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232화 (1,199/2,000)

1215. 2학년2학기-30-

스파이더 장갑을 수령한 도훈은 아이템의 생김새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실소했다.

‘풉, 이게 뭐야?’

[뭐긴요? 땀 흡수가 잘 되는 면소재에 전면에는 접착력과 마찰력을 높인 특수나노 소재로 코팅된 아이템입니다.]

‘생긴건 그냥 목장갑이잖아? 얼레? 앞에 빨간색까지 똑같네?’

[…그렇습니까? 그럼 분명 이것을 따라한 것이겠죠.]

‘반코팅 목장갑 제작자가 천상계 아이템을 표절한거라고?’

[확실합니다. 해당 장갑의 출시 년도를 생각하면요.]

‘언제 나왔는데?’

[마켓 최초 등록일시가 지금으로부터 300년 전입니다.]

‘크흠. 그래? 암튼.’

도훈이 장갑을 끼우더니 주먹을 쥐어 보였다.

심지어 착용감마저 작업용 목장갑과 흡사했다.

‘크흠, 아무리 봐도 목장갑 느낌인데….’

[아이템이 맞습니다. 확인해 보시던지요.]

‘어떻게?’

[암벽을 올라보시면 알 수 있을 겁니다.]

도훈이 반신반의하며 암벽의 튀어나온 부분을 잡았다.

"엇?"

놀랍게도 코팅된 부분이 강력 본드를 바른 것처럼 돌에 쩍 달라붙는 것이 아닌가?

내친김에 도훈이 반대 손으로 암벽을 짚으며 천천히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전혀 떨어지지 않을 것 같던 접착면이 자연스럽게 떨어지며 더 높은 곳을 잡을 수 있었다.

[느낌 오십니까?]

‘우아, 이거 뭐야? 완전 쩍쩍 달라붙는데?’

[말씀드렸듯이 특수나노코팅 소재입니다.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1제곱 센티당 수만 개의 돌기가 갈고리처럼 흡착면을 붙잡아줍니다. 손바닥 크기의 하중에 1톤의 무게도 견딜 수 있는 흡착력이 발생합니다.]

‘1톤씩이나?’

[네.]

‘근데 어떻게 이렇게 쉽게 떨어지지?’ 도훈이 암벽을 기어오르며 신기해했다.

분명 돌을 잡았을 때는 꿈쩍도 안 하던 것이, 반대편 손을 움직이려는 순간 너무나 쉽게 떨어져 나왔던 것.

[그게 바로 스파이더 장갑의 특징입니다. 두 개의 장갑은 서로 길항작용을 하도록 설계 되어 있습니다.]

‘길항작용이라면?’

[네. 한쪽에 인력이 작용하면, 반대편엔 무조건 척력이 작용한다는 뜻입니다.]

‘오호라. 그러니까 둘 중 하나는 무조건 반대로 작동한다?’

[네. 주인님이 오른손을 붙이고 있으면 왼손이 자유롭게 되고, 반대로 왼손을 쓰는 동안에는 오른손이 고정됩니다.

쉽게 말해 둘 다 동시에 떼어지는 일이 없다는 뜻이죠. 물론 동시에 붙는 일도 없습니다.]

‘이해했어. 이거 진짜 신기하네?’ 도훈은 클라이밍을 배운 적이 없지만 오랜 턱걸이로 인해 어깨 근육이 발달한 편이었다. 더구나 스파르탄 벨트 아이템 효과로 체중보다 훨씬 강한 힘을 쓸 수 있었기에 손쉽게 암벽을 오를 수 있었다.

빼어난 기술을 갖춘 클라이머 조차 오르기 힘든 코스였지만, 스파이더 아이템의 사기적인 기능으로 도훈은 너무도 쉽게 절벽을 기어올라갔다.

잠시 밑을 내려다보자 떨어지면 죽을 것처럼 아찔한 높이까지 올라있었다.

"휘유. 살벌하구만."

도훈은 살짝 겁이났지만, 스파이더 장갑의 효능을 확인 하자 안심이 되었다. 한 손으로 돌을 잡고 있으면, 팔이 떨어져 나가지 않는 이상 추락할 걱정은 전혀 없었다. 막말로 1톤의 하중이면, 도훈의 밑으로 성인 남성 10명을 매단 상태도 끄떡없다는 뜻이었다.

‘으으, 근데 산삼이 무슨 절벽 끝에 있어? 이러니 아직까지 발견이 안된건가?’

[꼭 그런건 아닙니다. 주인님이 돌아오기 귀찮아서 지름길로 가시느라 암벽등반을 선택하시는 것 뿐이죠.]

‘아…, 그런가?’

어느새 정상에 오른 도훈이 절벽 끝에 배를 걸치고 위로 올라왔다. 장갑을 벗으며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험준하기 이를 데 없어 절로 소름이 돋았다.

‘와, 이 높이를 내가 올라왔단 거야? 눈으로 봐도 믿기지 않네.’

[주인님. 이제 거의 다 온 것 같습니다. 과부 귀신이 알려준 지점 근처입니다.]

‘오케이.’

도훈은 바위산을 지나 산속으로 들어갔다. 확실히 사람이 다닐만한 길은 아니었기 때문에 사람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로시의 안내에 따라 깊숙한 산중으로 들어간 도훈이 발걸음 멈췄다.

‘이 근처라고?’

[네. 확실합니다. 과부 귀신이 정확한 장소를 알려줬다면요.]

이제부터 도훈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산삼이 어떻게 생긴지도 모를뿐더러, 자칫하다 밟기라도 하면 큰일이었기 때문이다.

‘근데 산삼을 어떻게 찾지? 내가 심마니도 아닌데 구분할 수 있을까?’

바닥엔 이름 모를 야생초들이 가득했다. 나무와 풀도 제대로 구분 못 하는 도훈에게, 이 가운데 산삼을 식별하기론 굉장히 난해한 일이었다.

‘게다가 캐다가 뿌리라도 잘라버리면 어떻게 해? 난 약초는커녕 칡뿌리 한 번 캐본 경험도 없는데.’

[음…. 그렇다면 또 다시 아이템을 써야겠군요.]

‘산삼 찾아주는 아이템도 있어?’

[그건 아니고, 힐러 전용 아이템인 ‘약초꾼의 모종삽’입니다.]

‘힐러? 설마 게임에서 힐 주는 힐러 말이지?’

[네. 신성력을 발휘하는 사제 계급도 있지만, 대체로 힐러들은 전문적인 약초꾼들입니다. 그들은 포션 재료의 확보를 위해 약초를 손상 없이 캘 수 있는 아이템을 필요로 하거든요.]

‘대체 도적용 장갑이나 힐러용 모종삽이 필요한 세계는 어떤 세상인거야?’

[뭐, 시스템마다 각양 각색이라서요. 지구를 기준으로 판단하시면 이상하겠지만, 반대로 생각해도 마찬가집니다.]

‘그렇겠지? 하긴 이 넒은 우주에 오로지 인간만 존재한다면 그 얼마나 큰 공간의 낭비겠어?’

[오…. 설마 방금 지어내신 말입니까? 뭔가 의미심장한데요?]

‘아니. 칼 세이건이라는 과학자가 한 말이야.’

[역시….]

‘뭔 역시야? 얼른 아이템이나 줘봐.’

[넵. 구매 후 전송하겠습니다.]

잠시 후 도훈의 손에 약초꾼의 모종삽이 들렸다.

도훈은 앞선 스파이더 장갑에 이어 두 번째로 실소했다.

"푸합, 이건 군용 야삽인데?"

[네?]

‘야삽이라고. 접히는 모습까지 똑같은데?’

[아닙니다. 그렇다면 역시 지구인의 표절일겁니다.]

‘혹시 이것도 오래됐냐?’

[지구 시간으로 기원전에 등록된 겁니다.]

‘음…. 그래 인정.’

도훈이 반으로 접힌 야삽 모양의 아이템을 똑바로 펼치 자 갑자기 삽 전체로 은은한 테투리가 생기며 빛이 났다.

특수한 효과에 도훈이 놀라 물었다.

‘뭔데 이건?’

[약초꾼의 모종삽이 가진 고유의 탐지 기능입니다.]

‘탐지기능?’

[네. 약재로 쓸만한 약초 방향으로 지향하면 빛이 강해지면서 위취를 알려주는 방식입니다.]

‘호오. 드래곤볼 레이더 같은 건가?’

[네? 드래곤볼에 대해 어떻게 아십니까?]

‘엉? 혹시 그것도 아이템이야?’

[아, 아뇨. 또 다른 시스템에 있는 특수 미션이거든요. 해당 시스템의 플레이어들에겐 가장 큰 숙원이기도 하고요.

주인님이 아시고 하는 말씀인 줄 알았습니다.]

‘아니… 대체 표절이 아닌게 뭐야?’

[네?]

‘아, 아니야. 근데 좀 이상한데?’

[뭐가 말입니까?]

‘이건 원래 다른쪽 세계의 힐러들을 위한 아이템이라면서.’

[그렇죠.]

‘근데 지구에 있는 산삼을 찾을 수도 있나?’

[인간의 몸에 이로운 약초는 결국 어느 시스템에선 동일한 효능을 보입니다. 당연히 가능합니다.]

‘오호. 그렇단 말이지?’

도훈이 삽을 들고 360도 빙그르르 보는데 특정 방향을 지향할 때 유독 빛이 강해졌다. 사용법을 숙지한 도훈은 빛이 강해지는 쪽으로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방향을 옳게 잡았는지 한걸음 한걸음 디딜때마다 점점 빛이 강해지더니 잠시 후 "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삽 끝이 떨리기 시작했다.

‘우옷, 이 근처인거 같은데?’

[혹시 저 앞에 풀 아닙니까?]

도훈은 산삼을 알아볼 수 없었기에 급히 스마트 폰을 이용해 산삼의 모양을 검색했다.

"마, 맞다! 사진에 나온 거랑 이파리가 똑같아!"

도훈이 흥분한 채 소리쳤다.

"시, 심봤!"

[쉿- 뭐하십니까?]

‘응? 원래 산삼 찾으면 하는 거 아니었어?’

[괜히 이목을 끌지 마십시오.]

‘아하. 그렇지. 일단 캐고나서 생각해보자. 찾기는 찾았는데, 어떻게 손상없이 캐지?’

[근처에 갖다 대십시오. 삽이 알아서 움직일 겁니다.]

‘오오. 정말?’

도훈이 반신반의하며 바닥을 삽 끝으로 찌르자, 정말로 삽이 자기 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삽에 이끌려 끌려다니던 도훈이 살짝 손잡이를 뗐는데도 삽은 실에 매달린 것처럼 자기 혼자 열심히 땅을 파해쳤다.

도훈이 입을 쩍 벌렸다.

‘이거 자동이었어?’

[네. 수천년동안 업그레이드 되면서 최근 버전은 강력한 진동모터와, 더 오래가는 베터리, 그리고 태양열로 충전되는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무선 청소기 광고 멘트 같은데?’

[네?]

‘아, 아니야. 그럼 그냥 이제 손놓고 있으면 되는 건가?’

[네, 맞습니다. 약초꾼의 모종삽이 100년 산삼을 털끝하나 손상 없이 캐줄 것입니다. 안심하십시오.]

‘오케이. 좀 쉬자. 여기까지 오느라 너무 무리했네.’

도훈은 잠시 바닥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생각해보면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잠도 한 숨 안자고 날을 샌 꼴이었다. 그 와중에 등산에 암벽 등반까지 했으니 제 아무리 체력이 좋은 그라도 피로감이 밀려올 만 했다.

‘하암, 졸릴 것 같은데.’

[참으십시오. 귀한 영약을 얻기 직전인데 졸다뇨.]

‘그만큼 피곤하단 말이지. 그나마 젊으니까 이 정도야.’

[네?]

‘전생에 말이야. 40대 되니까 몸이 진짜 훅 가더라고. 하루를 밤새면 이틀은 죽어지낼 정도였으니까.’

[체력이 약하셔서 그런게 아닐까요?]

‘아니야. 전생에서도 20대 때는 날밤 잘 샜어. 그땐 심지어 대학원 과정 밟느라 철야로 공부하는 일상이었는데 허구한 날 날새고도 끄떡없었거든. 근데 서른 되더니 꺾이기 시작하더니, 40대 때는 완전 맛탱이 가더라고.’

[그렇군요.]

‘지금 이 몸도 20대라서 그나마 이 정도인 거야. 더 나이 들면 어쩔 수 없을 걸.’

[하지만 영약을 드시고 나면 다를 겁니다.]

‘응? 뭔소리야?’

[100년 산삼을 드시고 나면 체력이 20년은 더 젊어지실거란 뜻입니다.]

‘가만. 내가 지금 스물 셋인데 여기서 20년 어려지면 완전 응애 아니냐?’

[그 뜻이 아니고, 지금 보강한 체력으로 40대가 되셔도 20대처럼 끄덕 없을 거란 뜻입니다. 그만큼 효능이 뛰어난 약재입니다.]

‘오호라. 정력도 보강되고?’

[그거야 물론이죠. 아마 신체 전체로 커다란 변화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변화라니?’

[주인님이 가령 무력을 사용하는 전사 계열 쪽이라면 환골탈태 급의 효과입니다.]

‘환골탈태라고?’

[네.]

‘설마 그 임독양맥과 생사현관을 타통된다는 그 환골탈 태?’

[네.]

‘그럼 막 무협지에서 본 것처럼 젊은 육체를 오래 유지하고, 수명이 매우 길어지고 몸 자체가 단단해져 금강불괴가 되거나, 근육이 무공을 펼치기 적합하도록 변한다는 소리야?’

[네.]

‘헐, 대박!’

[하지만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주인님의 클래스가 ‘섹서’라는 히든클래스라는 점입니다. 이 경우는 다른 사례가 없기 때문에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습니다.]

‘가만, 근데 내가 히든 클래스였어?’

[뭐…. 딱히 붙일 단어가 없어서 그리 표현했지만, 확률적으론 굉장히 낮긴 하죠. 주인님 이전에 섹서 클래스가 손을 꼽을 정도니까요.]

‘으흠, 카사노바 같은….’

[네.]

‘그럼 섹서 클래스에서 영약을 섭취한 사례는 존재하지 않는 다는 거군?’

[맞습니다. 따라서 어떤 식으로 작용할지는 미지수입니다. 일반적으로 강화되는 부분이 있을 거고, 또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의 변화도 있을 테니까요.]

‘먹어봐야 안단 소리네.’

[네. 하지만 부작용은 없기 때문에 안심하셔도 됩니다.]

‘기왕이면 나도 그 환골탈태인가 뭔가를 경험했으면 좋겠군. 전사클레스처럼 말이야.’

[진심이십니까?]

‘그래야 PK단 놈들을 만났을 때 비벼라도 볼 것 아니야.

지금으로선 만나면 거의 개죽음 당하게 생겼는데.’

[아….]

‘암튼 내가 강력해지면 놈들을 만나도 제압할 수 있을테니, 환골탈태도 나쁘진 않아.’

[그렇군요. 엇, 거의 다 캐진 것 같습니다.]

로시의 말에 도훈이 보니 산삼 뿌리가 거의 드러난 상태였다. 자동으로 움직이는 약초꾼의 모종삽은 점점 움직임이 느려지더니 곧 산삼을 완벽히 캐낸 상태로 멈추었다.

"됐다. 다 캤어!"

[일단 잘 보관하십시오. 인벤토리에 넣어 드리겠습니다.]

‘인벤토리? 그게 있었어?’

[저번에 경매장 가셨을 때 구입하신다지 않으셨습니까?

그때 구매하신다고 하셔서 입찰을 걸었고, 경쟁자가 없어 입찰가에 낙찰이 되었습니다.]

도훈은 일전에 마켓 경매장을 구경하며 인벤토리를 둘러본 적 있었다. 당시에는 경매 기일이 맞지 않아 마음속에 담아두고만 지나쳤는데, 로시가 그것을 구매의사로 판단하고 입찰을 시도했던 모양이었다.

‘오, 역시 나의 인공지능. 알아서 잘하네. 깜빡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사용법은 아시죠? 인벤토리를 활성화하면 주인님의 주변으로 아공간이 형성됩니다. 그곳에 보관을 명령하시면 인벤토리 안으로 보관되는 방식입니다.]

‘오케이. 저번에 한 번 시범 영상 본적 있어.’

도훈은 당장 여기서 영약을 섭취할 수 없었기 때문에 100년 산삼을 인벤토리에 보관하기로 했다. 그가 조심스럽게 오른손에 산삼 한뿌리를 쥔 채 허공으로 팔을 뻗자 놀랍게도 팔이 잘린것처럼 공간을 격해 아공간으로 넘어갔다.

"억!"

[놀라지 마십시죠. 공간 왜곡으로 잠시 안 보이는 것 뿐이니까요. 보관을 명령하시고 팔을 거두시면 됩니다.]

‘산삼 보관.’

[넵.]

보관을 외치고 팔을 다시 거두자 도훈의 손에 쥔 산삼이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마술같은 광경에 도훈은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아! 이거 생각해보니 무엇이든 보관 가능하다고 했지?’

[네. 물건에 따라 최적의 온도와 습도가 유지됩니다.]

‘다음에 먹을 거라도 좀 넣어둬야 겠어. 비상시를 대비해서 말이야.’

[아니…. 인벤토리가 무슨 냉장고도 아니고….]

일을 끝 마친 도훈이 모종삽을 집어드는데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삽이 여전히 은은한 빛을 띄고 있었던 것이다.

‘어? 뭐지? 왜 이거 불이 안 꺼져?’

[어엇,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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