한치의 양보도 없었다. 나연으로서는 억울할 뿐이었지만, 결국 연두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좋아. 대체 어떻게 순번을 뽑자는 건데? 가위바위보라도 할 까?"

"그건 재미없지. 저 오빠 어때?"

"누구?"

"저 복학생 오빠."

연두가 강의실 앞에 앉은 영철을 가리켰다. 여전히 고등 학생 같은 다른 남자 동기들과 달리, 키도 크고 얼굴도 반반한 훈남의 등장에 모처럼 흥미가 돋은 눈빛이었다.

"어쩌라고?"

하지만 나연이나 연두나 영철의 잘생긴 외모에는 별 관심 없었다. 어차피 도훈이라는 완벽한 상위호환 존재가 있었고, 심지어 섹파까지 맺고 있는 이상 영철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두 사람에겐 성이 차지 않았을 것이다.

"저 오빠 번호 먼저 따오는 사람이 1빠 하기."

"진심?"

"응. 재밌을 것 같지 않아?"

연두는 장난기가 많은 편이었지만, 나연은 원래 차분하고 소심한 성격이었다. 두 사람의 개인적인 일을 가지고 처음 보는 영철을 끌어들인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그러다 진짜 관심있는 걸로 오해하면 어떻게 해?"

"오해? 하라지 뭐. 그거야 본인 문제고."

"아니 무슨 그런 말이···."

그때 강의를 하고 있던 체육과 교수가 두 사람을 지적했다.

"거기! 아까부터 계속 떠들거야? 이번 신입생들은 영 수업에 집중을 못하는 구만?"

"죄송합니다!"

교수의 따끔한 지적에 나연이 급하게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말썽꾸러기 연두는 귓속말로 끝까지 속삭였다.

"그럼 하기로 한 거다?"

"야!"

수업이 끝나자 마자 다음 수업을 위해 다들 흩어지는 데 연두가 쪼르르 영철에게 다가갔다.

"오빠!"

"응?"

영철은 갑자기 자신을 오빠라고 부르는 여자를 쳐다보았다. 단발로 커트한 헤어스타일에 은은한 에메랄드 빛으로 염색한 깜찍한 미소녀였다.

'억, 이런 귀요미가 우리과에?'

"무슨 일로?"

"오빠 이번에 복학하셨다면서요? 앞으로 자주 볼 건데 친하게 지내자구요. 전 연두라고 해요."

연두는 일부러 귀여운 목소리를 내며 영철을 헛갈리게 만들었다. 영철은 바로 오해했다.

'아, 이놈의 인기는 전역해서도 변함 없구나. 안 그래도 1학년 후배들하고 친해지려고 했는데 알아서 들이대 주다니.'

"그래. 고마워. 아는 애들이 거의 없어서 난처하던 차였는데."

"히히, 그럼 오빠 저랑···."

연두가 번호교환을 위해 핸드폰을 꺼내들려는데 갑자기 나연이 둘 사이에 난입했다.

"저기! 영철 선배님 맞으시죠?"

"어, 그런데 넌."

"전 나연이라고 해요. 연두랑은 친구구요."

나연은 방학 중 머리색을 갈색으로 염색을 했는데, 긴머리 끝을 살짝 웨이브를 주어 굉장히 여성스러워 보이는 스타일로 변해있었다.

무용으로 다져진 몸매 또한 매우 훌륭해 보는 순간 눈이 번쩍 뜨일만한 미모를 갖추고 있었다. 영철은 또 다른 미녀의 등장에 당황했다.

'뭐, 뭐야? 우리 과 1학년 후배들 예쁘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이런 미인들이 어디서 자꾸 튀어나오는 거야?'

영철은 오랜 군생활로 인해 자신의 여자 보는 눈이 낮아졌는지 걱정할 정도였다. 어떻게 된 게 눈에 보이는 여학생들 마다 죄다 미인들 뿐이니.

그도 그럴 것이 희주의 급성장과 아영의 투입전까지 정음과 더불어 한때 체육과 트로이카로 불리던 연두와 나연이었기 때문에 영철로서는 입이 귓가에 걸릴 수밖에 없었다.

'좆나 좋군! 최고다 체육과! 2년 전에 군대 다녀온 게 신의 한수가 될 줄이야!'

영철은 앞으로 졸업 때까지 꽃밭에서 뒹굴 수 있다는 상상에 너무 행복했다. 게다가 다른 남자 동기들을 보니 딱히 적수라 불릴 존재도 전무 했다.

'으하하, 드디어 내 인생의 전성기가 펼쳐지는 것인가!

나랑 사귀려면 대기표 끊고 기다려야 할 거라고!'

영철이 착각에 빠진 사이 연두와 나연이 경쟁적으로 그에게 폰을 내밀었다.

"오빠, 저 번호 주세요."

"연락처 좀 알려줄 수 있을까요?"

"그야 어렵지 않은데···."

두 미녀가 동시에 내미는 폰에 영철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마치 먼저 사겨달라고 떼를 쓰는 것 같았다.

"오빠 저부터요."

"뭔소리야. 내가 먼저 말했는데."

"자자, 싸우지들 말고."

영철이 두 후배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에 몹시 흡족해 하는데 갑자기 누군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1학년 남학생이었다.

"영철이형. 다음 수업 같이 가기로 하지 않았어요?"

"아, 맞다."

"오빠, 번호는 주고 가셔야죠."

"저부터요."

나연과 연두가 끈질기게 들러붙자 영철이 공평한 제안을 했다.

"그럼 내가 번호 불러줄테니까 직접 입력할래? 내 번호는 010···."

영철이 직접 제 입으로 번호를 부르자 갑자기 나연과 연두의 표정이 순간 어두워졌다.

"다 들었지? 추가해놔. 그럼 난 바빠서 이만."

영철이 사라지자 강의실에 남은 연두와 나연은 서로 실망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럼 무승부아냐?"

"뭔데 진짜? 무슨 지가 연예인인줄 아네?"

두 사람이 투덜거리고 있는데 강의실에 끝까지 남아있던 효민이 두 사람에게 조용히 다가왔다.

"너희들은 수업 안가?"

"어, 가려고. 맞다. 다음 수업 효민이 너랑 같은 수업이지?"

"응."

8선녀의 수문장이라 할 수 있는 효민은 다른 화려한 여학생들에 비해 조금 모자랐지만, 나름 풋풋한 매력이 있었다. 타과를 지망했다면 손에 꼽힐 정도였지만, 하필 체육과에 속하는 바람에 겨우 턱걸이로 팔선녀에 들게 되었다.

세사람은 나란히 강의동 밖을 걸으며 얘기를 나누었다.

"근데 아까 복학생 오빠한테 뭐 물어본거야?"

"별거 아냐."

"그냥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고."

"영철오빠라고 그랬나? 나름 괜찮은 것 같은데."

"왜 효민이 네 스타일이야?"

"아, 아니."

효민이 얼굴을 붉혔다.

남들은 모르지만, 그녀는 새터에서 가장 먼저 도훈에게 따먹힌데다 지금은 그를 몰래 짝사랑하는 중이었다. 다만 워낙에 소심한 성격인데다, 주변에 쟁쟁한 경쟁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최대한 비밀로 유지하는 중이었다.

"뭐, 그래도 다른 동기애들보단 훨 낫더라."

"하긴. 우리과가 유난히 잘생긴 남학생이 없긴 하지?"

다들 드러내놓고 내색은 안 했지만, 체육과 1학년 여학생들의 불만은 대부분 비슷했다. 2학기쯤 되니 다른과에서는 CC 소식이 간간이 들려왔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팔선 녀라는 미녀군단을 보유한 체육과는 깜깜 무소식이었던 것.

물론 진짜 이유는 바로 도훈 때문이었다. 팔선녀 모두가 도훈과 비밀 연애, 혹은 섹파 사이로 지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 중 몇몇은 도훈의 바람기를 눈치채거나 짐작하기도 했지만, 심지어 그들조차도 도훈 혼자 8선녀 모두를 독차지하고 있을 거라곤 예상 못 했다.

"2학기 때는 커플 좀 생기지 않을까?"

"그렇겠지? 효민이 넌 요새 만나는 남자 없어?"

"나?"

효민이 희미하게 웃었다. 사실 도훈과 그렇고 그런사이라는 걸 자랑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 했다. 하지만 괜히 도훈에게 민폐가 될까봐 혼자 마음에 고이 담아 두었다.

"···아직. 근데 너희들은 왜 안 사겨?"

나연과 연두는 누가 뭐래도 체육과 1학년에서 손꼽히는 미녀.

흔녀에 가까운 효민과 달리 두 사람의 명성(?)은 다른 과에서도 익히 알려져 있었다. 효민의 의문에 연두가 갑자기 나연에게 팔짱을 끼며 달라붙었다.

"나? 나는 남자보다 나연이가 더 좋은데?"

"으으, 더워 안 떨어져? 난 너 싫거든?"

"왜 그래? 좋으면서."

연두가 바이어섹슈얼이라는 풍문은 효민도 들은바가 있었으므로 저도 모르게 납득했다.

'아. 역시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였구나. 어쩐지 1학기 내내 붙어 다니더라니.'

효민은 더 캐묻지 않고 적당히 넘어갔다. 어쨌든 그녀 입장에서 두 명의 잠재적 경쟁상대가 알아서 제외되었다는 것은 희소식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을 제하더라도 체육과 내에 너무 많은 여자들이 있었다.

누구나 인정하는 원탑 정음을 제외하더라도 갑툭튀로 등장한 아영의 존재가 상당히 거슬렸다.

본래 아영은 8선녀라는 별칭이 붙을 때 멤버에 포함되지 않은 인물이었다. 과 생활을 거의 하지 않고 아싸로 지냈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

하지만 우연히 그녀의 미모를 본 남학생들이 아영이야말로 8선녀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해서 논란이 일었다. 아영도 어쨌든 체육과 1학년인데 그녀를 제외하고 8선녀를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주장이었다. 앙꼬없는 찐빵, 눈가리고 아웅하기 등의 자조섞인 비판이 잇따랐다.

이에 몇몇 남학생들이 8선녀는 9선녀로 확장하자는 의견을 내새우며 멤버교체해야 한다는 쪽과 팽팽히 맞섰다.

하지만 이미 사범대 타과에서도 8선녀라는 브랜드가 체육과를 대표하는 미녀군단의 이름처럼 인식되면서 결국 멤버교체에 들어갔고, 존재감이 약했던 소위 엉뽕 미녀 김희수가 탈락하는 비운을 맞이한 것이었다.

멤버 재편 당시 효민은 자신도 탈락후보에 있었다는 소문을 우연히 다른 남자동기에게 전해 들었다. 하마터면 자신의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효민은 몹시 분하고 억울했다.

물론 남자 동기들끼리 장난 삼아 별명을 붙이면서 시작한 것이라도, 어느덧 8선녀에 속하는 것이 일종의 자부심처럼 변한 것이었다. 체육과 1학년 여학생들은 둘 중 하나 밖에 없었다.

8선녀와 8선녀가 아닌 여학생.

'아영이 걔는 속을 전혀 알 수 없으니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영은 빼어난 미모로 8선녀에 합류하긴 했지만 특유의 시니컬한 성격과 답답할 정도로 말수가 적었기 때문에 생각보다 파급력은 없다시피 했다. 그녀에게 관심을 갖던 남학생들도 말 붙이기가 어렵다며 지레포기해버렸다.

효민은 모르긴 몰라도 도훈이 관심 가질만한 타입은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 그렇다면 남은 경쟁자는 최근들어 미모에 물이 오른 희주와 1학년 과탑이자 모범생인 서현, 그리고 테니스 선수 강경희 정도.

'경희는 학교 활동보다는 운동이 먼저인 애니까 제쳐 두고. 서현이도 공부만 열심히 하니까 연애 생각도 별로 없을 거야.'

알아서 두 사람을 제낀(?) 효민은 유일하게 남은 경쟁자로 희주를 꼽았다.

‘정음이는 어쩔 수 없다 쳐도 희주는 어떻게 해볼만 할것 같은데···.’

여자동기들 사이에서 희주는 살짝 저평가되는 면이 있었다.

사실 효민도 맨 처음 입학했을 때 희주를 낮춰 봤던 것이다.

‘빻녀’라고 놀림 받을 정도로 얼굴이 소위 빻아 있던 희주.

다만 몸매가 너무나 훌륭해 8선녀의 말석에 끼워주었던 것인데, 어느새 얼굴이 예뻐지더니 지금은 정음이나 아영이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이었다.

당사자인 희주는 젖살이 빠진 것이라고 말했지만, 효민은 희주가 분명 얼굴에 칼을 댓을거라고 확신했다. 특히 요새는 보톡스 같은 간단한 시술만으로도 성형이 가능했기 때문에 수술이나 입원 없이 남몰래 얼굴을 고쳤을 거라고 믿었다.

‘분명 얼굴을 고쳤을 거야. 도훈 오빠가 그걸 알면 희주를 별로 마음에 안 들어 할 수도 있어.’

효민이 희주를 의식하고 있는데 나란히 걷던 나연과 연두가 갑자기 어디론가 뛰기 시작했다.

"어, 애들아. 경영대학은 저쪽인데···."

"오빵!"

"도훈 오빠!"

알고보니 나연과 연두가 멀리서 걸어오는 도훈을 발견하고 미친년처럼 달려간 것이었다. 효민 역시 도훈을 발견하곤 갑자기 심장이 쿵쾅거렸다.

‘아아, 도훈오빠다···.’

주책맞게 달려간 두 사람과 달리 효민은 천천히 도훈에게 다가갔다.

"어, 효민이도 오랜만."

도훈이 효민을 빼먹지 않고 챙겼다.

효민은 도훈의 한 마디에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을 느끼며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다.

‘아아··· 어뜩해. 오랜만에 봤는데 다리가 풀릴 것 같아.

’2학기 개강하면서 간만에 본 도훈은 여름 캠프 때보다 훨씬 샤프하게 변해있었다. 살이 좀 빠진 듯 턱선이 날카롭고 체중도 조금 빠진 듯 보였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근데 살 빠지셨어요?"

효민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도훈이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요새 한약을 좀 먹었더니···."

"한약요?"

"오빠 요새 약드세요?"

나연과 연두는 도훈의 곁에서 쉴 새 없이 재잘거렸다.

이에 반해 효민은 한 발자국 떨어져 있었는데, 남들의 눈치를 심하게 의식하는 소심한 성격 때문이었다.

"아니. 혼자 산다고 부모님께서 챙겨 주셨는데 꾸준히 먹으니까 요새 살이 좀 빠지더라고."

"그러시구나."

"하긴 몸 생각하시긴 하셔야죠."

연두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딴에는 섹드립을 치려는 수작이었지만, 효민의 눈치를 보더니 말을 바꿨다.

"이제 회장 맡으셔서 고생하실 텐데요."

"아참, 맞다. 내일 개강총횐 거 알지?"

"네."

"저희가 뭐 따로 해야 할 일 있나요?"

"음. 내일은 별건 없고 저녁식사 예정이니까 시간만 비워놔."

"식사요?"

"교수님이 집행부들만 저녁 사주신대."

"와! 집행부 짱 좋다."

"메뉴가 뭔데요?"

"식당은 영철이가 섭외하기로 했어."

"아, 그 복학생 오빠."

"알아?"

"네. 저희 학년 방금 전공수업 듣다 왔거든요. 아까 소개했어요."

"따로 소개할 필요는 없겠네. 암튼 영철이도 집행부 활동 하기로 했어. 그리고 효민아."

"네, 네?"

"내일 식사 공지는 효민이 네가 맡아줘. 할 수 있지?"

효민은 도훈이 자신을 꼬박꼬박 챙기자 감동하듯 대답했다.

"네!"

하지만 속으로는 이미 팬티가 촉촉해지고 있었다.

도훈과 대화만 나누어도 몸이 반응해 버리는 효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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