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7.. :: 2학년2학기-42-
"하아아…하아 말도 안 돼 흐으, 흐으."
도훈이 잠깐 멈춘 사이에도 채원은 눈이 풀린 채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살면서 가장 강렬한 쾌감을 맛본 나머지 완전히 정신줄을 놓은 모습이었다.
도훈은 빠르게 판단했다.
‘일단 미션부터 해치우자. 그다음 대책을 강구해보자고.’
몸이 두 개가 아닌 이상 당장은 손쓸 방법이 없었다.
도훈은 침범당한 어장의 멤버가, 자신이 아끼는 여성이 아니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팟팟팟!
조급한 마음과, 자기것을 뺏겼다는 생각에 도훈의 동작이 거칠어졌다. 사정없이 몰아치는 후방폭격에 채원은 말그대로 걸레짝으로 변해갔다.
"하읏, 오빠, 핫! 너, 너무 깊어요!"
"씨발! 이런 좆같은!"
팍팍!
도훈이 평소 입에 담지도 않는 육두문자를 내뱉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괴씸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채원은 도훈이 극도로 흥분하면 욕을 내뱉는다고 착각하고 도훈에게 호응했다.
"그래요, 그냥 개처럼 따먹어 주세요! 저를 아주 뚫어 버리세요!"
"씨이바아아알!!!!!"
도훈이 마지막 스퍼트를 올렸다. 어떻게든 사정을 끝내고 최대한 서둘러 서울로 돌아갈 생각 뿐이었다.
퍼버버버버벅!
초고속 뒤치기에 채원이 비명을 쏟아냈다.
"흐핫! 학, 학! 오빠, 학! 나, 나 죽어! 학!"
퍼버버버벅!
"흐아아아아아아아앙!!!!!!"
"흣!"
도훈이 미간을 살짝 찡그리더니 정액을 힘껏 토해냈다.
동시에 채원은 완전히 그로기 상태로 침대위로 뻗어 버렸다. 엉덩이를 위로 치켜든 채 쓰러진 그녀의 가랑이 사이에서 진한 백탁액이 흘러나왔다.
"하아, 하아…. 미쳤어, 완전…."
채원은 그 말을 끝으로 기절해버렸다. 짧은 현타 후 도훈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미션도 끝냈겠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다.
대충 마무리를 한 도훈이 옷을 껴입으며 로시에게 명령했다.
‘어장관리 어플 켜봐. 대체 누가 당한 거야?’
[잠시만요.]
어플을 실행시키자 스마트워치 디스플레이에 침범당한 인물의 이름이 떠올랐다.
‘으잉?’
도훈은 이름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었다.
‘이게 누구야?’
[사채 사업소의 김양아닙니까?]
‘아아! 맞네. 이름이 생소해서 모르는 여잔 줄.’
[이름도 모르는 여자가 어장에 있을 리가….]
이름을 확인한 도훈이 겨우 안도했다. 다행히 평소 아끼는 하렘 멤버는 아니었다.
[음, 김양에게 섹슈얼 이슈가 보고되었군요.]
‘그게 무슨 뜻이지?’
[말 그대로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맺었다는 뜻입니다. 그 여파로 어장 이탈의 조짐도 포착되었고요.]
‘하-. 씨발. 대체 누구지? 혹시 숨겨둔 애인이라도 있었나?’ 도훈은 김양의 얼굴을 떠올렸다. 얼굴만 믿고 싸가지없게 구는 전형적인 천박한 ‘경리 스타일’. 그런 그녀에게 다른 남자가 없으리란 법은 없었다.
[근데 정보창 설명에 따르면 최근 만나는 남자는 없었던 것 같은데요?]
‘아니면 제 버릇 못주고 원나잇이라도 했나?’
[말이 안됩니다.]
‘왜? 김양이 무슨 순진해 빠진 여자처럼 보여? 누가봐도 그건 아닌데?’
[그게 아니라 주인님과 며칠 전 섹스를 했잖습니까. US B를 빼돌리라는 이중간첩 임무를 주려고요.]
‘그랬지.’
[아시다시피 주인님의 정액엔 인신 구속의 능력이 담겨 있습니다. 주인님과 정을 통한 여자들은 한동안 다른 남자에 대해서 흥미를 잃고 주인님만 생각하게 된다는 거죠.]
‘어랍쇼?’ 듣고 보니 이상했다.
분명 그때 여인숙에서 섹스 이후로 김양은 자신에 대한 태도가 변했다. 다른 사람에겐 여전히 까칠하게 굴더라도 도훈의 명령이면 조직도 배신할 만큼의 충성심을 보였던 것이다.
‘맞아. 그때 김양 되게 좋아했아 하더라고. 그런 섹스는 처음인 것처럼.’
[그러니까요. 그런 김양이 주인님이 잠시 지방에 내려왔다고, 그 새를 못참고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웠다고요?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그럼 섹슈얼 이슈는 또 뭔데? 다른 설명도 있어?’
[안타깝게도 상세한 내용까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충돌경보 기능은 어장을 침범당한 것, 그리고 섹슈얼한 이슈가 있었다는 것 정도만 알려주니까요.]
‘흐음…. 그럼 대체 뭐지? 설마 괴한한테 강간이라도 당했다는 거야?’
하지만 현재는 오후 시간대. 대낮같이 밝은 지금 괴한에게 강간을 당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놔야겠지만, 아무튼 김양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서울로 바로 돌아가 봐야겠지?’
[네. 귀환 포털의 위치는 이곳 병원에서 머지않은 곳입니다.]
도훈은 베개에 얼굴을 처박고 쓰러진 채원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괴성을 지르며 절정을 느끼던 채원은 섹스가 끝나자 기절한 상태였다.
‘음…. 채원의 기억을 소거해야되는데.’
[인연의 붉은 실 가위라도 쓰시려고요?]
‘망각의 라이터를 쓴다고 해도 직전 10분밖에 기억을 못지우잖아. 아예 기억에서 나를 날려버리는 편이 좋겠어.’
[그렇군요.]
도훈은 가위를 꺼내려다 잠시 멈췄다.
‘근데…. 이러면 채원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거잖아?’
[네?]
‘습관적으로 거짓말하는 버릇을 고쳐주려고 했는데, 이래선 결국 똑같을 거 아니야. 다른 사람을 만나면 또 사기나 치고, 못된 짓만 하고 다닐 거라고. 본인도 뉘우치는 게 없을 거고.’
[그래서요?]
‘그냥 이대로 두고 떠나는 게 좋겠어.’
[네? 그냥 떠난다고요?]
‘어. 먹튀 당했다고 열받도록 말이야. 나중에 채원이 서울에서 다시 나를 찾아오면 그때 저 못된 버릇을 고쳐줘야지.’
[주인님. 미션이 이미 끝난 상대에 대해 제가 참견할 바는 아니지만, 굳이 채원양에게 그렇게까지 해야할 이유가 있으십니까?]
도훈은 채원의 허벅지 아래 뚝뚝 떨어지는 허연 정액을 보고 말했다.
‘괴씸하잖아.’
[네?]
‘맨날 남의 뒤통수 때리고 다녔으니, 한번쯤 자기도 맞아 봐야 정신을 차리지.’
[흠.]
‘그리고 좀 불쌍하기도 하고.’
[채원양이요? 어디가요?]
‘너무 빈유라.’
[아….]
‘그냥. 저렇게 살다가 언젠간 호되게 당하겠다 싶어. 그래서 고쳐주고 싶은 거야. 사람은 고쳐쓰는 거 아니라지만, 시도는 해봐야지.’
[흐음…. 뭐 주인님 뜻이 정 그렇다면야…. 원하는 대로 하십시오.]
‘그래. 서울 돌아가려면 서둘러야겠다.’
도훈은 채원을 내버려 두고 병실을 빠져나왔다.
착각의 문패는 제거했지만, 어차피 병원 사람들이 빈 병실이라고 인지하고 있는 이상 스스로 깨어나기 전까진 아무도 이곳을 찾지 않을 것이다.
* * *
"으…으…. 너무 했어. 아직 생리중이었는데…."
겨우 정신을 차린 채원은 밑이 빠질 것 같은 고통에 투덜거렸다. 섹스를 하는 중에는 쾌락에 절여져 몰랐는데, 막상 끝나고 나니 온몸이 안 쑤신 곳이 없었다. 특히 막판에 도훈에게 당했던(?) 뒤치기의 여파가 상당했다.
"헉, 뭐가 흐르는 거 같아요. 나 혹시 피나는 거 아니죠?
"
채원은 겁먹은 타조처럼 베개에 머리를 처박고 있었기 때문에 병실에서 혼자 떠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응? 도훈 오빠?"
계속 혼잣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채원이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어라?"
도훈은 어디에도 없었다. 놀란 채원이 1인실에 딸린 화장실을 향해 소리쳤다.
"도훈 오빠, 화장실이에요?"
하지만 불러도 대답 없는 메아리였다.
채원은 저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헐, 설마 그냥 가버린 거?"
어안이 벙벙해진 채원이 급하게 옷을 추슬러 입고 병실 곳곳을 뒤졌다. 도훈은 완벽히 자취를 감춘 뒤였다. 채원은 갑자기 확 열이 받았다.
"와, 뭔데? 설마 나 따먹고 먹튀한 거야?"
평소 사기를 많이 치고 다녔던 채원은, 자신이 먹튀의 대상이 되었다는 생각에 길길이 날뛰었다.
너무나 큰 쾌락에 정신을 잃은 사이 도훈이 몰래 옷을 입고 도망갔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면서도 자존심이 상했다.
"어처구니없는 오빠네 진짜?"
채원은 그래도 혹시나 몰라 병실 밖으로 나왔다. 도훈이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혹시나 밖에서 흡연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든 것이다.
그러나 병원 전체를 샅샅이 뒤졌는데도 도훈은 보이지 않았다. 채원은 끝내 자신이 먹튀당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 지나가던 간호사가 채원을 보더니 물었다.
"어? 어디갔다 오셨어요, 환자 분?"
"네?"
"아니 응급실에서 사라지셨길래 병원 떠나신 줄 알고 아까 한참 찾았잖아요."
"저 검사 받을 거 있다고 병실로 가라지 않으셨어요?"
"무슨 검사요?"
"아니 심장 초음파…."
채원은 점점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간호사가 무슨 소릴 하느냐는 식으로 따졌기 때문이었다.
"지금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암튼 혼자 돌아다니는 걸 보니 응급실에 더 있을 필요는 없겠네요. 보호자 분은 언제 오세요? 오시면 원무과 들러서 정산부터…."
"잠시만요."
"네?"
"혹시 저랑 같이 왔던 남자분 못 보셨어요? 키가 이렇게 크고…."
"아, 네. 알아요. 잘생기신 분?"
"네."
"20분 전 쯤인가? 급한 일이 있다고 택시 불러서 나가시던데?"
"예?"
"왜요? 같이 있다가 가신 거 아니에요?"
이후로 채원은 간호사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뒤통수를 후려 맞은 것처럼 머리가 멍했다. 도훈이 정말로 자신을 따먹고 도망쳤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와, 씹! 이 개새끼를!"
"네?"
"아, 아니 언니보고 한 말 아니에요. 잠시만요. 급하게 전화 좀 하고 올게요."
"환자분! 보호자 오시면 원무과 꼭 들르라고 하세요! 아셨죠!"
채원은 간호사의 말을 들은척도 않고 밖으로 뛰쳐나가 전화기를 꺼냈다. 그나마 도훈이 잠들어 있을 때 번호를 몰래 따놓은 게 천만 다행이었다.
"이 개자식, 나를 가지고 놀았다 이거지?"
채원이 씩씩거리며 전화를 걸었지만, 도훈은 받지 않았다.
연거푸 세 번을 더 시도한 끝에 채원이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아오! 개새끼! 잡히기만 해봐!"
평소 남을 속이는데 거리낌 없던 채원이었지만, 막상 본인이 도훈에게 당하고 나자 도저히 울분을 참을 수 없었다.
의대생이란 말에 홀라당 넘어가 친구들까지 버리고, 부모님도 아직 부르지도 않은 상태였다.
결국 그날 채원은 친구들에게 급히 전화해 창원으로 향하고 있던 차를 다시 반대로 돌려야 했다. 물론 부모님이 오시다 교통사고 났다는 뻔뻔한 거짓말을 핑계로.
‘…두고봐. 국성대 의대 이도훈. 넌 서울가서 보자.’
* * *
채원이 자신에게 이를 갈고 있을 때 도훈은 이미 서울 집으로 귀가한 상황이었다. 새벽부터 산을 오르내리고 채원과 질펀하게 한바탕 뒹구느라 찝찝했던 몸을 씻고 나오니, 모르는 번호로 부재중 전화가 3통이나 남아 있었다.
"응? 누구지?"
도훈이 고개를 갸웃하는데 로시가 말했다.
[채원양 아닐까요?]
‘아, 맞다. 내 번호 따갔다고 했지? 크크. 어쩌다보니 전화도 쌩깐것처럼 되버렸네.’
[깨어나서 주인님이 없는 걸 보고 찾았나 봅니다. 다시 연락 안해보십니까?]
‘넵 둬. 한동안 열 좀 받으라고. 지도 당해봐야 정신 차리지.’
[주인님도 참….]
도훈은 채원의 일은 잊고 당장 벌어진 김양 건에 더 집중 하기로 했다.
‘음. 그나저나 김양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섹슈얼 리포트라니…. 일단 만나봐야 하나?’
[한데 김양이 다른 남자와 섹스를 한 것이 큰 문제인가요? 막상 주인님도 어장을 침범당한 것이 김양이라는 사실을 알고선 도리어 안도하셨던 것 같은데요.]
‘물론 다른 여자들보다야 비교적 최근에 업무관계로 만난 김양이 더 낫지. 근데 문제는 김양에게 지금 많은 게 걸려있다는 거야.’
[걸려있다고요?]
‘현자 도훈이 세운 계획에선 김양이 어장에서 이탈하는 경우를 고려하지 않았거든.’
[아…. 한마디로 돌발변수로군요.]
‘그렇지.’
그때였다.
도훈이 폰이 다시 울렸다.
‘또 채원인가? 더럽게 끈질기네. 한동안 차단….’
도훈이 폰을 들어 발신자를 확인하는데 의외의 인물이었다.
[김양의 문자인데요?]
‘오잉?’ 도훈이 서둘러 문자를 확인했다.
-김양 : 저… 오늘 저녁에 잠깐 볼 수 있어요? 지금 사무실인데 급히 알려드릴 일이 생겨서요.
‘급하게 알릴 일이라고?’
도훈은 전화를 걸어 물어볼까 하다가, 김양이 현재 사무실에 있다는 말에 잠시 멈칫했다. 그때 문자가 한 통 더 날아왔다.
-김양 : 중요한 내용을 더 찾았거든요.
‘응?’
[USB 말하는 것 같은데요?]
도훈은 일단 알겠다고 답장을 보낸 뒤 고민하기 시작했다.
‘좀 수상하지 않아?’
[뭐가요?]
‘불과 1시간 전 다른 남자랑 배꼽을 맞대놓고 불쑥 나를 찾는다니.’
[그건 주인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대체로 섹스를 안하는 날이 없으시잖습니까? 그것도 매일 다른 여자들과.]
‘아니 그건 미션 때문에….’
[어쨌든요. 김양도 그럴 수 있다는 거죠.]
‘쓰읍. 아니야. 뭔가 예감이 좋지 않아. 어쩌면 함정 일수도 있겠어.’
[함정이라고요?]
‘그냥 평소 김양 말투가 아니라서 그래. 마치 나를 일부러 끌어들이는 모양새랄까?’
[흐음. 듣고보니 수상하긴 하군요. 그럼 어쩌실 겁니까?]
‘뭔지 몰라도 일단 부르는데 가줘야지.’
[주인님 말대로 함정이라면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생각났는데 지금 당장 먹어야 겠어.’
[네?]
도훈이 불쑥 허공에 손을 밀어 넣더니 마술처럼 뭔가를 끄집어냈다.
"100년 산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