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238화 (1,205/2,000)

1221. 2학년2학기-36-

* * *

도훈이 한참 지리산 인근 병원에 있을 무렵.

대근의 PC방으로 한 손님이 찾아왔다.

젊은 남자였는데, 더운 날씨임에도 후드를 눌러쓴 행색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카운터에 앉아있던 소연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

"회원가입은 자리에서 등록하시구요, 기계에서 선금 충천해 이용하시면 됩니다."

주간 알바를 맡고 있던 소연이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대체로 처음 보는 손님이 말을 걸어 올 적에는 이용방법에 대한 문의가 많았기 때문에 반사적으로 나온 대답이었다.

그러자 후드를 쓴 사내가 고개를 심하게 까딱거렸다.

소연은 그 모습을 보고 순간 움찔 놀랐는데, 간질 환자라도 되는 것처럼 신체를 심하게 좌우로 꺽는 모습이 살짝 소름 돋았기 때문이었다.

‘뭐, 뭐지? 어디 아픈가?’

사내는 ‘틱’이라 불리는 증상을 심하게 앓고 있었다. 그는 이따금 스스로의 몸을 통제하지 못했는데, 지금도 바로 그 경우였다.

"아니, 사장···. 아잇, 사장님, 씨발, 있냐··· 뜨잇! 죄송합니다."

소연은 좀비의 발작을 보는 것 같은 괴상한 모습에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났다. 자세히 보니 사내가 한 여름에 후드를 깊게 눌러쓴 이유도 증상이 일어날 때 얼굴 표정이 과도하게 일그러지기 때문인 것 같았다.

"왜, 왜 그러세요?"

"죄, 죄송 뚜렛, 따잇, 제가, 좀 병이 뚜하!"

소연은 저도 모르게 폰을 움켜쥐었다.

언젠가 기사에서 보았던 PC방 알바 칼부림 사건이 떠올랐다.

‘미, 미친 사람인가 봐! 어, 어떡하지?’

그 순간 소연의 머릿속에 도훈이 떠올랐다.

덩치가 좋은 도훈이라면 왠지 한 방에 제압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소연이 천천히 폰으로 전화를 걸려고 하는데, 뒤에서 사장 대근이 나타났다.

"어라? 혹시."

"아, 지부장··· 뜨잇, 사장님?"

"어. 그래 그래. 내가 사장 조대근이야. 박사장이 보내서 왔지? 잠깐 이쪽으로."

대근은 사내와 아는 사이였는지 그를 환하게 반기더니 휴게실로 안내했다. 그러면서 겁먹은 소연에게는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 조심스럽게 말했다.

"많이 놀랬지? 미안해. 내가 아는 다른 PC방 사장 아들인데 장애가 좀 있거든."

"아···. 정말요?"

"어. 박사장이 심부름 시킬 게 있어서 보낸 모양이야. 신경 쓰지 말고 일 봐."

"네."

대근의 등장에 겨우 안도한 소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방금 사장님 보고 지부장 어쩌고 하지 않았나? 그냥 아무말이나 막 튀어나온 거겠지?’

소연은 카운터에 있는 컴퓨터를 이용해 조용히 ‘뚜렛증후군’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한편 휴게실로 후드 청년을 데려온 대근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들었던 것 보다 훨씬 심하군. 자네 그 증상."

"죄송, 뜨힛! 갑자 힛!"

"아냐. 이해하네. 그나저나 저녁에 나 혼자 있을 때 오라니까 왜 지금 온 거야?"

"그게 뜨!···"

후드 청년은 스스로도 답답했는지 갑자기 제 뺨을 치기 시작했다. 짝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두들기자 갑자기 청년의 일그러졌던 표정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또한 놀랍게도 목소리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죄송합니다. 잠시 능력 좀 개방하겠습니다."

"···뭐야? 여기서?"

"저는 지병 때문에 업무 관련해선 특별히 힘의 개방을 허락 받았습니다."

"신기하네? 이젠 말을 안 더듬네?"

"네. 능력을 개방한 상태에서는 아무렇지 않습니다."

"허어, 참으로 고생이 많겠구만. 그래, 이번에 우리 지부로 배치 받았다고?"

"네. 예전부터 지원요청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아니 나는 괜찮은데 창범이 녀석이 하도 지랄을 해서 말이야."

"창범님이면···. 그 최면능력자."

"어. 참, 자네는 그럼 특기가 뭐야?"

"잠시만···."

후드 청년이 갑자기 앞에 놓인 라이터를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라이터에 낚시줄을 매단 것처럼 공중으로 두둥실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화들짝 놀란 대근이 공중에서 라이터를 움켜 쥐더니 바닥으로 내렸다.

"어이, 조심해야지. 보는 눈도 많은데."

"아, 넵."

"그럼 염동력자 인건가?"

"맞습니다. 김건이라고 합니다."

"김건? 외자야?"

"네."

"우리 아들 이름으로 지었어도 괜찮았겠는데?"

"네?"

"아니 내가 조씨니까 그럼 조건이 될게 아니야? 그럼 조건이를 만나면 조건 만남···."

"···지부장님?"

"큼큼, 미안하네 실언했네."

대근이 머쓱하게 웃으며 뒤통수를 긁었다.

후드 청년의 정체는 바로 이번에 지부로 파견된 염동력 자인 김건 이었다. 김건이 계속 말했다.

"최대로 능력을 개방시키면 10미터 이내 거리에서 50Kg 이상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

"50Kg? 초등학생 하나 정도를 들어 올릴 수 있다는 거야?"

"네."

"와···. 자네 같은 인재가 이런 곳으로 배치되다니. 정말 내가 운이 좋구만."

"과찬이십니다. 지부장님의 명성은 오래전부터 들었습니다. 존경합니다."

"사장님, 여기 헤드셋 소리 안 들리는데요?"

대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예 갑니다요!"

칭찬한 김건이 머쓱하게 대근이 헐레벌떡 손님에게 달려 갔다. 그때 카운터에 있던 소연이 음료수를 들고 왔다.

"안녕하세요. 아깐 실례했어요."

"아닙니다."

"어? 이제 괜찮으시네요?"

"네, 이따금 증세가 나오는데 지금은 또 괜찮습니다."

"와! 신기하다. 이렇게 말 잘하시는 분이 어쩌다···. 아, 죄송해요. 방금 인터넷으로 뚜렛 증후군에 대해서 검색해 봤거든요. 고생이 많으시겠어요."

"괜찮습니다."

"이건 제 사과 표시에요. 아까 너무 경황이 없어서···.

기분 나쁘셨다면 다시 사과드릴게요."

음료수는 냉장고에서 막 꺼낸 듯 캔 주위에 이슬이 맺혀 있었다. 소연의 친절한 반응에 김건이 웃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정말 친절하시군요."

그때 헤드셋을 수리하고 온 대근이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끼어들었다.

"웬 음료수야?"

"제 간식에서 뺐어요. 제가 아까 실수를 좀 해가지고."

"오, 역시 소연양은 마음씨도 착하단 말이야. 잘 됐네.

인사들 나누라고. 앞으로 야간 알바로 투입될 새로운 알바생이니까."

"알바요?"

"응. 박사장이 자기 아들 좀 써달라고 부탁을 해가지고 말이야. 그치?"

대근이 눈치를 주자 김건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야간알바입니다."

"아, 그럼 제 후임이네요? 만나서 반가워요. 몇 살이에요?"

"올해 23입니다."

"저보다 오빠시네요. 전 조소연이라고 해요."

"김건입니다."

"훗, 이름도 멋지네요."

"일단 PC방 일은 처음이라 내가 소개좀 하고 있을테니 소연양은 일보고 있으라고."

"네."

소연이 다시 카운터로 가자 김건이 대뜸 물었다.

"제가 알바라고요?"

"어."

"아니 저는 지부에서 파견 돼서···."

"위장취업이라고 생각해. 누가 직업 물으면 대답하기 애매하잖아. 혹시 벌써 직장 다니는건 아니지?"

"아···. 네. 아닙니다."

"잘됐네. 알바비는 챙겨 줄 테니까 일단 여기서 일부터 배우자고, 따라와."

"아···."

김건은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부장인 대근의 말을 무시할 수 없어 그를 따라갔다.

"컴퓨터는 좀 고칠 줄 아나?"

"컴맹입니다."

"괜찮아. 배우면 되니까. 일단 손님이 나가면 청소부터·

··."

"저, 죄송한데 지부장님."

"사장님이라고 불러. 우린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한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근데 혹시 조소연양은 민간인 맞죠?"

"응. 그냥 주간 알바야."

"아, 네."

"내가 주간부터 야간 사이에 같이 일할 거고. 자네는 야간 타임부터 소연이가 출근하기 전까지 새벽 타임을 일하는 거지."

"새벽에요? 그럼 혹시 출동이라도 하게 되면···."

"음, 그게 문제긴 한데 그래도 젊으니까 날 새도 상관없지?"

"아··· 넵."

"플레이어 정탐이나 색출은 창범이가 맡고 있어. 지원파트는 미호가 하는데···. 혹시 미호에 대해선 들었나?"

"네. 정식 PK단 소속은 아니고 객원 멤버라고···."

"어. 개인 사정이 좀 복잡해서 자주 얼굴 보긴 힘들거야.

그래도 2주에 한 번씩여기로 모이니까 그때 한 번 보자고."

"네."

"자넨 나와 같이 투탑으로 뛸거야."

"투탑이라면···."

"쉽게 말하면 내가 탱커고, 자네가 딜러인 셈이지."

"뭔 소린 줄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괜찮아. 플레이어 사냥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테니까. 일단 그 얘긴 저녁에 따로 하고 일부터 배우자고."

"네?"

"손님이 나가면 자리부터 정리하는데, 음식물 쓰레기랑 그릇은 주방으로 음료나 일반 쓰레기는 바로 분리수거. 키보드에 뭐 떨어졌을지 모르니까, 이렇게 한 번 탁탁 털고."

대근의 능숙한 시범에 김건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일단 경청했다.

"네."

"이거 비싼 기계식 키보드니까 덮개 꼭 씌우고."

"네."

"마우스랑 헤드셋도 원위치하면 끝."

"그렇군요. 근데 현재 추적하고 있는 대상은···."

"맞다. 요리는 적당히 할 줄 알아?"

"요리요?"

"사실 PC방 매출 상당수는 음식에서 나오거든. 레토르트 식품 파는 다른 가게에 비해서 우린 정식으로 주방을 갖추고 직접 요리를 해준다네. 볶음밥 같은 건 어때?"

"그, 글쎄···."

"암튼 그것도 배우면 돼. 쉬워. 재료는 내가 다 손질해 놓고 가니까 레시피 따라서 넣고 볶으면 끝이거든. 그리고 제일 많이 나가는 라면 종류는 말이야···."

대근은 진짜 알바생이라도 온 것처럼 쉴 새없이 일에 대해 설명했다. 다부진 꿈을 품고 지부로 파견된 김 건은 시작부터 뭔가 잘못 되었음을 느꼈으나 일단은 곧이 곧대로 업무(?)를 익혔다.

* * *

"하, 씨 당돌한 계집애 같으니."

도훈은 응급실 밖으로 몰래 빠져나와 담배를 피우는 중이었다. 채원이 곤란한 질문을 하던 차에 간호사 한명이 갑자기 커튼을 걷고 안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놀란 채원이 다시 누워서 쓰러진 척 연기했고, 간호사가 바이탈 체크를 하는 사이 민망해진 도훈이 살짝 빠져나왔다.

[저렇게 노골적으로 달려들면 공략은 오히려 쉽지 않습니까?]

‘뭐, 그거야 두고 볼 일이지.’

[왜요?]

‘정보창에 따르면 거짓말쟁이에 사기꾼은 맞는데, 그렇게 헤픈 여자는 아니란 말이지.’

[그래도 주인님한테 적극적으로 들이대잖습니까?]

‘그러니까 더 여우라는 거지. 저런 애가 어떻게 살아왔을 것 같아?’

[어떻게 살다뇨?]

‘저만하면 얼굴도 반반하겠다, 몸매도··· 가슴은 뽕이지만 먹어 줄만 할 거 아냐.’

[그런데요?]

‘그런데도 성 경험이 별로 없다고 나오잖아. 그건, 애초부터 채원이 잘 안주는 여자라는 소리지.’

[잘 안줘요?]

‘그래. 줄 듯 말 듯 간만 보면서 비싸게 구는 거 있잖아.

왜, 남자 애간장 녹이면서 넣는 건 안돼요 하는. 딱 보니까 그걸 이용해서 남자들을 뜯어먹는 여자라는 소리야.’

[아···.]

‘쉽게 말해서 나한테 저렇게 대놓고 들이댄다고 해도 결국 오늘 안에 나한테 안 대주면 미션이 날아간단 소리지.’

[그건 문제네요. 기한이 하필 오늘까지라.]

‘정보창 설명대로 건수를 잡아야 겠어. 분명 빈틈이 있겠지.’

[네. 파이팅입니다.]

담배를 비벼 끈 도훈은 다시 응급실로 돌아가기 전에 문득 걸음을 멈췄다.

‘가만.’

[네?]

‘오늘 내가 병원에서 꾼 개꿈말이야.’

[네.]

‘이것도 어떤 계시 같은 거 아닐까?’

[계시라뇨?]

‘아니 왜 저번에도 소연이 만나러 가기 전에 새똥 맞고 그랬잖아. 로시 네 말에 따르면 플레이어의 기민한 감각에 따른 위험회피 반응이라고 했었고.’

[네.]

‘왠지 이번 꿈도 뭔가 있을 것 같단 말이지.’

[음···. 꿈에 나왔던 PK단 얼굴은 기억나십니까?]

‘아니. 근데 성별은 알겠어. 남자 셋에 여자 하나였어.’

[남자 셋 여자 하나. 전형적인 레이드 팀 구성입니다.]

‘레이드? 뭔 소리야?’

[PK단은 플레이어처럼 단독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자처럼 무리사냥을 하죠.]

‘젠장. 내가 무슨 사냥감이야?’

[비유하자면 그렇습니다. 그래서 자기들끼리 역할 배분이 나뉘어 있습니다. 우연인지 몰라도 멤버의 숫자가 레이 드팀과 흡사하군요. 또 다른 특징은 없습니까?]

‘글쎄···. 굉장히 힘이 센 사내가 있었어. 그 사람이 리더 같더라고. 정확하진 않은데 무기를 자유자재로 날려 대는 놈도 있었고. 내가 막 빠르게 피했는데 유도탄처럼 암기가 따라오더라니까? 아, 그리고 그 여자는 이상한 환술 같은 걸 썼던 거 같아. 근데 그건 좀 가물가물 하고.’

[음···. 주인님이 지나치게 확대해석을 하는 걸 수도 있습니다.]

‘확대 해석이라니?’

[요 며칠 겪은 일과, 대흉이라는 점괘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위축되었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지만 잠재의식 속에 PK단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있을 테니까요.]

‘그럴지도. 근데 괜히 서윤이 만나고 오니까 찝찝한 거야.’

[서윤양이요?]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남자 말이야. 상근이랑 한 판 떳다는.’

[네.]

‘PK단의 끄나풀이었을수도 있잖아. BJ합방 찍은 영상보고 나를 찾아내려고.’

[에이···. 역시 억측입니다. 결국엔 아무일 없이 돌아갔다지 않습니까?]

‘서윤이가 지레 겁먹고 성형을 안했으면 또 모르지.’

[안되겠군요. 얼른 서울 가셔서 산삼 한뿌리 드셔야 할것 같습니다. 사람이 기운이 허해지니 이렇게 겁이 많아 지는군요.]

‘그래. 나도 얼른 강해지는 쪽이 낫겠다. 그 전에 채원이부터 처리하고.’

도훈이 다시 응급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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