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236화 (1,203/2,000)

1219. 2학년2학기-34-

예지몽이냐는 도훈의 질문을 로시가 일축했다.

[전혀요. 귀기묘묘 스킬은 앞날의 길흉화복만을 점칠 뿐입니다. 예지몽 스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인님은 해당스킬을 익히지 않으셨고요.]

‘흐음, 그럼 뭐지? 그냥 개꿈이었을까?’ 도훈은 아직도 칼날이 내리치는 순간을 잊을 수 없었다.

너무도 생생했기 때문에, 마치 미래를 직접 경험하고 온 느낌이었다.

"···오빠? 정말 괜찮은 거 맞죠?"

"으, 응?"

"안색이 별로 안 좋아 보이는데···. 혹시 머리에 열나는거 아니에요?"

땀을 닦아주던 채원이 불쑥 도훈의 이마에 손을 짚었다.

과감한 스킨십에 도훈이 움찔 몸을 피했다.

"뭐, 뭐야?"

"뭐긴요? 열 있으면 진찰해 보시라고요. 여기 병원이잖아요."

"아니 근데, 굳이 왜···."

"친구들한테 다 들었어요. 오빠가 저 구해주셨다면서요?"

채원이 커다란 눈을 깜빡였다.

일부러 깜찍하게 보이려는 행동에 도훈이 당황했다.

‘뭐지? 갑자기 훅 들이대는 데?’

막 잠에서 깬 도훈은 어째서 채원이 이토록 자신에게 노골적인 관심을 보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사실상 생명의 은인이라고 하기도 뭐한 게, 채원의 증세가 단순 현기증으로 인한 졸도였기 때문이었다. 학창 시절 땡볕에 운동장 조회 도중 픽픽 쓰러지는 병약한 여학생들처럼.

"구해줬다기보다는···. 근데 왜 커튼이 다 둘러쳐져 있지?"

"제가 가려놨어요."

"왜?"

"환자도 아니고 보호자가 침대에 누워 자는데 어떻게 해요 그럼?"

"나 보호자 아닌데."

"어쨌든 오빠가 저 데려오셨잖아요."

"근데 언제 봤다고 나보고 자꾸 오빠라는 건데? 너 몇 살이야?"

"저요? 스물 하나요. 왜요? 더 나이 들어 보여서 그래요?"

도훈은 채원과의 대화가 어딘지 불편했다. 계속 말꼬리를 잡고 대화를 끈질기게 이어가려는 모양새가 사람을 제법 피곤하게 만드는 스타일이었다.

‘말 많은 계집애는 딱 질색인데···.’

[왜요? 처음에는 얼굴 예쁘다고 좋아하지 않으셨습니까?

]

‘얼굴이 반반하다는 거랑, 사람이 매력적이란 소리는 별개지. 말 섞어보니 별로 엮이고 싶지 않은 타입 같아서.’

도훈은 자꾸 들이대는 채원에게 딱 잘라 말했다.

"암튼, 덕분에 잘 쉬었다. 난 이만 가볼 데가 있어서."

"잠시만요."

"왜 또?"

"이대로 그냥 가시는 게 어딨어요?"

"뭐라고?"

"저희 부모님 병원 도착하실 때까진 같이 기다려주셔야 죠."

"아니 니가 무슨 초등학생도 아니고···."

"아까 의사가 그랬단 말이에요. 애초에 쓰러진 이유를 모르니 정밀 검사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고. 저 혼자선 검사 안된대요."

"의사가? 갑자기 뭔 소리야?"

"오빠 자는 동안에 의사가 왔다 갔어요."

"의사가 왔었다고?"

"다행히 중간에 교대했는지 다른 의사가 왔더라고요. 환자를 구분 못 하길래 오빠가 환자인 것처럼 둘러댔어요. 암튼 아직까진 보호자가 필요하단 말이에요."

"아니···."

도훈은 스마트 폰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서울로 돌아가도 딱히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굳이 여기서 노닥거릴 필요도 없었다. 그때 로시가 말했다.

[참, 주인님. 채원 양이 주인님 폰 훔쳐봤습니다.]

‘뭐?’

[자는 동안 옆에서 몰래 열어보더라고요.]

‘잠깐. 내 폰을 왜?’

[주인님 번호를 따려고 한 것 같더군요. 크게 문제 될 것 같진 않아 깨어나면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음···.’ 도훈은 눈앞의 채원이 점점 의심스러웠다.

남의 폰을 비번까지 해제해가며 들여다보는 행동만 봐도 손버릇이 좋지 않은 것은 분명했다. 게다가 하는 말마다 자꾸 없는 말을 지어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약간의 허언증, 가식적인 말투와 행동, 불리하면 애교를 부리며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여우짓까지.

하나같이 도훈의 심기를 거슬렸다.

도훈은 채원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무슨 이딴 계집애가 다 있담?’

"아까 오빠 잘 때 연락했거든요. 저희 부모님 금방 오신다니까 그때까지만 같이 있어 주시면 안 돼요? 네?"

"부모님 어디서 오시는데?"

"부산요."

"부산이면 여기서 꽤 멀잖아?"

"아니에요. 전화한 지 한 시간 넘었으니까 금방 오실 거예요."

산에 쓰러진 사람을 구해주니 보따리까지 내놓으라는 심보였다.

어지간한 남자라면 어리고 예쁜 채원이 애교를 부리는 모습에 혹했겠지만 도훈에겐 어림도 없었다. 미인이라면 주변에도 차고 넘쳤고, 굳이 목적도 없이 아무 여자나 들이 댈 정도로 한가하지도 않았다.

특히, 자는 동안 몰래 자신의 폰을 훔쳐봤다는 로시의 말에 그나마 있던 호감마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아니, 내가 왜 널···."

띠링그때였다.

뭔가 조건을 만족했는지 갑자기 미션 알림음이 울렸다.

‘여기서?’

[우선 알림부터 보시죠.]

-허언증녀를 공략하라.

*평소 허언증이 심한 거짓말쟁이 여성을 공략하는 미션입니다.

*성공 보상으로 ‘거짓말 탐지기’ 아이템이 지급됩니다.

*미션 보상 : 거짓말 탐지기(ITEM), 상대의 거짓말을 간파합니다.

*제한 조건으로 미션 완료 시간이 ‘당일’로 고정됩니다.

*제시된 시간을 초과하면 자동으로 미션이 소거됩니다.

*남은 시간 : 9시간 44분.

[허언증녀 공략 미션이군요. 받아들이시겠습니까?]

‘흐음. 하필 저런 여자애한테···.’

[주인님이 언제 상대를 가리셨다고요?]

‘그건 그렇지. 근데 보상이 좀 별론 거 같은데.’

[거짓말 탐지기요?]

‘어. 마음의 소리 스킬도 있는데 굳이 저 아이템이 필요한가?’

[마음의 소리는 스킬이죠. 해당 아이템은 필요할 때마다 사용하실 수 있고요. 또한 살짝 다른 게, 마음의 소리는 상대가 머릿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면 거짓말을 간파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해당 아이템은 진실 여부를 곧바로 판별해 주고요.]

‘듣고 보니 그렇긴 한데···. 으음, 근데 시간이 너무 촉박하지 않아? 오늘 산에서 만난 여자애를 당일치기로 공략하라고? 병원이 무슨 나이트 클럽이야?’

[중수 미션이니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돌발 미션은 주인님의 레벨에 비례하여 난이도가 결정됩니다.]

‘있어 보자. 당장 서울로 돌아가도 할 일은 없고, 어차피 오늘 안에 성공 못 하면 미션은 소거되니···. 좋아. 콜.’

[알겠습니다. 미션을 수락합니다.]

"앗, 머리가···."

그때 채원이 갑자기 머리를 짚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딱 봐도 연기처럼 보였지만 도훈은 미션 수행을 위해 알고도 속아 넘어갔다.

"머리가 왜?"

"모르겠어요. 갑자기 편두통이···. 아···. 정말 가실 거예요?"

도훈은 채원이 하다못해 동정심을 자극하기 위해 연기한다고생각했다. 보면 볼수록 웃긴 여자애였다. 하지만 미션이 걸린 이상 도훈도 프로다운 면모를 보였다.

"이런···. 아픈 사람을 두고 어떻게 그냥 가. 부모님 오실 때까지 기다려줄게. 의사 부를까?"

"아, 아뇨. 잠깐 누워있으면 괜찮을 것 같아요."

"그래. 내가 비켜줄게."

도훈이 벌떡 병상에서 일어나더니 채원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다시 병상에 누운 채원이 도훈에게 물었다.

"맞다, 오빠 의대생이라면서요?"

"누가 그래?"

"친구들이요."

"아···."

"오빠가 잠깐 봐주시면 안 돼요?"

"내가?"

"네. 괜히 별것도 아닌데 의사까지 부르기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도훈은 채원의 속셈을 눈치채고 적당히 속아 넘어갔다.

‘이거 너무 공략이 쉬운 거 아니냐?’

[네?]

‘딱 보니 의사놀이 하자는 거잖아. 커튼도 쳐놨겠다, 응급실 한가운데 밀실까지 만들어 놓고 말이야.’

[그런 뜻인가요?]

‘뻔하지. 무슨 보너스 미션도 아니고.’

도훈은 의외로 공략이 빨리 진행된다는 생각에 누워있던 채원의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음, 열감은 없는 것 같은데···."

"아니에요. 여기 보세요. 몸은 뜨겁지 않아요?"

등산복 겸용으로 입은 기능성 소재의 반 팔은 목 아래 지퍼가 달려 있었는데, 채원이 목덜미를 보여 주기 위해 일부러 끌어 내리자 쇄골까지 한번에 드러났다.

"몸이 뜨겁다고?"

"네, 만져 보세요."

도훈은 코웃음이 나올 뻔한 걸 꾹 참았다. 대놓고 몸을 만져달라는 여자애는 또 처음이었다.

‘이건 뭐 거저먹는 수준이네.’

[다행히 채원 양이 주인님께 호감을 가지고 있어 미션이 쉽게 진행되는군요. 그래도 정보창은 한번 열어보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럴까? 한 번 띄워봐.’

도훈은 채원의 목덜미에 손등을 가져다 대며 정보창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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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김채원 (비처녀, 17세 4개월)

나이 : 20 #허언증 #노양심 #잡범

호감도 : 67/100

개방성 : C

성감대 : 젖꼭지, 허벅지, 옆구리

*애무 포인트 : 젖꼭지를 꼬집어 주는 걸 좋아합니다.

성욕지수 : 다소 낮음 (임신 확률 : 33%)

공략팁

*위 대상은 당신에게 적당한 호감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위 대상을 공략하면 ‘허언증녀를 공략하라’ 미션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와 반대되는 삐뚤어진 영혼의 소유자입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도벽이 있었고, 숨쉬 듯 거짓말을 해대며, 이따금 스스로의 거짓말을 진짜로 믿어버리는 리플리증후군까지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 중고나라 사기 전력이 있으며, 물건을 구매, 사용 후 반품 등 악질적인 블랙 컨슈머입니다. 친구들에게 돈을 빌린 후 갚지 않아 의절한 친구들도 꽤 있습니다.

-그녀는 도덕적 감수성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남을 속이고 거짓말을 하는데 조금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남성관은 의외로 보수적이라 성 경험이 많지 않으며 개방적인 스타일도 아닙니다.

-그녀는 당신이 의대생이라는 사실에 혹시나 빌붙을 것이 있을까 궁리하고 있습니다.

-추천행동 : 그녀의 비행을 적발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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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래?’

긴 정보창의 설명을 빠르게 훑은 도훈은 어이가 없었다.

[와···. 이건 순전히 범죄자 아닙니까? 도벽에 중고나라 사기 전력까지 있군요. 친구에게 돈을 빌린 후 안 갚은 것까지···.]

‘범죄자라고 부르긴 뭐하고, 그냥 잡범 수준이구만.’

[주인님 촉이 좋으시군요. 정보창을 보기도 전부터 탐탁치 않게 보시더니.]

‘딱 몇 마디 섞어보니까 사람이 진실성이 없더라고.’

[얼굴은 상당히 예쁜데 왜 저렇게 사는 걸까요?]

‘그러게. 보통 예쁘면 얼굴을 이용해 쉽게 사는 방식을 택할 수도 있는데 사기나 치고 있으니···.’

[정보창 설명에 따르면 성적으로 살짝 결벽이 있는 것 같습니다. 성욕이 강한 편도 아니고, 딱히 남자를 밝히는 것 같지도 않고요.]

‘그게 이번 공략의 어려움이었군.’

[네?]

‘난 처음에 채원이가 먼저 들이대길래 이번엔 쉽게 갈 거라고 생각했거든. 근데 이건 뭐 완전 사기꾼에, 꼴에 철벽까지 치는 타입이란 거 아냐?’

[그러게요. 당일치기 공략으론 굉장히 힘든 대상 같은데요.]

‘가만있자, 추천 행동이 좀 특이한데? 비행을 적발하라?’

[그녀의 잘못을 찾아내 추궁하라는 뜻이 아닐까요?]

‘추궁해서? 협박이라도 하라는 건가?’

[협박이나 세뇌 등과 같은 방식은 공략으로 인정되지 않을텐데요?]

‘아, 그거네.’

[뭡니까?]

‘협박이 아니라, 딜을 걸라는 소린가봐.’

[딜이라뇨?]

‘그러니까 조건부 교환같은 거지. 비행을 눈감는 주는 대가를 받아내라는 식이랄까? 떳떳한 방법은 아니지만 어쨌든 협박은 아니니까.’

[흐음, 근데 병원 응급실에서 비행을 적발할 거리가 있을까요?]

‘천천히 궁리해 봐야지. 와, 근데 중고나라 사기는 좀 심했네. 진짜 범죄자였잖아?’

"···어째서 말이 없으세요?"

"응?"

"제 몸에 열나는 것 같지 않냐니까요?"

"글쎄···. 목덜미가 딱히 더 뜨겁진 않은 것 같은데?"

"더 안쪽은요?"

"여기서 더 안쪽?"

도훈이 내려간 지퍼 사이를 힐끔거렸다. 목덜미에서 더 안쪽으로 파고들려면 가슴 위를 만져달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도훈은 여기서 한 번 더 생각했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여자야. 괜히 말려들었다가 갑자기 성추행했다고 물고 늘어지면 빼박이란 말이지.’

채원의 정체를 알아 챈 도훈이 부쩍 조심스러워졌다.

그는 목덜미에서 손을 떼더니 누워있는 채원에게 말했다.

"손으로 짚어서는 열이 나는지 알 수 없어. 아무래도 의료진에게 부탁을 해봐야겠는데."

"···치. 됐어요."

"왜? 아프다면서."

"오빠 바보예요?"

"뭐?"

"눈치도 없긴."

채원은 혼자 토라진 듯 투덜거리더니 다시 도훈에게 물었다.

"방금 이상한 생각했죠?"

"무슨 생각?"

"제 가슴 쳐다봤잖아요."

도훈은 속으로 어이가 없었다. 자기가 만져보라고 해놓고 이젠 쳐다봤다고 따지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도훈은 단박에 채원의 가슴 모양새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앉아 있을 땐 몰랐는데, 눕혀놓고 보니 가슴이 옆으로 퍼지지 않고 봉긋 솟아 오른 게 아무리봐도 뽕브라를 찬 것 같았다.

체형만 봐도 길쭉하고 늘씬한 체형이기 때문에 가슴의 비율이 맞지 않았다.

‘세상에. 가슴까지 뽕이네. 사기가 아닌게 뭐야? 얼굴은 본판 맞어?’

[뽕이라고요?]

‘딱 보면 몰라? 스카우터 없어도 알겠네. 참나, 빈유 주제에 뭐 볼게 있다고.’

"안 봤어."

"와 대놓고 거짓말. 오빠 그렇게 안 봤는데 은근 응큼하시네요?"

"갑자기 뭐래는 거야, 얘는? 너 그리고 내 핸드폰 만졌냐?"

"···예?"

갑작스러운 도훈의 반격에 채원이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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