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231화 (1,198/2,000)

1214. 2학년2학기-29-

‘근데 100년 묵은 산삼 말이야. 로시 네가 영약이라고 했잖아. 그게 무슨 뜻이야?’

[말 그대롭니다. 가끔 삼이 잘 안 받는 사람도 있다지만, 대체로 산삼은 노화를 방지하고, 간 기능을 회복을 시키는데 탁월한 효과를 지닙니다.]

‘그거야 알지. 근데 그 정도면 그냥 영양제로도 충분하잖아?’

[한가지 더 있습니다.]

‘뭔데?’

[주인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어떠한 것이든 오래 묵으면 본래 존재하지 않던 특별한 능력이 개화됩니다. 그것이 식물이건, 동물이건, 혹은 사물이건 말이죠.]

‘가만. 사물이라니?’

[지구 시스템에서 자연 발생 된 몇몇 아이템들은 그러한 과정을 통해 우연히 만들어졌습니다. 가령 성배라던지 말이죠.]

‘성배? 기독교의 성물이라니?’

[네.]

‘그게 실존하는 거라고?’

[주인님은 여전히 신화, 전설, 민담을 근거 없는 이야기라고 치부하시는 건가요?]

도훈이 떨떠름하게 답했다.

‘아, 아니지. 내가 겪은 게 있는데.’

전생이었다면 모두 개소리라고 일축했을 것이다.

불가지론자인 그는 보지 않은 것은 믿지 않는 주의였고, 하다 못 해 수많은 종교인들이 믿는 ‘신’의 존재마저 부정했다.

하지만 죽고 태어나며 수많은 신비한 일들을 겪고나니, 세상에 못 믿을 이야기는 없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단지 아직 접하지 못했을 뿐 모든 일은 가능성이 열려 있었다.

[오래된 사물도 그렇지만, 소위 영물이라 불리는 동물도 마찬가집니다. 이무기나 구미호등도 실존하거든요. 무엇이든 오래 묵으면 영험한 능력을 갖추게 되니까요.]

‘허어. 진짜 놀랠 노짜네. 하긴, 귀신도 있는데 구미호는 없을 건 뭐람? 그래서 결론이 뭐야? 산삼이 100년을 묵으면 어떻게 변하는데?’

[지상 최강의 자양강장제가 됩니다.]

‘뭐?’

[방금 들으셨잖습니까? 양기를 보하고, 남성의 기운을 북돋는 천연의 정력제로 거듭난다는 뜻이죠.]

‘오옷. 잠시만. 그럼 대물 플레이어가 정력제를 득템하는 거야?’

[그겁니다. 주인님에겐 꼭 필요한 영약이랄까요?]

‘근데, 지금도 정력이 약하진 않는데 여기서 더 세져봐야 의미가 있나?’

[다르죠. 무척 다를 겁니다. 주인님이 가진 스킬의 원천은 바로 정력에서 비롯되지 않습니까? 정력이 강해진 만큼 스킬도 강화되고, 또한 주인님의 전반적인 신체 능력도 더욱 업그레이드 될 것입니다.]

‘오오오! ···가만, 왜 근데 진작 말 안했어?’

[네?]

‘그렇게 좋은 거였다면 바로 산삼부터 캐러 가야 한다고 말해줬어야지. 과부 귀신이 알려준 지가 언젠데?’

[주인님이 안 바쁘신 날이 있으셨습니까? 그리고 저는 주인님이 묻는 것에 대답할 뿐 주인님의 결정을 좌우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저 인공지능 도우미니까요.]

‘참나···.’ 도훈은 로시의 변명이 얄미웠지만, 따지고 보면 괜히 혼자 까먹고 있다가 뒤늦게 화풀이 한 것에 지나지 않는 다는 걸 깨달았다.

어쨌든 미션과 업적을 선택하고 해치우는 것은 오롯이 플레이어의 몫이며, 그 과정에서 로시와 같은 인공지능은 도훈을 충실하게 서포트 하는 역할인 것이다.

"여기 내려주면 되겠수?"

도훈과 로시가 옥신각신하는 사이 어느새 차는 처음 출발했던 장소로 되돌아온 상태였다. 도훈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택시기사에게 말했다.

"저, 기사님."

"어."

"혹시 최대한 지리산 쪽으로 가주실 수 있나요?"

"지리산으로? 이 시간에?"

기사가 시계를 힐끔거렸다.

새벽 5시가 가까울 무렵.

칠흙같은 어둠이 가시고 여명이 동트기 직전이었다.

"어휴, 나도 이제 퇴근해야지. 알랑가 모르겠네만, 심야 타임도 할증 끝나면 보통 마감하거든."

할증은 대체로 12시부터 새벽 4시 사이.

이미 5시가 넘었으니 근무시간을 넘겼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도훈은 여기서 내렸다간 한참을 걸어가야 할 것을 우려했다.

"아···. 제가 실은 산장 관리 알바 하고 있거든요."

"산장 관리?"

"네. 등산객들 쉬어가는 곳이요."

"그랬어?"

"그것 때문에 방학이라 잠시 하동에 머무르고 있는데, 오늘 출근일이라서요."

"흐음···."

택시 기사가 노곤한 표정으로 시계를 힐끔거렸다.

지리산을 차로 오를 시 최대한 높이 갈 수 있는 위치는 바로 ‘노고단’. 하지만 지금 상태로 올랐다간 하산하다 사고가 날지도 몰랐다.

그가 심야 시간에 영업을 뛴 이유는 텅 빈 시골길을 폭주하며 달리기 위함이었지, 꼬불꼬불한 산길을 멀미나게 운전하려던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운행을 끝내고 쉬러 들어가야 할 시간에 갑작스레 노고단을 오르는 것은 무리라고 보았다.

"학생. 이건 학생이 돈을 얼마를 준다고 해도 힘들어. 돈도 돈이지만, 산길에 졸음 운전하다 사고라도 나봐. 이건 목숨이 달린 일이라고."

"아···."

안전까지 언급하자 도훈도 더 이상 요구할 순 없었다.

오르는 것이야 그렇다 쳐도, 혼자서 하산하다 사고라도 당하면 도훈으로선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알겠습니다. 괜한 부탁드려서 죄송해요. 내려서 다른 택시 찾아 볼게요."

"···흠, 그럼 이렇게 하지."

"네?"

"노고단까진 무리더라도 성삼재 휴게소 입구까지는 내가 데려다 주지. 거기 터미널이 있으니 다른 차를 잡기도 쉬울 것이여."

"아, 감사합니다."

"그래도 같이 타고 온 정이 있는데."

택시기사는 말한 대로 본래 하차지점보다 훨씬 더 가 휴게소 입구까지 데려다주었다. 도훈이 고마움에 현금을 잔뜩 꺼내자 기사가 말했다.

"됐어. 기름값이나 줘."

"네? 왜요?"

"광주 갈 때 많이 받았당께. 산장에서 알바할 정도면 형편도 넉넉지 않을 것 같은디 뭔 돈을 그라고 펑펑 쓴단가?

내가 뭔 염치로 땀 젖은 돈을 받겄어?"

"아···."

"그래도 앞에 받은 것이랑 합치면 하룻밤 치고는 크게 벌었으니께, 그걸로 만족 할라네."

도훈은 쿨한 택시기사의 말에 감동했다.

정말이지 뽕짝 매들리를 즐겨 듣는 것만 빼면, 완벽한 택시 드라이버였다.

"고맙습니다. 기사님."

"그려. 그라믄 나는 인자 집에 들어가 볼랑께, 고생 하더라고."

기사는 정말 기름값만 받고 휙- 하고 떠나갔다.

[좀 더 보태 주시기 그랬습니까? 돈도 많으신 분이.]

‘아니야. 여기서 내가 더 주면 기사가 오히려 불쾌할 것 같았어.’

[돈을 더 주는데도 불쾌하다고요?]

‘어떤 사람은 돈이면 다 되는 줄 알지만, 어떤 사람에겐 돈보다 자존심이 중요할 때도 있는 거야. 본인이 이런 저런 이유로 안 받겠다고 하는데, 거기서 나이도 어려보이는 내가 현찰을 찔러줘봐야 기분만 더럽지. 이게 최선이야.’

[흐음, 정말이지 알 수 없군요. 사람들이란.]

‘인공지능이 알아서 뭐하니? 보조나 열심히 하라고.’

[흣.]

성삼재 휴게소 입구에 도착한 도훈은 주변을 훑었다.

차를 타고 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몸이 가뿐한 상태라 이대로 등산해서 올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과부 귀신이 알려준 100년 산삼의 위치는 차로 드나들 수 없는 곳이었기 때문에, 어차피 중간에 내려 산길을 타야 했다.

"자, 그럼 가볼까? 안내해 로시."

[넵. 음성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도훈이 빈손으로 산에 오르는데, 새벽부터 등산길에 나선 무리가 나타났다. 호화찬란한 화려한 복장과 장비를 갖춘 그들은 이마에 "청솔 산악회"라고 머리띠를 두르고 있었다.

‘어우, 무슨 에베레스트 등반하는 팀인 줄?’

다들 기능성 스포츠 웨어에, 장갑, 땀수건, 등산화, 등산가방에 아이젠까지 거치시킨 완벽한 차림. 그에 반해 도훈은 동네 마실 나오는 차림이라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비장한 표정으로 등반을 시작하는 산악 대원들이 단촐한 차림의 도훈을 향해 수근거렸다.

"뭐야? 저런 복장으로 지리산을 등반하겠다고?"

"등산이 장난인 줄 아나? 저러다 사고나지, 사고나."

"젊은 친구들은 혈기만 믿고 산타기를 우습게 여긴단 말이야?"

숫제 들으라고 하는 비아냥이었지만 도훈은 한 귀로 흘리고 무시한 체 묵묵히 로시가 알려주는 방향을 향해 나아갔다.

[예의 없는 사람들이군요. 남이 어떻게 등산하건 말건.]

‘넵 둬. 저기에 목숨 걸었잖아.’

[목숨을 걸다뇨?]

‘그냥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런 게 있어. 뭐 하나 취미를 가지면 장비 욕심을 오지게 부린단 말이지. 낚시를 배워도 최고급 낚싯대를 사고, 골프를 배울 때도 쓰지도 않을 골프가방을 몇 개씩 사모 은단 말이야. 등산도 그래. 그렇게 유난 떨 필요 없는 가벼운 산행인데도 무슨 안나푸르나라도 정복할 것처럼 풀세팅해서 온다고.’

[왜 그러는 겁니까?]

‘사실은 등산은 핑계고, 자기 과시지. 나 이런 장비 쓴다.

넌 얼마짜리냐. 자전거도 차보다 비싼 거 끌고 와서는 으스댄단 말이야. 내가 난데, 하면서.’

[흐음,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는 문화군요.]

‘그만큼 사람들이 자기 과시를 좋아하는 거야. 근데 한가지 알아둬야 할 건 장비가 좋아도 엔진이 후지면 절대 빼어 나진 못하다는 거야. 자전거 천만원 넘는 거 타봐야 뭐해?

내가 앞바구니 달린 아줌마 자전거 타도 잡을 수 있을 걸?’

[그거야 주인님은 신체능력이 사기적이시니까···.]

‘암튼 저 산악회 한 번 콧대를 꺾어 놔야 겠다.’ 도훈은 일부러 산악회 사람들을 의식하며 그들을 앞질러 갔다. 처음엔 등산로가 비교적 넒은 편이라 여럿이 지나갈 수 있었는데, 도훈이 하나씩 재치면서 선두에 서자 산악회사람들도 자극을 받았는지 페이스를 올리기 시작했다.

"뭐야? 저런 평범한 신발로 저렇게 치고 나갔다간 금세퍼질걸?"

"세상에. 손에 생수통 한병이 없네. 가다가 탈진할 생각인가?"

다들 앞서가는 도훈을 의식하며 속도를 맞춰 올렸다.

적어도 풀템을 갖춘 자신들이 동네 마실 나온 차림의 도훈보다 느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0분, 20분, 아니 1시간이 지났는데도 앞서가는 청년은 지칠 줄을 몰랐다. 오히려 갖춘 장비가 없고 편한 복장이었기 때문인지 쉬지도 않고 앞으로 치고 나갈 뿐이었다.

"헉, 헉! 뭐, 뭐야. 선두 왜 안 멈추는데?"

"그러게. 오늘 너무 페이스 빠른 거 아냐? 이러다 뒤에 체력 약한 사람들 다 퍼질텐데?"

슬슬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청솔 산악회의 선두 그룹을 잡힐 듯 말 듯 아슬아슬 거리를 유지한 채 치고 나가는 도훈을 잡히 위해 눈에 불을 킨 상태였다.

마치 도훈의 존재가 자신들을 부정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풀템을 갖춘 노련한 산악인이라도, 젊은 대학생 총각 하나를 이기지 못한다는.

"으으! 징그러운 놈. 한 번을 안 쉬네."

"체력이 은근 대단한 거 같은데요?"

"덩치가 좋은 걸 보면 운동하는 친구같기도···."

"우리 그냥 이제 제 페이스대로 가야하지 않을까요? 이러다 완봉 못 하고 퍼질 것 같은데요."

산악회 멤버들의 우려에도 무리를 이끄는 산악회 회장은 도훈을 잡겠다는 일념으로 귀가 먹은 상태였다. 상처받은 자존심을 치유하기 위해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도훈을 가로 질러야 했다.

"조금만 힘내. 저 총각도 사람이라고. 분명히 지쳐서 주저 앉을 거야."

하지만 기대와는 달린 도훈은 한 숨도 쉬지 않고 계속 오르기만 했다. 나중에는 속도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한층 더 빠르게 치고 나갔다.

결국 도훈이 조그만 점이 되어 안 보일때가 되었을 때서야, 산악회 회장이 휴식을 선언했다.

"그, 그만! 도저히 안되겠다. 휴식!"

하지만 너무 늦었던 휴식 선언의 여파로 청솔 산악회 멤버의 절반 이상은 중간에 퍼져 쓰러진 상태였다. 회장은 야심차게 기획한 지리산 완봉 실패를 인정하며 좌절하고 말았다.

‘아아! 저 날랜 총각은 대체 누구길래!’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라고?"

[네. 맞습니다. 이쯤에서 등산로가 끊어집니다.]

‘흐음,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 이미 산악회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게 된 도훈은 마침내 등산로를 이탈해 길이 없는 곳을 개척해야 할 상황에 직면 했다.

하지만 애초부터 등산로를 만들지 않은 거 다 이유가 있었다. 로시가 알려준 곳은 깍아지는 듯한 바위 절벽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어우씨, 진짜 여기 맞어?’

[맞습니다. 과부 귀신이 알려준 자리. 정확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흐음. 그러니까 저기로 올라야 한다는 거지?’

[네.]

도훈은 산행 루트를 확인하더니 뒤통수를 긁적였다.

‘이 절벽 바로 오르면 지름길 맞아?’

[네? 절벽을요?]

‘어. 결국 저 위로 오르라는 소리잖아. 삥 돌아서.’

[마, 맞긴 한데 갑자기 암벽등반이라뇨? 게다가 장비도 없이.]

‘장비야 아이템으로 구하면 되지. 그리고 슬슬 나도 체력이 딸리는데 후딱 해치우고 돌아가고 싶어서 그래.’

[아···. 잠시만요. 한번 마켓을 뒤져보겠습니다.]

로시가 마켓에서 적절한 아이템을 찾는 사이 도훈은 잠시 나무 기둥아래 걸터앉아 처음으로 휴식을 취했다. 산 위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 보는데 어느새 아래로 보이는 아파 트들이 조그마한 손톱으로 가려질만큼 높이 올라온 상태였다.

도훈은 스스로 생각해도 체력이 엄청 좋아졌다고 생각했다.

‘내가 체력이 늘긴 했구나. 3시간 넘게 쉬지도 않고 올랐는데 아직도 멀쩡한 걸 보면.’

[주인님. 찾았습니다.]

‘뭔데?’

[스파이더 장갑입니다.]

‘스파이더? 설마 벽에 쩍하고 달라붙는 그런 아이템이야?’

[정확합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척하면 척이지.’

[본래는 높은 방벽이나 성벽을 오르기 위한 시프용 아이 템입니다.]

‘시프?’

[도적 클래스 말입니다. 현 시스템에는 없지만요.]

‘아아, 그렇지. 마켓은 세계관 통합이랬지?’

[암튼 해당 아이템이 있으면 암벽등반하다 추락할 일은 없을 겁니다.]

‘오케이. 전송해.’

도훈이 고개를 높이 들어 험준한 절벽을 올려다보며, 손바닥을 비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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