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4. 2학년2학기-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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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한의 습격으로 사무실이 어수선한 가운데 모처럼 일찍 퇴근한 김양은 무척 신나 있었다.
‘아싸, 웬 또라이 덕분에 3시간이나 일찍 퇴근했잖아?’
김양은 간만에 친구들과 놀 생각에 신이 났다. 하지만 연락을 하자 다들 근무 중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3번째 친구까지 거절했을 때 김양은 버럭 짜증을 냈다.
"야, 이주희! 너 3교대 근무잖아. 어제 야간조 뛰었으니까 오늘은 비번이고! 내가 모를 줄 알어? 뭐? 좀 있다 남자 친구가 집으로 오기로 했다고? 아씨, 그럼 진작 그렇게 말하던가! 몰라 이년아! 끊어! 남친이랑 물고 빨고 혼자 다 해라 이 미친년!"
거칠게 전화를 끊은 김양은 길가에서 혼자 분을 못 참고 씩씩거렸다. 영원히 우정을 변치 말자며 발목에 똑같이 문신까지 했던 절친은, 최근 남자친구가 생기면서 허구한 날 자취방 데이트였다.
말이 데이트지 안에서 뭘 하는 지 안 봐도 비디오였다.
‘미친년. 누군 남자 없는 줄 알고? 나도 부르면 당장 뛰어올 놈들이 한 트럭이야 이년아.’
김양은 홧김에 전화 목록을 뒤지다가 전 남친의 이름을 발견하곤 멈칫했다.
‘···아씨, 저번 주 술 먹고 새벽에 전화왔을 때 쌍욕 퍼부어버렸는데.’
다신 연락하지 말라며 번호까지 차단 했던 그녀였다.
이제 와 자신이 외롭다고 전화하기엔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다시 연락처를 들여다보았지만 마땅한 남자가 없었다. 어째서인지 서울로 상경한 이후 만난 남자들은 하나 같이 쓰레기들 뿐이었다.
걸핏하면 술 먹고 때리는 놈이 있질 않나, 친구를 소개시켜줬더니 몰래 바람 피우려다 걸리질 않나, 최근에 만난 놈은 그나마 멀쩡한 줄 알았더니 조금 친해지니 틈만 나면 그녀에게 돈을 빌려댔다.
5만원, 10만원, 30만원···. 처음엔 소액이라 안 갚아도 신경 쓰지 않다가 어느새 빌려준 돈이 300만원을 돌파하는 순간 김양은 깨달았다.
남친이 자길 현금 인출기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고.
결국 그런 식으로 짧게 만나다 헤어진 사람이 1년에 3~4명씩, 벌써 두 손가락으로 다 못 셀 지경이었다. 무슨 년의 팔자가 이리도 사나운지 늘 거지같은 녀석들만 용케도 골라 만났다.. 김양은 자신의 처지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휴-. 씨발, 하여간 얼굴 반반한 것들은 나사 하나씩 빠져 있다니까?’
만나줄 친구도, 만날 남자도 없다는 사실이 서글퍼진 김양은 인접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온라인에서 산 20만원짜리 짝퉁 구찌 가방에서 담배를 꺼낸 김양은 바깥 눈치를 살피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아무리 여성 흡연인구가 늘었다곤 하지만, 젊은 여자가 거리에서 길빵을 한다고 시비거는 꼰대들을 마주치기 싫었던 것이다.
구석에 쪼그려 앉아 담배를 피우던 김양이 고개를 숙여 침을 찍- 하고 뱉는데 갑자기 주변이 어두워졌다. 누군가의 그림자가 그녀를 뒤덮은 것이었다.
"누구? ···헉!"
김양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로 나자빠졌다. 그 바람에 치마가 훌러덩 말려 올라가 안이 훤히 비쳤다.
"안녕, 이쁜이. 여기서 또 보네?"
"다, 당신은!"
김양은 기척도 없이 불쑥 등장한 사내가 불과 1시간 전 햇빛론 사무실을 쑥대밭으로 만든 괴한이라는 걸 알고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하지만 상대의 무서운 싸움 실력을 똑똑히 지켜본 터.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빤쓰도 예쁜 거 입고 다니나봐?"
"꺄, 꺄악! 가, 가까이 오면 소리 지를 거예요?"
김양이 뒤늦게 다리를 오므렸다.
하지만 눈앞의 괴한-도훈은 심드렁하게 대꾸할 뿐이었다.
"할 수 있으면 질러 보던가?"
그러면서 위협적으로 깍지 낀 주먹으로 두둑-거리는 소리를 내는데 역광 때문에 얼굴 표정조차 보이지 않아 더 무섭게 느껴졌다.
겁을 잔뜩 먹은 김양이 두 팔을 들어 머리를 감싸며 말했다.
"때, 때리지 마세요! 저,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뭘 몰라? 묻지도 않았는데."
"저는 그냥 복사하라면 복사해오고 커피 타오라면 커피타다 주기만 했다고요. 대출에 대해선 진짜 아무것도 몰라요!"
도훈이 그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뭐래? 누가 그딴 거 궁금하대?"
"그, 그럼 저를 왜 따라오셨어요?"
"말했잖아? 예뻐서 마음에 든다고."
"예?"
"그리고 다 큰 아가씨가 치마 입고 그렇게 바닥에 앉는거 아니야. 일어나."
도훈이 손을 내밀었다. 김양은 저 손을 잡았다간 분명 흉한 꼴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주저했지만, 그렇다고 호의를 무시하면 더 큰 일이 날 것 같아 마지못해 손을 잡았다.
"으쌰."
도훈이 괴력을 발휘해 순식간에 김양을 일으켰다. 김양이 가벼운 탓도 있지만, 스파르탄 벨트를 찬 그의 완력이 실제 체구보다 훨씬 강했던 탓이었다.
"옴마야!"
너무 세게 당겼는지 김양이 일어서면서 발을 헛디디며 도훈의 가슴팍으로 돌진했다.
"조심하라고. 그러다 다치니까."
그러나 도훈이 매너있게 그녀의 양 어깨를 붙잡으며 멈춰 세웠다. 김양은 의외로 젠틀한 도훈의 행동에 살짝 놀랐다. 게다가 그의 몸에서 나는 특유의 체취가 너무 감미롭게 느껴졌다.
‘뭐, 뭐야? 불한당 같은 놈인 줄 알았는데···.’
김양은 도훈의 손을 잡을 때 뭔가 찌릿한 감정을 느꼈는 데, 그것은 무척 기분이 이상했기 때문에 김양 스스로도 놀라고 말았다.
‘뭔가 전기가 통하는 것 같기도···.’
"고, 고마워요."
김양이 양볼이 빨개져 대답했다.
"뭘 그런 걸 가지고. 근데 벌써 퇴근이야?"
김양은 도훈 앞에서 점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아까 사무실에서 날뛸 때는 흉포한 야수 같았는데, 밖에서 단둘이 만나자 이상하게 목소리도 부드럽고 어딘지 모르게 남자다운 매력이 있었다.
특히 방금 손을 잡으면서 느꼈던 짜릿함은 그녀로선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야릇한 느낌이었다. 마치 성감대를 강하게 자극한 것처럼 성욕이 훅 차 올랐던것이다.
‘뭐, 뭐지? 이 남잔? 설마 내가 퇴근할 때까지 계속 밖에서 기다렸다는 거야?’
"설마 저 기다리신 거예요?"
"어."
"왜, 왜요?"
"말했잖아. 다음에 또 보자고. 아까 보고 다시 봤으니 지금이 다음이지."
"아니···. 근데 저한테 왜···."
"그냥. 친해지고 싶어서. 왜? 나 별로야?"
도훈이 이죽거렸다. 김양은 그 순간 알수 없는 위화감을 느꼈는데, 맨 처음 봤을 때 무서웠던 인상을 가진 아저씨가 아닌 훨씬 잘생기고 어려 보이는 남자가 서 있는 것이었다.
‘원래 얼굴이 저렇게 생겼었던가?’
실은 도훈의 얼굴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역용술이 풀리는 중이었다. 게다가 김양을 유혹하기 위해 페로몬 향수부터, 몸에 좋은 크림까지 발라놓은 상태였다.
또 최근 획득한 직장여성에 대한 버프까지 발동하자 호감도가 순식간에 차오른 것이었다. 본래의 호감도가 50 정도라면 현재는 거의 70 근처까지 오른 상황.
당연히 김양으로서는 도훈에게 이성적인 관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니 뭐···. 우리가 얼마나 봤다고."
김양의 태도가 바뀐 것을 확인한 도훈은 좀 더 들이대기로 마음 먹었다.
"얼마나 본 게 중요한가? 어떤 느낌인지가 더 중요하지.
근데 담배도 폈어?"
도훈이 바닥에 떨어진 꽁초를 보며 물었다. 도훈의 등장으로 놀라 떨어뜨리는 바람에 중간쯤 타다만 담배였다.
"뭐, 필수도 있죠. 왜요? 여자는 피우면 안돼요?"
"아니아니. 나 때문에 떨어뜨린 것 같아서 미안해서. 내 것도 한 대줘?"
도훈이 품에서 담배를 꺼냈다.
김양은 금속제 담배곽과 처음보는 디자인에 살짝 의심했다.
‘뭐지? 설마 대마초 같은 건 아니겠지?’
그녀는 건달들이 드나드는 사채업소의 사무직으로 일했기 때문에 불량한 사람들을 제법 많이 보았다. 그중에는 습관적으로 마약을 즐기는 사람도 더러 있었던 것이다.
"돼, 됐어요."
"왜? 이상한 걸까봐 그래?"
도훈이 안심시키려는 듯 먼저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보라고. 그냥 담배라고."
"근데 왜 상표가 없어요?"
"아, 혹시 수제 담배라고 알아?"
"수제 담배요?"
"어. 궐련에 직접 말아 피우는 건데 훨씬 맛있더라고."
도훈이 다시 담배를 권했다.
김양은 여전히 의심스러웠지만, 막상 담배를 피우고도 멀쩡한 도훈을 보며 안심했다.
‘자기도 멀쩡히 피우는데 설마 이상한 건 아니겠지.’
"줘봐요."
김양이 담배를 받아 물자 도훈이 직접 불을 붙였다.
"난 담배 피우는 여자들이 그리 섹시하더라?"
"뭐래? 아저씨. 근데 몇 살이에요?"
"나? 올해 서른."
"와···. 겁나 늙었네. 저 스물둘 밖에 안 먹었거든요?"
김양은 점점 도훈이 편해지는 걸 느끼며, 평소처럼 틱틱거리기 시작했다. 원래 날라리였던 김양은 친해지고 싶은 남자에게 버릇없이 굴며 친근감을 드러내는 타입이었다.
"나이가 중요해?"
"당연하죠. 아저씨, 8살 차이면 도둑놈 소리 듣는다고요."
"그래도 그것보단 어려보이지 않아?"
도훈이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담배를 함께 피우는 김양은 점점 기분이 이상해지는 걸 느꼈다. 처음엔 맛이 좀 독특하다는 정도였는데 피우면 피울수록 점점 기분이 들뜨기 시작한 것이었다.
‘흐음···. 근데 얼굴에 비해 몸이 아깝네. 엄청 잘 빠진 몸인데···.’
김양이 처음으로 도훈의 전신을 훑었다.
키는 180이 훌쩍 넘어 보였고, 얼굴까지 작은 편이라 모델 같은 느낌이 났다. 게다가 반 팔 밖으로 보이는 근육질의 몸이 굉장히 섹시했다.
‘몸은 진짜 끝내주는구나. 내가 이제껏 만났던 양아치 놈들하곤 비교도 안되네.’
더욱이 김양은 도훈이 사무실에서 날아다니는(?) 광경을 두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다섯명이나 되는 건달들을 순식간에 제압한 싸움 실력은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아, 요새 너무 굶었나. 이 남자 왜 이렇게 섹시해 보이지?’
김양은 점점 몸이 달아오르며 기분이 이상해졌다.
마치 생리 직전 성욕이 끝까지 차올라 자기도 모르게 팬티 밑으로 손이 내려갈 때와 흡사했다.
‘하아···. 내, 내가 왜 이러지··· 미쳤나봐.’
김양의 호흡이 점점 가빠지는 걸 확인한 도훈이 슬쩍 물었다.
"내 덕분에 퇴근도 일찍 했는데, 어디 좋은 데 놀러나 갈래?"
"어딜요?"
"그냥. 조용한 곳. 할 얘기도 좀 있고."
"여기서 해요."
"여긴 좀 그렇잖아."
도훈이 골목길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흐음···. 나 아저씨 별로 못 미더운데."
"왜? 누가 잡아먹기라도 한대?"
도훈이 우스갯 소리로 말했지만, 이미 ‘고개들어요 용사님’ 담배를 끝까지 피운 김 양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말로는 계속 튕기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당장 도훈과 함께 뒹굴고 싶은 심정이었다.
‘잡아먹어 버리던가 그럼.’
김양의 몸이 흐느적 거리는 걸 본 도훈이 그녀의 손을 강제로 잡았다.
"가자, 날도 더운데 계속 서있지 말고."
"아앗, 어딜가려고요?"
"시원한곳 있잖아."
김양은 마지못해 끌려가는 것 같았지만, 도훈이 손을 잡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봇물이 주륵 흘러내리고 말았다.
‘헉, 미쳤나봐. 나 왜 이러지?’
성감대를 자극하는 크림 덕에 김양은 혀끝으로 애무라도 받는 것처럼 얼굴이 새빨개졌다.
"하아-, 미쳤나봐 이 아저씨. 오늘 처음 봤으면서···."
"왜? 첫눈에 통할 때도 있는 거지."
도훈은 점점 골목길 안쪽으로 김양을 끌고 갔다. 처음에 거부하던 김양은 나중에는 제 걸음으로 도훈을 따랐다.
골목 끝에 다다르자, 웬 여인숙이 보였다.
<달방 가능>이라고 붙어 있는 허름한 곳이었다.
"뭐, 뭐 하자는 건데요, 여기서?"
김양은 살짝 놀라는 척했는데, 도훈이 끌고 간 곳이 모텔도 아니고 누추한 여인숙이었기 때문이었다. 돈 없는 일용 직 노동자들이나 묵을 것 같은 건물의 비주얼에 김양은 무척 당황했다.
"왜? 더위나 식혔다 가자는 거지."
"아니 그래도···."
맨정신인 김양이라면 발을 들이기도 싫을 장소였지만, 도훈이 막무가내로 끌고 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안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진짜 여길 가자고요?"
"장소가 중요해? 누울 곳만 있으면 그만이지."
"누가 눕고 싶대요?"
김양이 끝까지 튕겼다. 그러나 이미 몸은 흠뻑 달아올라, 스스로 먼저 도훈을 덮칠 판이었다.
"넌 아직까지 참을만 한가보다?"
도훈이 불룩 튀어나온 대물을 들이밀었다.
바지를 뚫고 나올 것처럼 튀어나온 그것은 겉으로 보기에도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했다. 김양이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이, 이건 또 왜 이렇게 됐대요?"
"몰라. 너랑 손잡는 데 이게 서버렸더라고. 얼른 결정해.
들어갈 거야 말거야?"
김양이 침을 꼴깍 삼켰다.
백주 대낮에 오늘 처음 본 사내랑 난데없이 여인숙이라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었지만, 이미 그녀의 머릿속은 엉망진창으로 돼버려 될대로 되라는 심정이었다. 아니 무엇보다 도훈의 꼴린 잦이를 보는 순간 이성의 끈이 툭 끊어지고 말았다.
"아이참, 좀 좋은 데로 가지."
"알았어. 다음엔 호텔로 데려갈게. 아줌마, 여기 대실요."
요금표에 적힌건 2만원이었지만, 도훈은 5만원을 내밀곤 거스름 돈은 받지도 않았다. 키를 받고 방으로 향하는데 김양이 의아해 물었다.
"잔돈 안 받아요?"
"필요없어."
"아니 오만원이면 그냥 시내에 좋은 모텔도 얼마든지 갈수 있는데···."
"넌 내가 돈 때문에 여기로 데려온 줄 알아?"
"그럼요?"
"1분도 못 참겠어서 그런 거야."
도훈은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김양을 와락 껴안았다. 김양은 도훈의 두터운 가슴에 안기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찌릿해지는 기분이었다.
"아!"
지금 이 순간만큼 섹스가 미친 듯 하고 싶었다.
도훈이 아닌 서울역 길거리 노숙자라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