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1.. 2학년2학기-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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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이라 체육관 내 헬스장엔 사람이 몇 없었다. 막 샤워를 마치고 나온 나를 포함해도 10명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와중에도 수컷이라 불릴만한 놈들은 죄다 희주에게 시선을 박고 있었다. 굳이 ‘박고 있었다’라고 표현한 이유는 놈들의 시선이 강간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유독 심한데, 아무리 점잖은 사람도 본능에 이끌려 눈을 떼지 못할 때가 있다.
지금의 경우가 딱 그랬다.
버터 플라이를 잡고 있는 학생 놈도, 벤치 프레스를 들어올리던 교수도, 그리고 덤벨을 치켜 든 대학 내 교직원까지 모두 희주의 탱글탱글한 엉덩이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씰룩거리는 두 개의 커다란 지방덩어리.
몸에 밀착된 레깅스에 팬티 자국조차 보이지 않은 것을 본 나역시 놀랐다.
‘헉, 설마 노팬티?’
[설마요. 아무리 발랑 까진 희주양이라도 대학 내에서 노팬티 차림일 리가.]
‘근데 왜 끈자국이 없지? 사내 놈들이 그것 때문에 환장하는 거 아냐?’
[티팬티 일수도 있죠.]
‘앞에서 도끼자국 보면 알겠군.’
나는 아는 체를 않고 희주 옆에 비어 있는 런닝 머신에 올랐다. 슬쩍 옆을 쳐다보니 희주는 귀에 하얀 콩나물 대가 리같은 걸 꽂고 있었는데 요즘 유행한다는 블루투스 이어폰 으로 보였다. 탱크탑을 입어 드러난 잘록하고 탄탄한 허리가 유독 눈에 띄었다.
‘오우, 몸매가 아주.’
확실히 희주는 몸매 만큼은 압권이다.
혼혈 2세라는 특징 때문에 피부색이 백인처럼 하얀데다, 꾸준한 자기관리 덕에 끝내주는 바디라인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출렁이는 슴부먼트까지.
남자들이 넋이 나간게 이해가 갔다.
"어? 도훈 오빠!"
트레드 밀 위에 오른 내가 멀뚱히 서있자, 희주가 고개를 돌려 나에게 밝게 인사했다.
"오랜만. 아침부터 체육관에서 운동하니?"
"네! 선배님도?"
희주를 훔쳐보던 사내들은 그녀가 환희 웃으며 나를 반갑게 맞이하자 김이 샜다는 듯 하나둘 관심을 끄기 시작했다. 마치 정지화면이 다시 재생되는 것처럼 버터 플라이가 조여지고, 바벨이 위아래로 움직였으며, 덤벨은 이두박근을 이완시켰다.
[풉-. 다른 남자들이 주인님을 보고나선 희주양에 흥미를 잃어 버렸군요.]
‘흥미를 잃었다기보다는 지레 포기한 거지.’
[포기요?]
‘오히려 내가 못났으면 비웃으면서 희주에게 더 껄떡댔을 거야. 저새끼보단 내가 낫지 하면서. 근데 나보다 와꾸에서 밀리는 걸 대번에 깨닫곤 그냥 관심을 없는 척하는 거라고. 길고 짧을 걸 꼭 대봐야 아는 게 아니거든.’
[호오, 그렇게 해석되는 군요.]
"난 아냐. 등교할 때 땀을 좀 많이 흘려서 샤워실에서 씻고 나오는 길이야."
"아 그렇구나···. 잠시만요."
희주가 급히 정지버튼을 눌렀다. 빠른 속도로 돌아가던 희주의 기계가 멈추는 사이, 그녀가 귀에 꽂고 있던 무선 이어폰마저 거두었다. 나와 대화하겠다는 시그널이었다.
"오랜만인데 음료수 한 잔 사주세요, 선배."
"음료수? 여기서?"
"밖에 자판기 있잖아요."
"그거 가지고 되겠어?"
"히히. 선배가 사주시면 뭐든 좋죠."
희주가 친한 척을 하며 와락 팔짱을 꼈다.
불시의 기습과 같은 행동에 얼결에 나도 모르게 팔짱을 허락하고 말았다.
뭉클 희주의 가슴이 팔꿈치에 닿는데, 주변에서 "하-" 하는 탄식 소리가 들렸다. 다른 사내놈들이 질투하는 반응에 괜히 우쭐한 마음이 들었다.
[오, 희주양의 인기가 이정도 였던가요?]
‘확실히 예뻐지긴 했어. 나한테 얼싸 몇 번 당한뒤로.’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희주는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더 예뻤다. 아마 여름 캠프 때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은데, 그 때보다 미묘하게 얼굴이 바뀌어 있었다.
특히 새하얀 얼굴에 노랗게 물들인 머리가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운동을 위해 뒤로 질끈 묶은 포니테일 스타일도, 그녀의 건강미를 부각시키는 것 같았다.
"그래. 아직 수업 전이니까."
나는 사람들의 눈총을 피해 헬스장 밖으로 나왔다.
통로에는 음료수 자판기가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현금을 챙기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 지갑을 놔두고 온 것 같은데.’
[네?]
‘아니. 요샌 그냥 스마트 폰으로 다 되니까.’
희주 역시 운동복 차림이라 현금이 있을리 없었다.
그때 문득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 희주에게 말했다.
"엇, 저기 성수형 아니냐?"
나는 통로 끝에서 걸어오는 덩치를 가리켰다.
"부회장님이요? 어디요?"
"저기, 저쪽 모퉁이에."
희주가 정신이 팔린 사이 나는 급히 손을 허공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내 팔이 반쯤 사라지며 손목이 잘린 사람처럼 됐다.
‘찾았다.’
다시 빠르게 손을 거두자 내 손에는 천원짜리 지폐 두장이 들려 있었다.
[다행이군요. 인벤토리에 현금을 일부 보관해 두셔서 말입니다.]
‘그러게. 이거 엄청 유용한데?’
"에이, 성수 오빠 아닌 거 같은데요?"
"그래? 내가 착각했나?"
희주가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땐 이미 자판기에 지폐를 투입하는 중이었다.
"뭐 마실래?"
"전 이온 음료로 아무거나요."
"그래. 나는 커피."
음료를 뽑아 들고 희주와 잠시 통로쪽 의자에 앉아 얘기를 나누었다.
"개강하는 첫날부터 운동이야? 희주 너도 참 열심히네."
"그러는 오빠는요."
"나는 그냥 씻으러만 온거라니까?"
"에이, 오빠 몸 좋은 걸 내가 모를까봐서요?"
희주가 배시시 웃었다.
오랜만에 웃는 모습을 보니 굉장히 예뻐보였다.
아무래도 마법의 정액 효과가 너무 탁월한 것 같다.
‘와···. 희주 연예인 누구 닮은 것 같지 않냐?’
[모두 주인님 작품입니다. 공들인 보람이 있군요.]
‘어떻게 더 예뻐진거지?’
[여름 캠프에서도 얼싸하시지 않았습니까?]
‘어. 아아아! 그렇구나.’
[그 때문에 한단계 더 미모가 진일보 한 것 같습니다.]
'대체 어디까지 예뻐지려는 거야?'
"쉿, 누가 듣겠다."
"앗, 죄송."
희주는 기분이 좋은지 연신 생글거렸다.
"오빠, 나 근데 좀 달라지지 않았어요?"
"어디가?"
"방학 끝날 때쯤 동기모임 가졌는데, 다들 그러던데요?
성형 어디서 하고 왔냐면서."
"너 성형했어?"
"아뇨? 제가 왜요?"
희주는 성형하지 않은 것은 내가 잘 가장 잘 안다.
그녀는 순전히 마법의 정액 효과로 거듭났다.
내가 얼굴에 직접 정액을 뿌렸기 때문에 그것만은 확실하다.
근데 나 역시도 이렇게 효과가 좋을 줄은 예상도 못했다.
"하긴. 성형을 할거면 대학 입학 전에 했겠지?"
"당연하죠. 그리고 전 원래 성형 같은 거 생각도 안했어요."
"왜? 여자들은 은근 많이 하지 않나?"
"솔직히 여자는 얼굴보다 몸매라고 생각하거든요."
희주가 당찬 목소리로 말했다.
생각해보면 빻녀 시절에도 늘 자신감이 넘쳤다.
못생긴 여자들 특유의 소심함이나 자격지심 같은 건 없다시피한 애였다. 그것이 아마도 스스로 몸매를 높이 사는 자존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 몸매가 완벽한데 얼굴마저 예뻐지니 정말 군계일학이로군요. 이러면 본처이신 정음양의 자리까지 위협받는거 아닙니까?]
'음, 그럴지도.' 여학생들은 신입생 때에 비해서 2학기 때 외모에서 장족의 발전을 이룬다.
특히 꾸밀 줄 몰랐던 애들이 패션 트렌드를 쫓고, 화장에 능숙해지다보면 말도 안되게 변신하는 애들이 있다.
정음은 타고난 원판이 훌륭한 편이었지만, 꾸미는 법을 모르는 선머슴 스타일이었고 희주는 빻녀일때도 스타일은 좋은 편이었다. 게다가 계속 예뻐지니 점점 둘의 격차가 좁혀지는 것이다.
'안되겠어.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지.'
[특단의 대책이라뇨?]
'앞으로 정음이에게도 얼싸를….'
[아니. 그게 무슨.]
"오빠는 근데 캠프 끝나고 뭐하셨어요?"
"나? 그냥 집에서 쉬었지."
"에이, 깨톡해도 바쁘다고만 하시더니 집에만 계신 거에요?"
희주는 확장된 망부석이 되지 마오에 등재된 인물이었다.
따라서 나는 모르는 사이 가상의 인격인 나와 깨톡으로 계속 안부를 주고 받았던 모양이다.
'희주랑 무슨 대화를 나눈건지 전혀 모르겠는데?'
[중요한 내용이 아닐겁니다. 주인님이 알아야할 내용이라면 분명 알렸을테니까요.]
'아하.'
"실은 이사할까 봐서. 시간 나는 대로 짐정리 하고 있었어."
"엇? 오빠 이사가세요?"
"응. 지금 사는 원룸이 너무 좁은 것 같아서 옮기려고."
"어디루요?"
"아직 정하진 않았어. 아마 학교 가까운데로 옮길것 같아."
"그럼 나중에 집들이 하시는 거에요?"
"집들이?"
"왜 이사가면 다 집들이 하잖아요."
"하하. 왜? 무슨 선물 사오게?"
희주가 야릇한 표정으로 말했다.
"몸만 갈게요."
"응?"
"충분하지 않나요?"
[역시 희주양이군요.]
'요망한 것 같으니.'
"거참, 너도 아침부터 발기차구나."
"오빠랑 더 있고 싶은데 1교시 수업 때문에 가봐야 겠어요."
"수업 있어?"
"네. 개강신청 망해가지고…."
희주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물러났다.
"내일이 개강총회죠? 낼 또 뵈요."
"응. 그러자."
"음료수 잘마셨어요. 아, 맞다 그리고."
희주가 갑자기 얼굴이 바짝 들이밀더니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저 오늘 노팬틴데."
"헉!"
자세히 보니 희주가 받쳐입은 레깅스에 도끼자국이 선명했다. 정말로 학교에 노팬티로 온 것이었다.
"야, 너!"
"히히, 저 씻으러 가볼게요!"
희주는 한껏 도발을 하더니 총총거리며 사라졌다.
[여윽시 희주양이군요. 대학 수업 나오는데 노팬티 차림이라니.]
'헬스장에서 남자들이 환장한 이유가 있었구만. 암컷 냄새를 줄줄 풍기고 다니네.'
[그래도 지금은 주인님 바라기 아닌가요? 예전처럼 문란하게 다니는 것 같진 않던데요.]
'그러게.' 희주가 씻으러 들어가자 나도 체육관을 떠나 학과 사무실로 이동했다. 1교시는 수업이 없었기 때문에 학과 사무실을 들렀다.
여느때처럼 강민주가 오피스룩 차림으로 사무를 보고 있었다.
"도훈이 왔구나?"
"안녕하세요 조교선생님."
강민주가 보조 한솔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방학 끝나고 어째 얼굴이 더 좋아진것 같네."
"선생님두요. 아참, 내일 개강총회 준비 말인데요."
"응. 교수님들에겐 내가 말씀들였어. 국어과 강의동에서 저녁에 진행한다고."
"제가 따로 준비해야 할건 있을까요?"
"음, 진행은 내가 할테니까 도훈이 넌 끝나고 식사 자리 좀 알아봐줄래?"
"식사를요?"
"응. 학과장님께서 1년간 수고한다고 집행부들만 모아서 저녁 사주신다더라."
"아, 집행부만요?"
"응."
민주가 나의 체육과 조교라는 게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집행부 주도가 아닌 학과관련 행사는 민주가 알아서 다 진행을 하고 나는 숟가락만 얹어도 될것 같았다.
"네, 알겠습니다."
"맛있는 거 얻어 먹어도 돼. 알았지?"
"네."
민주는 말하면서도 틈틈히 한솔의 눈치를 보았다.
그녀 때문에 정작 하고 싶은 말을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한솔양을 밖으로 내보내기가 녹록치 않은 모양입니다.]
'안절부절하는 거 보니 그래 보이네. 다음에 혼자 있을 때 와야겠다.' 용무를 마친 나는 민주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사범대 건물을 빠져나왔다. 이제 9월이 되었다고 오전에는 제법 선선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학생들은 반팔차림이었다.
수업시작까진 시간이 남았기 때문에 나는 사범대 학생들이 주로 모인다는 학떨목 주변에 앉아 앞으로 스케줄을 점검했다.
[근데 박회장 건은 이제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최실장이랑 공모를 해 봐야지. 어쨌든 내부자를 내편으로 끌어들였으니까.'
[혹시 놈이 배신하거나 알리는 게 아닐까요? 그럼 일이 더 복잡해 질 것 같은데요.]
'어제 그렇게 겁을 주었으니 절대 딴 생각 못할 거야. 가족까지 들먹이는데 간뎅이가 배밖으로 나온 게 아니라면 함부로 경거망동은 못하겠지.'
[현자 도훈을 부르셔야 겠군요.]
'일단은 개강총회도 중요하니까 그거까지만 끝내고. 조금 속도를 조절하자고.'
[넵,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몸에 기운이 쓸데없이 넘치는 군. 가만히 앉아 있질 못하겠는데.'
[어서 빨리 내공심법을 구매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좀 저렴한 것은 얼마나 하지?'
[네?]
'경매장에 올라온 것중에서 말이야. 비싼 것이 아니라도 좋으니까 넘치는 양기를 갈무리할 수 있는 내공심법을 빨리 얻었으면 좋겠는데.'
[가장 저렴한 것도 3만 포인트 이상부터 시작입니다. 주인님은 백보신권의 구입으로 기존 포인트를 거의 다 쓰셔서 현재 5000포인트 남아있고요.]
'아. 그럼 25000을 다시 모아야 한다고? 미션이라도 알아봐야 하나?'
[음, 대학 안에서는 쉽지 않을 겁니다. 돌발 미션이라도 받으시려면 장소를 바꾸는 걸 추천드립니다.]
'젠장. 2학기 시작부터 미션 찾으러 다니게 생겼네.' 그때였다.
멀리서 잘생긴 남학생 하나가 나를 보고 90도로 고개를 팍 숙였다.
"회장님!!"
너무나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녀석은 영철이었다.
군대에서 막 제대를 했는지 목소리 하나는 우렁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