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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215화 (1,182/2,000)

1198. 2학년2학기-13-

[집으로 바로 가시지 않고요?]

‘깜짝 이벤트 같은 거지. 원래 알바 하는 곳에 여자친구나 남자친구 찾아오면 은근 설레잖아.’

[조소연양 하곤 그런 사이까진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

‘그냥 기분이나 내라는 거지. 뭐 어때? 시간도 남는데.’ 그때 도훈이 피우고 있던 담뱃불이 툭 하고 허벅지 위로 떨어졌다.

"앗, 뜨뜨!!"

놀란 도훈이 반사적으로 다리를 들어 올리다 핸들에 무릎을 제대로 찍었다.

퍽!

"억!"

설상가상으로 무릎으로 떨어졌던 담뱃불이 바닥 깔판 위로 떨어졌는지 밑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에이씨!"

도훈은 발바닥으로 연기가 나는 곳을 마구 밟았다.

"재수 옴 붙었네 진짜!"

도훈은 자신이 생각해도 황당한 상황에 어이가 없었다.

하도 기가 막혀 차 문을 열고 깔판 위를 살피자, 바닥에 선명히 담배 빵 자국이 보였다.

[별일이군요, 안 하던 실수를 다하시고. 괜찮으십니까?]

‘괜찮겠냐?’

[그러게 왜 차 안에서 담배를 태우십니까?]

‘에잇 똥차 진짜, 폐차 시켜버리던가 해야지.’ 도훈이 휠 베이스를 걷어찼다.

[애꿎은 차량에 왜 화풀이십니까?]

도훈은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지 한동안 씩씩거렸다. 그때 문득 로시가 뭔가를 예감했는지 조언했다.

[주인님. 혹시 징조 같은 거 아닐까요?]

‘징조? 무슨 징조?’

[주인님에겐 불행을 회피할 수 있는 기민한 감각이 있지 않습니까?]

‘뭐? 그럼 이게 앞으로 우환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그런 징조란 뜻이야?’ 도훈이 푸하하 하고 웃었다.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닙니다. 길흉화복을 점쳐 보시죠.]

‘왜 그렇게 호들갑이야? 담뱃재 좀 떨어진 것 가지고.’

[호들갑을 떠신 건 방금전 주인님이고요. 스킬로 앞날을 예견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어서요.]

‘됐어. 뭘 이런데 스킬을 낭비해? 그냥 재수 옴 붙은 거지.’ 도훈은 별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넘겼다. 그때.

툭갑자기 머리 위로 뭔가 떨어졌다. 도훈이 소나기가 내리는 줄 알고 무심결에 정수리를 만지자 손가락에 진득한 것이 묻어 나왔다.

"억! 이건!"

하얀 페인트 같은 그것은 새똥이었다.

"오우 씨팔! 나 지금 똥 맞은 거냐?"

도훈이 머리를 위를 쳐들자 까만 새 한 마리가 허공위를 선회하고 있었다.

"저 새새끼를 그냥!"

도훈은 총이라도 있으면 갈겨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필 정수리에 새똥을 맞다니! 열 받은 도훈이 돌이라도 집어 던지기 위해 바닥을 살폈다. 그러자 지렁이 떼가 하수구주변에서 무수하게 기어 나오는 것이었다. 도훈은 처음엔 누가 짜장면을 하수구 위로 쏟았나 싶었다가 그것이 꿈틀거리는 지렁이 떼라는 것을 알곤 토악질이 올라왔다.

"우엑! 미친!"

사태가 이쯤되자 도훈도 등 뒤로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뭐, 뭐야? 왜 이러는 거야, 갑자기?’

[징조가 틀림없습니다. 주인님의 잠재된 본능이 위기를 감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닙니다.]

‘설마···.’

이상 현상이 계속되자 도훈도 슬슬 의심이 들었다.

‘길흉화복 점치는 스킬이 뭐였지?’

[귀기묘묘입니다.]

‘바로 실행해.’

곧 점괘가 스마트워치에 떠올랐다.

‘대, 대흉?’

[주인님, 위험합니다.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잠깐만 뭐가 어째서 대흉이라는 거야?’

도훈은 느닷없는 대흉 점괘에 당황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실수한 것이 없었던 것.

‘이상해. 분명 내막을 알고 있는 최번개의 입을 틀어막았잖아. 내가 박차돈을 노린다고 석산파에 제보라도 한다는 거야?’

[모르죠. USB를 빼돌린 김양이 들켰을지도.]

‘그랬다면 연락이라도 왔겠지. 나를 꾀어내기 위해서라도 말이야. 그리고 설사 들켰다고 쳐. 고작 사채업자 따위한테 내가 흉한꼴이라도 본다는 거야? 현직 조폭한테도 꿀리지 않았던 내가?’

[흐음···. 그러면 대체 왜···.]

도훈은 계속 고민해 봤지만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모든 이상징후와 점괘는 도훈의 불행을 가리키고 있었다.

* * *

"자, 이번 일도 잘 마무리 됐군."

"근데, 나중에 실종 신고 들어가면 더 골치아파 지는 거 아닙니까? 그냥 저번처럼 사고사로 위장하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을지?"

"괜찮을 거야. 이놈은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가명을 쓰고 활동했거든. 얼굴까지 완전히 변조해 가족도 몰라볼 만큼 다른 사람으로 행세했다고. 그러니 없어져도 누군지도 모르겠지. 이게 차라리 나아."

사체를 처리한 일행은 여느 때처럼 헤어졌다.

가장 먼저 미호가 작별인사를 했다.

"그럼 다음 회동때 봐요!"

"일끝나자 마자 어디가? 정기 쪽쪽 빨아 먹고 나니 힘이 샘솟나?"

"왜? 나한테 관심있니? 궁금하면 따라오던가?"

창범이 질린다는 표정으로 거부했다.

"됐네요, 할망구야. 어서 가버리라고."

"흥. 너무 질투 하지마 창범아. 너도 원하면 언제든 오케이니까."

"누굴 기빨아 죽일라고. 썩 안 꺼져?"

창범이 버럭 성을 내자 미호가 붉은 입술을 가리며 깔깔거렸다.

"바보. 줘도 못 먹긴. 대근 아저씨, 나 먼저 가요."

"응. 몸조심 하라고."

"아저씨나 무리하지 마요. 맨날 밤샘하면서."

미호가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사라지자 창범이 끌끌 혀를 찼다.

"하여간 저 불여시같은 년. 대장한테는 꼬박꼬박 존댓말쓰는 거 알죠?"

"넌 왜 그렇게 미호를 못 잡아 먹어 안달이야?"

"사람 간 빼먹는 구미혼데, 좋아할리 있겠어요?"

"미호가 언제 간을 빼먹어? 정기를 좀 나눠가질 뿐이지."

"좀 나눠가져요? 거죽만 남기고 쏙 빼먹은 거 보셨으면서?"

"플레이어였잖아. 애초에 미호를 PK단에서 받아준 이유도 플레이어의 경우엔 제한없이 정기를 흡수하게 해주겠다는 조건 때문이었고."

"어휴, 지부를 바꾸던가 해야지."

대근이 창범을 타일렀다.

"그러지 마라. 안 그래도 요새 신입 대원 모집 힘들다고 난리다. 너 빠지면 빈자리 메꾸는 데만 반년은 족히 걸려."

"그거야 제 알바아니죠."

"너 진짜 말 섭섭하게 한다. 우리가 같이 해온 세월이 얼마냐? 짜식이 의리가 없어."

"의리 찾다가 내가 가게 알바하게 생겼수. 알바비도 안주면서."

"아, 맞다. 교대. 미안하다 나도 얼른 가봐야겠다."

소연과의 교대를 떠올린 대근이 서둘러 자리를 떴다. 대타를 세워놓고 정시 교대하는 건 너무나 미안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씨, 같이가요! 나도 할 일도 없는데."

"넌 왜?"

"가서 겜이나 하게요. 피씨 업그레이드 했다면서요? 요새 장사 좀 되나봐?"

"장난하냐? 그거 다 빚이야 인마. 사양 떨어지면 손님 떨어질까봐 울며 겨자 먹기로 한 거라고."

두 사람은 공사장 구석에 세워 둔 차에 올랐다. 2004년식 구형 승합차는 딱 봐도 낡아 보였다.

"컴퓨터 바꿀 돈이면 차부터 바꿨겠네."

"넌 뚜벅이 주제에 얻어타면서 불만이 많아?"

"차 살 돈이 있어야 차를 사죠!"

"어우, 진짜 아까부터 돈돈돈."

"그거 맨날 대장이 하던 소린데?"

"시끄러 인마."

대근은 대신 수고해준 소연을 위해 서둘러 차를 몰았다.

그 결과 교대 30분 전 가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매장에 가자 소연이 놀라 물었다.

"어? 사장님 벌써 오셨어요?"

"차가 안 막히길래. 수고했어."

"근데 집에 들렀다 오신 거에요?"

"응?"

질문의 의도를 이해못한 대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장례식장 다녀오신 거 아니셨어요? 그 차림으로 가셨다고요?"

대근은 검은 옷이 아닌 평범한 동네 아저씨 차림이었다.

누가봐도 장례식에 다녀온 복장이 아니었다.

"어, 어. 그래. 정장입고 갔는데 불편해서 갈아입고 왔지."

"근데 옷에 무슨 먼지가 그렇게···. 어휴, 세탁 좀 하고 사세요."

"그러게. 잘못 갈아입었네."

"안녕. 또 보네?"

밖에서 담배를 피우다 뒤따라온 창범이 소연을 향해 아는 체를 했다. 소연은 창범을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기에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고개를 까딱거렸다.

‘하여간 저 싸가지. 아까 칭찬한 건 취소다.’

"어젯밤에 일하고 아침에 바로 출근하느라 고생했다. 오늘은 일찍 들어가 봐."

"정말요? 와, 감사합니다!"

"왜 그렇게 좋아해? 남자친구라도 만나러 가나?"

창범이 슬쩍 찔러보자 소연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왜요? 내가 데이트 할 사람도 없는 줄 알았어요?"

"엥? 진짜로 남친 만나러가? 누구?"

"제가 왜 그걸 아저씨한테 말해요? 관심 꺼주시죠?"

소연은 그 말을 하더니 비품실 창고로 들어갔다. 아르바이트 생들이 개인짐을 보관하는 장소였다. 창범은 톡톡쏘는 소연의 뒤통수를 향해 주먹을 들어 보였다.

"으이구 저 싸가지 하여간."

"야. 너 쟤 좋아하냐?"

"뭔 소리에요 갑자기?"

"근데 왜 남자친구 있다는 데 발끈하고 그래?"

"제가 언제요?"

창범이 발뺌하자 대근이 피식 웃었다.

"새끼. 그래도 꼴에 여자 보는 눈은 높아가지고."

"아 진짜 뭐래. 나 라면이나 먹을게요."

"돈 내고 먹어 자식아!"

"알바비나 주던가!"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을 보며 소연이 밝게 인사했다.

"저 먼저 가요 그럼! 수고 하세요!"

"어, 그래."

"아니, 실컷 부려먹을 거면 알바비나 주고 말하라고요!"

"니가 공짜로 한 게임비나 내고 말해 인마!"

여전히 투닥거리는 두 사람을 보며 소연이 생각했다.

‘하여간 애들 같단 말이야? 근데 남자친구라고? 후후, 기분 좋은데?’

피씨방을 나선 소연은 곧바로 도훈에게 전화했다.

알바가 30분 일찍 끝났으니 더 빨리 보자는 얘기를 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도훈에게서 메시지가 와있었다.

-이도훈 : 갑자기 급한 사정이 생겨서 못 가게 될 것 같아. 미안하다.

문자를 본 소연은 어처구니 없는 얼굴로 곧바로 도훈에게 전화했다.

"와, 진짜 이러기에요?"

-미안.

도훈의 목소리에 유난히 힘이 없었다.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낀 소연이 놀라서 물었다.

"왜 그래요 아저씨? 혹시 무슨 일 있어요?"

소연이 기억하는 도훈은 사채업 같은 일을 하는 위험한 부류의 사람이었다. 언제든 위험한 상황에 처한다고 한들 이상하지 않았다.

-아니. 그게 아니라 갑자기 일이 생겨서.

"왜 목소리에 그렇게 힘이 없는데요?"

-음···. 아니야. 통화 길게 못 할 것 같으니까 다음에 연락할게.

"아저씨! 아니···."

뚝-.

전화가 일방적으로 끊겼다. 소연은 허탈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하아-. 잔뜩 기대하게 해놓고 이게 뭐람."

그래도 통화가 연결되는 것으로 봐선 급박한 상황은 아닌 것 같았다. 소연은 다음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얼굴을 보자는 문자를 남기고 다시 피씨방으로 되돌아 갔다.

소연이 다시 돌아오자 카운터에 앉아 있던 대근이 물었다.

"왜 다시 돌아와? 뭐 놔두고 갔어?"

"바람 맞았어요."

"엥? 뭔 소리야 그게?"

이번엔 빈 테이블에서 컵라면을 먹고 있던 창범이 물었다. 왠지 통쾌하다는 표정이었기에 소연은 대꾸도 않고 그를 무시했다.

"사장님. 저 컴퓨터 써도 되죠?"

대근은 알바생들에겐 금액이 청구되지 않는 관리자 아이디를 쓰도록 허용했다. 고깃집 알바가 이따금 고기를 구워 먹듯, 피씨방 알바생에게 부여된 특혜중 하나였다.

"어, 얼마든지."

소연은 뭐라고 궁시렁 거리며 구석자리에 앉았다. 창범이 그 모습을 보고 이죽거렸다.

"크크. 남친한테 차였나 봐요, 쟤."

"넌 왜 어린애 염장 지를 소리만 골라하냐?"

"왜요? 맨날 나만 보면 무시하는데."

"자슥아. 니 꼴을 봐라. 어느 여자가 그러고 다니는 걸 좋아하겠냐?"

창범은 자신이 일하는 공장 유니폼을 걸치고 있었다. 짙푸른 남색의 점퍼는 기름 때가 묻어 늘 지저분 했다.

"왜요? 일하고 왔으니 작업복 입고 있는 거지."

"아니, 그렇게 다니면서 여자들이 너를 반길거라고 생각하면 안되는 거란 소리야."

"누가 누구한테 할 소릴? 그래도 아직 머리는 남아있거든요?"

"뭐, 뭐?"

콤플렉스를 건드리자 대근이 발끈했다.

"새끼야. 나 아직 안 벗겨졌어!"

"옆머리 돌려 올리면 티 안 날 줄 알았어요?"

"아니 이새끼가!"

대근이 흥분해 날뛰었다.

노화로 인해 점점 머리가 빠지는 대근은, 줄어드는 숱을 가리기 위해 헤어스타일로 겨우 커버하는 중이었다. 컴플렉스를 건드리자 화가 난 대근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안되겠다. 넌 좀 맞자."

"어휴, 그 손으로 저 패려고요? 누구 죽일 일 있어요?"

"맞을 소릴 골라 하는데 그럼 쳐 맞아야지."

대근과 창범이 소란을 피우는 데 자리를 잡았던 소연이 다시 카운터로 와서 말했다.

"아휴, 그만 좀 싸워요. 애들도 아니고."

"저 새끼가 맞을 짓을 골라하잖아. 근데 왜?"

"저도 뭐라도 먹으려고요. 생각해 보니 저녁 같이 먹을 줄 알고 아무것도 안 먹었거든요."

"라면 한 젓가락 할래?"

창범이 자기가 먹다 남은 컵라면을 들이밀었다. 소연이 소름 끼친다는 표정으로 진저리를 쳤다.

"어휴, 진짜 아저씬 왜 자꾸 저한테 시비예요?"

"내가 뭘?"

"진짜 몰라서 물어요?"

소연이 따지듯 창범의 맞은 편에 앉았다.

그러더니 공장 유니폼에 안전화를 신은 그를 위아래로 훑어 보면서 말했다.

"아저씨. 여자 안 사귀어 봤죠?"

"뭐, 뭐?!"

창범이 당황해하자 소연이 배를 잡고 깔깔 거렸다.

"맞네! 모태 솔로 맞죠?"

"아, 아니야. 무슨 소리야 갑자기!"

"제가 나이는 어려도 남자 좀 볼 줄 알거든요."

"아니라니까?"

"뭐래 스타일 보니까 딱 견적 나오는데? 좋다. 기분이다.

오늘 내가 여자 꼬시는 법 알려줄게요."

소연이 창범을 보며 생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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